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5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52화(52/221)
52. 연구 (6)
52. 연구 (6)
“…이 뇌는 대체 뭐지?”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굳어버린 둘의 얼굴을 보며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게 아닐까, 어쩌면 과거로 회귀했다는게 뇌에 어떤 방식으로든 남아있는 건 아닐까,
“너무 평범한데?”
“그러니까요. 지금까지 수집한 표본들 중에서 제일 평범해요.”
차게 식어버린 둘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변명하려면 변명 해보라는 듯이.
“아니, 그니까! 저 천재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요!”
“에잉, 그래도 뭔가 천재 뇌는 다를 줄 알았지.”
아니 이양반이 진짜! 나도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올랐다. 다른건 몰라도 억울하면 목소리가 커지는 건 전생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더 이야기하기 전에 박성민과 이재형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천재의 뇌랑 일반인 뇌 구조상으로 차이 없다는 거 몰라?”
“아니까 더 그러는, 아니 그 전에 애초에 천재가 아니라니까요?”
“진짜 만덕이 너는 놀리는 재미가 있다. 애늙은이 같다가도 이럴 때 보면 애라니까.”
“지, 진짜 재밌는 애야.”
이미 그들한테는 내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결국 두 손 두 발든 나는 그들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어차피 검사하다보면 그들도 알겠지.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박성민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는 지금 천재라는 단어를 너무 신성화하는 것 같다. 내가 정의하는 천재는 너가 생각하는 천재랑 달라. 잘 기억하고, 잘 연결하는 것. 그 두 개만 충족하면 나한테는 다 천재라는 거지. 지능이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마, 맞아. 나도 영재 정의에 대해서는 책임 연구원님이랑 같게 보고 있어. 한국에서만 유독 영재의 범위를 한정 지어 놔서 그렇지 외국에서도 넓게 보는 편이고.”
둘의 이야기에 결국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그럼 저는 이제 뭐 하면 돼요? 이게 다는 아닐 거 아니에요.”
내가 한 거라곤 저 하얀색 원통 기계에 들어갔다 나온 것밖에 없다. 내 말을 들을 박성민이 씩 웃으며 말했다.
“별거 없어. 우선 암기력 관련해서 다시 측정해보고 준비한 문제들 몇 개 풀어보고 간단한 측정만 하면 돼. 참 쉽지?”
“나, 나도 몇 개 부탁할 게 이, 있는데… 어, 어렵진 않, 않을 거야!”
눈을 빛내며 다가오는 둘을 보며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이 사람들 눈빛이 맛이 갔어. 하지만 이미 하겠다고 말한 상황이었기에 무를 수도 없었다.
‘그래, 설마 오래 걸리겠어?’
그래도 이래저래 나를 도와 준 사람이다. 이 정도 장단에는 맞춰줄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둘의 연구에 귀한 샘플로 이리저리 사용되었고, 결국 그날 나는 밤 9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기숙사 입실 시간을 핑계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연구소를 빠져나와 과학고로 돌아가는 길. 내 손에는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쥐어져있었다.
*
‘좋은 애였어.’
학생 연구원 이재형은 오늘 있었던 일을 간단히 회상하며 책상에 앉았다. 박성민 책임 연구원님이 데려온 천재 데이터, 귀한 샘플, 한국과고생인 김만덕 객원 연구원.
‘나이가 17살이었지.’
이재형은 의자를 돌려 반대쪽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17살 동생을 바라봤다. 집이 큰 편이 아니라 동생이랑 여전히 같이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재형은 그런 점이 싫지 않았다. 10살이나 차이가 나다보니 다른 형제처럼 싸우지 않는다는 점도 그랬지만, 늘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이재형에게는 기특하게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재형은 이재성의 뒷통수만 보고 있었지만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정말 깊게 몰입하고 있는 듯한 느낌.
“바빠? 잠깐 얘기 좀 할까?”
이재형은 그런 몰입을 간단하게 깼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성은 여전히 고개를 안 돌린 채 문제 풀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형 말 일부러 무시한 거면 이제 용돈 없다?”
“왜.”
용돈 이야기에 바로 고개를 돌리는 이재성. 돈 이야기가 나와서 심히 불쾌한지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며 이재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오늘 만덕이한테 왜 그랬어. 얘기 들어보니까 둘이 전에 한번 본 적 있었다며? 화올 입교 평가때.”
“몰라. 기억 안 나는데.”
“기억 안 나긴. 그럼 걔가 한국과고인 건 어떻게 알고 있었는데? 오늘 교복도 안 입고 왔었구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입만 꾹 닫고 있는 이재성. 이재형은 10살이나 어린 동생을 보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기에.
“진짜 만덕이가 과고생이어서 그런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러면 오늘 왜 그런 건데? 너 그런 애 아니잖아.”
이재성은 성격이 더럽다. 이건 갓난아기 때부터 봐 온 이재형이 보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오랫동안 봐왔기에 오늘 모습이 더 낯설었다. 이재형이 아는 이재성은 오늘처럼 다짜고짜 사람을 무시하거나 매도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끽해야 그냥 말을 안 하거나 좀 다듬지 않고 말을 툭 내뱉는 정도였는데… 오늘은 적의가 담겨 있었지.’
그리고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아직도 과고 가고 싶어?”
“아!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면 만덕이랑 친하게 지내.”
“내가 왜? 그런 선민의식에 찌든 녀석이랑?”
“너 만덕이랑 제대로 이야기해 본 적 있어?”
이재형의 물음에 이재성은 다시 입을 닫았다. 진짜 어리긴 어리구나. 하긴 17살이면 어린 나이긴 하지. 아직 뇌 성장도 계속 이뤄지고 있는 나이기도 했다.
“아까 만덕이가 연구하는 내용 들어봤는데, 너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랑 비슷해 보이더라고. 너도 치매랑 뇌 질환 쪽에 관심 있잖아.”
“…비슷하고 말고 나랑은 상관없어. 난 나 혼자 연구할 거야.”
이재성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재형은 그의 책상에 꽂힌 무수히 많은 대학 원서들과 각종 사전들을 바라봤다. 한국과고에 떨어진 날, 동생은 한국과고 커리큘럼을 어디서 알아 오고는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어가 약했던 동생은 영어사전을 하나하나 뒤져가며 그렇게 공부했다.
“혼자 연구하면 대부분이 끝이 안 좋아. 왜 그런 줄 알아? 자기 생각에 태클을 거는 사람이 없거든. 그러면 자기가 하는 생각이 다 맞다고만 생각하게 돼. 그렇게 점점 하나에만 매몰되어 가는 거야.”
“태클을 거는 게 말도 안 되는 이유면? 그냥 내가 싫어서 무작정 까내리려는 의견인 거면? 그런 의견도 다 받아줘야 해? 왜?”
이재성은 시선을 땅에 고정한 채로 와다다 말했다.
“받아 줄 필요는 없지만 한번 생각해 볼 수는 있지. 그 사람이 널 작정하고 까려고 한 비난이었는데 곱씹어보니까 맞는 말이야. 그러면 너한테는 이득인 거 아니야? 결국 도움이 된 거잖아.”
“근데 아무리 곱씹어봐도 개소리였으면?”
“그럼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구나~ 하고 넘기면 되는 거지.”
이재형은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동생은 입을 꾹 닫은 채 아무말도 안 하고 있었다. 아직 상처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 나이였다.
“과학자한테는 10명의 지지자보다 1명의 비판자가 있는 게 결국 더 큰 도움이 돼. 무한 긍정은 자신감을 채워줄지언정 아무런 발전이 없지만, 비판자는 이를 악물고 해결책을 만들게 하거든.”
“…”
이재형은 말없이 땅을 보고 있는 동생을 향해 바라봤다. 다른 형제들처럼 우애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랑스러운 동생. 한국과고에 떨어졌어도 과학을 포기하지 않은 그 모습이 기특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니까 만덕이하고 친하게 지내. 너 연구에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괜히 과고 다닌다고 색안경 끼고 보지 말고.”
“…몰라.”
“아~ 이번에 연구비 받은거로 pmp 사주려고 했었는데, 그냥 다른 거 사야겠다.”
“…”
“이번에 나온 신형엔 전자사전 기능도 있다던데~”
이재형은 일부러 영어사전을 강조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재성은 한동안 뚱한 표정으로 있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영어도 검색돼?”
슬쩍 눈치를 보며 말하는 이재성. 그 모습을 보니 이재형은 웃음이 나왔다.
“당연하지.”
“…무르기 없기다.”
그 말을 하고는 다시 몸을 홱 돌려 문제를 푸는 이재성. 아직 철이 덜 든 동생을 보며 이재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
“…”
“…”
“…”
“…저기 할 말 있으면 말로 해주지 않을래?”
나는 다짜고짜 이재성에게 불려졌다. 박성민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던 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처음 몇분 동안은 말이 없길래 잘못 걸려 온 전화인 줄 알고 끊으려 했는데,
‘연구.’
‘?’
‘연구한 거 들고 전에 봤던 곳에서. 3시까지.’
그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처음에는 장난 전화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들어온 이재형의 말을 듣고 이재성인 걸 알았다.
“재형이 형이 너인 거 안 알려줬으면 나오지도 않았을 거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불렀으면 용건을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좀 바빠서.”
“…싸가지 없어.”
…? 지금 누가 누구한테? 가뜩이나 박성민이랑 치매와 관련된 단백질에 대해 토론하고 있던 터라 나는 좀 짜증이 나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때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약속을 미뤘겠지만 이재성이니까 나와본 건데…’
나는 지금 1분 1초가 소중하다. 여기서 이런 어린애랑 감정 소모할 시간은 없다.
“할 말 없으면 간다.”
“…연구 노트.”
“뭐?”
“연구 노트 보여달라고.”
이재성은 나를 안 쳐다보고 내가 가져온 연구 노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윽고 내가 건넨 연구노트를 받아 든 이재성은 빠른 속도로 종이를 넘기기 시작했다.
이재성은 아무 말 없이 연구 노트를 읽었다. 과학 전시 때 발표했던 내용들 이외에도 추가로 아이디어를 적어놓은 탓에 노트는 점점 포스트잇과 각종 논문들로 두꺼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연구 노트를 마지막 장까지 다 읽은 이재성은 말 없이 앉아있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생각에 잠긴 이재성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너 이거 혼자 연구한 거야?”
“어? 음… 그렇지?”
물론 박성민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지금까지 한 실험은 어디까지나 전생의 내가 한 내용들이었다. 모두의 도움 없이, 혼자서 진행해 왔던 실험들.
내 말에 이재성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봤다.
‘뭐지? 설마 또 과학고 학생이니까 어쩌고 하면서 트집잡는 건…?’
하지만 이재성의 말은 내 예측을 벗어났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축적만이 알츠하이머병의 특징이라고 볼 순 없어. 그 외에도 타우 단백질, 알파-시누클레인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봐야 해. 너가 연구한 거에는 지나치게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에만 한정되어 있어. 그리고 유전자 시퀀스를 분석해서 편집하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그렇다쳐도 통계적 모델링은 어떻게 할 생각인 건데? 현재 시점에서는 그 많은 유전인자를 일일이 비교 분석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걸 모르고 이런 실험을 설계한 거야? 이 이후를 생각을 못 하나? 게다가 너가 아이디어로 제안한 부분에선-”
이재성은 숨도 쉬지 않고 다다다다, 말을 쏘아댔다. 마치 지금까지 쌓아왔던 말을 한번에 분출해 내듯이 봇물이 터지듯 쏟아지는 말에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이재성은 그 이후로도 조목조목 내 연구 노트를 보며 아이디어를 비판했다. 중간중간에 “이런 걸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거야?”, “과고 수준 별거 없었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실험을 한 거야?” 등 비난과 비판이 섞여 있었지만,
그런 건 전혀 상관 없었다.
“하여튼 내가 할 말은 일단 이게 다야. 너 연구 졸라 이상해. 최악.”
“…야.”
차갑게 내려앉은 내 목소리에 이재성이 순간 움찔거렸다. 나는 내 앞에 놓여있던 햄버거를 녀석 쪽으로 밀었다.
“너 진짜 싸가지 없는데,”
이재성은 나와 비슷하다. 뇌, 그것도 치매 부분에 대해서 나만큼 잘 알고(물론 내가 더 잘 알지만), 나만큼 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인 점에서.
“좀 더 얘기해봐. 졸라 궁금하니까.”
드디어 내 연구를 제대로 봐주는 사람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