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34화(34/221)
34. R&E (2)
34. R&E (2)
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5월. 나는 교실 창가에 앉아 바람이 불어오는 걸 느꼈다.
커텐이 펄럭이고, 기분 좋은 햇살이 팔을 쬔다. 새소리가 짹짹 들려오는 것만 같지만,
“진짜 싫어.”
“야. 나도 싫거든? 지 때문에 여기 있는 줄 아나.”
“나도 마찬가지거든? 어이없네.”
서로를 극혐하는 둘의 대화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나 얘랑은 같은 팀 못 할 것 같아. 얘 빼줘.”
“아무리 룸메이트 우정이라지만 나도 이런 개차반 성격하고는 못 해먹겠다. 얘 그냥 빼버리자.”
“야! 내가 왜 빠져! 엄밀히 말하면 김만덕은 나랑 팀하고 싶다고 했거든? 빠질 거면 니가 빠져.”
“그렇게 치면 나한테도 같은 팀하자고 ‘먼저’ 제안해 줬거든?”
김진수와 이인영이 금방이라도 서로의 멱살을 잡을 듯이 물어뜯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한 명을 정하라는 협박이 담긴 눈빛이었다.
“엄… 일단 음… 다들 자기소개부터 할까?”
하하… 멋쩍게 웃으며 둘을 바라봤다. 그러자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리던 김진수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내 이름은 김진수. 원래 R&E 팀이 있었는데 김만덕이 하도 사정사정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이쪽으로 옮겼어.”
정확히는 그 팀에서 김진수를 쫓아냈다. 칼로 잰 듯이 기브 앤 테이크를 요구하는 김진수의 성격은 팀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야 김진수가 이런 성격이란 걸 알고 있었으니 문제 될 게 없지. 오히려 이런 계산적인 부분이 편할 때도 있고.’
하지만 원래도 계산적인 걸 극도로 싫어하는 이인영에게 김진수의 화법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내가 왜 알려줘야 하는데? 알려주면 뭐 해줄 건데?’
‘너는 뭐 잘하는데? 잘하는 과목이 있어?’
‘이번 중간고사 평균 몇 점인데?’
처음 김진수를 보는 사람이라면 분명 질색하며 도망칠 만했다. 하지만 전생에도 겪고 올해도 겪다 보니 오히려 나는 이게 반갑게 느껴졌다.
그가 딜을 시도한다는 게 일종의 신뢰 쌓기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이인영이고, 전공은 화학. 나도 김만덕이 제발~ 제발 좀 같이 좀 해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같이하게 되었네?”
정확히 말하면 같이 하자고 하긴 했지만 제발 좀 같이해달라고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말을 했다간 한 달 내내 눈총을 받을 게 보였기에 입을 꾹 닫았다.
‘나 사회성이 좀 늘어난 걸지도…?’
스스로의 모습에 대견해하기도 찰나, 마지막 팀원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 난 최한별이라고 해. 전공은 물리야. 그리고 음, 나는 내가 만덕이한테 부탁했어. 같은 팀 하고 싶다고.”
“엇, 그, 그렇군.”
“…그래?”
최한별의 말에 둘이 멋쩍게 내 눈을 피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도 얼떨떨한 기분이다. 최한별이 나한테 팀을 같이하자고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저기 혹시 R&E팀 아까 얘기 들었는데…’
‘어? 어.’
‘…혹시 자리 남아?’
무표정으로 말하는 데도 순간적으로 이성을 바짝 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응. 남아. 엄청 많이 남아.” 라고 말할 정도로 최한별의 외모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적응이 잘되지 않았다. 그냥 빛이었다.
‘왜? 굳이 우리 팀에 들어오려는 건데?’
‘…이유가 필요해?’
내 기억 속의 최한별은 분명 조용하고 말수가 없었는데… 물론 지금도 말 수가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이렇게 먼저 말을 걸고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경계의 눈빛을 띤 채 쉽사리 대답을 못 하고 있자 최한별이 쭈뼛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만약 불편하면 괜찮아. 괜히 부담 줘서 미안.’
‘아냐. 같이하지 뭐.’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직 최한별이 불편하다. 전생에 아예 접점이 없다시피 했던 이인영과 다르게 최한별과는 말이라도 나눴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군이고 적군이고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격기처럼 사람들을 비난하고 다녔던 내게 최한별은 그랬다.
‘너 그렇게 살면 평생 혼자일지도 몰라.’
그때 그 말을 하던 표정이,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눈앞에 있는 최한별을 보며 복잡한 마음을 애써 숨겼다.
“자, 그럼 일단 R&E 연구 주제부터 정할까? 아니면 역할 분배부터?”
“음. 사실 역할은 모두 고르게 해야 할 것 같아. 발표를 맡았다고 해서 자료 조사를 안 한다든가 그러면 곤란하니까. 나도 조장이라고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은 아니기도 하고.”
나와 이인영의 말에 김진수와 최한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장은 만장일치로 내가 하게 됐다.
“맞아. 앞으로 적어도 2달 동안은 계속 회의하고 연구할 텐데 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잖아?”
“왜 날 보고 이야기하는 건데? 그래핀 주제도 내가 먼저 꺼낸 거거든?”
“딱히 너라곤 안 했는데. 자의식 과잉인가? 아니면 찔려서?”
또다시 싸우려는 둘을 떼어냈다. 얼핏 보면 최악의 팀 구성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팀원을 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일단 이인영은 이 연구를 주제로 대상까지 받은 장본인이니 말할 필요도 없고, 김진수는 룸메 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들 때문이었다.
“진수는 실험을 하거나 회의를 할 때 내용들을 기록해 주는 서기를 맡아줄 수 있어? 물론 자료 조사나 이런 건 다 같이 할 거긴 한데, 전에 보니까 꼼꼼하게 잘 정리하는 것 같더라고.”
김진수는 매일 밤 일기를 썼다. 처음에는 오답노트인 줄 알았는데 일기였다.
‘매일 매일 기록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뭐라도 남겨놔야지 내가 여기 있었다고 증명할 수 있잖아. 그게 아니더라도 나중에 도움이 될 만한 거를 다시 찾을 수도 있고.’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어째선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생의 김진수와 나는 친하지 않았다. 룸메이트로 지내긴 했지만 딱 방을 공유하는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에야 이렇게 이야기도 하지 그때 했던 말은 ‘불 켠다.’, ‘불 끈다.’가 다였다.
그랬던 그가 지나가듯이 내게 말했던 적이 있다.
‘너희 부모님도 너한테 기대를 해? 학원도 안 보내주시면서?’
처음 들었을 때는 신종 괴롭힘인가 싶었다. 모욕으로 들렸기 때문에. 하지만 이내 어두워진 표정을 보고 그런 의도가 아닌 걸 알았다.
‘딱히. 부담은 안 주시는데.’
‘그래? 좋겠다…’
전생의 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며 중얼거렸다.
‘나는 매일 매일이 부모님 대신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거면 문제없지. 나는 나한테 빚진 애들은 모조리 다 적어두고 나중에 받아내고 있는 명부도 쓰고 있거든.”
“으윽. 진짜 싫다. 거기에 내 이름은 없지?”
“당연하지. 이인영 너한테는 티끌만 한 도움도 주기 싫으니까.”
“진짜 이 시키가-!”
이인영이 유독 김진수의 도발에 쉽게 넘어가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김진수도 선을 넘게 유달리 깐족대는 면도 있었다.
“인영아, 진수야. 너희가 같은 팀이어서 너무 좋은데… 이대로면 그냥 각자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해.”
헙. 내 말에 이인영과 김진수가 입을 꾹 닫았다. 아무리 서로가 싫어도 팀을 공중분해 시킬 정도로 눈치가 없는 애들은 아니었다. 다행히 한 차례 진정된 상황에서 나는 이인영을 바라봤다.
“인영아. 원래 그래핀 관련해서 연구하려고 했다고 했지? 혹시 생각해 둔 방향 있어?”
“어? 음… 그게. 사실 깊게 고민해 둔 건 아니고 처음 그래핀 소식을 들었을 때 떠오른 생각이거든.”
이인영은 노트를 꺼내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핀은 탄소가 2차원 벌집 격자로 배열된 단일 층이잖아? 그리고 최근에 연구된 걸 살펴봤는데 구부리거나 늘려도 파손되는 것 없이 버틸 수가 있대. 하지만 이 성질을 특별히 활용해서 개발된 제품은 없더라고.”
“구부리거나 늘어난다고? 그게 가능해?”
“심지어 인장강도가 강철보다 100배 이상이어서…”
이인영이 간략하게 설명을 이어가자 순식간에 팀원 모두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으르렁거리던 김진수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지금 인영이가 원하는 건 이런 그래핀의 특성을 이용한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는 거네?”
“…맞아. 근데 내가 생각해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 인장강도를 테스트하기 위한 실험 기구도 안 갖춰져 있고 무엇보다 그래핀을 연구할 만한 전문 현미경도…”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연구 주제에 이인영이 멋쩍게 말을 흐렸다. 하지만 이 부분은 나도 곤란하기 매한가지였다.
‘박성민의 연구소를 써도 되겠지만 어디까지나 거기 있는 장비들은 뇌 연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 인장강도를 테스트하는 기계라든가 전기적 특성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기기는 없을 가능성이 커.’
아무리 유명한 연구소라고 하더라도 이 세상 모든 실험 기기를 다 갖추고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분야에서 필요한 몇 개의 전문 장비들을 구비하고 있었다.
‘전생에 이인영은 어떻게 연구한 거지? 인맥을 이용한 건가?’
인맥. 이인영이나 이인성을 보면서 범상치 않은 집의 자제들이라는 느낌을 종종 받긴 했지만 과연 수천에서 수억까지 하는 실험기기들을 살 수 있는 정도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인영은 쭈뼛거리며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분명 믿을 구석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듯싶은데 선뜻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았다.
“…그럼 일단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주제로 진행해 보는 건 어때? 그래핀으로 꼭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최한별이 화제를 전환하며 말했다. 만약 내가 전생을 겪지 않았다면 그녀의 말에 흔쾌히 동의했을 거다. 하지만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음. 하지만 난 그래핀을 연구하고 싶어.”
“꼭?”
“응. 꼭.”
나는 별다른 이유를 덧붙이지 않았다. 딱히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제한적이기도 했고, 괜한 이유를 덧붙였다간 최한별의 말에 설득당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최한별의 말은 묘하게 거스를 수 없는 느낌이란 말이지.’
게다가 물리 과제를 발표하는 날에도 모두가 질문하기 꺼려 하던 상황을 순식간에 열띤 토론장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먼저 나서는가 싶다가도 상황이 달아오르면 조용히 빠져나가 그 상황을 유유히 지켜봤다.
그런 그녀를 팀에 넣는 것이 완벽히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었지만, 여러모로 만능캐에 가까운 최한별을 굳이 팀에서 뺄 이유도 없었다.
“그래. 팀장님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팀원이 따라야지! 알았어. 그러면 지금 연구 주제는 그래핀 특성을 이용한 연구이고 문제는 전문 실험 기구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그렇지.”
김진수가 받아적으며 말했다.
“전문 실험 기구를 고등학생인 우리가 구하기엔 힘들 거야. 아니면 인맥을 이용해야 하는데 흠. 다들 좋은 인맥 있어?”
“전혀.”
“없어.”
“…없을…걸?”
그 순간 나와 김진수가 이인영을 바라봤다. 이인영은 이 상황이 부끄러운지 볼을 긁었다.
“그러니까 인맥까지는 아니고… 그냥…”
“그냥?”
“…혈연?”
“?”
“아버지가 작게 회사를 하나 운영하시거든. 마침 거기 연구소에서 그래핀 관련해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들은 거 같기도 하고…”
띠링. 김진수의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방금의 대화로 이인영은 김진수에게 ‘쓸모 있는 인간’으로 넘어갔다.
‘아니. 금수저인 건 알고 있었지만 회장님 따님이었어?’
이인영의 말로 미루어 보면 작은 회사는 결코 아니다. 작은 회사는 연구소를 유지할 비용도 힘들 테니까. 적어도 중견 기업이거나 규모는 작아도 기술 특례를 받은 혁신 기업일 가능성이 컸다.
이제야 이인영이 과거에 혼자서 연구를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는 듯했다. 애초에 팀원들이 있어도 그래핀을 연구하기에는 환경적으로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으로도 차이가 났기에 그녀는 혼자 진행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러다 쓰러지긴 했지만.
나는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이인영을 불렀다.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인영아.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돼?”
너희 집, 아니 연구소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