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4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44화(44/221)
44. 계산 (1)
44. 계산 (1)
그 날 이후로 곽진환과 나 사이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어때? 할 만해?’
‘…말 걸지 마.’
단지 날을 세우던 모습들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것 정도. 어떻게 보면 내가 그의 약점을 쥐고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 친구 같은 관계를 기대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언뜻 보았던 그의 책가방 안에 정보 기하학 원서가 있는 걸 보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연구는 연구대로, R&E는 R&E대로 바쁘게 흘러가던 무렵, 어느새 그 날이 오고 말았다.
“기말고사 시험 일정 나왔다. 앞에 붙여둘테니까 확인해봐라.”
종례가 끝난 후 아이들이 너도나도 앞으로 나가 시험 일정표를 확인했다.
“뭐야. 국어랑 영어를 같은 날 쳐?”
“으아…생물이랑 지학을 같은 날 치는 건 오바잖아. 암기 과목 두 개를 몰아두면 어쩌라는거야!”
“진짜 시간표 누가 짜냐.”
학생들의 원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하지만 시간표가 어떻게 나오든지 상관없이 터져나올 원성이라는 건 그들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자만하지도, 방심하지도 말자.’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나는 틈틈히 학교 공부를 빼놓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대학원생 과정까지 겪은 머리라 하더라도 풀지 않으면 금방 감을 잃어버린다. 머리만 믿고 방심하다가는 큰 코 다치는 게 이 판이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책을 챙겨 특별반으로 이동했다. 기말고사가 얼마 안남은 지금, 특별반 수업 대부분은 자습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비교적 사람이 적은 이 곳이 좀 더 공부하기 편했다. 쾌적한 환경도 한몫했지만…
‘만덕아, 혹시 지금 바빠? 이 문제 풀어줄 수 있어?’
‘있잖아. 나 이 개념이 이해가 안되는데, 설명해줄 수 있을까?’
‘만덕아 나 노트 필기좀…’
전교 1등인게 밝혀지고 난 이후로 아이들은 틈만 나면 내게 와서 이것 저것 물어보고 갔다. 처음에는 한 두명이 물어보는 정도였지만, 시험을 앞 둔 지금은 내 개인 시간이 사라질 정도였다.
‘요 며칠동안은 쉬는 시간에 화장실도 못 갈 정도였지.’
새삼 전생때와는 달라진 나의 입지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피로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마냥 싫다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젠 내 공부도 챙겨야 할 시기다. 아무리 도움을 주는 게 보람차더라도 내 공부 시간까지 뺏기면서 할 순 없는 법이니까.
“자, 오늘부터는 시험준비 기간이네. 특별반 수업은 없지만 자습은 일반반 학생들이랑 동일하게 진행되고. 감독은 따로 안들어오겠지만…너희야 어련히 잘하겠지.”
특별반에 잠시 들어왔다가 도로 나가는 오석훈.
그 말에 부응하듯이 특별반 자습은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특별반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다. 그러나 머리가 좋은 학생들이라고 해서 노력을 안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일반반 학생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쏟아붓고 있었다.
‘내가 공부를 제일 잘하는데, 내가 제일 열심히 한다.’라는 수석 합격생의 말처럼 그들은 노력하는 것조차도 남들과 달랐다.
그렇게 첫번째 자습시간이 끝나고, 석식을 먹으러 급식실로 향했다. 쌍둥이들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표정이 둘 다 심상치 않았다.
“오늘 석식 뭐야?”
“어? 어…수육이랑…”
“…”
평소라면 고기 나온다고 난리 부르스를 떨 녀석인데, 어째 반응이 떨떠름했다. 이인영도 평소보다 더 말 수가 없었다. 급식을 먹을 때도 활기찬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우중충한 구름이 껴있는 것 같았다.
“혹시 무슨 고민 있어?”
“어?”
“아니, 너희 둘 다 오늘 표정이 안 좋길래.”
쌍둥이들은 내게 특별하다. 과거로 돌아온 후, 처음 진정으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 그들이 내게 힘이 되어줬던 만큼, 나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있지. 바로 2주 뒤에 시험이라는 거.”
이인성의 눈썹이 축 내려갔다. 하지만 이인영은 여전히 옆에서 멍하니 반찬을 깨작이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냥 빈 젓가락만 잘근 잘근 씹고 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애써 밝은 모습으로 행동하지만 그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이인영은 이미 넋이 나간 상태다. 그렇게 석식을 먹는 둥 마는 둥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다시 자습을 하기 위해 헤어졌다.
쌍둥이들의 이질적인 행동에 의문을 품은 상태로 다시 특별반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자습, 쉬는시간, 다시 또 자습.
그렇게 마지막 자습시간까지 끝이 나고 우리는 기숙사로 이동했다. 자습이 끝날 때까지 특별반에서는 한마디도 오고가지 않았다. 그저 책장 넘기는 소리와 샤프심 소리로 적막을 메워갔을 뿐이다.
“왔냐.”
기숙사로 들어가니 이미 김진수가 와있는 상태였다. 열심히 공부를 했는지 책상위에는 문제집과 각종 학원 교재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어. 넌 빨리 왔네.”
“일반반 자습실은 기숙사랑 가까우니까. 특별반인 넌 좀 멀겠지만.”
김진수는 내가 전교 1등인 걸 알고 난 뒤, 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로 대하기 시작했다. 평소의 모습은 같았지만 예전처럼 문제를 공유하거나 족보를 이야기할 때는 말 수가 줄어든 느낌이었다.
지금도 김진수는 책상 위 문제집들을 정리하다 말고 우뚝 멈춰서 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진 것은 ‘한국과고 1학기 기말고사 대비 문제집’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이 문제집을 내게 보여주지도, 언급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평소라면 먼저 들이밀고 그랬을텐데 말이지.’
내가 전교 1등인 걸 알게 된 당일, 김진수는 반나절 정도 나와 이야기를 안했다. 뭔가 복잡한 심경인 듯 혼잣말도 중얼거리면서 스스로와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나 먼저 씻는다.”
여전히 스스로와 싸우고 있는 듯한 김진수를 뒤로 하고 먼저 씻었다. 하루동안 공부하며 받은 피로가 따뜻한 물에 씻겨 흘러내려가는 듯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쌍둥이들의 표정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수건을 어깨에 걸쳐메고 밖으로 나왔는데, 김진수는 아까 그 자세 그대로 서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걸 줘? 말아? 아니야. 이게 얼마짜리인데, 내가 미쳤다고 줘?”
“아니야…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이게 나을 수도 있어. 하씨, 근데 생각해보니 손해본 기분인데?”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김진수.
“안 씻어?”
“뭐야, 언제부터 있었어?”
“뭐래. 빨리 씻어. 곧 점호야.”
그렇게 김진수는 호다닥 씻을 물건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에도 그는 문제집을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넣고 갔다.
시간이 흘러 늦은 밤, 점호를 마치고 난 뒤 우리는 불을 껐다. 점호 후 소등하지 않으면 벌점이었지만, 개인 스탠드를 켜고 공부하는 학생을 말리지는 않았다. 물론 수면의 중요성을 아는 나는 밤늦게까지 공부하지는 않았다. 집중이 안되기도 했고.
탁. 김진수가 스탠드를 켰다. 순간적으로 밝아진 공간에 반사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야. 김만덕.”
근엄한 목소리. 조명에 비추어지는 김진수의 표정은 비장해보였다.
“솔직히 말할게. 난 너 이길 자신이 없어.”
침대에 앉아 양 주먹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로 말하는 김진수.
“이길 자신?”
“응. 그러니까 내가 가진 문제집들 너하고 공유할게.”
김진수의 눈빛이 스탠드 빛을 받아 이채가 맴돌았다. 큰 결심을 했다는게 온 몸으로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도 그럴게 김진수에게 있어 이 문제집들은, 무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도 괜찮겠어? 무리하는거면 안 그래도 되는데.”
사실 내가 전교 1등을 한 데에는 김진수의 덕이 컸다. 아무리 대학 원서로 공부하고, 시중의 문제집을 여러번 풀더라도 김진수가 주는 퀄리티 좋은 문제들이 필요했다. 한국과고는 평범한 문제집들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김진수의 문제집을 계속 받아내는 건 염치가 없었다. 이미 R&E를 이유로 제공하던 학술지는 김진수에게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나랑 R&E를 진행하고 있으니까.
학기 초에는 서로가 윈윈하는 전략이었다면, 지금은 나만 이익을 보고 있는 상황.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계산적인 김진수가 그걸 모를리가 없었다.
“내가 이 문제를 너한테 보여주든, 안 보여주든 간에 나는 1등 못 해.”
김진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딜을 걸어올 때의 눈빛 그대로였다.
“그런데 넌 이 문제가 없으면 1등을 못 할 수도 있지. 안 그래?”
“그래서 원하는게 뭔데?”
“집중 케어.”
“집중…뭐?”
이미 점호를 마친 상태였기에 김진수는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가 원하는 건 의대를 갈 수 있는 성적이야. 물론 전교 1등을 하면 좋겠지만…계산을 했을 때 내가 의대에 안정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등수는 15등까지.”
실제로 한국과고에서는 매년 20명정도의 학생이 의대에 꾸준히 진학하고 있었다. 사교육 최전선에 있는 김진수가 모를리가 없었다.
“나는 안정적으로 15등 안에 들길 원해.”
한마디로 김진수는 내게 딜을 걸어왔다.
양질의 문제를 제공하는 대신,
자신의 성적을 올려달라는 딜.
빠르게 자기객관화를 마친 김진수는 자신에게 더 유리하게 굴러가는 쪽으로 무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좀 더 효율적으로 레벨업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미안. 그건 힘들겠는데.”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아무리 김진수의 문제들이 탐이 나더라도 누군가의 성적을 책임진다는 건 실제로 엄청난 부담감과 책임이 따르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의 성적을 케어해달라? 돈을 싸들고 오더라도 안되는 일이었다.
단호한 거절에 김진수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설마 거절당할거라고는 생각 못한 눈빛이었다. 그도 그럴게 김진수와 나는 R&E와 룸메이트 우정으로 많이 친해진 상태였기에 더 예상치 못한 듯 했다.
‘하지만 친한 건 친한거고, 이럴 수록 공과 사는 구분해야해.’
친하던 사이가 단숨에 불편해지는 건 비일비재했다. 대부분 친하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들이 관계의 균열을 가지고 왔다.
“내 공부하는 것도 바빠서. 그리고 이런 거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러면 하루 2시간은 어때? 점호하고 2시간 정도는 괜찮잖아. 그동안 나 공부하는 것좀 봐줘.”
한국과고는 12시에 점호를 한다. 점호 이후에는 보통 개인 자습시간을 갖다가 2시쯤에 잠드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수면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나는 12시가 되면 칼취침을 하곤 했다.
“미안. 난 수면시간은 꼭 지키자는 주의라.”
“..그, 그럼 1시간. 점호 전에는?”
점점 김진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처음에는 나름 동등한 입지에서 하는 딜이라 생각했는데, 계속 거절당하다보니 위축된 듯 보였다.
중학생때까지는 매일 학원에 갔을거다. 과외도 매일 받았겠지. 하지만 고등학교에 온 뒤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해진 그는 과외 선생님이 필요했다. 늘 만나면서,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수 있는. 그러면서 실력이 확실한 사람.
‘점호 전 1시간이라…’
점호 전 1시간은 보통 다음 날 일정을 정리하거나 잘 준비를 하며 보내는 시간이었다. 시간의 밀도가 그리 촘촘하지 않은, 부담없는 시간대.
나는 눈 앞의 김진수를 바라봤다. 그는 애써 조급하지 않은 듯이 여유로운 척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어나오는 불안감은 숨길 수 없었다.
1시간. 1시간을 투자하고 수 백만원 짜리 상당의 문제를 얻는다. 아마 그 문제들은 단순히 돈이 있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 같았다. 김진수의 말에 의하면 아는 사람 소개로만 들어갈 수 있는 그룹 과외라고 했으니까.
게다가 그 1시간이 김진수에게만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결국 나한테도 이익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단지 내가 걸리는 건 한가지였다.
“만약 1시간동안 도와줬는데도 성적이 안 오르면?”
“그건… 어쩔 수 없지.”
김진수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진수가 말하기로, 그의 등수는 17등. 앞의 2명만 제치면 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상위권으로 갈 수록 등수는 탄탄하게 유지되는 법이다.
과고 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의 극과 극은 이동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아이들을 쭉 상위권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었고, 중간만 박터지게 변하곤 했다.
그렇다고 아예 못해볼 것도 아니었다.
‘6등까지 특별반 사람들은 고정이라고 치면…15등까지는 노려볼 만해.’
나는 진지하게 김진수의 제안을 생각해봤다. 설령 그의 성적이 떨어진다고 한들, 내게 돌아오는 불이익은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남는 장사였다.
“콜.”
“예쓰!”
김진수가 저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윽고 화들짝 놀란 그는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기쁜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불과 전생때만 해도 말도 걸지 않고, 내게 하는 제안이라곤 ‘청소 해주면 10만원 콜?’ 정도였는데. 사뭇 달라진 내 입지가 체감되었다.
“자자, 그러면 우리 남은 이야기는 마저 하고 이만 불 끌까?”
“공부 더 안하고 자게?”
늘 새벽까지 공부하다 잠들던 김진수였지만, 김진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오늘은 일찍 자도 돼.”라고 말했고 동시에 스탠드 불을 껐다.
캄캄해진 방. 몇번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과고에 입학한 뒤로 김진수가 가장 빨리 잠에 든 날이었다.
“드르르르륽럵럭-”
…그 탓에 녀석의 끔찍한 코골이를 들어야 했지만 말이다. 다시는 먼저 안 재운다.
김진수의 코골이에 밤잠을 뒤척이며 겨우 잠든 날.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LK머티리얼즈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있었고, 그건 잊고있던-
내 전생의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