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56)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56화(56/221)
56. 여름학교 (4)
56. 여름학교 (4)
무턱대고 놀러가자고 했지만, 하나 간과했던 사실이 있었다. 우리 셋 중 누구도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공부에 매진하느라 놀 시간이 없었다는 것도 큰 이유였지만, 결정적으로 우리 셋 다 사회성이 떨어졌다. 팩트로 조지는 이인영, 그냥 성격나쁜 이재성.
“근데 우리 뭐하고 놀아?”
“과학 토론?”
“화학으로?”
갑자기 쿵짝이 잘 맞는 둘. 이대로면 도서관에서 유기화학 책 두고 토론하는 쪽으로 흘러갈 느낌이었다. 아싸들에게 청춘이란 꽤나 고달픈 것이었다…
‘청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이인영이 불현듯 해결책이 떠올랐는지 박수를 쳤다.
“이인성 부를까?”
“콜.”
한치도 망설임 없는 내 대답에 이재성이 고개를 까딱했다. 이재성은 이인성의 존재를 몰랐다.
“얘 쌍둥이 오빠. 같은 한국과고생이야.”
“윽…”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이재성이 싫어할 만한 내용을 알차게 담고 있었다.
“얘랑 똑같은 놈이 한 명 더 있다고?”
“응. 근데 뭐라고 해야하지… 둘이 안 닮았어.”
“당연히 안 닮았겠지. 이란성 쌍둥이가 뭔지 모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성격이 안 닮았다는 건데. 하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어차피 만나면 알게 될 테니까. 오히려 이재성은 쌍둥이 모두 같은 한국과고 학생이라는 점이 불편한 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과고생에 대한 혐오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다. 그러나 걱정이 되진 않았다. 이재성의 자존감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게 보였으니까.
‘과고생이라고 다 이상한 놈들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한 놈들도 있네.’
‘당연하지. 그냥 평범한 애들이라니까? 그냥 과학이랑 수학을 좀 더 좋아하는 거야.’
‘…그래도 너는 여전히 이상해. 제일로.’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이재성은 조금이나마 허들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여름학교 때 미니 테스트 상위권인 이재성을 향해 다가오는 과고생들의 질문에 나름 성실하게 답변해 주곤 했으니까. 하여간 츤데레다.
그렇게 금쪽이들이나 다름없는 두 명을 보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이요!”
“뭐야. 빨리 왔네?”
“일요일엔 누가 부를 수도 있으니까, 늘 준비하고 있어야지. 그래서 어디 갈까? 홍대? 건대? 신촌?”
여러모로 대단한 발언에 놀라고 있는데, 이인성과 이재성의 눈이 마주쳤다.
“누구?”
“아. 얘는 이재성이라고 이번에 화올 여름학교 하면서 친해졌어.”
엄밀히 따지면 박성민 연구소를 통해서 알게 된 게 먼저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박성민과 한 연구 비밀 조항도 있었지만 연구소 일이 언급되는 건 꺼려졌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는 더더욱.
“안녕. 난 얘 오빠이고 김만덕이랑 베프인 이인성이라고 함.”
“…”
“세부 전공은 물리임. 아, 그리고 얘네랑 같은 한국과고.”
“……”
이재성은 ‘아무말도 안 하기’를 시전했다. 그 탓에 혼자 자기소개를 한 이인성이 뻘쭘한지 내쪽으로 왔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얘 말 못 해?”
“아니.”
“그럼 내 말을 못 들은 건가?”
“아닐걸.”
“그럼 일부러 무시…?”
“아마도?”
어깨를 으쓱였다. 이재성에 대한 이미지가 더 안 좋아지기 전에 간단한 설명 정도는 필요했다.
“나이는 우리랑 같고, 고등학교는 아마… 범화고였나? 과고는 아니야. 일반고.”
“…오!”
“그래서 아마 전공은 따로 없지만 화학 쪽으로 생각하고 있을걸. 그러니까 화올에도 출전하려 하지.”
“…오오!”
이인성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리고는 아까 무시당했던 기억을 말끔히 잊었는지 다시 한번 이재성을 향해 말을 걸었다.
“화학 쪽이라고? 그럼 얘보다 화학 잘해?”
“야. 너 맞고 싶냐?”
눈에 살기를 띤 채로 이인성을 노려보던 이인영. 하지만 그 살기는 순식간에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졌다.
“당연하지. 얘 나보다 등수 낮음.”
“!!”
“참고로 여기서 내가 화학 제일 잘함.”
윽. 재수 없지만 사실이었다. 물화생지 중 생물을 제일 좋아했던 만큼 생물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지만, 화학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무난하게 4등 안에 들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긴 해야 해.’
총 4차례의 계절학교를 통해 선발되는 만큼 매 순간 4등 안에 들 필요는 없었다. 최종 계절 학교인 고2 겨울학교때 국가대표 선발 시험만 통과하면 되었다.
그러나 전생 때는 없었던 일을 이뤄내는 만큼 그 이상의 노력을 투자할 필요는 있었다. 머리만 믿고 공부 안 했다가 큰코다치는 일은 비일비재했으니까.
이인성은 이재성의 사실에 근거한 자뻑을 듣고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이재성의 앞쪽으로 걸어갔다.
“야. 너 진짜…”
“?”
“졸라 개쩐다!!”
엄지를 척 들어보이며 호들갑을 떠는 이인성.
“와, 일반고에서 화올 출전하는거 개 어렵다던데? 안 그래도 우리 학원에도 일반고에서 화올 대비반 다니는 애들 있었는데 줄줄이 드랍했거든. 도저히 못 풀겠다나? 근데 넌 합격했다는 거 아니야. 그럼 학원 다닌 거야? 어디 학원이야?”
“…학원 안 다녔는데?”
“왓 더 F! 미쳤네. 오늘부터 너가 화학 천재해라. 이런 게 화학 천재지, 문제 수백 번 풀어놓고 우쭐대는 성격 드러운 애가 아니라아아악!”
이인성의 팔이 뒤로 곱게 꺾였다. 이인영의 작품이었다. 대화에 이인영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누굴 저격했는지는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었고, 쉽게 제압되었다.
두 사람의 콩트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이재성의 표정이 뭔가 미묘했다. 분명 무표정인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데 기분이 좋아진 게 느껴지는 느낌. 이재성과 룸메이트를 하면서 얻은 능력이었다.
“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너 핸드폰 있어? 번호 찍어줄게!”
“…”
이인성이 손을 내밀었다. 이재성은 가만히 있었다. 하긴, 아직 번호를 주고 받을 정도로 마음의 문을 연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탓.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낸 이재성. 폴더폰을 연 채로 그는 물었다.
“…번호 뭔데.”
“!”
“!”
아직 나도 못 받은 핸드폰 번호를 받아가는 이인성을 보며 생각했다. 이런게 바로 인싸구나…라고.
그렇게 번호를 교환한 우리는 몇 분간 여행 장소를 물색하다가 결국 가장 가까운 신촌으로 정했다. 5시까지 다시 재입소해야 한다는 점, 바다를 보러 가기엔 차도 없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 등이 있었지만,
“어제 병원에 입원했었다고? 그러면 오늘 쉬는 게 낫지 않아?”
“괜찮아. 그리고 오늘 아니면 더 시간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여름학교가 끝나고 나면 바로 2학기가 시작된다. 2학기는 더 정신없이 흘러갈 터이기에 놀려면 지금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몸 상태도 완전히 회복되기도 했고.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신촌에 도착한 우리는 이인성의 지도 지시에 따라 놀기 시작했다.
“자, 우선 오전에 오락실에서 한판 놀고, 배고파지면 분식집 가서 밥 먹고 또 놀고. 오케이?”
“예썰.”
웃으며 우리를 이끄는 이인성. 이인영은 미간을 좁히며 “시끄러운데 딱 질색인데.”라고 말했고, 이재성은 “굳이 돈 내면서까지 오락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네.”라고 말했지만… 이미 설렌 거 다 티 난다. 심지어 이재성은 동전 교환기에 오천원을 넣어서 100원짜리 50개로 바꿔둔 상태였다.
“자, 이 형님의 현란한 발 솜씨를 보아라.”
이인성은 DDR이라고 불리는 오락실 기계에 동전을 넣더니 말 그대로 현란한 발 솜씨를 보여줬다. 발이 안 보여…!
“뭐야!!! 김만덕 뭔데!!! 왤케 잘해!!!”
“너 사실 군필 아니냐? 저걸 어떻게 맞춰?”
훗. 살짝 부끄럽다. 나는 사격 게임에서 보상으로 받은 키링을 주머니에 넣고 오락실을 누비기 시작했다. 인싸 이인성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각종 게임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라이트한 사격이나 농구게임부터 앉아서 하는 아케이드 게임까지…
즐거웠다.
전생 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친구들과 소소하게 놀러 간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내게는 없는 선택지였으니까. 그리고 설령 그 선택지가 있더라도 나는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내게는 친구보다는 공부였으니까.
“아, 배불러.”
“이제 어디 갈까? 또 오락실 고?”
“…좋아.”
오락실에 있다가 분식집으로 온 우리는 학생 신분으로 포식할 정도로 많이 시켰다. 떡볶이, 순대, 오뎅 등… 오락실에서 에너지를 다 쓰고 와 허기진 우리에게는 포상이었다.
이 다음엔 뭘 할지 생각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다가 바지 주머니를 뒤졌는데, 핸드폰이 없었다.
“얘들아. 나 잠깐 오락실 좀 갔다올게. 핸드폰이 게임하다가 빠진 것 같아.”
“뭐? 같이 가자.”
“아냐, 괜찮아. 너희 여기서 잠깐 쉬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따라오겠다는 이인영을 말리고 분식집을 나섰다. 아까 DDR 하다가 나도 모르는 새에 핸드폰이 빠진 것 같았다.
‘누가 안 가져갔으면 좋겠는데…’
다급한 마음으로 오락실에 갔다. 열심히 스텝을 놀리던 DDR 옆에 검정색 슬라이드 폰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내 거였다.
다행히 폰을 확인하니 아무도 건드린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색깔이 검은색이라 바닥 색이랑 비슷해서 못 본 걸 수도. 이유야 어찌되었든 다행이라 생각하며 오락실을 나왔는데, 의외의 인물과 맞닥뜨렸다.
“…? 김만덕?”
최한별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로 ‘너가 왜 여기서 나와…?’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대치동이나 강남과 다르게 신촌은 대학생들과 근처 중고등학생들의 나와바리이다. 한마디로 공부보다는 놀려고 모인 사람들이라는 거.
그런 그녀가 놀려고 주말에 오락실을 왔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주말에도 과외가 꽉꽉 차있어서 R&E 회의 시간도 간신히 맞추던 그녀였는데.
“너가 여긴 웬일이야? 설마 오락실 온 거야?”
“아… 그건 아니고.”
최한별은 도로에 주차된 차를 가리켰다. 딱 봐도 매우 비싸 보이는 고급 외제차였다. 심지어 운전석에는 누가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여기 근처…에서 일하셔서. 가는 길에 익숙한 얼굴이 보이길래.”
아하. 생각보다 그 이유는 쉽게 풀렸다. 최한별은 금수저 중의 금수저. 아버지는 대학 교수이면서 의사라고 들었다. 그런데 그 병원이 여기인지는 몰랐는데.
“근처라면 저 병원?”
“…응.”
나는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을 가리켰다. ‘연서 병원’라고 적혀있는 커다란 병원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엄을 자랑했다.
대한민국 병원 빅 5에 드는 병원 중 최근 건물을 새로 지어 평가가 더욱 좋아진 병원. 게다가 진료 여건도 우수했다.
‘특히 암 치료 부분에서는 압도적이라고 했지.’
전생 시절, 어머니의 유방암을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뛰어난 병원인 만큼 돈은 둘째로 쳐도 수술을 잡으려면 예약도 길었다.
원래도 넘사벽이라 느꼈지만 더욱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지는 최한별. 비록 과거로 회귀를 했지만 여전히 최한별은 내게 먼 존재였다. 단순히 과거로 돌아왔다고 해서 내가 그녀에게 품었던 오랜 열등감이 단숨에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만 가볼게. 안녕.”
이런 내 생각이 그대로 표정으로 드러났던 걸까, 최한별은 더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은 선 밖에 있었다.
‘…그래도 나름 R&E하며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차에서 내려 인사까지 해줬는데.’
최한별의 입장에서는 영문도 모른 채로 거리두기를 당하고 있는 입장이니, 서운할 만도 했지만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덤덤했다. 모든 일에. 하지만 생각해 보면 늘 먼저 다가와 주는 건 최한별이었다.
R&E 때도, 전생에도.
‘너 그렇게 살다간 평생 혼자일지도 몰라.’
“저기!”
“?”
나는 차에 탄 최한별을 향해 말했다. 그녀는 창문을 내린 채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키링을 꺼내 건넸다. 사격 게임에서 딴 싸구려 강아지 키링.
“나중에 같이 놀자. 오락실에서. 이건 선물.”
“…응. 좋아.”
그렇게 웃으며 키링을 받은 최한별은 유유히 사라졌다. 저 멀리 사라져가는 차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나, 조금은 사회성이 늘어난 것 같다고.
그렇게 살짝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분식집에 다시 도착했는데, 아이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뭐지? 너무 늦게와서 화가 난 건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인간의 육감은 과학이다.
“…중간평가 등수 나왔대. 근데 그게…”
세 명이 나를 동시에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