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5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53화(53/221)
53. 여름학교 (1)
53. 여름학교 (1)
온탕과 냉탕을 반복해서 입수하고 있는 나날이다.
“만덕아, 그러니까 네가 생각할 때는 전두측두엽 치매와 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치매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 흥미로운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치매는 사실상 따로 연구되던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실험은 어떻게 해 볼 생각이냐?”
“대, 대단한 걸…!”
따뜻한 격려와 지지로 나를 응원하는 박성민과 이재형. 그리고,
“뇌 없어? 애초에 세 개의 치매는 일어나는 원인 자체가 다른데 세 개 사이의 연관성을 왜 찾아보겠다는 건데? 그, 병명을 보고 이게 왜 일어나는 건지 추측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건가? 혈관성 치매가 괜히 혈관성 치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까는 이재성. 극명하게 다른 두 반응 덕분에 나는 매일 매일이 담금질 되고 있었다.
박성민과 이재형은 어디까지나 ‘영재 연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서로의 주 연구 분야에 대해 아는 게 적을 수밖에 없었고, 비판보다는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하는 식의 칭찬이 주였다.
하지만 이재성은 달랐다.
“너 치매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냥 유전인자 하나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뇌 전체를 바꿔버린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막 유전자 만능론 그쪽이야? 한국과고 별거 없네.”
이재성과 나는 관심 분야가 사실상 거의 겹치는 거나 다름없었다.
치매의 원인을 완전히 제거하고 싶어 했던 나.
치매의 진행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싶어 하는 이재성.
그렇기에 아예 문제가 되는 원인을 뜯어고친다는 나의 입장은 병의 진행 상태를 늦추는 데 초점을 맞춰오던 이재성과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나도 깔 게 있다는 소리기도 했다.
“너야말로 뇌에 직접적으로 약물을 투여해서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추자는 건 대체 어느 시대 발상이야? 두통이 있으니까 머리에 구멍을 뚫어서 치료하자는 시대에서나 할법한 사고 아니야?”
“허? 아픈 곳이 있으면 약물 치료하는 건 정석이거든? 너처럼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유전자를 잘라버려서 애초에 막아버리자고? 그게 뇌에 구멍 뚫는 것보다 더 무식한 방법 아니냐?”
“유전자 편집 기술을 뇌에 구멍 뚫는 거랑 같다고 보는 걸 보니 넌 아직 멀었다.”
누가 할 소리! 이재성이 발끈하며 일어났다.
5시까지는 국립뇌과학연구소에서 박성민, 이재형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간단한 저녁을 먹고 난 뒤 6시부터는 이재성과 근처 카페에서 관련된 연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다.
그리고 열띠게 서로를 비판하면 할수록 우리의 연구는 더욱 풍성해졌다. 나 역시도 유전자 편집에만 몰두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이재성의 연구를 좀 더 살피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연구가 전적으로 맞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근데 너.”
“왜?”
“아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격렬한 토론을 하고 난 뒤, 우리는 잠시 휴전했다.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키고 있는데 이재성이 말을 하다 말았다.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거고…
“넌 과고 왜 감?”
“에.”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왔다. 과고를 왜 가냐니. 그러나 이재성은 딱히 답을 듣고 싶어서 물어본 게 아닌 것 같았다.
“과고가서 애매한 등수 받을바엔 그냥 일반고 가서 내신 따는게 낫지 않나? 이젠 의대 가면 장학금도 회수한다며.”
“난 의대가 목표가 아닌데?”
“어쨌든, 예전만큼 과고 메리트가 없다고. 애초에 고등학생 수준에서 과학을 배워봤자 얼마나 배우겠냐? 하여간 꼭 요란스러운 것들이 과고나 특목고 가겠다고 난리지.”
퉁명스럽게 말하는 이재성. 그가 ‘엘리트 코스’를 극혐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과거 인터뷰에서도 ‘과고 왜 안감?’ 이라는 질문에 ‘그딴 델 왜감?’ 이라고 이야기 했었지.
일반고를 다니다가 자퇴를 한 이재성의 눈에는 과고는 그저 겉멋만 든 얼간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물론 그가 이뤄낸 업적이나 그런 것들은 모두 인정할 만한 것들이지만…
‘선 넘네?’
입학 못 한 사람들을 조롱해서는 안되지만, 동시에 입학 한 사람들의 노력을 폄하해서도 안된다. 그거야말로 역차별일테니까.
“막 말로는 엄청 최신 실험기기 있고, 학생들 과제 연구하고 그런다던데 그게 제대로 되겠냐? 하여간 겉멋만 들어가지곤.”
“음… 최신 실험기기가 있긴 하지. 아무래도 국가에서 지원을 빵빵하게 해주니까. 게다가 한국과고는 과고 중에서도 제일 지원 많이 받는 고등학교고. 그리고 과제 연구 자체는 그렇게 심도 깊진 않은데 R&E는 다들 열심히 하는 편이지? 대학교랑 연계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있고.”
한국과고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최고라 불리는 고등학교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입학하고 싶어서 초등학생 때부터 준비하기도 했으니까. 단순히 수학과 과학만 잘해서는 입학이 힘들었기에 입학한 학생들은 대부분 육각형 만렙인 상태로 입학하곤 했다.
그리고 내가 들은 바로는…
‘재성이가 한국과고 떨어지고 좀 방황을 했었거든. 한동안 밥도 안 먹고.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게 얼마 되진 않은데… 좀 많이 삐딱해졌지?’
그래도 잘 부탁할게, 라는 말을 하던 이재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육각형까진 아니었던 이재성은 탈락한 모양이었고. 탈락의 경험은 이런식으로 그에게 남았다. 과고따위, 내가 안 간거다. 라는 정신 승리로.
그렇게 생각을 하니 이재성의 행동들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말끝마다 과고는, 과고 학생이라면, 이라고 비교를 하던 이유도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
감히 날 떨어뜨려? 나를 떨어뜨린 한국과고가 후회할 만한 인재라는 걸, 난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그깟 과고 타이틀 없이도 난 해낸다는 걸 보여주겠다-
‘그게 이재성이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식이었겠지.’
우수한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열등한 나.
우수한 나를 알아보지 못한 형편없는 학교.
그는 후자를 택했다. 확증편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스스로를 인정하기 위해서.
나는 열심히 한국 과고를 비판, 아니 비난하는 이재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연구 외에는 말이 없는 녀석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이토록 말이 많아진다는건…그만큼 그 혼자 수 백가지 이유를 만들어 연습했다는 흔적일테니까. 그리고 그건 그거대로 힘든 싸움이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과고생이라고 다 얼간이인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대단한 건 아니야. 오히려 방황하는 사람들도 꽤 있고.”
나는 이재성의 말을 받아들이지도, 반박하지도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내가 생각한 걸 담담히 말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모두 치르고 난 뒤, 삐뚤어진 학생들이 반에 한 두 명씩은 있었다. 중간고사 때 충격적인 점수를 받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지만 돌아온 건 처참한 기말고사 점수였으니까.
내 말에 이재성이 어이없다는 듯이 받아쳤다. 표정이 썩어들어간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멘탈이 약해빠진 거지.”
멘탈이라. 이재성의 말을 듣자 문득 머리 위로 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만덕아~ 이번 방학에 뭐 해? 학교에 계속 있어?’
‘큼큼… 놀 거 없으면 내가 만든 게임 한번 해볼래?’
‘혹시 이 현미경 우리 동아리에서 계속 써도 되는 거면 나 방학 때도 계속 와도 되나?’
뇌생공 부원들이었다. 이재성이 본다면 이해하지 못할, 과고까지 와서 공부를 손에 놓은 사람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홍예슬, 최찬서, 방현욱이 멘탈이 약한지에 대해. 그리고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당연한거 아닌가?”
“엉?”
“과고도 그냥 고등학교야. 다른 일반고 학생들처럼 그냥 맛있는 급식 나오면 뛰어가서 먹고, 자습하다가 잠깐 쪽잠도 좀 자고.”
그렇다. 내가 과거로 회귀해서 느낀 건 한국과고는 치열했고, 괴수 같은 놈들이 드글거렸지만…
“그냥 평범한 17살 고등학생이야. 멘탈이 약한 건 당연한 거 아니냐? 방황 좀 할 수도 있지.”
“…누가 보면 넌 17살 아닌 줄 알겠네.”
“어쨌든 너무 과고에 환상 가지지 말라고. 나쁜 환상이든, 좋은 환상이든. 그냥 너랑 똑같으니까.”
이재성은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가 조금은 흔들린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재성은 더 맞받아치지 않고 눈앞에 놓인 얼음만 아작아작 씹어먹었다.
17살.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기 딱 좋은 나이였다. 적당한 철학적 사고와 비대해진 자아.
“…환상은 무슨. 그런 거 애초부터 없었거든.”
“예예, 알았고 연구 이야기나 마저 하자. 뇌에 구멍 뚫으면 된다고?”
“에휴, 가위질로 유전자 자르자는 애랑 뭔 이야기를 하겠냐.”
얼음을 다 먹고 난 뒤, 우리는 다시 연구를 놓고 토론을 시작했다. 열띠게 토론을 하는 모습은 이전과 다름없었지만, 이재성은 더이상 ‘과고 수준’, ‘과고 따위’ 등의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과고생과 일반고생이 아닌, 그저 누구보다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의 모습으로 서로를 대했다.
*
시간이 흘러, 화학 올림피아드 여름학교 입교식 날이 찾아왔다.
“아 진짜 덥네! 날씨 미친거 아니야?”
“그러게. 8월이라 그런지 햇빛이 장난없네.”
나와 이인영은 여름학교가 진행되는 대학교 안, 과학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강렬한 햇빛을 받은 아스팔트로부터 후덥지근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들어가자마자 물 마시자, 에어컨 앞에 서있자 등 우리는 정신이 희미해진 상태로 과학관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놓여진 테이블 위엔 참석자 명단표가 있었다.
“화학 올림피아드 여름학교 입학생 맞으시죠? 자기 이름 옆에 싸인 하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우리는 명단을 살폈다.
[김만덕]‘…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전생에는 생각조차 안 했던 화학 올림피아드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물학만 바라보던 나에게 생물 올림피아드 말고 다른 올림피아드는 칠 생각조차 없었으니까.
물론 이인영은 그때나 지금이나 화학만 바라보고 있었고. 이인영은 R&E 이후로 한결 가벼워진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그래핀이나 신소재같은 분야에 얽매여 있었다면, 지금은 좀 더 다양한 화학쪽 진로를 알아보고 있었다.
“다들 모여서 앉아있네. 같은 학교끼리 앉은 건가?”
“글쎄. 보통 같은 학교가 아니어도 같은 학원에서 대부분 만나니까. 같은 학원끼리 모인 걸 수도 있지.”
우리는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자유석이었기에 우리는 단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고, 단상 위에는 [2008 화학올림피아드 여름학교 입교식] 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내 목표는 금상. 그리고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4명이 모두 금상을 받을 수 있도록 드림팀을 꾸리는 것.’
물론 개별로 시험 친 것에 대해 메달 성적이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전생 때와 똑같이 진행된다면 이인영만 좀 더 케어하면 될 터였다.
이인영은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을 땄으니까. 새삼 자존심 강한 그녀가 은메달을 땄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가 만약 생물 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을 땄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괴감에 빠졌을 테니까.
“여름학교에 입교하신 여러분들 모두를 환영합니다. 이번 2008년 화학올림피아드 여름학교는 고1반 71명, 고2반 18명이 선발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학교의 교장을 맡았다는 최형수 교수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어디까지나 이름이 학교인 만큼 총괄하는 사람을 교장으로 지칭하고 있었다.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한국 대표단은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이번 기수의 대표단 역시 분명 좋은 성적을 이뤄낼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최형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곳에 모인 학생들 역시 기대감에 찬 모습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본 이인영도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전 세계에서 화학에 진심인 학생들이 모여 겨루는 곳. 최형수는 한국 화학의 미래를 간단하게 언급하고 난 뒤, 마무리 지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대한화학회 회장의 축사와 올림피아드 위원장의 격려사가 끝나고 조교 소개가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고 1반 조교를 맡은 박상명입니다.”
“고 1반 조교 이연서입니다.”
“고 2반 조교 김태형입니다.”
조교는 총 3명이었다. 여름학교 생활에 있어서 전반적인 관리와 기숙사 생활지도를 맡아줄 존재들이기도 했다. 뒤이어 이어지는 교수진들의 소개에 조교들의 존재는 금방 잊혀졌지만,
나는 똑똑히 기억해 뒀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조교보다는 교수의 눈에 들려고 더욱 안달이 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올림피아드 조교들은 기본적으로 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한 학생 중에서 선발된다. 만약 그게 아니더라도 이전 계절 학교에서 조교 경험이 있거나, 대학생 경시대회에서 입상한 학생, 혹은 화학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한마디로 범상치 않은 스펙의 소유자들이라는 소리였다.
‘실제로 여름학교에 있으면서 제일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앞으로 2주 동안 있을 생활을 쾌적하고 편하게 보내기 위해서라도 조교들과 안면을 트는 건 중요했다. 나는 그렇게 한쪽 구석에 서 있는 조교들의 얼굴을 열심히 익히고 있었다.
그렇게 입교식은 간단한 환영사로 마무리 지으며 끝이 났다.
“30분 동안 휴식 시간을 가진 후에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고2반 학생들은 옆 강의실로 이동하도록 할게요~”
고 2반 조교를 맡은 김태형의 안내에 맞춰 몇몇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사람 중에서 최종적으로 올해 국가대표로 선발될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
나와 이인영이 시험을 치는 건 내년. 앞으로 1년의 시간을 더 거쳐야 국가대표로 선발될 자격을 얻게 된다. 그렇게 유유히 자리를 뜨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머리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머리통은 고개를 돌렸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재성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표정을 구기는 녀석. 그 모습을 이인영도 같이 목격했다.
“뭐야. 아는 사람이야?”
“응.”
“성격 안 좋아 보여.”
“정확해.”
나는 이인영의 안목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격 나쁜 놈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너도 합격했냐?”
“응. 전에 말했잖아.”
분명 이재형과 같이 이재성 만난 첫 날, 버거집에서 이야기 했었다. 1주일 후에 보자고 친히 날짜까지 알려줬건만. 다 까먹은모양이었다.
이재성은 인상을 구기더니 내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인영을 빤히 보는 이재성. 그리고 나와 번갈아 보더니 미간을 찡그린 채로 물었다.
“여친?”
“!”
“그럴 리가 있겠냐. 그냥 같은 학교야.”
“…”
이인영이 눈이 커졌다가 가늘어졌다. 짧은 사이에 감정이 확확 바뀐 느낌이었다. 여친으로 오해받아서 기분이 나빠진 게 분명했다. 나름 빠르게 해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인영은 여전히 심기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이재성이 같잖다는 표정을 짓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고 1반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고 1반 수업은 다음 표와 같이 진행됩니다. 기본적으로 오전 수업은 9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진행되고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부터 수업이 다시 시작됩니다.”
스크린에 띄워진 일정표는 빽빽했다. 수업들은 모두 대학의 교수들이 직접 진행했다.
“교재는 현대일반화학으로 5판 번역서를 이용합니다. 아마 사전에 공지를 해드렸던 만큼 모두 준비해 오셨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미처 구입하지 못한 학생들은 대학 내에 있는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이미 사서 헤질 때까지 봤던 책이었다. 이인영도 마찬가지인 듯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다.
“일주일간 수업을 진행하고 난 뒤, 토요일에는 중간 평가 시험이 있습니다. 또한 여름학교가 끝나는 날인 다음 주 금요일에는 최종 평가 시험이 있습니다. 두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겨울학교가 진행됩니다.”
그렇게 긴 설명이 다 끝난 후, 이어서 기숙사에 대한 안내를 시작했다. 이미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크게 주의해야 할 내용들은 없었다. 그렇게 모든 안내가 끝나고 난 뒤 나와 이인영은 짐을 챙겨 이동했다.
밖으로 나오자 더운 열기가 우리를 덮쳤다.
“진짜 덥다. 그치?”
“어.”
“?”
이인영의 태도가 묘하게 핀트가 나간 상태였다. 뭐지, 더워서 예민해진 건가? 그렇게 기숙사로 이동하면서 우리의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
“그래도 여름학교 기대된다. 그치?”
“어.”
“아까 강의계획서 보니까 다 일반 화학 내용이던데, 인영이 너한테는 완전 껌이겠네.”
“응.”
“?”
뭐야. 이 화법은? 그런 대화가 이어지다가 우리는 기숙사 앞에서 헤어지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남학생 수가 많았던 탓에 여자는 4층, 남자는 3층과 7층에 배정되었고, 나는 3층 301호였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2인 1실이랬지. 괜찮은 룸메이트면 좋겠는데. 기왕이면 성격도 둥글둥글하고 착한-’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
“…”
탁.
문을 닫았다. 하지만 문이 다시 열렸다. 먼저 와있던 룸메이트가 나를 맞이했다.
“하이.”
“아, 제발. 왜.”
이재성이 나를 맞이했다. 앞으로 지낼 2주의 여름학교의 난이도가 정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가고 싶다.’
여름학교 첫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