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4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41화(41/221)
41. 매스컴이 만든 천재 (2)
41. 매스컴이 만든 천재 (2)
“암산으로 못 푸냐?”
상당히 도발기가 있는 말에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곽진환을 바라봤다. 하지만 녀석은 제 할 말만 하고 고개를 홱 돌리더니 문제지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제를 바라보고 바로 답을 체크했다. 한마디로 그 넓은 종이에 풀이 과정은 한 줄도 적지 않았다는 거다.
‘모의고사 첫 장은 기초적인 내용인 거니까. 그럴 수 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저 녀석이 모의고사를 통으로 암산으로 풀든, 아니면 다 찍어서 풀든 나랑 무슨 상관이람. 애초에 진실을 알고 있는 나에게 그는 이미 천재가 아니었다. 천재를 연기한 범재였지.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문제를 바라봤다. 난이도 자체는 매우 준수한 편이었다. 애초에 과학고의 수준이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수준이다 보니 모의고사의 30번 문제도 몇 분만 고민하면 쉽게 풀리는 문제였다.
‘물론 수능 스타일 문제는 낯설긴 하지만…’
학교에서 치러지는 시험들은 일종의 타임어택 문제들이다. 5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객관식과 서술형을 모두 풀어내야 한다.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당장 풀리지 않는 문제들은 뒤로 제쳐두는 판단력도 필요했다.
말 그대로 1분 1초의 싸움.
하지만 그에 반해 수능 스타일은 100분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이 주어졌다. 객관식 21문제, 서술형 9문제. 서술형은 말이 서술형이지 사실상 주관식 답안이었기에 풀이 과정은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번 가닥을 못 잡으면 아무리 시간이 많이 주어져도 풀지 못해.’
특히 수학 모의고사 시간에 잠드는 학생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애초에 풀 줄 모르면 시간이 많아도 사용하지 못했다. 몇몇 학생들은 경우의 수 문제나 확률 문제에 일일이 그림을 그려가며 푸는 학생도 있긴 했지만… 정답률은 그닥 높지 않은 편이었다.
나 역시도 지금까지 학교 시험을 위한 문제만 풀어왔다. 전생 때도 정시보다는 수시를 노렸기에 모의고사에 목숨을 거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학교에서도 모의고사를 잘 쳤다고 해서 특별히 장학금을 준다거나 따로 보상을 주는 일은 없었다.
‘물론 예외가 있긴 하지만.’
나는 내 앞자리에서 문제를 풀고 있는 최한별을 바라봤다. R&E 이후로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들긴 했지만,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애. 최한별은 R&E를 하면서도 나에게 말을 걸긴 했다.
‘…평소에 뭐해?’
‘어? 평소에?’
R&E 모임이 있는 날, 생각보다 빨리 연구실에 도착했는데 최한별이 미리 와있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줬다. 시선은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이내 피해버렸다.
‘그냥 공부하는데. 너는?’
‘…나도.’
대화라고 하기에도 뭐한 말들이었지만, 확실히 전생과는 다른 관계였다. 내가 그녀에게서 들은 말 중 기억에 남는 거라곤 ‘너 그렇게 살다가 X된다?’의 순화버전이었으니까.
어쨌든 그런 최한별은 전생에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2년 내내 모의고사 전국 1등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을. 과학고 전교 1등도 모자라 전국에서도 1등을 해버리는 그녀는 괴수 중의 괴수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 학교는 난리가 났지. 애초에 모의고사는 그렇게 띄워주지 않는 곳이었는데 플래카드까지 걸 정도였으니까.’
나 역시도 최한별을 이겼던 적은 단 한 번.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뿐이었다. 간소한 차이로 전교 1등을 했던 나. 하지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합쳐서 입력되는 시스템이기에 학기 기준 전교 1등은 늘 최한별이었다.
그 이후로는 사실상 과학고의 조기졸업은 2학년 1학기까지의 성적을 반영했기 때문에 그 이후는 큰 의미가 없었고, 대부분 대학을 위해 수능 최저를 공부하거나 관련 포트폴리오, 면접을 더 준비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니까.’
이미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 전교 1등을 해버렸다. 그리고 계속, 쭉 1등을 할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의지를 한 번 더 다지며 문제를 푸는데 다시 한번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푸는 법을 관찰하는 듯한 시선. 하지만 그런 시선에 굴하지 않고 나는 열심히 풀이 과정을 적어갔다. 아니, 애초에 시험 푸는데 남의 거 보는 건 컨닝 아니야?
“곽진환. 앞에 봐라.”
“…”
앞에 서 있던 오석훈도 그런 곽진환의 낌새를 느꼈는지 주의를 줬다. 녀석은 이렇다할 대답 없이 다시 시험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풀이 과정 없이 답을 바로바로 체크했다.
시간이 흐르고, 검산까지 완벽하게 마친 후 시계를 바라봤다. 아직 30분이나 넘게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미 고3 수준까지 끝낸 나에게 고1 6월 모의고사는 너무 쉬웠다.
‘시간도 남았겠다, 심심한데 좀 더 풀어볼까.’
이미 문제는 다 푼 상태였지만 나는 문제를 다시봤다. 좀 더 쉽고 빨리 푸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 한마디로 야매 풀이법을 만들어 내는 게 취미 아닌 취미였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야매 풀이법을 만들며 즐기고 있는 중, 오석훈이 박수를 쳤다.
“자, 보아하니 이미 다 푼 것 같은데. 풀이 진행해 볼까?”
역시 특별반은 특별반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100분이었지만 이미 1시간도 안 되어서 모든 학생들이 푼 듯했다.
“어차피 수업 시간도 한정되어 있고, 너희라면 1등급, 아니 100점은 다 맞을 것 같네. 문제 몇 개만 뽑아서 풀이 해보자.”
오석훈의 말에 아이들이 일동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여기 있는 집합 문제 풀어볼 사람?”
오석훈이 문제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긴 줄글로 된 집합 문제 하나가 있었다.
[어느 나라의 축구선수 700명 중 대표팀에 소속된 선수는 46명이다. 대표팀은 월드컵대표, 올림픽대표, 청소년 대표의 세 종류로 각각 2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월드컵대표이면서 올림픽대표인 선수는 5명, 올림픽대표이면서 청소년 대표인 선수는 7명, 청소년대표이면서 월드컵대표인 선수는 8명이다. 월드컵 대표에만 소속되어 있는 선수는 모두 몇 명인가? (4점)]합집합과 교집합을 이용해서 푸는 문제. 원래라면 벤다이어그램을 그려가면서 하나하나 구해야겠지만…굳이? 오히려 상식선으로 접근하면 더 금방 풀리는 문제였다.
“한별이가 풀어볼까?”
“네.”
최한별은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으로 갔다. 탁, 소리를 내며 분필이 그어졌다.
“월드컵, 올림픽, 청소년 대표를 각 A, B, C 집합으로 두고 벤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내면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합집합과 교집합 기호를 써가며 칠판 한쪽을 채워가는 최한별. 그녀는 자신의 성격답게 풀이 과정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빼곡하게 적어나갔다.
그녀의 풀이는 말 그대로 정석이었다. 답지에 실린다면 아마 최한별의 풀이가 그대로 실리겠지. 나쁜 풀이도 아니었지만 재미있는 풀이도 아니었다.
“좋아. 교과서처럼 깔끔하게 잘 풀었네. 그럼 이번엔 진환이가 푼 방식을 설명해줄래?”
오석훈이 곽진환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뚱한 표정으로 대꾸 없이 오석훈을 바라볼 뿐이었다.
“음… 혹시 못 풀었니? 못 풀었어도 괜찮아. 선생님이 설명해주면 돼.”
“…풀었는데요.”
“그럼 설명해볼래?”
“싫어요.”
예의 없는 말에 절로 인상이 써졌다. 물론 전생의 나도 성질머리가 더럽긴 했지만 적어도 선생님들한테는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반항을 한 적은 없었다.
내 시선을 느낀 걸까, 곽진환이 미간을 좁히더니 힘겹게 말을 꺼냈다.
“…암산으로 풀어서.”
“암산?”
인상을 쓰며 곽진환의 시험지를 바라봤다.
‘뭐야. 진짜 아무것도 안 썼잖아?’
곽진환은 진짜 암산으로 문제를 푼 것 같았다. 시험지 전체가 깨끗했으니까. 하지만 정답을 체크해두긴 했다.
오석훈은 곽진환의 시험지를 확인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결국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럼 만덕이가 설명해볼까?”
“아… 네.”
얼떨결에 발표를 하게 된 나는 칠판 앞으로 갔다. 그리고 분필을 들어 최한별이 쓴 ‘모범’ 답안 옆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전 좀 다르게 접근했어요.”
“다르게?”
“네. 보통은 벤다이어그램을 그려서 합집합에서 교집합을 빼면서 문제를 푸는 거겠지만… 사실 우리가 늘 벤다이어그램을 그려서 실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삶에는 무수한 수학 문제들이 있다. 단지 그 모습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수학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뿐, 장을 볼 때도, 친구들과 모둠을 짤 때도, 다 수학이 스며들어 있었다.
“역으로 그냥 전체에서 월드컵을 아예 선택 안 한 사람들을 빼보는 거에요.”
“오호. 계속 설명해 볼래?”
내 풀이법은 한마디로 야매 풀이법. 이렇게 시험지에 적는다면 풀이 과정 점수는 감점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모의고사. 풀이 과정을 적을 필요가 없었다. 빠르되, 정확하게만 풀면 장땡이었다.
“청소년 대표가 21명, 올림픽 대표도 21명. 이 둘만 더해도 42명인데 그 중 겹치는 사람 7명을 뺀다고 쳐도 35명이에요.”
철저하게 월드컵 대표 코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총 46명을 뽑기로 했는데 청소년 코치랑 올림픽 코치가 오더니 지들은 이미 35명을 뽑았단다.
“그럼 어쩌겠어요, 월드컵 대표는 11명을 더 뽑아야죠. 전체 48명은 채우라는데. 나머지 11명은 마지막에 뽑히는 애들이라서 올림픽이랑 청소년에도 못 들어가고요.”
“하하하!”
오석훈이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머쓱했지만 이미 정석 풀이로도 풀어봤기에 답이 맞다는 건 알고 있었다.
“만덕아, 너 진짜 재미있게 푸는구나? 이해도 쏙쏙되고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래, 지금 푼 것처럼 풀어도 틀린 풀이는 아니야. 오히려 이런 게 실생활 풀이인 거지.”
오석훈은 최한별 풀이를 보며 말했다.
“한별이 풀이가 나쁘다는 게 아니고, 우리가 살다 보면 급하게 뭔가를 해결해야 할 때가 많단다. 그때마다 수학 기호를 사용해서 풀려고 하면 오히려 쉬운 문제도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어. 그러면 결국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수학은 수학 문제 풀이를 위한 수학에 그쳐 버리고 마는 거지.”
그게 우리 한국 교육의 한계이기도 하고. 오석훈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마무리했다.
“어쨌든! 지금 만덕이가 푼 건 아주 잘 풀었다는 말이지! 하지만 모의고사 때 모든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었다간 분명 큰코다칠 거다!”
저주인 듯 저주 아닌 말을 하며 오석훈은 수학 수업을 진행했다. 우리는 오석훈이 짚어주는 문제들을 같이 풀고 풀이 과정을 공유하며 새로운 관점을 배워나갔다. 나로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누구에게 듣느냐에 따라 새롭게 들려왔다.
“여기서 a, b, c의 평균을 구하는 문제는 사실상 세 문자에 대한 구별이 없기에…”
특히 최한별의 풀이는 깔끔하면서도 명료했다. 설명을 하는 목소리 톤도 안정적이어서 듣는 데 무리도 없었다. 그녀는 설명하면서도 이따금씩 내 반응을 살폈는데, 시선을 맞추려고 하면 피했다.
“오늘 수업은 끝이다. 다들 수고했고, 맛있는 석식 먹어라.”
“네.”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녹초가 되어있었다. 문제를 푸는 것과 또 그것을 앞에 나가 설명하는 것. 이 두 가지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니 뇌에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아 맞다. 쌍둥이들 수학 봐주기로 했지.’
하지만 힘들다고 쌍둥이들을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녀석들은 내가 회귀해서 사귄 첫 친구이면서 동시에 내가 힘들 때 늘 곁에 있어준 소중한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고, 내가 가장 잘하는 걸로 보답해주고 싶었다. 분명 쌍둥이들이라면 도망치려고 하다가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문제를 풀 것이다. 또 시키면 잘하는 녀석들이니까.
“야.”
신경질적인 목소리. 고개를 돌렸다.
“뭐.”
“너…아니다.”
“말을 하려면 끝까지 해. 사람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안 그래도 아까 오석훈한테 보여줬던 태도만으로도 곽진환에 대한 이미지는 이미 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나름 사연있는 놈이라고 생각해 주려고 했는데, 이거 보면 볼수록 불쾌하다.
“너 원래 수학을 그딴 식으로 푸냐?”‘
“그딴 식?”
“어. 개 X밥처럼 푸냐고.”
곽진환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그래서 더 불쾌했다. 마치 숨 쉬듯이 쉽게 사람을 긁고 있었으니까.
나는 고민했다. 짜증 나는 녀석인 건 마찬가지지만 이런 도발에 걸려들 정도로 유치하진 않았으니까.
그냥, 뭐랄까. 궁금하긴 했다. 대체 왜 이렇게 나한테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건지.
“야.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냐?”
“어. X같이 문제 푼 거.”
역시 순순히 말해줄 리가 없지.
어떻게 해야 이 관계를 빨리 끝낼 수 있을까. 좋게 지내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애초에 날 싫어하는 놈이랑 웃으면서 잘 지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렇다고 이런 불편한 상태로 쭉 이어질 생각도 없다. 그건 그거대로 신경 쓰이니까.
차라리 박은지 때처럼 이유라도 명확하게 보이면 좋을 텐데…
‘아. 설마? 이 녀석도?’
“어. 개 X밥처럼 푸는데. 왜?”
“하…이런 놈한테…”
곽진환이 짜증 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내가 더 빨랐다.
“이런 놈한테 수학을 두 번이나 쳐발렸네?”
“!”
역시. 예상대로였다.
나는 이런 놈들을 잘 알고 있다. 어떤 말에 발끈하는지도, 왜 발끈하는지도.
물론 무시하면 편하다. 하지만 녀석이랑 나는 아마 졸업때까지 계속 같은 특별반일것이고, 그 말은 앞으로 계속 이런 시비를 받을 거란 말이기도 했다.
그러면 조용히 시켜야지.
“근데 어떡하냐. 내가 너보다 수학 잘하는 것 같은데?”
“뭔…”
“수학 천재라더니 별거 아니네.”
덜컹! 그 말에 곽진환이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학 천재’라는 말에 발끈한건지, ‘별거’라는 말에 발끈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발에 걸려들었다.
“야, 쟤네 왜 싸워?”
“뭔데, 왜. 무슨 일인데?”
마침 쌍둥이들도 나를 찾기 위해 특별반에 온 상태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둘을 안심시켰다.
“싸우는 거 아니야.”
“뭐야. 근데 분위기 왜 이렇게 험악한데?”
이인영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단어를 고르고 고르다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열 정리하고 있는 중이야.”
누가 더 똑똑, 아니 폐급이냐를 두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