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5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59화(59/221)
59. 체험학습 (2)
59. 체험학습 (2)
새학기가 시작되고 나면 학생들 못지않게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1학년 체험학습 때 갈 연구실 리스트는 이미 나왔나요?”
이번 교사 회의의 안건은 단연 행사였다. 1학기 때에 비해 여러 가지 행사가 많이 모여있는 만큼 학년별로 행사 계획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교장의 질문에 1학년 부장 박민철이 대답했다.
“예, 이번 1학년들은 작년과 동일하게 연구실 탐방을 할 예정입니다. 지금 2학년 애들이 어찌나 말을 잘 들었는지 이번에도 어서 오라고 오히려 독촉하시더군요. 하하.”
“다행이네요. 1학기 때 타 학교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그’ 연구소에서 학생들을 안 받아주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한국과고 학생들은 예외로 쳐주나 봅니다. 허허.”
교장과 박민철이 사람 좋은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지만, 사실 박민철은 똥줄이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만··· 1학기 때 얘기해주셨던 ‘그’ 연구소 탐방은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연구소 분위기가 요즘 안 좋다 보니 외부인을 받기가 좀 그렇다네요.”
“연구소 입장에서 조심스럽겠네요. 참, 그 일만 없었어도···”
아찔한 사고였다. 마지막 일정이던 랩 투어 중 한 학생이 실수로 연구 중이던 기계의 작동을 멈춰버린 것. 그로 인해 배양기에서 증식중이던 미생물들이 사멸하는 일이 일어났다. 물론 그 학생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교사의 책임도 있겠지만, 이 일이 알려지고 난 뒤 연구실에서는 학생들의 연구실 견학을 반가워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면 생물 쪽 연구실 말고 다른 연구실은 어떨까요? 광학 쪽이나 반도체 쪽이라도···”
이 제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1학년 체험학습은 총 4팀으로, 전공별로 나뉘어 진행된다. 물리의 경우엔 나노 물리나 핵 입자와 관련된 연구실을, 화학의 경우에는 화학공정이나 석유 화학 등 보다 세부적인 내용을 연구하는 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번에 사고가 났던 미생물 연구소는 주로 생물 전공의 학생들이 방문했고 지구과학도 기후과학이나 해양환경 연구소 등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연구실에 단체로 방문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광학이나 반도체 쪽 연구소로 돌려버린다면··· 생물 전공의 학생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할 게 뻔했다.
“그럼 이번에 전공별로 연구실 방문하는 건 그대로 가는 건가?”
안 그래도 박민철이 가장 골치 아파하고 있는 부분을 황대문 교수가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교장, 교감 다음으로 가장 막강한 파워를 가진 자. 아니 어떻게 보면 그들과 거의 동급의 파워를 가진 사람이었다.
“…네. 그렇게 해야겠죠.”
“그렇지. 굳이 생물 하겠다는 애를 화학이나 다른 곳에 끌고 가봤자 시간 낭비일 테니까 말일세.”
“하하···”
교사들은 다소 강한 황대문의 말에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직 전공이 확실하게 정해진 대학생들도 아니고 많은 가능성이 있는 고등학생인 만큼 전공이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대학 원서를 작성하는 그 시점에서도 성적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전공을 바꿔버리는 학생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시간 낭비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는 거였는데,
“시간 낭비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 진로를 탐색할 때이니까요.”
젊은 교사 축에 드는 수학 교사 유지한이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황대문은 유지한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학이 그런 말을 하니 뭔가 이상하네. 가만 보니 마음에 드는 학생이 있는 모양이구만?”
“마음에 드는 학생은 없습니다. 다 똑같은걸요.”
유지한은 특유의 시니컬한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을 덤덤히 전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화학 교사 김영환도 넌지시 동조했다.
“맞죠. 작년까지도 생물하겠다는 애들 중에서 갑자기 화학으로 넘어간 애들도 꽤 되니까요.”
“허어?”
“뭐,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생물에서 화학으로, 화학에서 생물로. 생각보다 닮은 점이 많은 두 교과 사이에서는 학생들의 이동도 잦은 편이었다. 김영환은 딱히 누가 옮긴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혹시라도 김만덕이 빼갈 생각이거든 싹 접어버려라.”
“만덕이가 선생님 학생입니까? 이번에 화학 올림피아드 겨울학교에도 선발되었던데요. 이 정도면 화학에도 관심이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김만덕과 이인영은 화학 올림피아드 겨울학교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그 말은 여름 학교 때 있었던 평가에서 상위권에 들었다는 소리였다. 김영환은 [겨울학교 대상자] 공문을 확인하고 살짝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한번 화학으로 넘어오게 꼬셔 봐?’
김만덕이 생물을 좋아하는 건 이미 학교에서도 유명한 일이었다. 학기 초에 보여주었던 생물학 강론뿐만 아니라 그와 대화할 때면 유독 생물 분야 이야기할 때만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나사가 풀려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뿐만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서는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강한 확신이 소문처럼 암암리 퍼지고 있었다.
‘뭔진 몰라도 김만덕 쟤는 성공한다.’
반에 한두 명씩은 꼭 있는 ‘성공할 상’. 꼭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그런 게 아닌, 지금까지 살아온 데이터를 미루어 봤을 때 이 학생은 나중에 뭔가를 이룰 것 같다고 교사들 사이에서 말이 돌곤 했다. 그리고 김만덕은 ‘엄청나게 대박이 날 상.’이었다.
전교 1등은 시험마다 나온다. 당연한 일이다. 모의고사 전국 1등도 간간이 나왔다고는 한다. 하지만 매 시험 전교 1등을 차지하고 날고 기는 천재들이 모인다는 수학 학회에서 수학자들을 놀라게 하고 온 점, 각 대학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왔다는 점 등은 여러모로 그의 명성을 더 높여주고 있었다.
다들 에이, 설마 하면서도 미래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그건 김만덕이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마음 한켠에 품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기대는 이런 형태로 나타나곤 했다.
“김만덕 학생은 수학 쪽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전에 학회에 가서 발표한 내용도 오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학생을 미리 발굴해서 잘 키워나간다면 필즈상 수상까지도···”
“꼭 생물 쪽으로만 생각할 필요가 있나요? 물리 쪽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받고 있는 걸 보니 이쪽에서도 유망해 보입니다만.”
“화학은 말할 것도 없죠. 전에 수행평가 때 작성한 보고서를 보시면···”
쾅!
“이 사람들이!”
황대문이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것도 아닌 눈 뜨고 제자를 뺏기게 생겼으니 그가 화를 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들 똑똑히 들으세요. 김만덕 학생은 학기 초부터 생물 전공이라는 말입니다.”
“자자, 다들 진정하시죠. 우리 회의가 김만덕 학생 전공 정하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교장 이철규의 중재에 교사들이 눈치를 살피며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다들 어떤 마음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제자가 천재면 뿌듯하죠. 교장인 제가 한 말씀 해보자면···모든 과학의 뿌리는 사실 물리에서 시작이 아닐지.”
“!”
이철규.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아니 교장선생님-!”
“그렇죠? 제 생각도 같습니다. 역시 교장선생님이 뭘 좀 아시는군요.”
활짝 웃는 물리 교사들과 반발하는 다른 교사들.
평화로운 교사 회의였다.
*
주말은 박성민의 연구실에 방문하는 날이다.
“해마(hippocampus)에서는 장기적인 기억을 형성하고 저장하는 일을 해. 뿐만 아니라 해마와 함께 대뇌피질, 전두엽(frontal lobe), 감각 피질(sensory cortex)에서도 기억과 관련되어있다고 볼 수 있어.”
“감각 피질에서는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일이 우선이지 않나요? 감각과 기억이 관련 있다고요?”
박성민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좋은 질문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반사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바로 그 점이 조금 주목할 부분인 거지. 우리가 뭔가를 기억할 때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돼. 자, 지금 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 장면을 기억에 남긴다고 해보자. 그냥 눈에 보이는 시각만으로는 금방 잊어버릴 가능성이 커. 하지만 커피의 향, 커피를 담고 있는 머그잔의 온도, 커피 머신에서 커피가 갈리는 소리 등. 우리가 경험하는 감각은 결국 우리가 기억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지.”
한 가지 감각으로 정보를 암기하는 것보다 여러 감각을 이용해 기억하는 것이 오래 간다는 주장이었다. 그 말을 듣던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연구 방향에 대해 좀 더 다각화해서 볼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박성민의 연구와 내 연구 사이에는 큰 연관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기억한다는 건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능력이니까. 그래, 너는 요즘 어때? 연구는 잘 되어가고 있고? 이제 2학기라 정신없어서 연구할 시간이 없겠네.”
나는 박성민의 물음에 그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없어서 연구를 못 했다는 건 핑계였다. 나는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가 없었을 뿐이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중 하나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축적. 이 단백질은 분해되지 않고 뇌 안에 덩어리로 계속 축적이 된다. 축적된 덩어리는 뇌 신경세포 간의 신호 전달을 방해한다. 또한 타우 단백질은 뇌세포를 파괴하며 뇌를 망가뜨린다.
“알츠하이머 같은 퇴행성 뇌 질환과 관련해서 연구를 하는 곳이 어디가 있었죠?”
“연구실을 말하는 거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체험학습 관련 가정통신문에는 전공별로 연구실이 안내되어 있었다. 카이스트 광공학 연구실, 서울대 고분자화학연구실 등 무슨 대 무슨 연구실로 세세하게 적혀있었지만 생물 전공은 [생물관련 연구실 탐방]이 전부였다. 애초에 생물전공인 학생 수가 많지 않아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듯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랩실에 견학 온 학생 중 한 명이 미생물 배양기를 꺼버렸다지. 그래서 생물 관련 연구실에서는 학생들을 안 받기로 했고.’
전생의 기억이 맞다면 이때 결국 견학을 받아주는 생물 관련 연구소가 없어서 물리 전공인 애들이랑 같이 체험학습을 다니게 되었다. 다들 레이저 쏘는 기계를 보며 우와, 우와! 하고 있을 때 생물인 애들은 ‘대체 왜 놀라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차게 식은 눈으로 있을 뿐이었다.
가정통신문을 보자 전생의 기억이 떠올렸고, 이번만큼은 미리 바꾸고 싶었다. 전생 때도 겪었던 일을 굳이 또 겪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내 이야기를 들은 박성민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민하기 시작했다.
“글쎄, 퇴행성 뇌 질환 자체를 연구하는 기관은 많지. 일단 웬만한 대학병원 부설 연구소에서는 다 진행중일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대학교 연구시설에서도 크고 작은 프로젝트 형식으로라도 진행하고 있을 테니까. 왜, 연구소 옮기려고?”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이번에 학교에서 연구소 탐방이 있거든요. 근데 이대로면 아무 데도 못 갈 것 같아서요.”
“연구소 탐방?”
나는 박성민에게 짧게 설명했다. 한국과고의 전통 같은 것으로 1학년들은 연구소 탐방을 가고, 2학년들은 해외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말에 박성민은 놀란 눈으로 반응할 뿐이었다. 그는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로 견학 오라고 하고 싶지만, 힘들 것 같네.”
“괜찮아요. 애초에 여기는 고등학생들이 올 만한 곳이 아닌데요.”
“너 아직 학생이다.”
“아, 맞다. 그랬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박성민의 시선을 멋쩍게 떨쳐내는데 박성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 벌써 가시게요?”
“오늘은 저녁 약속이 있어서.”
“약속이요? 또 소개팅하러 가시는 거에요?”
그거 백날 해도 안 생겨요. 라고 말하기도 전에 박성민이 선수를 쳤다.
“소개팅 아니다.”
“그럼요?”
“있어. 재수 없는 놈.”
“?”
박성민의 입에서 재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만만치 않은 인성의 소유자라는 건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박성민의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말했다.
“너랑 비슷한 놈 한 놈 있다. 어쨌든 지금 여기 도착했다고 전화를 몇 통이나 하는지 원.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그렇게 부지런히 밖으로 나간 그의 모습을 나는 창문 너머로 확인할 수 있었다. 멀리서 봐도 잔뜩 짜증 난 얼굴로 박성민을 맞이하는 남자. 거리상 얼굴이 분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저 얼굴을 잊어버릴 수가.
“…교수님?”
전생의 내 지도교수, 김성진 교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