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4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49화(49/221)
49. 연구 (3)
49. 연구 (3)
“음… fMRI 사용 스케쥴이 빡빡하게 잡혀있네.”
그렇게 박성민과 대화를 하고 난 후, 박성민은 잠시 밖으로 나갔다. 여러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만큼 그를 찾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사용법은 알고 있을테니까 패스하고. 우선 실험 스케쥴이랑 실험 기기 예약 신청하고 와. 괜히 겹치면 아무것도 못할라.’
박성민은 나가면서 과제를 주고 갔다. 나는 fMRI가 놓여있는 연구실 문 앞, 실험 스케쥴을 바라봤다. 빽빽하게 차있는 표.
저번처럼 하루 잠깐 있다 가거나, 데이터만 확인하고 가던 날들이라면 모를까, 이번에는 조금 오래도록 연구실에 붙어있어야 했다. 그러려면 꼭 체크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실험 스케쥴’과 ‘기기 예약’이었다.
박성민이 일하고 있는 국립뇌과학연구소는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뇌과학 전문 연구기관이다. 그 말인즉슨 최신 기기는 물론 최상급 설비를 자랑하고 있다는 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최신식 기기를 모든 실험실마다 두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나 한 대에 수십억 하는 기계의 경우에는 서로 일정을 조정해서 사용해야했다.
“기기 사용 예약하려고 왔는데요.”
“인터넷으로 신청하시면 되는데요?”
“아… 제가 인터넷으로 지금 신청이 안 되어서요. 객원 연구원 신분이거든요.”
내 말에 연구실 행정실 여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내가 내민 연구원증을 보고 “아, 책임 연구원님이 말하셨던 분.”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수기로 실험 스케쥴의 빈 곳에 내가 원하는 시간대를 골라 작성했다. 사용할 수 있는 시간대는 많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실험이라는 걸 이제는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간단하게 작성 후, 서류를 여직원에게 내밀자, 그녀는 키보드로 뭔가를 입력하더니 “전산상에 등록해 놨으니까, 오늘부터 사용하시면 돼요.”라고 답변해 주었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한 뒤 행정실을 나왔다. 박성민이 있는 연구실로 돌아오자, 어느새 일을 마치고 온 그가 눈썹을 삐뚜릅하게 올린 채로 나를 바라봤다.
“어라.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오래 걸리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이 금방 끝나서. 그런데 뭐냐. 그 표정은?”
“네? 왜요?”
“좋아 죽으려는 표정인데?”
뭔가 불쾌해…라며 타박하는 박성민.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좋아 죽다뇨.”
“그럼 아니야?”
“이제 시작인데 죽으면 어떡해요.”
“어이쿠, 입만 살아선. 자, 빨리 앉아서 앞으로 진행할 연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그는 나를 앉혀놓고는 집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치매 치료제를 만드는 것. 그뿐이에요.”
“치매 치료제? 치료제의 종류도 다양하잖아. 이미 발병한 걸 지연시켜 주는 약도 있고, 혹은 기능 회복에 초점을 맞춘 치료제도 있고.”
“저는 치매에 걸렸던 사람도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게 목표에요.”
“이전 수준이라 함은?”
나는 순간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한다면… 나는 주먹을 쥐었다.
“치매에 걸리기 전 수준이요. 모든 걸 잊어버리기 전으로.”
“잊어버리기 전이라…”
박성민은 곤란한 듯 내 말을 곱씹었다.
‘하긴,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 치매라는 질병이 처음 밝혀진 이후로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제대로 된 치료가 힘든 상황이니까.’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증명하듯, 박성민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덕아. 내가 지금 너의 연구에 토를 달거나 비판을 하려는 게 아닌 걸 알아줬으면 한다만… 사실 치매라는 건 어떻게 보면 인간이라는 종의 예상 기대 수명을 다하고 생겨나는 병이야. 일종의 노화의 과정에서 오는 병이라고 보는 게 학계의 관점이기도 하고. 물론 돌연변이나 생활 방식, 스트레스도 한몫하지만”
박성민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이 늙는 한, 치매라는 병 자체를 피해갈 수는 없어.”
모든 인간은 늙는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은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 그것이 과학이다.
“차라리 그쪽 말고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추는 방향으로 연구해 보는 건 어떠냐? 지금 의학 수준으로는 초기 진단만 잘하면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출 수도 있고-”
“늦추고 나면요?”
“어?”
“늦추고 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나는 박성민을 바라봤다. 그는 이 답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답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늦춰도 결국 기억들을 잃게 되겠죠. 아니면 왜곡되거나. 제가 바라는 건 그런 수준이 아니에요. 완벽한 치매 치료. 그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내게서 할아버지를 뺏어간 그 잔인한 병. 그 병의 존재를 알았던 순간부터 내 목표는 하나였다. 치매를 정복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노화는 자연법칙이야. 인간은 자연을 거스를 수 없어.”
“글쎄요. 혹시 모르죠.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 있을지도.”
나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하는 박성민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 어딘가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곤 하니까요.”
내가 과거로 회귀한 것처럼.
“…”
한동안 정적이 연구실을 감쌌다. 얼마나 이 정적이 지속되었을까, 별안간 박성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래, 내가 포기하지 말라고 해놓고선 포기하기를 종용하다니. 이것보다 더 모순적인 것도 없었네.”
박성민은 호쾌하게 웃고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 두드림이 패기만 넘치는 후배 과학자에게 전하는 격려일지, 아니면 앞으로 무수히 깨지게 될 미래에 대한 응원일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 연구실 잘 지키고 있어라.”
“? 어디 가세요?”
“오늘은 좀 바빠. 세미나 참석 이후에 또 뭐 하러 가야하거든.”
하긴, 앨런 뇌 연구소에서 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한가로울리가 없었다.
“근데 다른 연구원분은 안 오세요? 전에 왔을 때도 저 혼자였는데.”
“있지. 아마 조만간 올거다. 가만보자, 일로 와 봐라.”
일정이 있다던 박성민이 가볍게 연구실 문 옆에 걸려있는 연구 조직도를 보며 한 명씩 안내했다.
“여기 보이는 두 명은 대학원생이야. 정식 연구원까지는 아닌데 박사과정 밟으면서 여기서 같이 연구하고 있고. 아, 이쪽은 이번에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온…”
처음 보는 인물들이었지만, 어쩐지 신문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얼굴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의 놀라운 스펙을 들으며 새삼 내가 엄청난 곳에 와있음을 느꼈다.
박성민은 그렇게 나가다 말고, 무언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 그리고 말 안 한 게 있는데.”
“네?”
“애들이 좀…별나.”
“예?”
그러니까 알아서 잘해라. 라는 말만 얼렁뚱땅 남겨둔 채 박성민은 밖으로 나갔다.
별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는 안갔지만, 어차피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내가 이 연구실에 온 목적은 간단했다. 박성민의 연구를 도와주고, 내 연구도 진행시키기 위해서. 그 외의 인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정리를 내리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내 연구와 관련된 논문들을 검색, 출력, 발췌의 과정을 보내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집중. 내가 가장 잘하는 것. 나는 짧은 순간에도 깊게 몰입하곤 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뇌에는 비정상적인 단백질들이 과하게 축적되는 양상이 발견되고 있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인데… 김영재의 연구에 따르면 특정 유전자를 절단하는 데 있어서 Cas9 효소를 이용한다고 했지. 하지만 이 효소를 이용해서 저 단백질들만 절단하는 게 가능할까? 애초에 단백질과 관련있는 DNA들의 패턴을 분석하기 전에 시냅스 간의 인지 기능을 저하시키는 걸로 추정되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는지를 먼저 고려해 봐야…’
사락, 사락. 논문 넘기는 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연구실에 울려퍼졌다. 나는 마치 자습실에서 공부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지금은 뇌 연구에 푹 빠져들어있었다.
뇌세포가 깨어나고 연결이 더욱 촘촘해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논문을 읽고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노트에다가 휘갈겨썼다. 드디어 대학원생, 아니 그 이상 수준의 연구들이 내 앞에서 어서 자신을 읽어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지식들이 늘 고팠다.
덜컹!
“미, 미, 미, 미안…”
“?”
화들짝 놀라 옆을 보니 웬 남자가 앉아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시계를 보니 연구실에 온지 벌써 3시간이 흐른 뒤였다.
“너, 너가 이번에 새로, 온 여, 연구원, 맞지? 나, 나는! 이재형이고 카이스트 대, 대학원생이야! 바, 바이오 뇌공학과. 너가 그, 그 하, 한국과고 맞지?”
“네. 맞아요. 김만덕입니다.”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하자, 이재형이 더 눈을 밝히며 다가왔다.
이재형은 키가 작고 왜소해서 그런지 더 어려보였다. 꼭 외모 뿐만 아니라 눈이 초롱초롱한게 마치 호기심 가득한 초등학생의 느낌이었다.
“마, 말 편하게 해도 돼! 형이라고 부, 불러!”
“괜찮습니다.”
“그, 그럼 재, 재형이 형?”
“…연구실 선배시니까 선배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형이라고 부를정도로 친해질 생각은 없다. 나는 내 연구만 여기서 할 생각이기에 굳이 여기서 친목도모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은 내 할일 하기도 바빠. 1주 뒤에는 여름학교 수업을 들으러 가야하니까 그 전까지라도 뭐라도 얻고 싶어.’
“너가 그 처, 천재구나? 박성민 연구원님이 입이 마르도록 말하던!”
“…아닌데요.”
“아냐! 연구원님이 이번에 오는 객원은 천재 데이터로 쓸 거니까 최대한 데이터 뽑아낼 수 있는 거 다 뽑아내라고 하셨는걸!”
에. 그 순간 방금까지 사람좋은 미소로 “넌 연구원이다.”라고 말해주던 박성민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이 양반이 분명 나한테는 천재 때문에 부른 거 아니라고 했으면서…!
‘나중에 만나면 머리카락 몰래 뽑아버릴까?’
통수 맞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그 덕에 이 이재형에게서 ‘데이터’로써 가치를 인정받아 과분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이, 이거 내가 연구하는 건데 한번 봐볼래? 처, 천재의 의견 드, 듣고 싶어!”
“천재 아니라니까요.”
“그, 그래도!”
이재형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연구 노트를 내밀었다. 그 노트에는 [영재 교육시 좌뇌와 우뇌의 경향성 연구] 라고 적혀있었다.
얼떨결에 연구 노트를 받아 든 나는 나름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연구 주제는 흔하디 흔한 소재였지만, 그 안에 연구를 진행하는 아이디어는 참신했다.
“단순히 문제를 풀게 하고 난 뒤에 좌뇌나 우뇌의 활성도를 보는 게 아니네요?”
“그런 실험은 이미 많이 나와 있으니까! 나는 좀 더 신호 전달물질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했어.”
말 버벅거림이 없어졌다. 이재형은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더니 자기 자리로 달려갔다. 그리고 책상 위에 산처럼 있는 논문을 들고 내게 왔다.
“나는 영재 관련 연구를 하려고 이곳에 왔는데, 글쎄 그 유명한 앨런 뇌과학 연구소 수석 연구원님께서 이번에 이쪽으로 파견을 오셨지 뭐야?! 책임 연구원 직위로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최고인데 심지어 연구하는 주제도 같아! 이건 박성민 연구원님이 쓰셨던 논문들인데 ‘천재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도 깊은 통찰을 남겨주신 부분을 보고 완전… 아! 여기서 말하는 천재는 단순히 지능지수(IQ)가 높은 것에 그치는 게 아냐. 내가 말하는 천재는 좀 다른데…”
미친놈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동족 비스무리한 느낌을 받았지만…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내가 생물학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저 정도로 이야기는 안 할 테니까. 암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스스로를 부정하며 이재형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그가 순간 정신을 차린 듯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 미, 미안. 내, 내가 연구 이야기만 나오면 마, 말이 좀 많아져서.”
“괜찮아요. 그보다 선배님. 이제 연구하러 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미 살짝 기가 빨린 상태였기에 나는 아이를 타이르듯이 이재형을 설득했다. 이제 좀 가라. 이제 나도 내 연구를 하고 싶단 말이다.
내 말에 이재형도 은근히 눈치를 챈 걸까, 그는 아까보다 살짝 기가 죽은 모습으로 논문 뭉치를 주섬주섬 챙겼다.
툭.
그때, 내 앞에 종이 더미가 떨어졌다. 빨리 주워주고 보내버려야지-라고 생각하기도 찰나,
“…이거 선배가 쓴 논문이에요?”
“응? 아, 그거 아직 올린 논문은 아니고 그냥 동생이랑 정리해 둔 건데 왜? 너도 이쪽에 관심 있어?”
전생의 나도 선행 연구로 살펴본 기억이 있는 논문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로 놀란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본 선행 논문만 해도 수백 편은 될 테니까. 나는 단지, 그 밑에 적힌 이름에 눈이 갔을 뿐이다.
[연령별 신경전달물질 및 인지기능에 대한 상관관계에 관한 고찰] [이재형, 이재성]설마. 일반고 출신 국제 화학 올림피아드 금상 수상자. 이재성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훗날 치매 치료제 개발의 시작이 되는 화학 물질을 발견한 업적으로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녀석의 이름이.
“형. 전공이 뭐라고 했었죠?”
나는 자리로 돌아가려던 이재형을 붙잡고 긴 이야기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