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5)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35화(35/221)
35. R&E (3)
35. R&E (3)
이인영과 이인성. 둘은 전생에도 유명한 존재였다. 물리 천재, 화학 천재라는 수식어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 구별되는 외모와 특유의 고급진 분위기도 큰 지분을 차지했다.
‘알고보니 재벌집 자식 뭐 그런거 아니야?’
궁전 같은 저택 앞에 섰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고급 주택. 대기업 회장님들이나 살 것 같은 집이었다.
“오늘부터 이인영은 내 베프다.”
김진수가 안경을 조용히 올리며 중얼거렸다. 성격 차이가 자본주의로 해결되는 모습이었다. 참으로 한결같은 모습이다.
초인종으로 보이는 버튼을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열렸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 도달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헤이!”
이인성이었다. 후줄근한 티에 반바지. 잘사는 집이어도 집에서 입는 건 다 비슷한가보다. 편한 복장으로 우리를 맞이한 이인성이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이번 주말에 놀러온다고? 진짜로?’
사실 쌍둥이들이 집으로 초대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친해지고 난 뒤로 몇번이고 초대를 했지만 친구집에 간다는 게 영 어색한 나로서는 번번히 퇴짜만 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거절만 당하다가 이번에 직접 오겠다고 하니 기쁠만도. 이인성이 방방 뛰는게 이해가 되었지만 조금 낯간지러운 것도 마찬가지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라고 짧막하게 말한 후 나, 김진수, 최한별이 순서대로 들어왔다. 이인성은 마지막에 등장한 최한별을 보고 순간 얼음이 되었다.
“하하…친구, 잠깐 이야기 좀.”
그리곤 나를 조용히 끌고가 속삭였다.
“야. 최한별은 못 온다며?”
“아. 일정 바꿨대.”
“그런 건 미리미리 알려주라고!”
“쏘리.”
한손을 들고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표정은 무표정이긴 했지만 나름 사죄의 표현이었다.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미안…주말은 과외가 꽉 차 있어서.’
분명 최한별은 주말동안 과외를 받느라 시간을 뺄 수 없다고 했다. 과외가 끝나고 또 과외가 연속으로 있는 바람에 시간을 내려면 저녁 식사 때 밖에 안될 것 같다고.
애초에 쌍둥이네 방문하는 이유가 연구소 방문하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주말 저녁은 의미가 없었다. 주말 오전에만 잠깐 열리는 연구소에 가려고 모이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무슨 일인지 전날 저녁, 최한별은 [갈 수 있을 것 같아. 내일 봐.] 라는 문자 한 통만 남겼고, 지금 이렇게 같이 있게 되었다.
“아이씨,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옷 안 입지…!”
“왜 뭐 어때. 평소랑 똑같은데.”
퍽이나. 툴툴거리며 인상을 쓰고 있는 이인성에게 음료수 박스를 건넸다. 나름 집들이 선물이었다.
“오늘 초대해 줘서 고마워.”
“엥? 이런 거 준비 안 해와도 되는데.”
알로에 주스와 토마토 주스로 구성된 음료 박스. 비싼 건 아니지만 나름의 성의표시라고 생각하며 산거였다.
“예의 바른 친구구나. 어서 오렴.”
“!”
그때 이인성 뒤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목소리의 주인은 이인성을 지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인성, 이인영과 닮은 얼굴. 한눈에 봐도 큰 키. 나이는 있지만 꾸준히 관리한 듯한 몸. 잘 정리된 옷매무새와 스타일. 빈틈이 없어보이는 중년 남성, 쌍둥이들의 아버지였다.
“안녕하세요. 김만덕입니다. 오늘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너가 만덕이니? 안 그래도 애들이 너 이야기를 자주 하던데? 천재라고.”
“천재요?”
나도 모르게 옆에 있는 이인성을 바라봤다.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허공을 바라봤다.
“그래, 얼마나 칭찬을 하던지. 매 주말마다 너 이야기만 하다가 하루 절반은 다 지나가는 것 같더구나.”
짜식… 나는 괜시리 코끝이 찡해졌다. 맨날 츤츤데더니 집에서 내 자랑을 그렇게 한다고? 이런 츤데레같은-
“오해하지 마라. 난 칭찬 안 했음.”
“?”
“난 그냥 이인영이 먼저 말하면 맞장구친 게 다야. 진짜로.”
“하하! 그렇지. 엄밀히 따지면 인영이가 널 무척이나-”
“아빠!”
어우, 깜짝이야. 방문이 부서질 것처럼 쾅!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린 곳에는 편한 후드티에 반바지를 입고 있는 이인영이 서 있었다.
‘쟤는 집에 있었으면서 왜 안 나왔대.’
나름 이 집에 초대해준건 이인영이었기에 현관문을 열면 그녀가 나올 줄 알았다. 그래도 나름 R&E 준비하면서 친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웠는지도 모른다.
이인영은 방에서 운동이라도 하고 왔는지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급하게 뛰쳐나온 것 같았다. 우리는 멀뚱멀뚱 서 있다가 이인영에게 끌려 방으로 이동했다.
“인영아. 그래도 친구들이 왔는데 좀 이야기 나누다가 하는 건 어떠겠니?”
“지금 좀 급해서요! 다른 애들은 벌써 보고서 작성까지 끝난 조도 있는데 저희는 아직 아무 것도 못 했어요.”
“흐음… 그래? 그럼 좀 있다 아빠 회사 갈 시간에 부를 테니까 그때까지 친구들이랑 이야기 하고 있으렴.”
“네, 감사합니다.”
이인영이 데리고 온 곳엔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얼떨결에 자리에 앉았다. 방이라기엔 침대도 없고 옷장도 없었다. 그저 책장과 테이블, 의자가 다였다.
“다들 오는데 어렵지는 않았어? 길은 안 잃어버렸고?”
“응. 역에서 내려서 좀 걸으니까 바로 눈에 띄더라고. 덕분에 금방 찾았어.”
그때 문틈사이로 이인성이 얼굴을 내밀었고, 이인영이 쿠션을 던졌다.
“나가.”
“아 왜!”
“너 우리 팀도 아니잖아. 어차피 도움도 안될 거 얼쩡대면서 헛소리할거 뻔해. 그리고 그냥 너 싫어.”
이인영의 신랄한 공격에 이인성이 울상이 된 채 방문을 닫았다. 불청객이 사라진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직히 안 된다고 할 줄 알았어. 연구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고 더군다나 우리는 그저 고등학생일 뿐이잖아.”
“…뭐. 그만큼 R&E에 진심이니까. 너희가 아니었어도 나 혼자서라도 연구소에 가서 연구 부탁드리려고 했고.”
이인영은 생각 이상으로 이 연구 과제에 진심이었다. 사실 ‘실험기기’를 이유로 몇번이나 주제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지만 이인영은 한결같았다.
‘연구 주제를 바꾸려는거면 차라리 난 빼줘. 나 혼자서라도 연구하면 되니까.’
그래핀이 아니면 차라리 혼자 하겠다는 그녀의 말에 결국 팀원들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나머지 팀원들이 의외였어. 나야 뭐, 이인영이 대상 타는 걸 미리 알고 있으니 이쪽에 계속 연구하려는 것도 있지만…둘은 다른 팀에 가는게 더 나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특히 최한별 말이지.’
속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최한별을 바라봤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본 이인영이 조금 목소리 톤이 올라간 채로 주의를 끌었다.
“하여튼 우리가 여기 모인 건 R&E 때문에 모인 거니까 어서 각자 준비해온 거 꺼내보자.”
우리는 각자 준비해온 자료들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기 시작했다. 우선은 연구 방향을 ‘그래핀의 특성 연구’로 잡았기에 그래핀에 대한 각자의 이해가 우선되어야 했다.
“우선 내가 조사한 것부터 이야기해 보면, 그래핀은 우선 육각형 패턴으로 이루어진 단일 탄소 원자야. 다른 탄소 동소체인 다이아몬드나 흑연이랑은 다르게 2차원으로 구성되어있어.”
화학에 해박한 이인영이 심도있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벽쪽에 있던 화이트보드를 끌고와서 육각형 모양의 그래핀 화학 구조를 그려나갔다.
“그래핀의 각 탄소 원자는 3개의 이웃 탄소 원자랑 강하게 결합되어 있어. 이 부분이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σ결합(시그마 결합), p-오비탈 등 어려운 개념이 나오자 김진수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기 시작했다. 화학 천재인 이인영에게는 쉬운 내용일 것이고, 대학원생까지 지내오면서 미래에서 다 배우고 온 나한테도 쉬운 내용이었다. 뭐, 최한별은 모르는 게 없을테고.
“그럼 시그마 결합이 원자 궤도가 중첩되면서 일어나는 거야?”
“어. 맞아. 그래서 이 부분을 좀 더 도식화해서 설명해 보면…”
“잠깐. 여기서 p-오비탈 개념을 한번 정리하고 가야할 것 같은데. 아까 인영이가 설명한 거에 덧붙여 말해보면…”
우리는 서로 앞에 나와 보드마카를 들었다. 화이트보드는 점점 괴상한 화학식들과 구조들로 채워져 갔다. 그렇게 한차례 열띤 토론을 마치고 앞을 봤다.
영혼까지 하얗게 불태운 김진수가 소멸될 직전에 놓여있었다.
동태가 되어버린 눈. 허공을 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해탈의 경지.
“어…괜찮아?”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 지금이라도 다른 팀으로 가야겠-”
씁. 나는 탈주각을 재고 있는 김진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김진수가 이러는 것도 이해는 됐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벌써부터 포기하기에는 아직 시작한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잠깐 쉬는 시간을 갖기로 한 후, 김진수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김진수는 여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래도 너 지금까지 나름 밤마다 자료 조사 열심히 했잖아. 내가 들고 오는 학회지랑 학술서도 매번 꼼꼼하게 읽고 정리까지 하고.”
“그거랑 이거랑 같냐. 그건 이미 연구 완료된 걸 실어둔 거고 지금 우리는 연구 자체를 시작해야하는 단계인데.”
이미 마음이 꺾인 것 같은 김진수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에이. 근데 그러면서 다 적었네?”
나는 김진수 앞에 놓여있는 노트를 가리켰다. 김진수의 역할은 ‘서기’. 회의 중에 나온 모든 아이디어를 받아 적고, 토론 내용을 짤막하게 요약 정리해두는 역할이었다.
분명 빠르게 진행된 회의였을텐데 김진수는 우리가 나눈 대화의 대부분을 노트에 옮겨놓았다.
“심지어 알기 쉽게 요약까지 해뒀네. 핵심도 잘 파악했고.”
김진수가 정리한 노트를 꼼꼼히 읽자, 그가 멋쩍은 듯이 대답했다.
“내가 필기하는 속도가 좀 빠른 편이기도 하고 핵심은 자주 사용되는 단어 위주로 정리해뒀을뿐이니까.”
“우리팀에 꼭 필요한 인재였네. 너 아니면 누가 이렇게 받아적을 수 있겠어.”
이인영은 악필이다.
최한별은 원체 뭘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는 영어 약어 위주로 필기한다.
그 사실을 눈치챈 김진수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애써 억누르며 헛기침을 했다. 미세하게 턱을 치켜들고 펜을 딸칵거렸다.
“하긴 내가 없으면 이 팀이 굴러가겠냐. 어쩔 수 없네.”
“와아-, 룸메이트 최고 최고-”
최대한 영혼을 담아 리액션을 하자 이인영이 ‘애쓴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뭐, 조장의 역할엔 팀원 케어도 있거든?
이윽고 다시 열심히 그래핀의 전기적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인영. 탄소 결합에 대해 설명하면서 구조를 파헤치고 있는 최한별.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둘의 대화에 참여하면서 받아적고 있는 김진수.
“…너는 어떻게 생각해? 탄소 결합 길이가 왜 일반적인 유기 화합물에 비해 더 짧은 걸까?”
“음… 내 생각에는 단일 결합이랑 이중 결합이 번갈아 나타나서 그런 거 아닐까? 파이 결합 말이야.”
“…그쪽으로는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내 대답에 최한별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이후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우리는 그래핀에 대해 토론을 나눴다. 나누다보니 각자 이 연구를 통해 원하는 게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인영은 필시 이 연구를 통해 무언가를 얻어가려고 했다.
“나는 우리가 연구한 걸 바탕으로 제품에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어. 그냥 연구가 연구에서 끝나버리면 과학 전시랑 다를게 없잖아?”
“글쎄…나는 굳이 제품을 만들 필요가 있나 싶은데. 차라리 지금까지 기존에 나왔던 그래핀 제조 방식을 다양화하거나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안해내는게 더 의미있을 거 같아.”
이인영과 최한별은 서로 의견이 달랐다. 부딪히는 부분도 종종 있었지만 그럴때마다 최한별이 먼저 양보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인영이 말도 일리있으니까. 유의미한 결과물이 있다는 건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하기도 좋을거고.”
“어? 어. 내말이 그 말이야.”
결국 우리는 이인영의 의견에 좀 더 힘을 싣기로 했다. 그래핀을 활용한 제품 개발. 과연 고등학생 수준에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얘들아. 이제 연구소 갈 시간이다.”
적어도 또래 고등학생들과는 수준이 다를거라고. 실험기기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