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8)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38화(38/221)
38. 올림피아드 (2)
38. 올림피아드 (2)
한국과학창의재단. 줄여서 한국창의재단, 혹은 과학창의재단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한국 과학 교육의 메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 기술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학교 안 학생들이 과학을 좀 더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또 미래의 과학 기술의 선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투자를 하고 있는 단체이기도 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과연 어느 위치인가.’
한학수는 널따란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세월을 받아 희끗해진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보였지만 그의 눈은 세월을 빗겨간 듯했다.
국제 화학 올림피아드의 성적.
2005 종합 1위. 2006년 종합 2위, 2007년 종합 4위.
물론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노력은 값진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순위가 떨어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결코 조바심을 내선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별개의 일이었다.
특히 2007년 종합 4위를 한 것은 우리나라 대표단이 못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어떻게 보아도 매우 뛰어난 성적이었다. 단지 금메달 4개를 따간 나라들이 3개나 있었을 뿐이었다. 그 나라 중에서도 특히 주의해야 하는 나라가 있었으니,
‘중국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아.’
2006년, 2007년 1위는 중국이었다. 국가대표 4명 모두 금메달을 따가는 괴수들로만 구성된 팀이었다.
‘한국의 교육이 중국에 밀린다는 건가? 대체 어디서? 어떤 부분이?’
인구수가 많은 만큼 괴짜도 많고, 그만큼 천재의 수도 많다는 사실을 한학수가 모를 일은 없었지만 그는 그런 이유로 한국이 밀린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이상 그가 할 수 있는 노력도 없었기에.
그는 국제생물올림피아드 성적이 정리된 표를 봤다. 종합 2위, 종합 공동 1위로 뛰어난 성적을 보여줬지만 역시나 1등은 중국이 있었다.
만족하면 편하다. 하지만 발전은 없다. 한학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인재양성, 그리고 국위선양이라는 욕심이.
‘한국 학생들은 우수하다. 결코 중국에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 거지?’
‘개인전에서 1명이라도 은메달을 받게 되면 등수가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 모두가 잘하는 드림팀을 뽑아야만 한다.’
‘모두가 금메달을 받아올 수 있도록 하려면…’
하아, 한학수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고민을 하면 할수록 해결책보다는 막막함이 몰려들었다. 애초에 시험이라는 것은 운도 작용하는 법. 아무리 잘하는 학생도 국제 대회라는 이름 앞에선 평소보다 긴장을 배로 하기 마련이었다.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으면서,
긴장하지 않는.
그런 천재.
한학수의 머리에 스치듯이 한 인물이 떠올랐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이 모인 장소에서 막힘없이 자신의 알고리즘을 설명하며 좌중을 휘어잡던 학생.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과학 전시에서 대학교수 급의 연구 성과를 보여 모두를 놀라게 했던 학생.
‘심지어 사교육을 받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집안이었지.’
한학수는 이미 김만덕에 대한 조사를 끝낸 상황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 홀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과학고로 진학. 여기까지 보면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볼 수 있었지만, 그가 보여준 성과는 용을 훌쩍 넘어선 상태였다.
‘앞으로 주의깊게 봐야겠어. 지원도 아끼지 말고 말이야.’
과학창의재단의 역할 중 하나는 미래 인재 양성도 있었다. 우수한 학생들이 더 우수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장학금이라도 줘야겠군. 이러다가 의학 쪽으로 빠져버린다고 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
많은 학생의 의대 선호 현상으로 인해 미래의 과학자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대로 진학 시 장학금 모두 회수’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음을 불구하고 우수한 인재들은 모두 의대에 진학하고 있는 상황.
뚜루루루, 뚜루루루.
그때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한학수의 귀에 닿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만덕입니다.]*
‘야자를 빼달라고?’
‘네.’
‘이유는?’
담임인 박민철에게 야간자율학습을 하루만 빼달라고 부탁했다. 처음 보이는 내 행동에 그는 고개를 뒤로 빼고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이러던 애가 아닌데 뒤늦게 사춘기가 온 건가? 하고 걱정하는 눈이었다.
‘일정 조정 해야 해서요.’
내 말에 박민철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연신 띄워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창의재단 이사장을 보러 간다고 하면 믿어줬으려나.’
나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이라고 쓰여있는 비석을 바라봤다. 한학수에게 명함은 받았지만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같은 말이라도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과 아닌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난관에 부딪혔다.
‘이사장님이요? 무슨 용건 때문에 그러시죠?’
‘미리 사전에 약속을 잡으셨다고요? 네? 직접이요?’
사실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국가 기관. 국가 기관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면 차관급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와서 이사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니…
‘새삼 내가 얼마나 거물급 인물이랑 약속을 잡았는지 체감이 되네.’
나는 로비의 안내를 받아 이사장실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학수가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한학수 이사장님. 김만덕입니다.“
“그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지 뭔가! 그래, 무슨 일인가?”
“갑작스레 연락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마감이 얼마 안 남은지라…”
“마감?”
내 말에 한학수가 되물었다. 나는 비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최대한 간결하고, 확실하게.
“이사장님. 긴히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
한학수의 안내에 따라 가죽 소파에 앉은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국제생물올림피아드에 출전하고 싶습니다.”
“? 출전하면 되는 일 아닌가?”
한학수는 내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화학올림피아드에도 출전하고 싶습니다.”
“?”
두 눈을 끔뻑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한학수.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두 종목에 다 출전을 하고 싶다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허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한학수가 곤란하다는 듯이 시선을 피했다. 그는 지금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른스럽게 나를 타이르기 위해 말을 고르는 중일 거다. 예를 들자면,
“자네가 뛰어난 학생인 건 알겠네. 하지만 한 번에 두 종목에 참가하는 건 별개의 문제야. 애초에 한 종목에서라도 금메달을 따는 게 쉬운 일이 아닐세.”
“그렇다면 두 종목에서 딸 수 있다는 걸 입증하면 허락해 주시는 건가요?”
“애초에 내가 허락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닐세. 각 대회의 주관은 각 과목의 올림피아드 위원회에서 결정할 일이니까.”
올림피아드 위원회. 국가대표단을 뽑는 것도 각 위원회의 일이었다.
“애초에 내가 김만덕 학생을 국가대표로 넣고 말고 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일세.”
한학수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 주제를 종결시키고자 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사실 여기서 물러나도 내가 피해 보는 건 없었다.
전생 때와 마찬가지로 국제생물올림피아드에만 나가더라도 금상은 확정일 것이고, 금성 장학생에 쓸 말이 한 줄 줄어든다는 정도긴 하지만… 애초에 두 종목을 쓴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거긴 하지.
하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혜성처럼 나타나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따간 녀석. 단순히 금상만 받아간 거라면 이렇게 기억에 남진 않았을거다. 금상 수상자는 3명이나 되었으니까.
‘일반고에서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출전했다고? 게다가 금상?’
‘와…한국과고가 일반고한테 졌네.’
이인영이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은상을 받고, 그 결과 종합 2위에 그치던 날. 사람들은 이인영보다 그녀석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한국과고 학생도 못 받아간 금상을 타가는 녀석이라니,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퇴 소식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더이상 학교에서 배울게 없다고 하던데? 그래서 자퇴한거래.’
‘어디 듣기로는 연구원으로 들어갔다는데…그게 고등학생이 가능한거야?’
‘자퇴했으니까 중졸아님?’
소문만 무성하던 나날이 지나, 어느덧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졌을 때.
녀석은 혜성처럼 다시 나타났다. 마치 국제올림피아드때 존재를 드러낸것처럼 갑자기.
세상을 놀라게 할 연구 결과를 들고.
“…그럼 만약에 제가 화학과 생물 두 종목에서 국가대표로 선정이 된다면 괜찮겠습니까?”
“자네 정말…”
한학수가 질색하는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그의 눈은 나를 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진심이구만.”
결국 한학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시당초 그가 했던 말마따나 그에게 국가대표를 선출하고 말고 할 권한은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이 말을 하려고 온 건 아니지 않나? 선전포고라도 하려는 생각이었나? 단순히 이 일을 나에게 알려주려고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런것도 있지만… 사실 두 종목 국가대표 시험 날이 겹쳐서요.”
겨울학교를 모두 이수하고 난 뒤에 이뤄지는 국가대표 선발전. 그날이 공교롭게도 같은 날이었다. 그래서 박민철도 이 점을 이유로 들며 날 설득하려 했다.
“시험일을 조정해달라는 말이군?”
“네. 그래도 두 올림피아드의 후원자이신데 이 정도는 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게 뭐가 있지? 이미 결정된 일정을 변경하면서까지 말이야.”
한학수가 다시 호랑이 같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이미 결정된 내용을 바꾸려면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험 날짜를 하루 미루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의 물음 앞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가 원하는 것. 그가 제일 원하는 것을 제시해야했다. 한국 과학 교육의 메카.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원하는 것.
“할 수 있습니다. 국가 종합 1위.”
“!”
“단, 제가 화학과 생물에 동시 출전할 수 있다면 말이죠.”
더이상 부탁이 아니었다. 흥정이었다.
한학수가 원하는 걸 들어주고, 내가 원하는 걸 받는다.
“…호랑이 새끼였구만?”
그는 씩 웃으며 내게 손을 건넸다.
*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화학 올림피아드에 신청했다는 거지?”
“응.”
“화학을 제일 좋아하지도 않는 너가?”
“응. 제일 좋아하는 건 생물이니까. 그래서 생물도 신청했어.”
“뭔…?”
이인영이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화학올림피아드 대비반 수업을 위해 모인 곳이었다.
“너 중학생 때 올림피아드 쳐본 거 가지고 같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냥 막 경시대회 뭐 그런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건?”
“음, 나 중학생 올림피아드 쳐본 적 없는데.”
하지만 국제생물올림피아드에선 금상 땄어. 라고 속으로 말했다. 입밖으로 말했다간 저 표정에서 경멸 수치가 더 올라갈 테니까.
“아니 올림피아드도 안 쳐봤는데 이러는 거라고? 하아, 물론 두 개 일정이 기적처럼 안 겹치고, 국제 대회 일정도 안 겹쳤다지만… 감당할 수 있겠어? 아니면 둘 중 되는거 걸려라, 이런 마인드?”
“그럴 리가. 난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라.”
“아니 그렇다고 쳐도 왜 생물올림피아드 대비반이 아니라 화학 대비반을 듣는 건데? 상식적으로 너가 더 좋아하는 거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이번 화학 때도 나한테 져서 분한 이인영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물론 이인영의 말도 일리가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생물이고, 이건 영원히 바뀌지 않을 테니까. 단지 생물 올림피아드 대비반은 전생 때도 들었을뿐더러 내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기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뭐. 그냥. 너랑 같이 듣는 게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엉?”
“혼자 수업 들으면 재미없잖아. 생물 신청한 애들 가뜩이나 거의 다 여자애들 뿐이기도 하고.”
전생 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자애들하고는 썩 잘 지내지 못한 편이었다. 원체 숫기가 없는 성격이기도 했고 이런 저런 코드 자체가 잘 안 통하기도 했다. 내 말을 들은 이인영은 복잡한 표정으로 “그럼 난…?”이라고 중얼거렸지만 이내 수업이 시작하는 바람에 대화가 이어지진 못했다.
“오늘부터 너희랑 화학 올림피아드 수업을 진행할 김영환이다.”
김영환이 피곤한 표정으로 걸어들어왔다. 당분간은 특별반 수업 대신 올림피아드 대비반이 운영되었기에 내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교사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수업이 늘어난 상태나 다름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국제화학올림피아드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건 전국에서 4명이고, 그것도 과학고에서 대부분 선출되는 상황이지. 그 말인즉슨 우리 학교에선 많이 쳐봐야 2명이 나간다는 거다.”
그는 10명 남짓의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그렇기에 여기 있는 10명의 학생을 일일이 지도하는 건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이 중에서 8명은 나가 떨어지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렇게 하려고 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나눠줬다.
“역대 한국중학생화학대회(KMChC)문제 중 60문제를 랜덤으로 뽑았다. 여기서 성적순으로 5등까지만 출전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 중학생용이니까 쉽겠지?”
김영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그 미소는 꽤나 사악했다.
‘중학생들이 풀었다고 해서 중학생 수준인 게 아닐 텐데.’
하지만 역시 과학고 학생들인 걸까, 화학올림피아드 준비를 어려서부터 해와서 그런지 자신만만한 표정들이었다. 나는 떨떠름한 마음으로 문제를 받아들었다. 아무리 중학생 화학대회라 하더라도 화학 올림피아드 자체가 처음이었으니까.
그런데 풀면 풀수록 이상했다.
‘이거… 원래 이렇게 쉬운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