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55)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55화(55/221)
55. 여름학교 (3)
55. 여름학교 (3)
열이 났다. 회귀 후 몸이 아픈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냉방병으로 인한 감기 몸살.
“괜찮아? 식은땀 나는 것 같은데?”
“괜찮아. 아침이라서 그래.”
사실 하나도 안 괜찮다. 걸을 때마다 눈 앞이 핑 도는 탓에 이인영의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 있었으니까. 그런 내 상태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아챈 이인영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차라리 오늘은 기숙사에서 푹 쉬는 게 어때? 괜히 이러다가 쓰러지면 더 큰일이잖아.”
“…안 돼. 오늘은 중간평가가 있는 날이잖아.”
중간평가. 여름학교에서는 총 2번의 시험을 친다. 일주일 수업을 듣고 난 후, 그 주 토요일날 시험을 친다. 그리고 모든 수업이 끝나는 날 오후에 최종 평가 시험이 이뤄진다.
한마디로 이번 시험은 내 앞으로의 계획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가는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도 힘들 테니까.
끙, 소리를 내며 교재를 책상에 옮겼다. 이인영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미간을 좁히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저번에 용해도와 침전 평형 부분에서 등수가 좀 낮게 나왔었는데 교재에 있는 연습문제를 다시…’
꾸벅, 나도 모르게 고개가 아래로 숙여졌다. 몸속 항체가 열심히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온몸이 천근만근일 리가 없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다시 정신을 잡았다. 샤프로 손바닥을 꾹꾹 눌러 가면서 간신히 정신줄을 잡았다. 좀만 더 버티자. 조금만.
“야. 너 어디 아프냐?”
“어… 그니까 말 시키지 마…”
“…”
아프다는 말 때문인 걸까, 이재성이 옆으로 왔다가 별 반응 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원래라면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약을 올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쯧쯧 거리며 혀를 찰 녀석인데 어째서인지 조용했다.
“자. 오늘은 중간평가 시험이 있는 날입니다. 시험은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총 2시간입니다.”
시험이 끝나면 단체 사진 촬영이 있으니 다들 기숙사로 가지 말고 앞에서 대기하세요, 라는 조교의 말과 함께 모두가 긴장 상태가 되었다.
나만 빼고.
‘아침에 약을 먹고 오는 게 나았으려나.’
나는 금방이라도 감기려고 하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감기약이 없었던 건 아니다. 기숙사 내에 구비되어 있는 상비약 중에는 감기약이나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감기약이 뇌 활성을 둔화시킨다는 건 굳이 뇌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오늘처럼 중요한 날, 나는 최대한 내 뇌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내고 싶었다. 이미 감기 기운으로 인해 비몽사몽한 상태인데 여기서 약까지 먹으면 더 심해질 게 뻔했다.
“문제는 총 10문제입니다. 한 문제당 10점씩이고요, 부분 점수가 있으니 신경 쓰시길 바랍니다. 문제는 시험지에 직접 풀고 제출 후 퇴실하시면 됩니다.”
째각째각. 적막만이 감도는 강의실에선 시침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렸다.
“자… 그럼, 지금부터 중간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조교 박상명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학생들 모두가 전투적으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우는 샤프 소리와 지우개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들렸다.
고1반의 정원은 71명. 여름-겨울-여름-겨울. 총 4번의 계절학교 시간동안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인원은 고작 4명이다. 상위 5%안에 드는 수재 중 수재들만 갈 수 있었다.
나는 샤프를 강하게 쥐었다. 손에 피가 안 도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질 수 없지. 고작 바이러스 따위로는 더더욱.’
마음을 다잡고 시험지를 훑었다.
1번 문제는 비교적 쉬운 문제였다. 균일과 불균일에 대한 문제. 간단한 개념이었으므로 어렵지 않게 풀어나갔다. 2번 문제는 수득량, 수득률을 계산하는 문제였고 이어지는 3번, 4번 문제들도 몰질량을 이용해서 구조를 추론하거나 궤도 함수에 대한 문제였다.
다 해볼만 했다.
고 1반 출제범위는 일반 화학. 이인영과 지겨울정도로 여러번 공부했던 내용이었던만큼 처음보거나 낯선 개념은 없었다. 그렇게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순간 부지런히 놀리던 손이 주춤했다.
[다음과 같이 배열된 쌍극자와 점전화 사이의 포텐셜 에너지를 유도하시오.]유도 문제가 연달아 나왔다. 각 그림을 보고 관계를 파악해 식을 유도하는 문제. 순간 주춤거리긴 했으나 이 역시 몇번이고 이인영과 함께 정리했던 내용이기에 어려울 건 없었다. 살짝 사고의 흐름이 더뎌지는 걸 느꼈을 뿐이다.
끼익, 소리를 내며 학생 몇명이 밖으로 나갔다. 아직 시험 종료까지 30분 넘게 남았음에도 문제를 다 푼 학생들 몇몇이 시험지를 제출한 후 밖으로 나간 것이었다. 초조한 마음이 불쑥 치밀어오르려는 순간,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정신차려. 눈 앞의 문제에 집중해.’
전생때도 다른 학생들의 여유에 지레 포기했던 적이 많았다. 괜히 나만 못 푼 것 같고, 나만 망한 것 같은 기분.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다시 마음을 다 잡자, 아까는 바로 떠오르지 않았던 풀이가 생각났다. 나는 침착하게 한 줄씩 유도 과정을 적어나갔다. 그렇게 한 문제, 한 문제씩 클리어하고 난 후 시계를 보니 종료까지 약 5분을 남겨둔 상태였다.
봤냐? 바이러스 따위는 인간을 이기지 못한다고. 나는 인간의 정신력에 감탄하며 남은 시간을 검토하는데 쏟았다. 시간 관계상 계산 문제 위주로 빠르게 살펴봤다.
“자, 시험 종료되었습니다. 다들 필기구 내려놓으시고 손 아래로 내려두세요. 시험지는 제가 걷어가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조교 박상명이 책상 사이를 순회하며 시험지를 걷었다. 끝까지 남아있던 학생은 20여 명 정도. 그 안에는 이인영과 이재성도 있었다.
“이제 자리 이동하셔도 됩니다. 5분만 쉬었다가 사진 촬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교의 말이 끝나자 둘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 자리를 향해 걸어왔다.
“어때? 잘 쳤어?”
“풀 만했냐?”
“어.”
“? 너 진짜 괜찮아?”
“어…?”
고개를 끄덕였지만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세상이 모두 옆으로 누웠다.
“야! 김만덕! 조교님! 여기 학생 쓰러졌어요!”
“내 이럴 줄 알았다. 하아…”
그렇게 치열했던 시험이 끝나고 나는 조교의 등에 업혀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인간은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다. 바이러스 만세.
*
그렇게 응급실에서 주사와 수액을 맞으며 온종일 하루를 보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중간평가가 끝나고 오후 시간동안은 자유시간이었기에 일정을 소화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진짜 문제 풀다가 응급실 가는 걸 두고 뭐라 해? 미련곰탱이도 아니고.”
“곰이 아깝다.”
“나 환자다…”
응급실 베드에 걸터 누운 채로 옆에서 궁시렁대고 있는 둘을 바라봤다. 모처럼의 자유시간인 만큼 쉬고 싶을 텐데도 녀석들은 내 곁에 있었다.
“돌아가도 되는데. 수액만 다 맞고 갈게.”
“됐어. 오는 길에 또 쓰러지면 그땐 어쩌게? 그냥 얌전히 수액 맞고 가.”
이인영이 툴툴대면서 침대 이불을 내 머리끝까지 올려줬다. 말투는 퉁명스러워도 다정함이 담겨있었다. 근데 인영아 나 숨 막혀…
링거의 수액이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나는 둘에게서 잔소리를 들었다. 대충,
“아니 에어컨 바람이 세면 자리를 옮기던가. 왜 그냥 앉아있었냐고.”
“넌 약이란 게 왜 있는지 모르는 거냐? 감기약이 있어도 왜 안 먹었는데?”
“진짜 멍청해.”
“멍청이.”
다정하고 따뜻한 말들을 들으며 수액을 다 맞았다. 아마 난 오래 살거다. 평생 들을 욕을 다 들은 거 같으니까. 그렇게 퇴원 수속을 하고 난 뒤, 밖으로 나갔는데 예상 외의 인물이 앉아있었다.
“괜찮아? 걷는 데는 무리 없고?”
조교 박상명이었다. 당연히 다시 여름 학교로 복귀했을 줄 알았는데, 내가 나올 때까지 대기한 모양이었다.
“네. 그런데 저 기다리신 거에요?”
“어. 교수님께서 아픈 학생 다 치료받는 거 보고 같이 오라고 하셨거든.”
이런. 의도치 않게 폐를 끼친 사람이 늘었다. 그러나 박상명은 웃으며 내 표정을 풀려고 말을 건넸다.
“부담 안 가져도 돼. 나야 오히려 교수님으로부터 멀어져서 좋은걸.”
“아…”
“그보다 지하철 타고 가면 힘들겠지? 택시 타자.”
박상명과 함께 우리는 밖으로 나섰다. 택시를 잡고 여름학교가 진행되는 대학교로 이동하던 중, 그는 내 옆에 앉았다.
전생의 나는 화학올림피아드를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상명과 만날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박상명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전공인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조교 생활 힘들진 않으세요?”
“어?”
“보니까 기숙사 생활 조교도 같이 하시는 것 같던데 힘드실 것 같아서요.”
이번 여름학교는 고 1반 71명, 고 2반 18명으로 진행된다. 그중 여학생은 9명으로 상대적으로 남학생들의 비율이 높았다. 그 말인즉슨 남자 조교 2명이서 남학생들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 원래는 생활 조교는 다른 분이 해주시는데 이번에 조금 일이 생겨서. 괜찮아,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박상명은 웃으며 말했다. 그는 밝은 사람이었다. 그와 대화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화학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그저 그가 아직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4학년이라는 것, 학부 졸업 후에는 지금의 지도교수 밑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으로 바로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인 것.
“지도교수님도 엄청 좋은 분이셔.”
“다행이네요. 보통 그러기 쉽지 않은데.”
“하하, 운이 좋았지.”
웃으며 지도 교수의 업적을 늘어놓는 박상명이었다. 보통은 지도 교수의 허물을 들춰내거나 까 내리기 바쁜데 박상명의 모습은 예상 밖이었다. 이런 경우엔 크게 두 가지였다. 박상명이 지나치게 꽃밭에 사는 사람이거나, 정말로 좋은 지도 교수이거나.
‘…나는 어땠더라.’
문득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생물학, 그것도 뇌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입학했던 카이스트는 내게 낙원 같은 곳이었다. 그저 고등학교로부터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큰 해방감이 들었다. 뭐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래. 이 학과에는 왜 지원한 거지?’
‘치매를 치료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지연시키는 게 아니라 아예 병 자체를요.’
‘흐음.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나?’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습니다.’
당시 나의 지도 교수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업적으로나, 인간으로나.
‘일단 그 말부터 하고 싶구나.’
‘네?’
‘꿈 깨렴.’
심지어 웃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농담이 아니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초면에 날아오는 갈! 소리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그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이제부터는 꿈이 아니라 목표가 될 테니 말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의미한 연구 실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김성진 교수. 그 역시 치매 관련해서 연구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의 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새내기 때부터 그의 눈에 들게 된 나는 어찌 보면 탄탄대로의 길에 올라온 셈이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비슷했고, 목표가 같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학생과 교수의 관계였지만 때로는 아버지 같았던 김성진 교수.
그 이후로 정신없이 연구에 매진했고, 내 인생을 연구에 갈아 넣었다. 20대 청춘을 랩실에서 실험과 함께 보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상관없이. 24시간 내내.
“자, 벌써 다 왔네. 그나저나 단체 사진에 못 찍어서 아쉽겠다.”
“괜찮아요. 어차피 겨울 학교 때 찍으면 되니까요.”
“?”
당당한 내 대답에 박상명이 순간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 모습을 본 이인영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제야 내 말뜻을 이해한 박상명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래, 그래. 오늘 시험지 받았지만 아마 내일 중으로 등수가 발표될 테니까. 그때 등수 보고 와서 기념사진이라도 찍게 해달라고 하면 안 된다?”
“절대요.”
그렇게 우리는 훈훈하게 기숙사 가는 길에서 헤어졌다. 교수님 연구실로 바로 가봐야 한다는 박상명은 행복해 보였다. 나도 저랬던 시절이 있었겠지, 하는 의미 없는 향수가 불쑥 튀어 올랐지만 지난 일은 지난 일이었다.
“내일 일정이 어떻게 돼?”
“내일은 하루종일 자유시간이야. 재입소 시간만 지키면 돼.”
여름학교라고 해서 일주일 내내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는 건 아니었다. 일요일 하루는 쉬는 날이었다.
보통이라면 일요일에도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화학 공부에 매진하겠지만… 이번 시험을 치고 나서 깨달았다. 인간의 몸도 결국 연비의 문제라, 쉴 때는 쉬어줘야 한다는 것. 기분 전환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기름칠하는 일이라는 걸.
“그럼 내일은 뭐 할래? 전이금속 파트 미리 예습해둘래?”
“전이금속이 어렵냐? 이게?”
“진짜 너 개 짜증 나니까 그냥 저리가. 가라고.”
다시 또 투닥거리기 위해 예열하는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 그것도 좋은데.”
웃으며 둘을 바라봤다.
“내일 하루는 놀러 가지 않을래?”
이번 생도 분명 전생 때와 같이 치열하게 보낼 것이다. 이건 내 성격 문제니까.
“…! 좋아! 놀러 갈래! 가자!”
“……좋아.”
“바다로 갈까? 아니면 산? 아냐, 너무 멀리 가면 다시 오기 힘드니까…”
신이 나서 일정을 짜는 이인영과 무표정이지만 뭔가 들뜬 듯한 이재성.
분명 1분 1초가 귀하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정신없이 달려왔던 내 인생에도 하루정도는 쉬어갈 필요도 있지 않을까. 인생은 기니까.
그제야 전생 때는 보지 못했던, 놓치고 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 하늘, 그 밑에 파란 잔디. 그 위에서 즐거운 듯 서로를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만덕이 너는 어디 가고 싶은데 없어?”
“음…나는.”
어디든 다 좋아. 나는 “그게 뭐야!”라고 이야기하는 둘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 순간 후덥지근하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17살,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