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48)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48화(48/221)
48. 연구 (2)
48. 연구 (2)
최성훈과의 강렬한 만남 이후, 우리는 다시 일상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토록 기대하던 날이 찾아왔다.
“내일부터 여름방학이다.”
“우오오오!!”
“어우, 다들 신났네. 신났어.”
박민철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반을 바라봤다. 이 중 방학을 온전히 쉴 수 있는 학생은 아마 한 명도 없겠지만, 그들은 늘 반복되던 일상이 잠시나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환호했다.
“이번 방학때는 물Ⅱ랑 화Ⅱ 2번씩 돌려야지.”
“난 일단 국어랑 영어를 좀 탄탄히 다져둔 뒤에…”
“방학 근데 3주인 거 실화야? 대체 왜?”
3주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일과는 이미 촘촘하게 세워져있었다. 학원, 과외, 다시 학원… 물론 그 일정에는 자율학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쌤! 방학인데 학교 나와야 해요? 꼭?”
“부득이한 일 없으면 필수다.”
이상 종례 끝. 담백하게 종례를 마친 박민철은 밖으로 나갔다.
“방학 계획 있어?”
R&E를 같이 하면서 부쩍 친해진 이인영이 물었다.
”글쎄. 일단 화학올림피아드 여름학교가 2주다 보니까. 나머지 1주는 음… 아는 분 일 좀 도와드리기로 해서.“
”일?“
이인영은 거듭된 질문에 나는 뚜렷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박성민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로 했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고 싶다면 말리진 않으마. 그런데 기억하렴. 모든 사람이 천재에 열광하는 듯하지만 그 뒤에는 각기 다른 기준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말이다.’
박성민의 말은 간단했다. 저마다 천재를 정하는 기준은 비슷한 듯 보여도 세세하게 보면 다르다는 것.
‘네가 ‘영재’ 데이터군으로 연구소에서 일하게 된다는 게 알려지면 사람들은 너에게 기대하는 것도 자연히 생길 테다. ‘영재’로서 말이지.’
나는 떨떠름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천재도, 영재도 아니라는 건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던 만큼 그 기대 역시 내 것이 아니었다.
‘얘네들이라면 말한다고 해서 나를 색안경 끼고 보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굳이 괴리감을 느끼게 할 일은 말하고 싶지 않아.’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챈 듯 이인성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생아. 만덕이가 곤란해하는 게 보이지 않니? 꼭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야 쓰겠니?“
”갑자기 이 새키는 왜 이래. 뭐 잘못 먹었어?“
”어허. 우리 동생은 입만 열면 비속어가 나오는구나. 그래서 너희 팀이 최우수상을-읍!“
이인영이 책상 위에 있던 필통을 들어 이인성의 입을 틀어막았다. 노란색 복슬복슬한 병아리 필통이 이인성의 입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R&E 대상은 이인성 팀이 가져갔다. 자기부상열차라는 흔한 소재였지만, 지리적으로 어떻게 선로를 설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지에 대한 분석이 참신했다는 평이었다.
”아니 과고인데 지리적으로 잘 설명했다고 대상을 주는 게 말이 돼?“
”물론 그것도 있지만 인성이 발표도 훌륭하긴 했으니까. 자기부상열차의 원리도 알기 쉽게 설명했잖아. 직접 만든 모형으로 시연도 해줬고.“
”읍읍!“
여전히 입이 틀어막힌 채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이인성. 그러나 이인영은 여전히 불만스러운지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팀도 잘했단 말이야.“
분한 듯이 말하는 이인영. 사실 전생의 일과 비교를 하면 손해보는 일은 아니었다.
과거 1학년 시절, 그때의 나는 R&E에 입상도 못했고, 개별 연구를 진행하던 최한별은 혼자라는 한계 때문인걸까 우수상 수상에 그쳐야했다. 김진수야 뭐, 기억도 안나는 걸 보니 상은 못 탔던게 분명하고.
굳이 손해를 꼽자면 이인영이 대상이 아닌 최우수상을 받았다는건데…그 결과 이인성이 최우수상에서 대상을 받게 되었으니 결과만 두고 보면 전생과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런 이인영의 모습이 마냥 즐거운지 이인성이 물고 있던 인형을 던져버린 후 나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그럼 방학동안 볼 일은 없으려나?“
”음, 그래도 1주일 동안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서울에 계속 있을 거야.“
집에는 추석 연휴 때 내려가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방학동안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방학은 짧았고 이 기간은 매우 중요했다.
‘나도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사실 지금까지 약간 해이해진 마음으로 지내왔다. 고등학생 때로 회귀했으니,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치매’에 대한 연구를 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김영재를 보며 그 생각을 바꿨다.
‘선배. 이걸 다 연구하신 거에요?’
‘응. 박성민 연구원님 덕분에 생각보다 진척이 빨랐어. 생각으로만 남겨뒀던 부분도 실제로 실험해 보니 예상했던 거랑은 다르게 나오더라고. 그런 게 몇 가지 나오니까 더 다양한 가설을 세우게 되어서…’
김영재는 그간 연구한 것들을 내게 보여줬다. 얼굴과 목소리는 무덤덤했지만, 그가 얼마나 신나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전생의 내가 생물학이 좋아서 빠져들던 때의 모습과 같았다.
좋아하는 연구를 계속한다. 그게 설령 오차와 오류, 실패의 연속이 되더라도 그것도 다 귀한 데이터가 되어 이후의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신이 난 김영재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속 뭔가가 꿈틀거렸다. 질투? 열등감? 아니,
‘빨리 연구하고 싶다.’
설렘. 어떤 결과가 나와도 좋으니 어서 치매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 보고 싶다는 열정이 다시 한번 타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얘 주위에 뭔가 생긴 거 같냐.”
“눈이 갔어, 저건 이인영 화학 문제 풀 때 눈인데.”
이인영은 간단하게 이인성을 처치하고 난 뒤, 나를 바라봤다.
“어쨌든 1주 뒤에 여름학교에서 보자.”
이인영도 당연히 화학올림피아드 입교 시험에 통과했다.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기 때문에 발표날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합격증을 프린트해서 달려온 이인영을 오히려 내가 놀란 눈으로 바라봤을 정도니까.
‘뭐야. 왜 안 놀라? 나 합격했다니까?’
‘놀랄 일이야? 당연히 합격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이…!’
이인영은 내 말에 오히려 당황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이인성이 ‘잘들 논다.’라고 말했지만 난 그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
“어서 와라. 랩실에 온 것을 환영한다. 노예여.”
“노예라니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녜요?”
대학원생도 사람이다! 대학원생에게도 자유를! 장난스레 박성민을 바라보며 앓는 소리를 냈다. 학교가 아닌 연구실에서 만났음에도 여전히 선생님이라는 말을 선호했다.
“그럼 뭐라고 부를까? 대학원생? 아니지, 아직 대학원생은 아니니까 음…”
“연구원이라는 좋은 말을 두고 왜 고민하시는 겁니까…”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약속대로 나는 박성민의 연구소로 갔다. ‘국립뇌과학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의 자리가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겠지만, 지나가는 사람마다 박성민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할 정도니, 범상치 않은 위치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우리는 1층 로비를 지나 4층, 박성민이 사용하는 연구실로 향했다.
[전기신경생리학연구실] [신경유전학연구실]4층에는 박성민이 있는 [전기신경생리학연구실]과 [신경유전학연구실]이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사용하는 중간에 같이 사용하는 공간도 있었지만 대개 마주치지 않는다고.
“원래 연구자들은 자기 거 연구하기도 바쁘거든. 물론 여유가 있을 때야 서로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긴 하지만… 애초에 자기 분야가 아닌데 이야기가 깊게 오고 가긴 힘들어.”
박성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 역시도 전생의 기억을 되돌려 보니, 같은 랩실의 연구원들끼리는 그나마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어도 다른 랩실과 친해지는 일은 드물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네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알려주도록 하겠다. 네가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있는지는 알고 있지?”
“네. 천재, 그러니까 영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시려고 한다고요.”
“맞아. 그 중에서도 내가 알아보고 싶은 건 영재와 일반인들 사이에 뚜렷한 뇌의 차이가 있냐, 없냐를 알아보고 싶은 거야.”
박성민이 애초에 한국과고에 온 이유다. ‘천재’를 찾기 위해서. 그러다가 우연히 그의 눈에 든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고.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박성민을 바라봤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 ‘천재’를 연기할 수 있었지만, 막상 뇌를 까놓고 보면 일반인인 게 여실히 드러날 터였다. 차라리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마인드로 박성민에게 말했다.
“선생님. 근데 드릴 말씀이 있어요. 사실 전에도 대강 말씀 드린 것 같긴 하지만…”
“하지만?”
“전 천재가 아닙니다.”
정적이 흘렀다. 나는 주먹을 질끈 쥐었다. 지금까지 박성민에게 천재인 척 연기해서 연구실을 사용해왔지만, 이 이상 그에게 거짓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가 나를 경멸할 수도, 혹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를 설득하려 들 수도 있겠지만, 아닌 건 아닌거다.
“난 또, 뭐라고. 설마 그것 때문에 아까부터 죽을상이었던 거냐?”
“그것 때문이라뇨, 선생님 연구가 완전히 틀어져버릴 수도 있는 일인데요.”
“하하, 진짜 웃기네. 만덕아. 너는 연구원을 실험 샘플로 쓰는 걸 본 적 있냐?”
박성민이 웃으며 행거에 걸려있던 실험복을 내게 건넸다. 그곳에서는 ‘김만덕’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뭘 놀라고 있어? 연구원이 빠져가지고 말이야.”
손에 쥐어진 하얀색 실험 가운. 연구실, 특히 화학 처리를 하거나 시약을 사용하는 실험실에서는 실험복 착용은 필수였다. 자칫했다간 독성 물질이 묻을 수도 있기에.
전생에는 내 가죽이나 다름없었다. 랩실에 살다시피 살았으니까. 다시 한번 이렇게 두 손 위에 올려진 가운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물론 영재 연구를 위해 널 저 기계에 넣긴 할거다. 너를 데리고 온 원래 목적은 어디까지나 ‘데이터’ 확보니까.”
박성민이 가리킨 곳에는 익숙한 기계가 있었다. 박성민이 가리킨 곳에는 fMRI 기계가 놓여있었다. 뇌의 다양한 기능을 연구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기기로, 특정 활동 중에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되는지 파악할 때 사용되곤 했었다.
“저게 뭔지는 알지? 전에 보니까 이미 사용해봤더구만. 짜식이, 어? 객원 연구원 주제에 책임 연구원 허락도 안 맡고 말이야. ”
타박하는 말투였지만 그의 표정은 웃고 있었다. 박성민에게 있어 내가 천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진짜 ‘연구원’으로 대하고 있었다.
“실험 데이터로써는 저기 들어가고, 연구원일때는 너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러면 되는거지 굳이 나눌 필요가 있나?”
실험 대상이자 연구원. 그 말을 듣는 순간 방금까지 온 몸에 팽팽하게 감돌던 긴장이 풀어졌다. 그리고 풀어진 긴장 사이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실험을 내 생각을 실현시킬 수 있다.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두려웠다.
전생의 나는 내 생각에만 갇혀있었다. 그래서 팀원들의 이야기를 수용하지 못했고, 팀원들의 의견을 묵살했다. 나는 내 연구를 내 생각대로 진행시키기 위해서 오로지 내 연구에만 집중했다.
만약, 이번에도 또 그렇다면? 물론 이번 연구에서는 박성민이 주가 되어 진행되겠지만 또 전생의 성격이 그대로 나와서, 그래서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당연히 못하겠지.”
“네?”
“너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너 아직 고딩이야. 고딩.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고. 그런 애가 잘할 수 있겠냐?”
박성민은 마치 우매한 중생을 바라보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너한테 바라는 건 큰 게 아니야. 앞으로 진행될 영재 연구에서 너의 뇌 데이터가 필요할 때 사용할 거고, 데이터 전처리부터 시작해서 전반적인 데이터 정리, 그리고 실험실 청소 및 기타 잡무 등. 한마디로 노예처럼 부려 먹으려고 데리고 왔다는 소리지.”
그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처음 만났을 때는 너를 샘플 그 이상, 이하로도 안 봤다. 애초에 이곳에 온 이유가 내 연구를 위해서였으니까. 연구원 제안은 사실상 미끼나 다름없었다고. 그런데 말이다. 지난 학기동안 널 가르치고, 또 네가 진행한 연구들을 보니까 좀 욕심이 나더라고.”
“욕심이요?”
“너라면 치매를 정말로 치료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 말이야.”
치매. 치매는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가졌던 분야였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연구자가 이 문제에 달려들어도 뚜렷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1906년 처음 알츠하이머병이라고 정해진 그날부터 지금까지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못해도 된다. 너가 생각하는 대로 연구 결과가 안 나와도 괜찮아. 화가 나고 속상하고 답답해해도 된다. 그래도…”
박성민은 내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그는 나를 또렷이 바라봤다.
“포기하지 말아다오.”
설령 벽에 부딪힌 것처럼 느끼더라도 말이다.
박성민의 손을 타고 느껴지는 온기에는 믿음이 담겨있었다. 신뢰, 기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귀한 샘플인만큼 나중에 뇌는 한번 열어보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장난. 장난이지! 라고 말하는 박성민의 말이 어쩐지 장난으로만 들리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그 이후로 연구에 대해 오래도록,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쩌면 세상을 바꾸게 할지도 모를, 대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