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6)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6화(6/221)
6. 배치고사 (1)
6. 배치고사 (1)
한국 과고에 들어온 지 어느덧 1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기상 후 기초 과학과 수학 수업을 나가고 난 후 이후부터는 개별 자율 시간이 주어졌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워하던 학생들도 이내 치열하게 수업에 임했다. 갑작스레 치던 쪽지시험도 이제는 일상이 된 상황이었다.
“야, 물리 쪽지 시험 어렵지 않았냐? 회로 해석하는 데 시간 다 쓰는 줄.”
“그거 일일이 다 해석 안 해도 되는데. 마디로 풀면 금방 풀림.”
이인성과 이인영은 급식에 나온 토마토와 양배추를 분리해내며 대화를 나누었다. 어쩌다보니 급식까지 같이 먹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너 야매로 풀다가 나중에 크게 실수한다.”
“야매 아니거든? 학교에서 안 알려줬다고 다 야매냐? 하여간 어디서나 무식한 것들이 지들 이해 못 하면 야매라고 우기지.”
둘은 늘 그렇듯이 서로를 극딜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나 역시도 이런 풍경이 익숙해져 있었다.
“근데 진짜 연구 시작 안 해도 돼? 이제 캠프도 2주밖에 안 남았잖아.”
그때 이인영이 내게로 화제를 돌렸다.
연구. 학교 내에서 진행되는 R&E를 말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학생은 첫날, 적어도 저번 주에 팀을 만들어 연구 주제까지 정해놓은 상황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학기 시작하고도 쭉 이어서 하는 건데 뭐.”
“그건 그렇지만 초반에 지도 교사라도 정해두는 게 좋지 않아? 이랬다가 나중에 다른 팀이 채가면 어떡하려고.”
그 말에 이인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엄지를 척 들더니 자신을 가리켰다.
“만약 팀을 못 구한 거라면…내 동료가 돼라! 이참에 너를 전자기학의 세계로 인도하노라.”
“또 헛소리한다. 절대 얘 팀엔 들어가지 마. 완전 난장판이니까. 맨날 코일 지들 몸에 감고 회전시키고 지랄이란 지랄은 다 떨고 있어.”
이인성은 특유의 재치있는 입담으로 이미 학교의 인싸가 되어있었다. 당연히 그와 팀을 이루려는 학생들도 많았고, 이인성 못지 않은 인싸들이었다.
반면, 이인영은 대외적으로는 차가운 인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셋이 있을 때는 입이 험해지곤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크게 말을 섞는 일이 없었다.
“인영이 넌? 팀 정했어?”
“연구 주제는 생각해놓은 게 있긴 한데… 팀은 아직. 근데 연구 주제도 애매해서 실제로 실험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음… 멘토 선배하고 이야기는 해봤고?”
멘토. 한국과고 재학생과 신입생들을 일대일로 매칭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원래 취지는 과고에 대해 잘 모르는 신입생들을 도와주기 위해 도입된 거라고는 하지만… 정작 자기 밥그릇 챙기기도 바쁜 시기에 남을 도와줄 여유가 있을 리가.
멘토 이야기가 나오자 이인영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과고의 경우 대부분이 2학년에 조기 졸업 혹은 조기 진학을 한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경우엔 3학년까지 남는 경우도 있었으며, 일정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무조건 3학년까지 이수해야만 했다.
1년이라도 빨리 대학을 입학하고 싶은 과고생들에게 지금 시기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멘토 선배가 바쁜 거 같으셔서 붙잡고 있기가 좀 그래. 너는?”
“나도 얼굴은 보긴 했는데 딱히 이야기는 많이 안 했어. 형식상 인사만 한 정도?”
내 멘토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전생 때와 같은 멘토. 딱히 도움이 되진 않았다.
어차피 이미 과고 시설이나 운영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어떻게 보면 이곳에서 졸업까지 한 내가 멘토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 말을 들은 이인영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뭔가 고민이 있는 표정이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어? 어…아니야.”
“얘 지금 보충반 갈까 봐 이러는 거야. 수학 쪽지시험에서 낙제했거든. 애들 앞에서 공개 처형 당했…아악!”
이인성의 등을 있는 힘껏 내리치는 이인영. 급식실에 등짝 스매싱 소리로 울려 퍼졌다. 짝. 짜악. 짝 소리에 맞춰 이인성의 비명도 같이 울렸다.
그렇게 몇 대를 때렸을까, 부끄러움 때문인지 너무 열심히 때려서인지 얼굴에 홍조를 띤 이인영이 씩씩거리며 급식판 토마토를 으깨는 걸로 노선을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눈앞에서 처절하게 분해되는 토마토를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혹시 수학… 어려워?”
통. 미끄러진 젓가락 사이로 토마토가 급식판 밖으로 튀어 나갔다. 이인영은 당황했는지 귀까지 빨개진 상태로 고개를 빠르게 좌우로 흔들었다.
“아, 아니? 전혀? 하나도 안 어려운데?”
“하지만 아까 낙제-”
“하하. 낙제가 아니라 잠깐 실수를 해서. 그, 그런 거 많잖아? 특히 수학 같은 경우엔 풀이 과정 하나만 까딱해도 전체가 틀려버리니까 말이야. 절대 내가 수학을 못하는 건 아니고-”
“애쓴다.”
억. 이인영의 팔꿈치가 정확히 이인성의 명치를 가격했다. 배를 부여잡고 끅끅대는 이인성을 바라봤다.
“나랑 같이 공부할래?”
“어?”
“같이 공부하면 좋잖아. 서로 모르는 것도 물어보고 의지도 되고. 어때?”
“나도! 나도 할래!”
이인성의 말에 이인영도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하면 오빠한테 기회를 뺏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처음으로 제안해 본 스터디. 생각보다 격하게 반응해준 탓에 오히려 내가 다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전생이었다면 ‘이딴 녀석들한테 시간 쓰느니 혼자 공부하는 게 나아.’라고 했겠지만… 이제 달라지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리고 단순히 그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김진수한테 받은 문제는 다 풀었으니 이제 새로운 문제를 풀어봐야 해.’
과고 입학 후 첫날밤 [한국 과고 배치고사 기출문제집] 내의 1,000문제를 무서운 속도로 풀어나갔다.
나는 불과 3일 만에 문제집에 있는 1,000문제를 모두 다 풀었고,
틀린 문제 위주로 다시 푸는데 2일,
전체적으로 중요한 문제들만 위주로 쭉 풀어보는 데는 단 1일이 걸렸다.
이제 뼛속까지 탈탈 털어먹은 김진수의 문제집으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새로운 문제집을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과고 수준에 맞는 문제집을 구하려면 한계가 있어. 그렇다고 지금 바로 학원을 다닐 수도 없는 거니까. 내가 구할 수 있는 루트는 인맥뿐이지.’
나는 눈앞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둘을 바라봤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인맥 중 가장 똑똑한 녀석들.
이인성은 수학과 화학에 약하지만 물리만큼은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이인영도 수학과 물리에 약하지만 화학에서 만큼은 전교 1등이었고.
‘최한별이 육각형 만렙같은 느낌이라면 얘네 둘은 물리랑 화학에서 괴수 느낌이었지.’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최한별도 과목만 놓고 보면 물리와 화학에서 이인성과 이인영을 늘 이긴 건 아니었다. 얘네 둘이 수학과 다른 과목에서 죽을 쒀서 그렇지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었기도 했고.
“그럼 기숙사 들렀다가 7시에 자습실 앞 스터디룸에서 만나기로 하자.”
정글 같은 과학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배치고사 수준의 문제를 넘어,
동료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것도 든든한 아군을.
*
“야. 돼지. 너 생각엔 어떤 것 같냐?”
“뭔데 또 시비야.”
“김만덕…좀 특이하지?”
토요일 아침, 집으로 돌아가는 고급 세단 안에서 이인성과 이인영이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집이 멀어서 주말에 집에 못 간다는 거 때문에 그래? 다른 애들도 그런 애들 많은데 뭘 새삼.”
“아니 아니. 그거 말고 머리 말이야 머리.”
이인성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통통 쳤다. 이인영은 그 모습을 보고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김만덕과 같이 공부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같이 공부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스터디 제안에 응한 거였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쌍둥이들은 뭔가 다름을 직감했다.
“수학 때문에?”
“완전 못 푸는 수학 문제가 없던데? 심지어 너 전에 과외 받을 때 받았던 문제집. 쌤이 일부러 해설집은 따로 안 줬잖아. 사고력인가 뭔가 길러야 한다면서 답지만 주고. 근데 김만덕 걔는 해설 없이도 잘만 풀더라? 그거 보는데 소름 돋았잖아.”
한때 중등 수학 올림피아드를 준비할 때 받았던 수학 과외였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머리만 아프고 수학에 대한 자신감만 꺾이는 것 같아 진즉에 포기했던 대회였다.
“걔도 올림피아드 준비했던 거 아니야?”
“너 만덕이 이야기 안 들었냐? 학원 안 다녔다잖아. 학원도 안 다녔는데 그 정도면 진짜 머리가 좋은 거야.”
“오빠보다도?”
이인영의 물음에 이인성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친구를 칭찬하는 건 쿨한 일이지만, 비교하는 건 쿨하지 못했다. 그 대상이 본인이라면 더더욱.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본 쌍둥이들의 아버지, 이광용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인성이가 바로 대답을 못 하네? 평소라면 ‘나보다 똑똑한 사람은 없어.’라고 재수 없는 소리를 했을 텐데.”
“아빠! 제가 언제요!”
“응, 늘 그랬어~”
장난스레 아들을 놀리던 이광용은 사뭇 진지해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근데 그 친구가 공부를 잘하니? 어디에 사는데 주말에도 집에 못 가?”
“어… 정확한 주소는 안 알려줬는데 서울은 아니래요. 그래서 몇 시간 동안 가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아하. 그럼 그 친구는 지금도 학교에 있나?”
“아마도요?”
이인영과 이인성은 아버지가 김만덕에게 관심을 갖는 게 즐거웠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빠, 근데 걔 진짜 똑똑해요. 나중에 황 선생님이 알려주셨는데 생물 쪽지 시험 때 쭉 만점 받은 사람은 만덕이밖에 없대요.”
“맞아요. 그리고 학교 올 때도 우리는 막 이런저런 문제집 다 끌어다가 왔는데 걔는 그냥 영어로 된 잡지 몇 개 들고 온 게 다래요. 어차피 공부는 이미 다 하고 왔다나?”
몇 가지 잘못된 사실이 섞여 있었지만, 으레 그렇듯 소문은 그렇게 와전되는 법이었다. 이광용은 자식들이 입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김만덕의 소문에 웃음을 터뜨렸다.
“공부를 다 하고 왔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네?”
“아까 아빠가 물었지? 그 애는 지금 집에 안 갔으면 학교에 남아있냐고. 그럼 그 만덕이란 친구는 지금 빈 학교에서 뭘 하고 있을까?”
부드럽게 핸들을 꺾으며 운전을 하는 이광용. 겉으로는 한없이 유해 보이는 인상과 성격이었지만 그를 이 자리에 오게 한 건 그의 독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독종은 독종을 알아보는 법이었다.
“아마 그 친구는 지금도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거다. 집이 진짜 멀리 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집에 가는 것보다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는 게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거겠지. 그리고 영어로 된 잡지? 과고에 오는데 굳이 영어 잡지를 들고 온 이유가 뭘까?”
“여, 영어 공부를 해야 해서?”
“너희가 볼 때 그 친구가 영어를 못하든?”
이인성과 이인영은 김만덕의 모습을 떠올렸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전문 용어들을 능숙하게 읽어내던 김만덕의 모습과 수업 중 영어 자료가 나오자 유창하게 읽고 해석하던 모습들.
쌍둥이들이 소리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 친구가 천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똑똑한 친구인 건 맞는 것 같구나. 이미 너희한테 천재 소리까지 들을 정도니. 사람은 평가받는 대로 되는 법이거든.”
사람은 보여지는 대로 된다.
실제로 비슷한 IQ를 가진 학생들에게 각각 다른 평가를 내렸다.
한 학생은 천재, 다른 학생은 범재.
천재라고 평가를 받은 학생은 이후 더 월등한 성과를 보였다. 주변인들의 기대, 즉 천재라는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한 까닭이었다.
‘어떻게 하면 천재처럼 보일지 아는 학생인 것 같네.’
이광용은 백미러로 뒷좌석을 살폈다. 생각이 많아진 듯 조용해진 쌍둥이들.
“이제 다음 주면 캠프도 마지막이겠구나. 아쉽진 않니?”
“음… 아쉽진 않은 것 같아요. 어차피 다시 또 들어갈 테니까요.”
“흠, 그렇구나. 인영이도?”
“아쉽긴해요. 이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테니까요.”
캠프 동안의 과고 일정도 빡셌는데 여기서 더 빡세질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재미있는 화학만 계속 공부하면 좋을 텐데, 왜 굳이 다른 것까지 해야 하는 건지. 의욕이 한풀 꺾인 모습을 본 이광용이 웃으며 한 가지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럼 이렇게 할까? 이번 배치고사에서 말이다. 그 만덕이란 친구보다 높은 등수가 나오면 소원 하나 들어주마.”
“소원이요? 진짜요?”
“그래. 아빠 회사 달라는 거 빼고 다 줄게.”
“와! 대박! 아빠, 저도 해당되는거죠?”
이인성과 이인영이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새 궁전 같은 집 앞에 도착한 그들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벌써부터 소원으로 뭘 가질지 떠드는 자식들을 보며 이광용은 생각했다.
지금은 친구보다는 라이벌이 더 필요한 시기다. 라고.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어느새 3주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자, 다들 컴퓨터용 싸인펜, 필기도구를 제외하고 다 제출했지? 그럼 지금부터 OMR 카드 나눠주겠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배치고사 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