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5)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5화(5/221)
5. 입학(5)
5. 입학(5)
황대문이 나눠준 쪽지 시험은 생각보다 쉬웠다. 굳이 고등학교 수준의 내용을 예습해오지 않는다하더라도 기본적인 상식 수준에서 풀 수 있는 문제들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가 걸린단 말이지.’
[생태계에서 생명활동과 물질순환이 이뤄지는 에너지의 근원이 무엇인지 쓰고 그 과정을 서술하시오.]내용 자체를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자. 출제자의 의도를…’
황대문이 이곳에 온 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그것도 의대로 가지 않고 생물학에 온전히 쏟아부을 인재를 말이다.
나는 의대에 진학할 생각이 없고 과거에도, 지금도 생물학이 좋다. 얼마냐 좋냐고 한다면 대학원 시절 내내 랩실에서 연구만 하다가 실려 간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 이후로 오히려 교수님이 먼저 나서서 말리실 정도였으니까.
고로, 나는 이 시험을 잘 치고 싶다.
그래서 저 사람의 눈에 들고 싶다.
열심히 쓰는 학생들이 보였다. 몇몇은 문제가 너무 쉬웠는지 다 풀고 검토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사각사각 소리가 들리고 펜이 딸깍거리는 소리가 잊을만하면 불규칙적으로 튀어 올랐다.
나는 그 시간, 가장 마지막으로 펜을 놓았다.
*
“거 김선생.”
김영환이 교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마주한 건 머리가 희끗한 노선생이었다.
“황 교수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교수에서 교사가 된 지도 꽤 시간이 흘렀건만 아무도 그를 동등한 교사로 대우하지 못했다. 단순히 직급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 다져온 아우라 때문이었다.
과학고에 들어오고 난 후, 학교 측에서 따로 황 교수를 배려해 개인 연구실을 마련해줬다. 물론 명목은 ‘생명과학 실험실’이었지만 황 교수의 아지트로 쓰인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곳에서 꿈쩍도 않던 양반이 이 먼 교무실까지 친히 행차하다니, 필시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교사가 교무실로 와야지 그럼 어디로 가나?”
“하하, 맞죠. 일단 앉으시죠. 어디보자…커피라도 드시겠습니까?”
“됐네. 그보다.”
황대문은 한 시험지를 꺼내 김영환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김만덕이라는 놈. 뭐 하는 놈인가?”
“예?”
“보니까 임시반이긴 하지만 선생한테 배정되었던데. 어떤 놈이냐는 거야.”
“하하…저도 오전에 잠깐 봤던 게 다라…”
김영환은 식은땀을 흘렸다. 제아무리 임시 담임이라고 해도 학기 초도 아닌 예비소집일 날 학생에 대해 모두 꿰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심지어 학생들을 직접 본 건 아까가 전부였다.
하지만 김만덕이라는 이름은 잊을 수가 없었다.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 학생.
“내가 그걸 몰라서 묻겠나? 내가 궁금한 건 이놈이 별난 놈인지 아닌지가 궁금하다는 걸세. 과연 그냥 그런 놈인지, 아니면 좀 지켜봐야 할 놈인지.”
황대문은 김만덕이 쓴 시험지를 천천히 읽었다. 다른 답안에 대해서는 비교적 간결하게 답을 적었다. 그러나 마지막 문제에 대한 답은 달랐다.
[생태계에서 생명활동과 물질순환이 이뤄지는 에너지의 근원이 무엇인지 쓰고 그 과정을 서술하시오.]답은 간단했다. 생태계에서 근간이 되는 에너지는 태양 에너지를 적으면 되고 그 과정으로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포함해 일련의 과정을 서술하도록 만든 문제였다. 어디까지나 생명과학에 대해 기초 지식을 확인하기 위해 낸 문제.
[태양 에너지이다. 생태계에서는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화학 에너지로 전환된 후 다른 생물체에 이용되고, 생물의 호흡을 통해 에너지가 소비된다. 또한 생태계에서는 물질 순환도 일어나는데, 이는 생태계 내에서 물질이 순환하면서 생명 활동을 유지하게 된다. 물질 순환의 예시로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면서 생태계 내에서 탄소와 산소가 순환하게 된다.]이정도면 다른 학생들도 무난하게 쓴 답이었다. 실제로 황대문도 이정도 답안이면 만점을 줄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한 녀석이 문제의 난이도를 바꿔버렸다.
독립영양생물과 같은 일부 생물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분해할 필요 없이 광합성을 통해 햇빛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종속영양생물과 같은 다른 생물은 해당과정 및 시트르산 회로와 같은 대사 과정에서 영양소의 화학 결합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을 수 있도록 음식물로부터 영양소를 섭취해야 한다.
열역학 제1법칙의 직접적인 결과로 독립영양생물과 종속영양생물은 보편적인 대사 네트워크에 참여한다. 종속영양생물은 독립영양생물을 먹음으로써 식물이 광합성으로 저장한 에너지를 이용한다.]
그밖에도 아데노신 삼인산(ATP)에 대해 심도있는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할 설명들과, 산화에 대한 설명들까지. 심지어 중간에는 열역학 1법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중간마다 보이는 전문 용어들은 이제 중학교를 갓 졸업한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김영환은 그 시험지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글자가 너무 작아 잘 안 보였기 때문이다.
“음…열심히 썼네요.”
“열심히 썼다고? 이건 열심히 쓴 게 아니다. 그냥 술술 쓴 거지.”
황대문은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김영환은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 그래도 이정도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문제 난이도를 보니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닌 것 같고요. 너무 큰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영환은 회의적인 태도로 대꾸했다.
그의 교직 생활 중에 천재처럼 보이던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천재가 아닌 노력하는 범재였을 뿐이었다.
‘김만덕이 대단한 학생인 건 맞지만 물리나 화학 같은 분야도 아니고, 일단 암기 성향이 강한 생물이니까…게다가 다른 창의적인 해답이라고 볼 수도 없어. 이 정도로 천재라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다.’
물론 첫 시간에 김만덕이 보여준 ‘생물학 강론’은 가히 충격적이었지만 그는 속단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그런 김영환의 모습을 본 황대문은 코웃음을 쳤다.
“니는 아직도 멀었다.”
“네?”
“교사가 되어가지고 보는 눈이 이리 없어서야 쯧…”
황대문은 김영환의 자리 위에 김만덕의 시험지를 올려놓고 나갔다. 그리고 시험지 뒷면 여백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수식들. 이번에도 김만덕은 생태계 문제 하나를 풀기 위해 물리, 화학, 지구과학, 수학 등 다양한 학문의 내용들을 끌어다 썼다.
앞면은 생물학 시험지처럼 보이더라도, 뒷면 답안지는 어떤 과목 시험지였는지 추측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김영환은 빽빽하게 적혀있는 그의 시험지를 보며 홀로 탄식했다.
“학교 첫날부터 뒤집어놓고 다니는구만.”
시험지엔 김만덕 이름 옆 S+이 적혀있었다.
*
모든 일과를 마친 후, 나는 자습실에 갔다.
[한국과고 배치고사 기출문제집]김진수에게서 받은 문제집을 받아서.
‘근데 나도 이거 한 부 밖에 없어서 오래는 못 빌려줘. 너도 알다시피 집에 갈 수 있는 건 주말에만 가능하니까 말이야.’
김진수는 이 문제집을 가지고 있단 것에 묘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수학까지 파트당 200문제 총 1,000문제라고! 이 문제집만 수백만 원은 할걸?’라며 말하는 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나는 문제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오늘 수업들을 복기했다.
회귀 후 첫 과고 수업.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쁘지 않았다.
‘사실 고등학생 때 내용이라 다 잊어버렸을까 봐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쉬웠어.’
기초 과학 수업들을 연달아 듣고 난 후에 수학(가) 수업을 들었다. 다행히 첫 단원이 집합 단원이라 그런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듣는 내내 재미있었다.
회귀만 했을 뿐이지 이미 내 뇌는 대학원까지 거친 상태였다. 또래에 비해선 배경지식이 월등히 쌓여있는 상태. 게다가 신체 나이가 젊어진 탓인지 두뇌 회전도 빨라 지식을 스펀지 마냥 빨아 들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깊은 충족감. 뇌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고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시냅스가 더욱 단단하게 연결되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지식을 습득하는 거랑 문제 푸는 건 별개의 일이니까.’
그래서 김진수한테서 문제집을 얻어낸 이유기도 했다. 한차례 입시 전쟁을 겪고 깨달은 게 있다면 학습량과 성적은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과학고에 처음 왔을 무렵, 나는 시험에 대해 거의 무지했었다. 수업 내용은 잘 이해하고 받아적는 학생이었을지언정, 시험 푸는 요령이 없었다.
우직하게 앉아서 소처럼 공부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전략보다는 외길 외통수로 공부했지만 성적은 좋지 못했다.
‘이제 경험치는 만렙이니까 스킬들을 배워볼까나.’
연습장을 꺼내 반으로 접었다. 수학부터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한번 봤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푸는 건 또 새로운 일이었다.
사각사각. 자습실에서 연필 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한 문제, 두 문제… 초반에는 시간이 좀 걸리던 문제들이 점점 푸는 속도가 빨라졌다. 틀린 문제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한 문제씩 맞을 때마다 성취감이 일었다. 만족스러웠다.
‘좋아. 수학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물리 차례.’
물리 과목은 사실 전생에서도 늘 어려워하던 과목이었다. 정확히는 물리라는 과목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오히려 공부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는 느낌.
‘바로 문제부터 풀지 말고 교재부터 한번 읽어볼까.’
베이스가 없는 상태에서 문제를 풀면 오히려 독이다. 오개념으로 문제를 맞춰봤자 아까운 문제 하나만 잃게 되는 셈이니까.
후. 나는 심호흡을 하며 교재를 펼쳤다. 아무리 대학원을 나왔어도 물리가 크게 쓰이는 분야는 아니었으니 이해가 안되어도 좌절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한 장, 두 장…빠르게 내용을 훑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초 물리’ 교재를 읽는데 뭔가 이상했다.
‘…왜 쉽지?’
쉬웠다. 쉬워도 너무 쉬웠다. 오히려 내가 오랜 시간 공부해온 생물학보다 더 쉽게만 느껴졌다.
속도와 가속도부터 전기와 자기, 파동과 입자까지. 물리Ⅰ에 해당하는 내용을 쭉 읽는데 막힘이 없었다. 역학 단원은 보기만 해도 울렁거릴 정도였는데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술술 읽히면서 이해하고 있었다.
‘회귀하면서 뇌도 어떻게 된건가? 아니면 아직 기초라?’
분명 과거 내가 배웠던 교재와 똑같았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떨떠름한 마음으로 물리Ⅱ 파트를 읽기 시작했다.
과거엔 아예 공부하는 것조차 포기했던 물리Ⅱ. 그러나 어째선지 마음 한켠에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설마 이것도…?’
등속원운동, 교류 회로, 열역학 등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단원들이 선명하게 뇌에 박히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개념이 쉽게 이해되자 자신감이 생겼다. 전의 내용들이 완벽히 이해가 되고 나니 그 뒤의 연계 내용들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가 않았다.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어렵다는 이유로, 아니 어려울 거라는 생각만으로 멀리만 하던 물리 과목이 처음으로 재미있었다. 나는 마치 오랜 시간 굶주려왔던 맹수처럼 물리를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이 기세를 몰아 물리 파트 문제집을 펼쳤다. 줄글로만 보며 이해했던 내용들이 문제 형식으로 옮겨져있었다. 초반에는 개념을 문제에 적용하는게 낯설었지만 퀴즈를 풀 듯이 차근 차근 풀이해갔다.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하고. 점점 늘어나는 동그라미를 보니 신이 났다.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 간혹가다 틀리는 문제가 있어도 오답을 분석하고 다시 내껄로 만들었다는 생각에 성취감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 아니, 노력에 비해 성취되는 것들이 배로 나타난다.
그것만큼 신나는 게 어디 있을까.
한번 공부에 자신감이 붙으니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나는 이 기세를 몰아 기초 화학, 기초 지구과학 교재도 빠르게 읽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이것들도 쉬웠다. 단순히 내용이 쉽다기보단 평소보다 이해하는 속도가 배가 된 듯 했다. 마치 뇌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고 모든 내용이 다 흡수되는 느낌.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문제를 풀었다. 이 세상에 문제와 나, 이 두 개의 존재만 있는 듯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오직 종이 위로 긁히는 연필 소리만 들렸다.
“어이구, 학생이 부지런하네. 아침은 먹고 하는 거여?”
“네?”
나를 부르는 관리인 아저씨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나저나 학생은 여기 어떻게 들어온 거여? 자습실 문 잠겨있었을 텐디?”
한 손에 열쇠 꾸러미를 들고 고개를 갸웃하는 아저씨를 보며 나는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기숙사 입실을 안 한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어차피 브릿지 캠프 기간동안의 벌점은 큰 의미가 없었으니까.
‘…회귀하고 나니까 뭔가 많이 달라진 것 같네.’
6시간이 불과 1시간처럼도 안 느껴질 정도의 집중력에 소름이 돋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