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4화(4/221)
4. 입학(4)
4. 입학(4)
‘생각보다 반응이 엄청났었지.’
김진수와 딜이 성사된 후, 우리는 서로의 무기를 교환했다. 김진수에게 받은 문제집은 생각보다 고퀄리티. 이것들 위주로 공부한다면 적어도 보충반에 들 일은 없을 터였다.
‘대박, 이거 다 너가 스크랩하고 체크해둔 거야? 옆에 적힌 건 관련 논문들?’
‘대체 어느 학원에서 이런걸···아, 너 학원 안 다닌다고 했지?’
‘···어쨌든 잘 볼게. 참고로 너가 준 거니까 여기 있는 자료 쓴다고 뭐라 해선 안 된다? 게다가 사후 A/S도 철저히 해줘야 해.’
사후 A/S가 뭔 소린가 했더니, 알고 보니 김진수는 영어에 좀 약한 편이었다. 어느 정도 기본 독해는 가능하지만 전문 용어로 쓰인 논문들은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었다.
뭐, 나야 전생에 늘 하던 일이니 어려울 것 없었다. 사후A/S까지 보증 받고 난 후 김진수는 씰룩이는 입꼬리를 애써 누르며 표정 관리를 했다.
“안쪽부터 차례대로 앉으시면 됩니다~”
기숙사에 짐을 풀고 난 후, 신입생들은 모두 급식실로 이동했다.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찌르자 배가 더 고파졌다.
‘하긴, 아침부터 제대로 된 걸 먹은 적이 없었으니까.’
사실 아침에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이 있었다. 배고플 테니 기차에서 꼭 챙겨 먹으라고 하던 어머니의 당부.
그러나 전생에 이 도시락을 먹었다가 하루 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렸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겨울이니 안 상할 거라 방심했던 나는 배탈이 크게 났고 그 탓에 수업도 제대로 못 듣고 이후의 일정에도 집중하지 못했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하지만 진짜 맛있었어요.’
비록 이번 생에서는 먹지 않았지만 맛은 이미 알고 있으니···먹은 거로 치자. 그리고 이 도시락을 피한 계기로 인해서 꽤나 내 주위에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뭐야, 왜 너는 고기가 더 많아?”
“으유, 돼지야. 니가 받은 건 눈에 안 보이냐?”
“뒤질래? 누가 누구보고 돼지래. 오징어처럼 생겨가지곤.”
내 앞에 앉은 쌍둥이들. 전생에서는 크게 친하지도, 엮이지도 않았지만 어째 오늘만 두 번째다. 앞에서 실시간으로 으르렁대고 있던 둘이 불현듯 조용해졌다.
최한별. 고고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녀가 내 옆에 앉았다. 그녀가 조용히 식판을 내려놓았고 그 주위는 일동 숨을 죽였다.
‘옆에 앉을 줄은 몰랐는데. 하긴, 지금 때면 서로 잘 모를 때니까.’
금수저,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고고하게 자라온 그녀.
흙수저, 죽을 둥 살 둥 매 순간 악착같이 근성으로 살아온 나.
그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내 자격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회귀를 하면서 내 인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었다.
그 당시에는 멋있고 똑똑해 보이던 놈들이 사실은 자랑하기 좋아하는 허세 가득한 학생들이라는 사실과,
마냥 이기적으로 보이던 김진수도 다르게 보면 자신의 것을 잘 챙기는 놈 중 하나였다는 사실.
‘···그리고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이 사실 그렇게 대단한 놈들이 아니었다는 것까지.’
사실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중간중간에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나를 괴롭히는 데 앞장섰던 놈들이었다. 팀 과제를 하는 동안 소외시키거나, 프린트에 실수로 물을 쏟는다거나, 기타 잡일들을 내게 떠넘기던 영악한 놈들.
이번 생에선 호락호락 넘어 가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먼저 보복을 해서 미리 적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또 나를 적으로 삼는다면 봐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생을 외롭게 보낼 생각도 없었다.
혼자서 빨리 가는 것보다, 여럿이서 멀리 가는 게 정답이란 걸 지난 생에 깨달았으니까.
“인영아, 내 고기 더 먹어도 돼.”
“···미쳤냐?”
“오빠한테 미쳤다니, 하하. 너도 참.”
이인성이 목소리를 깔고 어색하게 웃었다. 억지로 미소를 짓는 모습에 쌍둥이 동생 이인영의 표정이 급격하게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여자 앞이라고 이미지 관리-읍!”
“하하, 많이 쳐먹자 동생아? 그래, 그래.”
이인성은 이인영의 입을 틀어막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댔다. 순간 B급 콩트같은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했다가 이내 그 이유를 찾았다.
‘맞다. 얘 최한별 좋아했지.’
이인성, 이인영 남매의 경우 입이 좀 거칠긴 했지만 외모는 둘 다 정상급이었다. 게다가 둘 다 물리와 화학에서 탑을 찍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의 선망과 동경을 받는 건 당연.
그런 이인성이 눈에 띄게 대시를 한 학생이 있었으니, 바로 내 옆에 앉은 이 여자애. 최한별이었다.
‘학교 다니는 동안 계속 고백했는데도 한번을 안 받아줬다지. 심지어는 같은 의대에 가서도 계속 고백했다던데···’
둘의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들과 나는 접점이 없었으니까.
“저기, 너. 김만덕 맞지?”
그 순간, 이인영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 어.”
“애들한테 얘기 들었거든. 배찬호한테 한 방 먹였다매? 사실 나도 그 새끼 말하는 거 졸라 듣기 싫었거든.”
“아, 얘가 걔야? 생물학에 미친 놈이?”
이인성이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이 구역의 미친놈이 너냐? 하는 눈이었다.
“딱히 미치진 않았는데···”
“아냐. 내가 또라이여서 아는데 너도 한 또라이해. 어떻게 생물학을 설명하는데 수학이랑 물화생지 다 끌어다가 설명하냐? 심지어 앞에 나가서 그리면서 설명했다며?”
“꺄하핳! 생각만 해도 졸라 웃기네. 진짜 배찬호 표정 어땠을지 너무 궁금하다. 누가 영상 찍어 놓은 거 없나?”
이인영이 소리 내 웃자, 주변의 남학생들이 이쪽을 흘끔흘끔 쳐다봤다. 이쁜 애가 꺄르르 웃으니 자연히 시선이 가는 탓이었다.
“사실 배찬호랑 같은 학원 다니거든. 근데 그 새끼 전공이 물리거든? 그래서 그런지 물뽕이 무슨 머리끝까지 차 있어서 맨날 ‘화학 그게 어렵나?’, ‘화2는 물2에 비하면 그냥 장난 수준이던데.’ 이딴 개소리를 지껄이고 간다니까? 그런 주제에 이 새끼보다 물리 점수 낮으면서.”
“그건 어쩔 수 없지. 나보다 물리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어우, 재수없어.”
이인성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이인영이 극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저 아무 말 없이 웃었다.
왜냐면 이제 곧 최한별한테 깨질 테니까.
‘2년 내내 단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괴물. 나중에 서울대 의대에 갔다지.’
선생님들은 과학계의 인재를 놓쳤다며 아쉬워했지만, 뭐···다르게 생각하면 의학계에 인재가 들어온 거니까. 여전히 최한별은 조용히 급식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너 말이야. 어디 학원 다녔어? 생물 전문 입시 학원이 있는 거야? 거기서는 그렇게 융합해서 가르쳐?”
“나 학원 안 다니는데.”
“아아, 그럼 과외구나? 그 정도 수준이면 학부생한테 받는 건 아니겠네? 대학원생? 아니면 조교? 아, 설마 교수급?”
“과외도 안 다녔는데.”
“에.”
내 말에 둘 다 미간을 좁혔다. 같은 반응을 하는 걸 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둘이 닮았다.
“서, 설마. 거짓말! 너가 그 전설 속에 있는 ‘교과서로만 공부했어요.’의 주인공이야?”
“교과서로만 공부 안 했어. 그냥 음···과학 잡지들?”
“무슨 이게 무슨 ‘과학 동아 읽고 과학고 왔어요!’ 같은 소리야!”
과학 동아라니. 내가 말한 과학 잡지는 해외 논문들이 실린 학술지였지만···그냥 편의상 말했던 게 이상하게 왜곡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둘은 내가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폭풍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너 전공은 생물이겠네? 그럼 대학은? 따로 생각해둔 데 있어?”
“아직. 너희는?”
“나는 KAIST. 아마도 높은 확률로 얘도.”
KAIST라. 이랬던 녀석이 나중엔 최한별을 따라서 의대로 노선을 튼다는 건가?
‘뭐, 어쩌면 그 사이에 진로가 바뀐 걸 수도 있으니까.’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근데 생물학 쪽이면 나중에 의대 갈 수도 있겠네? 아무래도 제일 관련이 높잖아?”
이인영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의대는 내 적성에 안 맞아서. 그런 책임감 따르는 일은 질색이거든.”
“하긴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일이니까. 사실 난 과고 와서 의대 가는 놈들 이해를 못 하겠거든. 그럴 거면 과고를 왜 와? 그냥 일반고 가서 내신 따서 갈 것이지.”
아아, 나는 마음속으로 순간 탄식을 내질렀다. 이인성은 방금의 말로 의대 진학 목표생인 최한별을 저격했다. 물론 본인은 모르겠지만.
슬쩍 최한별 쪽을 바라봤다. 역시 조용히 젓가락질을 하던 손이 묘하게 느려진 상태였다.
“과고가 의대 진학률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과학 인재 양성이 목표인 학교잖아? 뭐랄까 괜히 그런 놈들보면 짜증이 난다고 해야 하나?”
“지랄. 지가 못 갈 것 같으니까 그런 거겠지. 물리 원툴인 주제에.”
“야! 물리 원툴 아니거든? 나름 다른 과목들도 잘 나오거든? 수학만 좀···”
이인성이 뻗대며 얼굴이 붉어졌다. 방심한 사이 허를 찔린 모양이었다.
“근데 과고 와서 의대 가는 게 나쁜 건가?”
“응?”
“뭐 어디까지나 의학도 과학 안에 들어가는 거고. 자기 목표를 위해서 전략적으로 온 거라면 마냥 나쁘다고는 안 보는데. 물론 이공계 인재 장학금이나 과학 관련 장학금 그런 걸 다 받고 의대로 가는 건 좀 그렇겠지만.”
전생에서도 이것과 관련해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았었다. 나 역시도 이인성과 같은 생각이었고.
그렇기에 최한별을 더욱 경멸했고, 한심하게 여겼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보니, 누군가를 경멸할 자격은 아무한테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까지나 노력해서 여기에 입학했고, 의사가 꿈이라는데 뭐. 그들의 꿈을 폄하하거나 비난할 자격은 없었다.
“아니지, 아니지. 생각해봐. 애초에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의대랑 안 맞는다니까? 과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커리큘럼을-“
“살면서 꿈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데. 그럼 여기 입학했다가 꿈이 의사로 바뀌면 전학이라도 가야 해? 과학 인재가 아니니까?”
이인성도 이 말에는 반박하지 못하겠는지 그냥 입을 닫았다. 이인영은 그 모습을 보고 깔깔대며 웃었다.
“와, 너 진짜 말빨 하나 끝내준다. 나중에 팀 프로젝트 있으면 꼭 같이하자. 응? 왠지 너랑 하면 1등 할 수 있을 거 같아.”
“···봐서.”
내 말에 이인영이 활짝 웃었다. 딱히 긍정의 의미는 아니었는데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한 모양이었다.
어느새 급식판이 깨끗하게 비워지고 배가 찼다. 오랜만에 먹는 균형 잡힌 식단은 충분한 포만감을 줬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최한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적재적소에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검은색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흰 피부는 그녀를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뭐지? 나 말실수했나?’
이번 생에는 최대한 엮이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어째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하다.
아까 쌍둥이들과 했던 대화들을 빠르게 복기하는데 최한별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급식 먹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설마 벌써 밉보인 건가? 만나자마자?’
회귀했다고 해서 사람이 크게 변하는 건 아니다. 회귀를 했다고 내가 갑자기 연예인급 외모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이 금수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전생 때 내 못난 열등감 때문에 일어난 악연을 이번에는 피하고 싶었다. 좋은 친구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엮이고 싶지 않았다.
“점심 다 먹고 좀 따 밖에서 번호 교환하자!”
“나도! 나도!”
물론 이 둘이랑은 친해질 것 같지만 말이다. 쌍둥이들과 함께 급식판을 반납하면서 우리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았고,
나는 급식실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내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
“자, 다들 점심은 맛있게 먹었나.”
“네!”
“목소리 들으니 그런 것 같네. 이번 3주 동안은 기초적인 내용들을 배우는 거니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치열하게 들으면 된다.”
점심을 먹고 오자 임시반에는 학생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저마다 학원에서 미리 다져놓은 인맥들이었다.
곧이어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흰머리가 군데군데 보이는 교사가 들어왔다. 옆구리에는 ‘생명과학 1’이라는 교재를 들고.
‘편안한 마음으로 치열하게 들으라니. 여전하시군.’
생물, 즉 생명과학 교사이자 이 학교의 원로 교사급인 황대문 교사였다. 원래는 생물학 분야에서 유명한 교수였지만, 모종의 이유로 교수직을 그만두고 교직 생활을 하고 있다고.
그러나 교수직을 하다 온 사람이어서 그런 걸까, 특유의 깐깐하고 집요한 성격 때문에 악명이 자자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결과가 도출된 이유를 설명해보게나.’
‘자네는 생각이란 걸 할 수 없나? 스스로 과정을 도출해내는 간단한 것조차 못 하는 건가? 이래서는 점수를 줄 수 없네.’
‘딱 보니 어디 학원가에서 달달 암기시킨 걸 그대로 읊고 있구만. 한심하긴.’
인격모독적인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 탓에 민원이 들어오긴 했지만···그렇다고 해서 그가 변하는 일은 없었다.
‘지금 이런 말 하나 들었다고 우는 거냐? 학회에 나가서 허구한 날 반박당하는 게 일일 텐데? 그런 정신머리면 진즉 때려치워라!’
지금 생각해봐도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는 강도가 세긴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황대문 교사를 지도 교사로 고르는 학생들은 없었다. 기피대상 1순위였으니까.
‘하지만 난 아니지.’
깐깐하다는 말은 그만큼 주의 깊게 본다는 말이고,
특유의 집요한 성격을 만족시키면 그 누구보다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예시는 최한별이고.
‘최한별이 쓴 걸 봐라. 학술적 근거,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한 증거 위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글이 서론, 본론, 결론 문헌 정리까지 완벽한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그래! 발표를 하라면 이렇게 하는거지, 뭔 애들 장난마냥 제스쳐에, 눈속임에, 에잉··· 내용이 완벽하면 군더더기는 필요 없는 것이여.’
원래도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특별 취급을 받는 최한별이었지만, 황대문의 지지덕에 그녀의 입지는 더욱 올라갔었다.
“자자, 아까 교재는 다 받았제? 책 앞장부터 펼쳐 봐라.”
황대문의 말에 학생들이 바짝 긴장한 채로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과학고에 들어와서 듣는 첫 수업. 다들 긴장한 만큼 기대하고 있었다.
“생명의 기초부터 들어가 보면··· 세포에 대해선 아마 귀가 아프도록 들어 왔을 기다. 우리 몸 하나하나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기관. 기관 다음엔 개체가 있지. 세포 안에 또 세세하게 들어가다 보면 세포막, 핵, 뭐 유전자 기타 등등 그렇게 구성 되어있지. 이건 중학생 때도 배웠던 거라 익숙할 기다.”
교재에 있는 내용을 줄줄 읽어주는 수업. 처음에 바짝 긴장하면서 수업을 듣던 학생들도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목소리에 점점 풀어지기 시작했다.
“DNA의 염기는 아데닌(Adenine), 구아닌(Guanine), 티민(Thymine), 시토신(Cytosine) 네 가지가 있고 RNA는 티민 대신 우라실(Uracil)이 존재한다.”
첫날인만큼 졸거나 떠드는 학생은 없었지만, 잔뜩 기대했던 만큼 표정에서 실망한 기색이 드러난 학생들도 몇몇 있었다.
‘황대문의 진가는 수업이 아니야. 그의 진가는 수업 끝날 때쯤에 나온다.’
애초에 교수까지 지내다가 학교로 온 양반이다. 제아무리 과고 수준이 대학 수준으로 배운다고 하더라도 해외 유명 저널에도 수십번 이름을 올렸던 사람한테 이정도 수업이 어려울리 없었다.
애초에 그가 학교에 온 이유는 천재를 미리 찾아서 제 손으로 키우기 위해 온 거였으니까.
‘한국 과학이 이 모양 이 꼴인 이유가 뭐겠나? 다 될성부른 떡잎들이 죄다 의대로 빠져버리는 탓 아니겠나!’
한마디로 천재들이 의대로 빠지는 걸 막고 자신의 제자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최한별이 의대로 가겠다고 했을 때는···학교가 뒤집어지는 날이었지.
과거 일을 떠올리며 엄청났던 그때를 회상하는데, 황대문이 교재 맨 뒤에 껴두었던 종이뭉치를 꺼냈다.
“자, 이제 수업도 끝났겠다, 쪽지시험이다.”
갑작스런 쪽지시험 이야기에 느슨해졌던 학생들이 바짝 정신을 차렸다. 배운 것도 없는데 대체 뭘 치라는 거지? 라고 다들 눈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시험지만 빤히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문제가 아닐 거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황대문이 나눠준 종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