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4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42화(42/221)
42. 매스컴이 만든 천재 (3)
42. 매스컴이 만든 천재 (3)
사람은 누구에게나 필사적인 순간이 있다.
필사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
필사적으로 해내야 하는 것.
필사적으로…
“자, 카메라 녹화 들어가기 전에 한 번만 더 점검해 볼게요. 진환이 어머님, 인터뷰 대본은 숙지하셨죠?”
“어유, 그럼요! 열 번은 더 읽었어요.”
호호호, 곽진환의 모친이 소리 내 웃었다. 그 옆에서 조용히 이 분위기를 관찰하고 있는 꼬마, 곽진환은 불과 9살이었다.
“진환아. 아저씨 볼까? 아저씨가 이 문제를 보여주면 어떻게 하라고?”
“…15라고 이야기 하기…”
“맞아. 그리고 또?”
“보자마자 저절로 답이 떠올랐다고…”
곽진환은 말끝을 흐렸다. 피디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뒤에 서 있던 여자. 막내 작가라고 불리는 여자의 표정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진환아. 이번 기회는 두 번 다시 안 올 기회야. 우리 진환이가 잘해야, 진환이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고 진환이 좋아하는 로봇도 많이 살 수 있어. 알았지?’
우연찮은 기회였다. 곽진환은 또래에 비해 생각하는 속도가 남들보다 빨랐다. 다르게 말하면 남들에 비해 ‘직관’이 뛰어난 아이였다.
‘저기, 진환이 영재성 검사 한번 해보는게 어때요? 자폐 징후 보이는 애들 중에 천재도 많다던데?’
‘우리 진환이가 자폐라뇨? 무슨 말을 하시는거에요!’
‘아니, 진환이가 자폐라는 건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거죠.’
방문 학습지 선생님이 한 말이 도화선이 되었다. 곽진환은 또래보다 지능이 높았고, 그건 때때로 수학적 감각으로 나타나긴 했다. 암산, 배열, 규칙성 찾기 등…
하지만 그정도로는 한국식 천재로 불리기엔 부족했다.
신동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영재발굴단’에선 곽진환을 두고 제안을 했다.
‘요즘은 이정도 숫자 잘 맞추고 블럭 잘 쌓는다고 해서 천재 소리 듣기 힘들어요. 이렇게 된거 좀 MSG좀 팍팍 치십다. 그 최근에 수능 문제 있죠? 그거 가지고 장면 하나 뽑아봅시다.’
곽진환은 수학적인 감각이 뛰어나다. 하지만 그게 곧 수능 문제를 잘 푼다는 의미와 직결되진 않았다. 고작 9살의 나이에서는 더더욱.
그러나 곽진환의 모친은 피디의 제안에 방방 뛰며 반겼다. 왜냐하면 곽진환의 집은 그리 유복한 편이 아니었고, 아들에게서 자폐 가능성보단 천재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자, 지금부터 방송 들어갑니다. 진환아, 너는 지금부터 수능 문제도 암산으로 풀어버리는 암산 천재 9살 소년인거다!”
탁. 소리와 함께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곽진환의 모친은 웃었고, 피디도 웃었고, 곽진환도 웃어야만 했다.
필사적으로 천재를 연기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
곽진환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당시 막내 작가가 ‘방송 조작’을 폭로하기 전까지 그의 이야기는 전설적으로 인터넷, 그리고 치맛바람 속에서 퍼져나가고 있었으니까.
‘그 책 읽어봤어요? ‘천재는 엄마가 만든다.’ 글쎄 우리 애도 이렇게 클 수 있을까요?’
‘어우, 말도 마요. 저도 그 책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는데, 애가 어려서부터 장난이 아니었다죠? 우리 애는 구구단도 이제 겨우 뗐는데 그 애는 유치원때 이미 다 끝냈다면서요?’
‘서울대에서 데려가려고 안달이 난 걸 일부러 아이 교육을 위해 돌려보냈다잖아요. 사회성도 중요한 덕목이라나? 하여튼 부러워 죽겠어요.’
모든 엄마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동시에 모든 학생의 비교대상이 된 존재. 그 존재가 곽진환이었다. 오죽하면 산골 오지에 살던 우리 집까지 곽진환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였을까. 그의 입지와 유명세는 웬만한 연예인급이었다.
그렇게 소문으로만 듣던 녀석을 과학고에서 만난 날.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학교 다니기를 택했다는 녀석은 사회성이 제로였다. 하지만 공부는 잘해서 늘 특별반 소속이었다. 그 말은 전교 6등 이내의 성적을 꾸준히 유지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처음 그 방송 조작 폭로를 듣고도 못 믿었던 거고. 적어도 과학고에서의 곽진환은 천재가 맞았으니까.’
하지만 막내 작가의 폭로 뒤, 그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모두가 그가 암묵적으로 인정한 거나 다름없다며 손가락질했다. 곽진환의 모친이 낸 책은 길가에 버려졌고, 몇몇 사람들은 과학고에서 받은 혜택을 모두 토해내야 한다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 미래를 알리 없는 곽진환은 자신의 수학 천재 타이틀을 건드렸다는 생각때문인지 여전히 씩씩대고 있었다. 말 한마디에도 이렇게 쉽게 감정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니 애는 애였다.
‘사실 이렇게까지 유치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이렇게까지 안하면 아마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지. 수학 문제를 풀 때마다 시비를 걸테고.’
박은지때처럼 어른스럽게 교화하고 싶지만, 글쎄.
박은지랑 곽진환은 결이 달랐다. 박은지는 말을 하면 알아는 먹지만, 이녀석은…
“뭣같이 수학 문제 풀면서 꼴에 허세만 가득하지?”
꼬여도 배배꼬였다. 이런건 직접 보여줘야한다. 누가 더 위인지.
하지만 비록 매스컴에서 말하는 수학 천재는 아니라하더라도 곽진환은 여러모로 대단한 놈이었다. 기본적으로 한국과고에 입학했다는 것, 그리고 특별반에 2년 동안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R&E에서 보여줬던 연구 결과만 봐도 평범 수준은 뛰어넘은지 오래다.
나는 곽진환을 바라봤다.
“너 나한테 져서 분해?”
“…진 거 아니라고.”
짓씹듯이 내뱉는 말엔 여전히 분노가 그득 그득 담겨있었다.
사실 곽진환의 말도 일부 맞는 말이긴 한 게, 내가 중간고사 수학의 마지막 문제. 세계 7대 난제와 관련된 문제의 답 점수가 인정되면서 간소한 차로 1등이 된 것이었다.
애초에 그 문제는 풀라고 낸 문제가 아니었는데 내가 풀어버렸으니, 곽진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풀어버렸는데.
나는 씩씩거리며 애써 분을 누르는 곽진환을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진 게 아니라면, 증명해 봐. 자기 풀이 과정도 설명 못 하면서 성질 긁지 말고.”
*
“가끔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너랑 친구여서 다행인 거 같아.”
“갑자기?”
“안 그랬다면 분명 이리저리 까이고 치여서 만신창이가 되었을 테니까…”
이인성이 오한이 드는지 나와 멀찍이 떨어진 상태로 말했다. 우리는 석식을 먹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노을까지는 아니더라도 해가 어스름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리고 아까 뭐랄까. 너답지 않았어. 곽진환이랑 싸운 거 말이야.”
“싸운 거 아닌데. 그냥 대화한 거야.”
“누가 대화를 그렇게 살벌하게 해?!”
이인영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운동장을 걸었다.
“게다가 무슨 여기가 듀얼 세계관도 아니고 수학 문제 푸는 걸로 증명하라니? 무슨 드라마 찍으세요?”
“내 말이. 나 듣는데 오글거려서 순간 뛰쳐나갈 뻔했잖아.”
“너무 패지 마라… 아프다…”
쌍둥이들의 촌철살인에 생명력이 깎여나가고 있는데, 이인성이 우뚝 멈춰 섰다. 장난식으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녀석에게는 충분치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곽진환에게 과할 정도로 반응한 이유. 물론 먼저 시비를 건 녀석의 잘못도 있지만, 어째선지 곽진환의 모습이 전생의 나와 자꾸만 오버랩이 되었다. 그래서 그냥 둘 수 없었고,
“이대로 꺾이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꺾…뭐? 누가 꺾여? 곽진환이?”
곽진환은 그 프로그램이 말하는 천재가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수학에 있어선 분명 뛰어난 재능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재능충을 내 인맥에 넣고 싶었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곽진환 역시 R&E를 진행했다. 다른 학생들이 물화생지와 같이 과학을 주제로 연구를 할 때, 곽진환은 혼자서 수학을 주제로 연구에 임한다.
‘실험을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유의미한 발견을 낼 수도 없는 과목이지만, 그가 보여준 연구는 어마어마했지.’
곽진환이 연구한 분야는 수학 중에서도 정보 기하학(IGinformation geometry).
일반인들을 대상으로는 생소한 분야이긴 했지만, 그만큼 활용하는 데 있어 무궁무진한 분야이기도 했다. 확률 분포로 인해 생성된 공간의 구조를 분석하는 학문이었다.
‘여러 명의 사람이 모여 있을 때, 동일한 생일을 가진 두 명이 있을 확률을 계산하는 문제를 정보 기하학의 관점에서 해석해 풀이해 보면…’
평소에 말수가 없는 걸로 유명한 곽진환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연구한 걸 발표할 때만큼은 성의 있게 발표했다. 비록 이 분야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심지어 수학과 교사들도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정보 기하학적으로 접근하면, 확률과 수학적인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특히 확률분포를 다룰 때 효율적이지.’
그 말인즉슨, 내가 진행할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전생의 나는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데 김영재의 유전자 편집 기술을 차용해 아이디어의 발전은 이미 진행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했었다.
‘치매를 유발하는 유전인자를 찾고, 표적 설정을 하는 과정이 필요해. 하지만 치매만 유발하는 유전인자를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무턱대고 유전자를 제거했다간 그 과정에서 결국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낼 수도 있어.’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 유전적 상호작용의 관계를 최대한 분명하게 정의해내는 것. 그 과정에서 많은 통계적 모델링이 필요했다. 치료를 위한 표적을 식별하기 위해서라도 무수히 많은 샘플군이 필요할 테니까.
‘그때 곽진환이 했던 연구에 따르면 정보 기하학 분야에서 데이터 내의 패턴을 분석해 낼 수 있다고 했지. 그 부분을 좀 더 깊이 파고들 수만 있다면…’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서 약간의 실마리만 있다면, 약간의 힌트만 있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데.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 한걸음이 가장 힘겨운 법이었다.
툭. 그때 이인성이 어깨를 가볍게 쳤다.
“너 또 표정 심각해졌다. 얼굴 풀어. 우린 너 편이니까.”
“맞아. 어차피 곽진환 걔도 그냥 수학 진 거 분해서 꼬장 부리는 걸 테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이인영이 그렇게 말하니 뭔가 낯설었다. 결코 그러려니 넘어가지 않는 애가 이런 말을 하니까 뭔가 좀 낯선데?
“그래, 그래. 인생은 좀 그러려니~ 마인드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니까?”
“인생에서 공부가 전부가 아니잖아? 그치?”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쌍둥이들. 어느새 이렇게 훌쩍 성장한 건지, 코끝이 찡해졌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의 진심을 가볍게 못 본 척하며 말했다.
“이제 수학 공부하러 갈까?”
“쳇. 실패군.”
“눈치만 더럽게 빠르다니까.”
툴툴대는 쌍둥이들을 끌고 야자실 스터디룸으로 갔다. 야자실 스터디룸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문제를 풀 수 있는 곳으로, 보통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수능 최저 싹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적어도 수학은 안 보면 안 되나?”
“그러면 갈 수 있는 대학이 팍 줄어들걸.”
“으, 수학 극혐이야…”
자이스토리, 쎈, 수학의 정석… 그 밖에도 학원에서 나눠준 개별 교재까지 한 아름 안고 온 쌍둥이들이 긴 한숨과 함께 내 앞에 앉았다. 사실 여기서 더 뻗대고 안 하겠다고 하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었다.
“우리도 양심이 있지. 너 공부하기도 바쁠 텐데 시간 쪼개서 해주는 거잖아.”
“근데 너 각오하는 게 좋을걸. 난 몰라도 얜 진짜 빡대가리거든.”
“돼지가 어디서 짖나악-!”
이인영에게 한 대 맞은 이인성이 지지 않고 투닥거리길래 주의를 줬다. 아무리 편한 분위기라고 해도 스터디룸. 다른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쌍둥이들의 수학 공부를 도와주는 것. 사실 단기적으로 보면 내게 큰 이익은 없었다. 알려주면서 배운다고는 하지만 고등학교 수학은 내게 너무 쉬웠다. 고3 수능 문제를 푼다면 모를까, 그것도 고1 6월 모의고사는 내가 더 배워갈 내용이 없었다.
“그래도 같이 공부하는 편이 더 재밌으니까.”
“만덕쿤…!”
“말투 왜 저래…”
이인성이 감동받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인영이 옆에서 질색했지만 내 말에 감동을 받은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뭐. 어떤 식으로든 고마운 일 하나정도는 지워두는 건 좋다. 게다가 쌍둥이들의 집이 범상치 않은 만큼 나중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거고. 게다가 쌍둥이들 입장에서도 수학 과외를 받는 셈이니 서로 윈윈하는 입장이었다.
LK머티리얼즈. 현 대한민국에서 신소재 부분에 있어서는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업.
‘그런 기업이라면 나중에 다양한 분야에 연구 지원을 할 수도 있겠지. 설령 치매 관련 쪽으로 지원을 하는 게 아니더라도 관련 분야의 인맥을 맺어둘 수도 있는 거고.’
계산적인 생각이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스스로에게 살짝 환멸을 느낀 뒤, 나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은 여기에 집중할 때다.
“자, 이번 6월 모의고사에 나오는 범위 위주로 먼저 보면-”
연습장 위로 풀이를 한 줄씩 써 내려갔다. 쌍둥이들은 내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려워하는 게 느껴졌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문제를 풀었을까, 진이 빠진 쌍둥이들이 화제를 돌릴 겸 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 아까 곽진환하고 문제로 증명한다고 했잖아. 근데 너 지면 쪽팔리는 거 아니냐?”
“아까 얘기 들어보니까 이번 6월 모의고사 성적 내기로 했다며. 내가 알기로 곽진환 3월 모의고사 때도 100점 받았다는 것 같던데.”
3월 모의고사 대부분이 1등급을 받았지만, 100점은 전교에 딱 3명이었다. 최한별, 곽진환, 그리고 나.
“내가 질 것 같아?”
“아니,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이인영이 머쓱한지 말끝을 흐렸다.
2008년 6월 모의고사는 여러모로 역대급이었다.
30번 수학문제 정답률이 무려 0.04%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뭔 대수람.
결국 맞히면 끝인데.
나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문제를 마저 설명했다. 그렇게 쌍둥이들과 수학 시험을 대비했고, 어느덧 6월 모의고사 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