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7)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37화(37/221)
37. 올림피아드 (1)
37. 올림피아드 (1)
함수연이 소개해주는 기계들은 내가 대학원생 시절에도 못 봤던 기계들이 많았다. 애초에 분야가 달랐을 뿐더러 소속 기관에도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나 대학 산하의 연구소에서 주로 일을 했던 나와는 다르게 이곳은 기업 소속 연구소였다. 그래서 그런지 연구원들에게 감도는 기운도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뭐가 더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낯선 건 사실이네.’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다. 어떻게 해야 1원이라도 더 이익을 남길까 고민하는 곳에서 ‘연구소’의 존재는 성질이 달랐다. 앞으로의 기업 경쟁력을 좌지우지할, 더 먼 곳을 보게 해주는 곳.
“제일 먼저 삭감되는 곳이기도 하지.”
함수연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살아남기 어려운 기업에게 10년 후를 위해 연구를 하라는 건 잔인한 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LK머티리얼즈는 좀 다르지 않나요? 아까 1층에서 보니까 신소재 개발 연구가 우선이라고 되어있던데.”
1층 벽면에 빼곡하게 쓰여있던 회사 비전. 그 비전들만 봤을 때 LK머티리얼즈는 신소재 개발에 사활을 건 기업이었다.
“비전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거니까.”
함수연의 말에 이어 이인영이 설명하듯이 말을 덧붙였다.
“…최근에 사업을 확장시키셨거든. 아무래도 신소재를 무한대로 개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번 개발했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있는 게 아니니까.“
이인영은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최대한 감정이 실려있지 않은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신소재. 많은 연구소에서 신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만들어낸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힘들게 세상으로 나온 신소재들은 여러 기업과 시장에서 끊임없이 평가받는다.
”특징이나 성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제조 공정에서 돈이 많이 들면 결국 사용 못 해.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으면서 최종적으로 이전에 있던 것보다 더 나은 소재여야 해. 그래서 이 분야에만 매달릴 수 없었던 거야.“
나와 최한별은 그저 묵묵히 들었다. 인정하기에는 현실이 쓰라렸고, 부정하기엔 외면할 수도 없었으니까.
“자. 실험기기 설명은 여기까지로 하고. 제일 중요한 걸 의논해 봐야 할 것 같은데.”
함수연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가볍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연구소는 고삐리들이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내가 이번에 너희를 허락한 건 어디까지나 너희 ‘아이디어’에 흥미가 있어서니까.”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매일 와서 연구를 하고 간다거나 동의 없이 기계를 만진다거나 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너희의 작은 실수가 이 기업이 몇 년째 하던 프로젝트를 날려버릴 수 있으니 말이지.”
함수연의 말에 이인영이 바짝 긴장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주 일요일. 그것도 오전 시간 중에만. 단 내가 일정이 생기거나 못 오는 일이 생기면 연구소 사용도 금지야. 어때, 그래도 해볼래?”
함수연의 말에 우리는 모두 서로를 바라봤다.
“R&E 발표일이 언제였지?”
“방학 전 주였으니까···7월 셋째 주 중일 거야.”
“그럼 두 달 반 정도 남았으니까···”
열심히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굴렸다. 두 달 반이면 넉넉잡아도 10번의 연구실 기회가 있다. 그중 함수연이 마음에 바뀌어서 일요일 날 못 오는 일이 생기면 더 줄어들 터였다.
“거기다 그 안에 기말고사 시험도 있잖아. 시험 있는 주랑 그 전 주는 못 올 거 같은데.”
김진수가 불안한 듯 이야기했다. 그에게 있어 시험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거였으니까.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괜히 이 주제를 했다가 원하는 결괏값도 얻지 못하고 R&E를 끝내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면 대상은 커녕 입선도 못 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중요한 건 연구실을 얼마나 자주 오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느냐, 라는 것을.
“어차피 우리가 하려는 건 그래핀의 특성을 활용한 제품 개발이잖아. 이곳에 와서 그래핀의 특성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연구할 수는 없고, 또 그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야.”
나는 팀원들을 바라봤다.
“진수 너는 우리가 회의했던 내용들을 시간 날 때마다 도식화해서 정리해줘. 바로바로 보고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야.”
“알았어. 내용 정리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한별이랑 나는 그래핀을 활용한 제품군들이 뭐가 있는지 더 조사해 볼게. 필요하면 직접 기업에 방문해 자문을 구해봐도 되고.”
“…응. 마침 신소재 개발쪽에 일하는 친척분이 계셔. 한번 여쭤볼게.”
“그리고 학교에서 시간 날 때마다 모여서 실험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두자. 매주 일요일마다 모여서 바로 실험할 수 있도록 말이야.”
팀원들에게 할 일들을 부여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방향성을 잡았다.
제약된 환경 속에서 최대의 효율을 끌어낸다. 그러려면 역할 분배는 필수였다.
“…나는?”
그때 이인영이 조심스레 나를 쳐다봤다. 다른 애들은 역할이 하나씩 주어졌는데, 왜 자신은 빼놓냐는 듯이.
“인영이 너는,”
나는 고민했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사실 이 R&E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당연히 이인영이었다. 이인영이 생각해낸 ‘내구성을 갖춘 그래핀’은 수십 번을 접고 말아도 흔적이 남지 않았다. 특수 공정을 통해 그래핀의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성질을 그대로 재현시켜냈다.
두 눈을 빛내며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이인영.
“열심히 생각해줘.”
“엉? 그게 다야?”
김빠진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이건 화학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거든.”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 중, 이인영은 화학을 가장 좋아하는, 아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
R&E팀은 그렇게 일정을 잡고 헤어졌다.
‘그럼 앞으로 시험 기간이 오기 전까지 매일 석식 먹고 만나서 회의하고, 따로 R&E회의 시간이 주어지게 되면 그때도 일단 모이자.’
‘옙!’
김진수가 장난스레 거수경례를 했고,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마무리 되었다. 나는 함수연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녀가 얼마나 큰 결정을 해준 건지 전생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알 수 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일요일이면 쉬는 날이실 텐데, 괜히 저희 때문에 연구실에 나오시는 거 아니에요?’
‘그만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어서 판단한 거야. 너희한테 실낱같은 아이디어라도 얻어갈 수 있다면 이 정도는 희생할 만하지.’
그녀는 뼛속까지 연구원이었다. 우리를 1층까지 배웅해 준 함수연은 시크하게 다시 연구소로 돌아갔다.
그렇게 지난 주말에 있던 일들을 회상하며 R&E에 대한 연구 일정을 세워보려는데 교실 문이 열렸다.
“자, 오늘 전달할 소식은 조금 중요한 내용이다.”
수업이 끝나고 박민철이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교탁 앞에 섰다. 빨리 짐을 챙겨서 자습실로 가려던 학생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담임을 바라봤다.
“국제 올림피아드를 위한 선발 일정이 나왔다.”
“!”
국제 올림피아드. 전 세계의 고등학생 중 내로라하는 녀석들만 뽑아서 그 실력을 경쟁하는 대회로, 종류만 해도 다양했다.
수학, 화학, 지구과학, 물리, 생물, 천문 등… 각 분야에서 날고 기는 녀석들이 모여 경쟁했다. 당연히 이 부분에서 좋은 성과를 보인 학생은 입시에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뿐더러 학교의 명예를 드높였다는 이유로 각종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률도 치열했다.
과학고뿐만 아니라 일반고에서도 출전이 가능한 만큼 숨어있는 잠룡들이 여기서 두각을 드러내곤 했다. 과학을 잘한다고 해서 모두가 과학고를 오는 건 아니었으니까.
언제나 재야의 고수는 있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나타나려나.’
“다들 알겠지만, 국내 올림피아드 입교 시험을 통해 총 1년간 수업을 듣고 일정한 절차에 따라 국가대표팀을 선발하게 된다. 너희가 지금 지원을 해도 올림피아드에 나가게 되는 건 2학년 때의 일이란 말이지. 물론 지원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국가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시험인 만큼 나라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따라서 우리 한국과고에서는 올림피아드 출전 희망 학생들을 대상으로 따로 수업을 진행한다.”
국제 올림피아드를 준비하기 위해 이미 많은 학생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개인과외부터 시작해 국제 올림피아드 전문 학원이 있을 정도로 나름 수요가 있는 강좌였다. 그도 그럴 게 국제 올림피아드는 과학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꿈의 대회였으니까. 전교 꼴등이었던 내가 비벼볼 수 있는 유일한 구석이기도 했고.
올림피아드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박민철은 나를 따로 교무실로 불렀다.
“앉아봐라.”
“네.”
옆에 간이 의자에 앉은 나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 박민철은 복잡하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아까도 설명했지만, 국제 올림피아드는 그 분야에서 뛰어난 학생들이 참가하는 대회로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를 한다. 물론 학교의 명예를 높이는 데도 한몫하지.”
“네.”
“근데 넌 왜 두 개를 신청한 거니?”
박민철이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가 꺼낸 종이에는 ‘국제 올림피아드 참가 희망 학생’이라고 적힌 명단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화학과 생물을 신청했다.
“너 생물 쪽으로 진로 정한다고 하지 않았니? 혹시 잘못 신청한 거라면 하나를 취소할 테니까-”
“제대로 신청한 거 맞아요.”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박민철이 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만덕아. 너가 우수한 학생이라는 건 잘 알겠다. 하지만 올림피아드는 단순히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대회가 아니야. 국가대표로 선발되려면 적어도 1년동안 수업을 들어야 한단다. 지금 당장도 통신 교육을 들어야 할 텐데, 감당할 수 있겠니?”
통신 교육. 올림피아드 출전 희망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일종의 인터넷 강의로, 학생들이 기본적인 내용을 수강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둔 제도였다. 원래라면 4월 중에 마감이지만 올해는 일정에 차질이 생겨 한 주 정도가 미뤄진 상태였다.
박민철은 계속 설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합숙 교육은 필수여서 생물과 화학은 합숙 일정이 겹칠 수밖에 없단다. 설령 안 겹친다고 하더라도 팀원들이랑 실험 평가를 같이 준비하다보면 일정이 꼬일 수밖에 없을 거고.”
박민철의 말은 논리적이었다. 실제로 한국 생물 올림피아드의 경우에는 겨울 학교 합숙이 있었고, 한국 화학 올림피아드는 여름, 겨울 모두 합숙이 있었으니까.
물론 둘 중 하나만 출전해야 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생물 올림피아드를 출전했을 것이다. 전생에도 그러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생물을 가장 사랑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전생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국제올림피아드. 말 그대로 각 국의 천재들이 모여서 싸우는 대회.
그리고 나는 천재들이 필요하다. 내 연구를 보다 더 완벽하게 해줄 천재들이.
비록 전생에는 어머니로 인해 해외 유학은 꿈도 못꿨다. 한국의 연구 성과를 무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더 큰 물에 뛰어들 필요도 있는 법이었다.
‘국제 올림피아드 출전자들끼리 따로 모이는 자리도 있다지. 그때 만난 인연이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인맥은 쉽게 얻을 수 있는게 아니었다. 인맥을 위해선 계기가 필요했고, 지금 내가 각국의 괴수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는 올림피아드 뿐이었다.
‘물론 금성 장학생 원서에 쓸 스펙으로도 더할나위 없고.’
물론 과거로 회귀한 이후로 모두가 놀랄만한 일들을 하며 지내왔다. 특별반 소속이 되고, 전교 1등도 하고, 과학 전시 발표와 R&E 연구까지… 한명의 학생이 다 이뤄냈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스펙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내 목표는 따로 있으니까.
그걸 위해서라면 조금 강하게 나갈 필요도 있었다.
“일정이 안 꼬인다면요?”
“응?”
내 기억이 맞다면 화학과 생물 국제 올림피아드는 일정이 겹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생물 올림피아드를 마치고 왔을 때, 화학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러 이인영이 막 떠날 때였으니까.
내 질문에 박민철이 두 눈을 끔뻑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곤란하구나. 지금까지 두 개 이상 종목에 올림피아드에 출전한 학생이 없었을뿐더러 있다하더라도 하나에 집중하지 못할 학생을 국가대표로 뽑아줄지 모르겠고. 국가대표로 선출되려면 입교 평가에 통과해야 하니까.”
국가대표. 국제 올림피아드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 선수.
‘국제 올림피아드의 일정은 겹치지 않아. 국제적인 행사인 만큼 서로서로 날짜를 피해갈 테니까. 그렇기에 생물과 화학을 동시에 칠 일은 없지만…’
“하여튼 적어도 두 개가 일정이 완벽하게 맞지 않는 한 나는 허락해 줄 수 없다!”
단호하게 말하는 박민철을 보며 나는 한발 물러섰다. 그가 이러는 행동이 제자를 위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교사의 모습일 때는 숙여주는 제자의 모습도 필요하다.
“알겠습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그러나 물러선다고 해서 포기하는 건 아니었다.
복도 게시판에 붙여져있는 ‘한국화학올림피아드’와 ‘한국생물올림피아드’ 공고를 바라봤다.
‘보통이라면 한 종목에 나가는 것도 벅차겠지.’
하나하나가 고등학생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난이도다. 국내가 아닌 국제적으로 노는 장소. 당연히 범상치 않은 문제들이 나올 게 뻔했다.
하지만 그런 게 두려웠다면 애초에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두 종목에 나가서 상을 받아올 자신이 있다.
단순히 객기를 부리는 게 아니라 내겐 그럴 만한 지식과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전생에 국제 생물 올림피아드를 쓸어버린 사람이란 말이지.’
국제 생물 올림피아드 금상.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나는 찬찬히 공고문을 보다가 공고문 아래쪽에 새겨진 로고를 발견했다. 로고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두 개 다 참가할 수 있겠네.”
박민철은 일정이 맞춰지지 않으면 참가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글쎄.
어긋난 일정도 다시 맞추면 그만인 거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어긋난 것도 고쳐줄 수 있는 사람.
꼬인 일정을 다시 펴줄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사람.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호랑이 굴에 방문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