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5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54화(54/221)
54. 여름학교 (2)
54. 여름학교 (2)
화학올림피아드 여름학교 수업은 생각보다 수준이 매우 높았다. 단순히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준, 그러니까 과학고등학교 수준보다 훨씬 어렵고 깊게 내용을 배웠다.
“자, 오늘은 열화학을 주제로 수업을 나가게 됩니다. 오늘 수업을 맡은 성한진 교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성한진 교수의 짤막한 인사를 시작으로 오전 수업이 바쁘게 지나갔다.
“엔탈피(H)는 열화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열역학적 특성입니다. 엔탈피 변화를 계산하는 방법과 Standard Enthalpy of Formation… 그러니까 표준 생성 엔탈피에 대해서 깊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스크린 상에 띄워놓은 그래프를 가지고 설명을 하면…”
성한진 교수는 열역학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용하는 PPT는 모두 영어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애초에 과학고에서 진행하는 수업 중 대학 원서를 이용하는 수업은 모두 원서를 이용해서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와 이인영 역시도 듣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단 한 명을 빼고.
내 대각선에 앉은 이재성은 스크린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물론 그래프를 보면 영어를 모르더라도 대충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점점 심화된 내용이 진행될수록 이재성이 당황스러워하는 게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여기서 exothermic process(발열 과정)을 보면 엔탈피 변화는 음수값으로 나옵니다. 엔탈피가 감소된다고 이야기를 하죠.”
영어를 섞어서 이야기하는 교수님 덕에 이재성의 혼란스러움은 배가 되었다. 그나마 그 뒤에는 대부분 화학식들로 표현이 되어있는 걸 보고서야 이재성이 한숨을 돌렸다.
탓. 짧은 순간이지만 한숨 돌리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이재성은 하품인 척 스트레칭을 하더니 앞을 봤다. 근데 이미 하품 아닌 거 다 봤어 임마.
하지만 딱히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재성과 이인영은 국가대표로 선발될 테니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게 어디까지 적용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면 이번 일도 큰 이변 없이 일어날 것 같았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게 애들 사이에 퍼졌던 것도, 이인영이 그래핀 관련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냈던 것도. 물론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조금씩 달랐지만, 일 자체는 고정적으로 일어났어.’
그 말인즉슨, 지금 이재성이 저렇게 영어에 어려워하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국가대표로 선발이 될 거란 소리기도 했다.
‘오히려 걱정해야 하는 건 나지.’
사실 화학올림피아드를 조금 얕봤던 건 사실이다. 나는 이미 대학원생 수준의 과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과학 괴수들이 드글거린다는 한국과고에서도 전교 1등을 차지할 정도로 과학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더군다나 국제생물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차지했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었다.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역시 껌일 거라고.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화학올림피아드 여름학교에서는 어려운 내용을 순식간에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매일 있는 미니 테스트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이인영과 이재성이 달라 보일 정도였다.
내 성적은 5등. 71명 중에서 5등은 최상위권에 속했지만… 어째선지 분하다.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냐.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해. 내가 화학을 전공했던 사람도 아니고 나는 어디까지나 생물학을 전공했었으니까. 단순히 대학원을 나왔다고 해서 전공도 아니었던 분야를 완벽하게 꿰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야.’
오만. 자만. 지금의 내 상태였다. 나는 과거에서 회귀했으니까, 나는 이 애들보다 어른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당연히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을 거라고 마음속에서 이미 답을 내려놓고 있었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요. 이제 남은 시간 동안 테스트를 치도록 하겠습니다. 조교?”
“네.”
교육 조교이자 생활 조교를 겸하고 있는 고 1반 박상명이 시험지를 들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교수 성한진은 시험지를 보더니 우리를 향해 말했다.
“오늘 내용이 조금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계산하는 부분이 까다롭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학생들은 긴장되는 낯빛으로 시험지를 받았고, 동시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극악의 난이도였다.
‘이걸 풀라고 준 건가?’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로 계산 문제는 많았고, 시간은 없었다. 우리는 받자마자 문제를 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성한진은 강의실을 유유히 떠났다.
사각사각, 소리만이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얼마나 열심히 풀고 있는지 학생들의 머리에서 나온 열로 강의실의 온도가 올라가서 에어컨이 더 세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나는 에어컨 바로 밑 자리에서 직빵으로 바람을 맞으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자, 이제 시간이 다 되어서 걷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밥 맛있게 드세요~”
조교 박상명의 말을 끝으로 학생들이 책상 위로 퍼질러졌다. 온 에너지를 문제 푸는 데 사용한 탓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인영과 이재성도 마찬가지였다.
“하얗게… 불 태웠어…”
“괜찮아? 아까 보니까 열심히 풀던데.”
책상 위에 한쪽 팔을 쭉 펴고 그 위에 뺨을 댄 이인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11번 문제 풀었어?”
“아, 평형 상태 문제? 깁스 자유에너지 구하는 거 말이지?”
“응. 보니까 잘 풀었나 보네.”
나는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였다. 아직 답 점수가 나온 건 아니었으니까. 이인영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입을 삐죽 내밀고 중얼거렸다.
“화학을 제일 좋아하지도 않는다면서 누구보다 화학에 진심이라니까…”
“생물을 더 좋아한다는 거지 화학이 싫은 건 아니니까.”
“그게 그거야. 제일 좋아하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는 거잖아.”
흥. 고개를 돌리던 이인영은 책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가야 했다. 강의실을 나가려는데 이재성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입소한 뒤로 쭉 혼자 지내고 있었다.
“쟤 근데 일반고라고 했지?”
“어? 어.”
“쟤도 참 힘들겠다. 어차피 국가대표로 못 선발될 텐데.”
“?”
이인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인영이 덤덤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화학올림피아드는 단순히 이론 시험만 잘 친다고 해서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게 아니야. 고 2반으로 들어가면 이제 본격적으로 실험 시험도 치게 되는데, 사실 일반고에서는 실험을 준비하기가 힘들잖아. 보아하니 학원도 안 다니는 것 같고.”
이인영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사실상 지금까지 화학올림피아드 국가대표는 과고생들이 독점하다시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 학원을 다닌다고 꼭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도 아니잖아? 독학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속 편한 소리네. 누가 학원도 없이 올림피아드에 오냐? 그런 애가…”
여기 있네. 내가 웃으며 나를 가리키자 이인영은 그걸 보더니 더 입을 삐죽이고는 저만치 앞으로 갔다.
“책 두고 1층에서 봐.”
“늦기만 해. 두고 갈 거니까.”
툴툴대는 이인영과 헤어지고 나는 기숙사로 들어왔다.
“어? 이미 벌써 있었네?”
“…어.”
기숙사에는 이미 이재성이 와있는 상태였다. 녀석은 침대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교재를 책상 위에 올려뒀다.
사실 첫날 이후로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대화가 없었다. 그래도 지난 일주일동안 치매 연구 관련해서 격렬한 토론까지 했던 사이라 나름 친밀감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이재성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하는 말이라곤 “불 꺼.”, “먼저 씻는다.”, “에어컨 끈다.”가 다였으니까.
‘원래 낯을 좀 가리는 편인가? 근데 이제와서?’
이재형한테 듣기로는 이재성이 사회성이 좀 떨어진다고 했으니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는데, 녀석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야.”
“왜.”
“…너 친구 많냐?”
“?”
뭔 소리여. 뜬금없는 말에 인상을 쓰며 녀석을 보니, 이재성은 나보다 더 찡그리고 있었다.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시계를 보니 1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이인영이 생각났다.
이재성은 여전히 침대에 앉아서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아까의 대화가 스치듯 떠올랐다.
‘쟤 근데 일반고라고 했지?’
‘보아하니 학원도 안 다니는 것 같고.’
아. 나는 이재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친구 없지?”
“!”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는 이재성. 정곡이 찔린 표정이다. 그제야 이재성이 이런 질문을 한 의도가 보였다.
“뭐, 뭐래. 친구 있거든? 아니 애초에 여름 학교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친구가 있는 게 더 이상한 거거든?”
“친구가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아 그니까 이제 곧 생길 거라고!”
“그래. 그럼 밥이나 같이 먹으러 가자.”
“…!”
내 말에 이재성이 긴장하는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나도 그렇게 주변을 잘 챙기는 성격이 아닐뿐더러 여름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어려운 화학 내용을 따라가느라 그 외의 것들을 신경 쓰지 못했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바로 이인영과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남은 시간에는 빈 강의실에서 스터디를 하며 수업 내용을 정리하기 바빴으니까.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재성이 이렇게 틱틱 대며 돌려 말한 의도는,
“밥 같이 먹자. 싫음 말고.”
“…먹을 거야.”
“얼른 나가자. 아, 그리고 한 명 더 같이 먹는 애 있거든? 아마 전에 봤을텐데. 단발머리 여자애.”
“성격 더러워 보이던?”
“…너 그거 걔 앞에서 말하면 절대 안 돼.”
사회성이 극히 떨어지는 이재성을 데리고 가면 이인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눈에 선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재성을 챙기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이제 나한테는 이재성은 친구니까.
그렇게 이재성에게 ‘이인영 앞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 100선’에 대해 열심히 말해주고 있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고 1반 조교를 맡고 있는 박상명이었다. 기숙사 3층을 관리하고 있는 그는 학생들을 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이미 첫날과 어제 들으셔서 알고 계시겠지만 오후 수업은 2시부터입니다! 점심은 학생회관에 있는 식당을 이용해 주세요. 밖에 나가서 먹다가 늦으면 출결에 지각으로 기록되니 이 점 꼭 기억해 주세요!”
참고로 지각 점수가 쌓이면 겨울학교 선발에도 불이익이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잠깐만.”
“?”
나는 첫날 챙겨왔던 비타민 음료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내 그에게로 갔다.
“조교님. 항상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거 드세요.”
“어? 어. 고마워. 너 이름이… 김만덕. 아, 이름 특이해서 외우고 있었는데.”
여름학교 학생들은 모두 명찰을 착용하고 있어야 했다. 조교 박상명은 명찰을 보고는 기억났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이재성에게도 시선이 절로 갔다.
“그리고 이쪽은… 아, 그래. 일반고 학생이었지? 이번에 일반고 합격생은 너밖에 없어서 기억하고 있었거든.”
“…네.”
그 말에 이재성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머쓱해진 박상명이 비타민 음료를 보며 나를 바라봤다.
“잘 마실게. 점심 맛있게 먹고.”
“네. 조교님도요.”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이재성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를 바라봤다.
“…얍삽해.”
“? 뭐가?”
“비타민 음료 주는 거. 뇌물이야.”
“뭐라는 거야. 그냥 이 더위에 목이 터져라 말하는 게 안쓰러워서 준 거구만.”
“간신배…”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이재성을 가볍게 무시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물론 조교에게 마냥 순수한 의도로 친근하게 대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정도 친절은 그냥 베풀 수 있는 정도니까. 그리고 조교랑 대학원생은 소중히 대해줘야 해 임마.
“이런 걸 보고 사회성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거란다, 이 아싸야.”
“입만 산 인싸보단 낫거든.”
혼자서 궁시렁대는 이재성을 뒤로한 채, 저 멀리서 이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이인영은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다가 뒤따라오는 이재성을 보고는 표정을 구겼다.
“…얘랑도 같이 밥 먹어?”
“응. 혹시 불편해?”
“불편한 건 아닌데…”
이인영이 말을 흐렸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인물의 등장이 낯선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인영도 사회성이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둘 다 낯을 가리니까 싸울 일은 없겠네.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이재성이 말을 뱉었다.
“성격 더러워보여.”
“…! 야, 내가 직접 앞에선 말하지 말라고 했-”
헙. 내 앞에 이인영이 흡사 이인성을 대할 때처럼 눈에 살의를 품고 있었다. 그 뒤로 둘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가까워졌다.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싸우는 둘을 데리고 학생식당으로 갔다. 오늘 메뉴는 짜장밥에 계란국. 무난한 메뉴였다.
“딱 보니까 친구 없을 수밖에 없네. 초면에 성격 더럽다고 말하는 애랑 누가 친구를 하겠어? 지금까지 밥도 혼자 먹다가 김만덕이 이야기해 주니까 그제야 같이 먹는 거네.”
“성격 더러워 보인다고 했지 더럽다고 한 적은 없는데. 찔리나 보네.”
“이이…!”
대화는 무난하지 않았다.
밥을 먹는 가운데 둘 사이에 낀 나는 이인영이 내 오른 귀에다 “쟤 대체 나한테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라고 큰 목소리로 말했고, 그 말을 들고 가만히 있을 리 없는 이재성이 왼쪽 귀에 대고 “저런 성격 더러운 애랑 사귈 바에는 아메바랑 사귀는 게 낫겠다.”라고 크게 말했으니까.
그렇게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시간이 이어졌고, 우리는 다시 오후 수업을 들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 방에서 자려고 불을 끄는 순간까지 아메바에 대해 강론을 펼치는 이재성을 재우고서야 비로소 쉴 수 있었다. 살려주세…
탁.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온몸이 노곤노곤한 게 꼭 마라톤 풀 코스를 쉬지 않고 달린 기분이었다. 그래도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녹초가 된 몸을 침대에 뉘었다. 모처럼 푹 잠든 밤이었다.
“으…어으…?”
그러나 중간 평가가 날, 지독한 감기에 걸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