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3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39화(39/221)
39. 올림피아드 (3)
39. 올림피아드 (3)
“야, 돼지. 왤케 싱글벙글이냐?”
이인성은 아까부터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쌍둥이 동생, 이인영을 바라봤다. 이인성은 곧 날아올 쿠션, 혹은 주먹을 대비하기 위해 가드를 올렸다.
그러나 아무런 보복도 날라오지 않았다.
‘이인영이 돼지 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아…?’
순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이인성이 다소 진지한 목소리로 이인영을 바라봤다. 역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야. 돼지.”
“아~왜~! 자꾸 사람한테 돼지라 해~ 짜증나게.”
목소리를 길게 늘어뜨리면서 승질은 부리지만 평소랑 확실히 다르다. 이인성은 혈육이 지나치게 기분이 좋은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건 그거대로 기분이 나빴다.
“너 혹시 김만덕한테 화학 발려서 머리가 어떻게 되버린 거냐? 뭐 이제부터 화학 포기하겠다, 그런 건가?”
이인영에게 화학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늘 화학 부분에서 1등을 놓치지 않던 이인영. 그녀에게 ‘너 화학 개 못하더라?’ 라는 말은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도발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응? 누가? 내가? 내가 김만덕보다 화학을 못 한다고? 꺄핳”
‘오, 신이시여. 드디어 혈육을 데려가시는군요.’
이인성은 짧게 감사 기도를 드리기 위해 눈을 감았는데, 예상외의 말이 이어졌다.
“아니~ 글쎄 화학 올림피아드 대비반에서 시험을 쳤거든? 근데 그 성적이 나왔는데, 아니 글쎄 내가 1등이네? 심지어 60문제 중에서 58문제 맞춘 사람이 나밖에 없네?”
“어, 어. 그러냐?”
“‘그러냐?’가 아니고. 내가 1등이라고. 내가, 김만덕을, 드디어 화학으로 이겼다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동생의 모습을 보니 이인성은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김만덕은 화학 올림피아드 자체가 처음인 반면, 이인영은 어릴 때부터 올림피아드 문제를 수학 문제처럼 늘 풀어왔다. 풀어봤던 것도 또 풀고, 틀린 건 두 배로 더 풀고. 그니까 한마디로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던 거다.
이인성은 쭈뼛거리며 말했다.
“야… 근데 솔직히 김만덕은 사교육도 한 번도 안 받았는데 너가 이기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문제도 기출 랜덤으로 뽑아서 줬다지만 너 입장에선 이미 한번은 다 풀어봤던 문제일거 아니야.”
“어쩌라고. 그래서 뭐.”
“아,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너랑 만덕이 똑같은 문제 두고 풀어보라고 했으면…”
“했으면?”
그 순간 이인영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이인성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을 꺼내는 순간, 이인영은 아까까지 봐주고 있던 모든 폭력을 원기옥처럼 모아서 내게 쏠 것임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인성을 결심했다.
“너가 쳐 발렸겠지. 돼지야.”
“닌 디졌다 진짜.”
이인영은 옆에 있던 모든 물건을 이인성에게 던졌지만, 이인성 수년간 다져진 내공으로 이리저리 피하기 시작했다.
“넌 왜 이렇게 김만덕한테만 라이벌 의식을 느끼냐? 최한별도 화학 잘하잖아!”
“걔는 뭔가… 나랑 결이 달라. 그리고 김만덕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화학도 아니면서 화학 올림피아드 신청한 것도 마음에 안들고, 화학 대비반 신청한 건 더더욱 마음에 안들어!”
“에효 별게 다 싫네. 어쨌든 그럼 이제 방과 후마다 김만덕이랑 같이 수업 듣겠네?
“어?”
“게다가 R&E때문에 주말마다 맨날 만나고?”
“…엉?”
“이거 이러다가 둘이 썸타는 거 아니야?”
“미, 미, 미친 거 아니야?! 뭐, 뭐 뭐, 뭐라는 거야!”
이인영은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이인성의 등짝을 수없이 내려쳤다. 이인성이 “미안!”,“항복!”,“아악!” 같은 소리를 질러댔지만, 이인영의 귀가 빨개졌던 게 돌아오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맞을 수밖에 없었다.
*
‘다행이야. 공부 안 한 것 치고는 2등이나 했네.’
생각보다 중학생 화학 올림피아드는 문제가 쉬웠다. 산화 환원 반응을 물어보는 문제라든가, 수득률을 계산하는 문제 등. 대학 학부 시절에 잘 들었다면 대부분 맞출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화학올림피아드 대비반 수업은 전생의 생물올림피아드 대비반 수업과 비슷했다. 전년도 기출문제들을 풀고, 관련 개념을 정리하는 수업. 간혹가다 실험 평가를 대비하기 위해 몇 가지 실험을 진행하긴 했지만, 애초에 우리의 목표는 국제 화학올림피아드 출전보다는 우선 눈앞에 있는 입교 평가에 합격하자가 주목표였다.
화학 올림피아드 여름학교 입교 평가. 생물과 다르게 화학 올림피아드는 총 2번의 합숙 훈련을 진행했다. 여름학교와 겨울학교. 그중 여름학교 입교 평가는 이번 달 말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니까 원래라면 안 도와주겠지만, 너가 그렇게~ 나랑 같이 여름학교에 들어가고 싶은 거라면야 뭐. 내가 좀 봐줄 순 있어.”
이인영은 화학 올림피아드 대비반에서 1등을 했다. 나는 2등. 사실 우리 말고는 대부분이 고만고만한 성적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화학 올림피아드 학교 대표는 우리 둘이 나가게 될 게 뻔했다.
‘나? 나가면 좋긴 한데 사실 그것보다 기말고사 대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너희보다 잘할 자신이 없네.’
다른 학생들도 진작에 기말고사 때문에, 혹은 압도적인 점수 차이를 보인 우리 둘 때문에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하긴, 올림피아드 성적만 가지고 좋은 대학에 가는 시기는 지났으니까. 애매한 성적이라면 차라리 내신에 더 신경 쓰는 게 좋겠지.’
나머지 학생들도 오히려 우리를 응원하는 쪽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인영은 나를 볼 때마다 도발 아닌 도발을 했다.
“너가 지금은 2등을 했지만, 사실 화학이라는 건 언제든지 등수가 바뀔 수 있는 과목이거든. 화학식이나 분자 구조 같은 게 이해가 되는 순간! 다른 것들도 줄줄이 이해가 되니까.”
“아하.”
“그러니까, 지금 너가 2등이라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돼. 필사적으로 해야 입교 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국가대표로도 선발될 수도 있다고. 알겠어?”
“네네.”
나는 나름의 성의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사실 나 공부 안 했었어.’라고 말하면 이인영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그랬다가는 앞으로 좋은 학교생활은 못 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기에 고개만 열심히 끄덕였다.
‘그래도 애가 착해. 내가 입교 시험 떨어질까 봐 이렇게 도와주려고 하는 거만 봐도.’
사실 과학고의 일정은 정말 정신없이 몰아친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바로 수행평가, 수행평가 하다보면 모의고사, 모의고사가 끝났다 싶으면 다시 또 기말고사. 그 사이사이에 각종 자잘한 행사와 R&E준비 등 정신이 없지만 이인영은 그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내게 쓰고 있었다.
‘이게 바로 우정…!’
괜시리 코끝이 찡해왔다. 과거로 돌아온 후, 다시 또 전생 때처럼 친구를 못 사귀면 어떡하나 고민했는데, 내 곁에는 이렇게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
“자자, 그럼 일단 제일 기초적인 문제부터 풀어볼까?”
이인영은 살짝 업된 목소리로 ‘화학 올림피아드 대비 문제집’을 꺼내 들었다. 방과후에 김영환이 진행하는 대비반 교재였다.
“2001년도 기출문제야.”
[문제 2. 인산 (Phosphoric Acid)] [2.1. 25℃ 에서 인산의 산해리에 해당하는 pK 값들은 아래와 같다.] [pK_1a = 2.12] [pK_2a = 7.21] [pK_3a = 12.32] [이수소인산 이온(dihydrogen phosphate ion)의 짝염기(conjugate base)를 쓰고, 그에 해당하는 pK_b 값을 구하라.]“짝염기가 뭔지는 알지?”
“산이 양성자를 제공할 때 생기는 거 아니야?”
“맞아. 쉽게 설명하면 짝염기는 양성자를 잃은 후 산 분자의 나머지 부분이야. 예를 들어 HCl의 경우 양성자를 제공하고 나면 H+를 주게 되는거니까 남는건 Cl-겠지? 그걸 우리는 짝 염기라고 해.”
이인영은 알기 쉽게 개념을 설명해 줬다. 나는 이 문제를 풀 수 있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 계속 물어봤다.
“그럼 저 문제에서 산해리에 해당하는 pK를 구하라는 말은 무슨 뜻이야?”
“하아, 진짜 너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어쩔 수 없네. 내가 알려줄게. pK는 산에서 얼마나 쉽게 수소 이온을 떼어낼 수 있는지 나타내는 거야. 산해리는 pK_a라고 표기하고 염기해리는 pK_b라고 나타내.”
“아하.”
나는 아는 내용이지만 처음 알았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 모습을 본 이인영이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주어진 값 중에서 pK_3a가 가장 값이 크다는 말은 산성이 가장 강하다는 말이지!”
“진짜? 값이 크면 산성이 가장 높아?”
“어…자, 잠깐만.”
이인영은 갑자기 뭔가를 눈치챘는지 서둘러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 미안. 내가 반대로 설명했네. 값이 클수록 수소 이온을 잘 떼어낼 수 있다는 말이고 산성이 약하다는 뜻이니까…반대네.”
역시. 이인영은 흥분하면 실수를 하는 경향이 심했다. 지금도 어렵지 않은 개념이지만 순간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 반대로 생각하거나 오개념을 떠올리는 듯했다.
이인영은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머쓱한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곤, 시선을 피했다.
그냥 친구였다면 적당히 이야기해주고 넘어갔을거다. 하지만 이인영은 높은 확률로 나와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 출전할 것이었다.
그 말인즉슨, 이인영과 나는 같은 배를 탄 셈이었다. 이인영의 메달 색에 따라 국가 순위도 변할테니까.
“근데 인영이 너는 진짜 화학을 잘하네.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쏙쏙 설명해 주는 거 대단한 거 같아.”
“으, 응?”
“그렇잖아. 방금 산해리 설명해준 것도 그렇고. 근데 여기 화학식이 이해가 잘 안되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적당히 칭찬을 섞어서 헷갈리는 문제를 풀게 했다. 칭찬 효과때문인지는 이인영은 실수를 하려다가도 금방 다시 오류를 찾아냈다.
“와, 대박.”
“화학 부심 부릴만 했네.”
“진짜 깔끔하게 설명 잘 한다.”
연이은 칭찬 세례에 이인영의 얼굴이 점점 빨개져 갔다. 말수도 급격하게 줄었다.
‘너무 노골적이었나?’
평소에 칭찬을 잘 안 하는 성격이다. 전생 때도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보다 비난하는게 일상이었기에, 나는 선을 잘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너무 과하게 칭찬했는지 이인영의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 아무 질문이나 던졌다. 이랬다간 괜히 미운털만 두 배로 받게 된다.
“근데 넌 왜 화학이 제일 좋아?”
“어?”
“아니. 처음 만난 날부터 너가 그랬잖아. 화학을 제일 좋아한다고.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싶어서.”
생각해보면 이인영이 화학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전생 때도 말이다.
내 질문에 이인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나 역시도 불편해하는 걸 굳이 억지로 물어보는 주의는 아니었기에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다른 말을 꺼내려는데,
“그럼 너는?”
“응?”
“너는 왜 생물이 가장 좋은데?”
이인영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전히 시선은 피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아까보다 차분한 상태였다.
나는 몇 차례 음, 소리만 내다가 입을 열었다.
“치료하고 싶은 병이 있거든.”
“병? 그러면 의사가 되야하는 거 아니야?”
“으음, 아니. 내가 치료하고 싶은 건 좀 더 근본적인 거여서.”
내 꿈은 치매를 치료하는 치료제를 만드는 것. 좀 더 파고들면 치매의 원인을 파악해서 애초에 발병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어렵지만 꼭 이뤄내고 싶은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이인영은 우물쭈물하더니 괜시리 샤프를 만지작거렸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그런 말을 했거든. 내가 꿈의 신소재를 만드는 순간 그 신소재에 내 이름이 새겨질 거라고. 그럼 사람들이 너도나도 내 이름을 부르면서 다닐 거라고.”
“모든 과학자의 꿈이기도 하지.”
“근데 사실 그것보다는 그냥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 너도 알다시피… 아빠 회사가 그쪽이다 보니까. 내가 이쪽에 있으면 나중에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제야 이인영이 그토록 그래핀 연구에 매달렸는지도 얼추 이해가 갔다.
“그냥 내 꿈이랑 개인적으로 이득이 되는 방향이 같았을 뿐이야. 다음 문제 풀자!”
갑자기 진지한 분위기가 어색했던 걸까, 이인영이 가볍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화학 문제를 푸는 데 집중했고,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
그 후로도 우린 매일 방과 후에 함께 화학 문제를 풀었다.
물론 간간이 생물학 교재도 들춰보긴 했지만 생물 올림피아드 입교 시험은 8월이었기에 지금은 5월에 있을 화학 올림피아드 입교 시험이 더 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수가 잦던 이인영은 눈에 띄게 차분해졌고,
“결합 오비탈과 반결합 오비탈의 차이점은?”
“결합 오비탈은 저에너지, 안정적 분자 형성! 반결합 오비탈은 결합을 약화, 화학적으로 불안정!”
“NaCl는 어떤 격자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때 나트륨 이온의 배위수는?”
“Na+와 Cl-이 서로 교대로 배열된 면심입방 격자구조! 나트륨 이온의 배위수는 6개!”
짝!
우리는 모든 문제를 점검하고 난 뒤 하이파이브를 했고, 그 위에 걸려진 플래카드를 바라봤다.
[2008년도 화학올림피아드 여름학교 입교 평가]결전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