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61)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61화(61/221)
61. 체험학습 (4)
61. 체험학습 (4)
“아무래도 각 반의 대표들이 하는게 가장 좋겠지만··· 대표들의 전공이 고르지 않아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울 일은 없다. 어차피 인솔 교사도 있으니까.”
박민철은 모인 4명에게 전공별로 분류된 학생 명단을 나눠줬다. 인기가 많은 물리와 화학은 52명, 37명, 상대적으로 비인기 전공인 생물과 지구과학은 각각 18명, 13명이었다.
“명단보고 인원 파악해서 전공 선생님들께 알려드리면 된다. 그밖에 할 일들은 많지도 않고.”
전공 대표라고 해서 특별한 일은 없었다. 간단한 일정 안내와 더불어 전공 인원 현황 파악 등, 기타 자질구레한 일들이었지만…그렇다고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선생님. 근데 이러면 물리 전공 대표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상대적으로 13명만 챙기면 되는 지구과학과 다르게 물리는 52명을 이끌고 다녀야 했다. 거기다 물리 대표는 최한별. 그녀의 목소리가 일정 데시벨 이상으로 올라가는 걸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괜한 걱정이 앞섰다.
내 말에 박민철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명단을 살폈다.
“흠, 짜 놓고 보니 그렇구나. 그럼 한 명 더 붙여주마. 가만 보자 물리 전공 중에서 2등이···이인성이지.”
이인성이라면 52명, 아니 100명도 혼자서 잘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최한별이랑 같이 붙어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되면 분명…나는 호들갑이란 호들갑을 떨 이인성의 모습을 상상하며 박민철의 말을 들었다.
“인영이 너도 한 명 더 붙여줄까?”
“아뇨. 괜찮아요. 전 혼자가 편해요.”
딱 잘라 거절하는 이인영. 원래도 혼자 진행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런 단체 활동에서 그녀는 더욱 혼자 활동하길 원했다. 괜히 사람만 많으면 의견만 충돌하고 감정만 상한다나.
박민철은 이인영의 단호한 대답에 멋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쪽을 바라봤다.
“생물은?”
“괜찮습니다.”
누구를 인솔해 본 적이 없지만 나도 이인영이랑 비슷한 맥락이었다. 더군다나 37명을 담당하게 된 이인영에 비해 18명은 할 만했으니까. 박민철은 지구과학 대표를 한번 쳐다봤지만 지구과학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13명은…더이상 말을 생략하겠다.
그렇게 간단한 조정이 끝나고, 박민철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실 다른 학교에서 조금 문제가 생겼던 바람에 연구실 견학의 규모가 좀 줄어들었다. 원래라면 랩실마다 돌아다니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기계 안내라든가 실험하는 과정에 대해 좀 시범을 보이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말이지.”
타 학교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체험이나 견학 코스가 대폭 간소화된 상황. 어디까지나 연구실 견학이 가능한 건 연구실 측의 협조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기에 따로 불평을 하거나 불만을 내비칠 수도 없었다.
“그 대신 연구원님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연구실에 대한 질문이나 향후 전망 등 연구실과 관련된 생생한 경험들을 들려주신다니까 잘 듣도록 해라.”
연구실과 관련된 생생한 경험이라···나는 살짝 두통이 오려는 걸 애써 떨쳐냈다. 생생한 경험이라고 해봤자 연구하고 간이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서 다시 또 연구하는 것의 반복이었으니까.
“아, 그리고 각 연구실에서 너희 번호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넘겨도 괜찮겠니?”
“번호요? 저희한테 전화를 하실 일이 있으실까요?”
“혹시 모르니까 비상 연락망처럼 가지고 있으려는거겠지. 물론 계속 연계해 오던 연구실이면 어련히 잘 아시겠지만 학생 견학을 처음 받아보는 연구소도 있으니까.”
다른 전공 대표들이 나를 바라봤다. 왜냐면 여기서 견학을 처음 받아보는 연구소는 생물 전공밖에 없으니까.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박민철을 바라봤다.
“혹시 막 교수님이 연락 주시거나 그러시진 않겠죠? 바쁘신 분인데?”
“글쎄다. 교수님마다 다르겠지. 학생들하고 소통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면 연락하실 수도 있고, 소통 자체를 불편해하시는 분도 계시니 말이다.”
휴, 나는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아는 김성진 교수는 소통 자체를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애초에 연구 관련된 이야기 외의 사적인 이야기는 듣지도,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이 사사로이 전화를 걸 일은 없었다.
‘궁금한 게 있어도 학생인 나한테가 아닌 학교로 직접 문의할 게 뻔해.’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김성진은 일을 돌아서 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빨리 답이 나올 수 있는 루트라면 무조건 그 길을 고수했다. 일례로 연구비 삭감 문제를 두고 대학 총장이 아닌 교육과학기술부로 바로 직행해 따질 정도였으니까. 나는 간단한 연구실 소개가 적혀있는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몇 년 만이지.’
전생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다보니 문득 흘러간 시간이 체감되었다. 대학교 입학 후 김성진을 만나 그의 밑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보냈던 내 20대. 내 집이 곧 랩실이었고 주말에도 늘 연구실에서 살았다.
나는 그만큼 치매 연구가 즐거웠다.
물론 마지막은 좋지 못했지만.
‘팀에서 널 받지 않기로 했다.’
…입안이 썼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삐뚜릅하게 올라갔다.
내 모든 것을 이 랩실에, 이 연구에 바쳤었는데.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그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생생했다. 그렇게 과거의 상념에 빠져들려는 순간,
“뭐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살피는 이인영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정리하고 회의실을 나간 뒤였다. 때마침 이인성이 회의실 문을 살짝 열더니 틈 사이로 안을 살폈다.
“어. 뭐야. 왜 너희밖에 없냐?”
“보나마나 최한별 보려고 온거겠지. 으이구.”
“뭐, 뭐래. 몰아가지 마셈.”
말을 버벅거리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는 이인성. 그는 멋쩍게 머리통을 긁더니 나와 이인영을 바라봤다.
“그냥 하도 안 오길래 궁금해서 온거거든? 이 성질 드러운 돼지야.”
“…그런 돼지한테 밀린 소감은 어때? 나랑 김만덕은 1등인데. 너는 물리 1등도 못 해서 전공 대표 못 하잖아. 저런, 안타까워라.”
“…지도 따지고 보면 김만덕보다 화학 등수 쳐 밀리면서.”
“그래도 화학 전공 중에서는 1등이거든? 맨날 물리 쉽다~ 쉽다하면서 1등 한 번도 못 한 너랑은 달라서.”
오늘은 이인영의 딜이 더 강해 보였다. 이인성은 쿨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데미지란 데미지를 다 정통으로 받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하긴 이인성도 자존심이 상했겠지. 단지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자존심이 상하면 바로바로 티가 나는 이인영과 다르게 이인성은 항상 장난스레 넘기는 편이었다. 그만큼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람 중 하나가 이인성이기도 했으니까. 분명 지금도 장난치듯 이인영의 공격을 다 받아주곤 있지만… 그의 속이 썩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인성이 물리 2등이잖아. 우리 학교에서 물리 전공이 제일 많은데 거기서 2등이면 잘한 거 아니야?”
“…너 왜 얘 편드는데?”
이인영이 도끼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순간 움찔했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이인성을 위해서라도…!
“편 드는 게 아니라, 그만큼 물리 잘하는 게 힘든 걸 아니까 하는 말이야.”
“…만덕쿤!”
감동 받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인성.
“역시 물리를 알아주는 건 물리하는 사람밖에 없다고! 하여간 저기 있는 돼지는 백날 설명해도 몰라요. 하긴 돼지한테는 너무 어려우려나? 쨌든 오늘부터 내 인생에 여자는 필요 없다. 난 이제 킹만덕만 있으면 되는-”
“아. 그리고 너도 전공 대표하기로 했어.”
“?”
이인성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너의 사랑을 받아줄 생각이 없다. 이인성은 내 말을 뜻을 곰곰히 생각하더니 천천히 물었다.
“그 말은 나도 물리 전공 대표라는 말?”
“응. 이번에 물리 사람이 많아서 한 명으론 힘들 것 같아서. 물리 전공만 대표가 2명이야.”
“그 말은… 최한별이랑 나랑?”
“응. 둘이.”
“왓 더…”
양손을 깍지 낀 채로 눈을 질끈 감는 이인성. 이인영은 그 모습을 보며 “지랄한다.”라고 말했지만 그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인성이 최한별에게 가진 호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건 아닌 듯 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아까는 너 인생에 여자는 필요 없다며?”
“내가? 언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싹 바꾸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인성. 그 모습이 어지간히 보기 싫었는지 이인영이 몸서리를 치고는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작은 일에도 설렐 수 있는 나이라는 점이 부럽다.
“이번에 대표 일 하다가 친해져 볼까? 그럼 버스도 같이 앉나? 아니 일단 번호부터 교환하겠네?히히힣”
…부럽다는 거 취소. 나 역시 몸서리치며 회의실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여전히 행복한 망상에 빠져있는 이인성을 두고서.
*
“그래. 이번에 서울대학교 광공학 연구실에 가게 되었다고.”
“…네.”
“알았다. 미리 유 교수한테 말해놓으마.”
주말 오전. 최한별은 궁궐 같은 저택 안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침 식사는 꼭 가족 모두가 함께.’라는 철칙을 가지고 있는 남자.
최한별의 부친, 최강석의 철칙 때문이었다.
연서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를 맡고 있는 최강석. 뇌경색, 뇌졸중 분야에 있어서는 국내 탑을 달리고 있었다. 대기업의 총수들도 그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어야 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정점에 위치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생활은 좀 어떠니.”
“…괜찮아요.”
“괜찮은데 1등은 못 하는구나.”
“…”
최강석은 차려진 국을 먹었다. 한동안 식탁 위에서는 젓가락들이 부딪치는 소리, 밥 먹는 소리외에는 정적뿐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이런 분위기에서 밥을 먹는다면 분명 금방 체해버리기 딱 좋은 환경.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정적을 이기지 못한 최한별의 모친, 한은영이 분위기를 풀기 위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여보, 한별이도 분명 열심히 했을 거에요. 그런데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렇지 한별아?”
한은영은 열심히 딸을 향해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무언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최한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항상 덤덤하고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최한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상한 부분에서 고집을 부리곤 했다. 마치 지금처럼.
“컨디션은…좋았어요.”
최강석은 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최한별을 향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여보, 이번에 당신 갤러리 오픈하기로 한 거 언제였지?”
“갤러리요? 다음 달 15일인데… 왜요?”
최강석은 식탁을 한번 바라봤다가 아내 한은영을 쳐다봤다. 심기불편한 표정으로.
“우리 딸이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일전에 최 교수하고 얘기해보니까 컨디션 관리해주는 코치가 따로 있다는데 좀 알아봐.”
“그럼 갤러리는…”
“갤러리는 한별이 컨디션 회복한 후에.”
탁. 젓가락을 내려놓는 최강석. 그의 말은 온통 최한별에 대한 이야기뿐이었지만 정작 그는 식사시간 동안 최한별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최강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여보. 벌써 나가게요? 날이 추운데 목에 뭐라도…”
한은영이 초조한 목소리로 남편을 챙기며 현관으로 나갔다. 최한별은 남은 밥을 마저 먹지 않은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별아, 엄마 잠깐 아빠 병원에 좀 갔다올테니까 과외 쌤 오실때까지 방에서 공부하고 있어. 컨디션 조절 잘 하고. 어머! 여보! 넥타이도 안하고 나가려고요? 당신도 참, 늘 잘 챙기던 사람이-”
띠리링. 현관문이 닫혔다. 가정부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과일이라도 좀 깎아서 준비할까요?”라고 물었지만 최한별은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웬만한 방 2개를 붙여놓은 듯이 큰 방.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까의 대화가 저절로 복기되었다.
‘컨디션 조절이라…’
그녀가 생각할 때도 그녀는 감정 기복이 없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따로 컨디션 조절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고, 기분전환이라든가 취미 생활같은 것도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걸 할 시간은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그때, 저 멀리 가방에 달린 키링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엉성한 마감처리가 되어있는 강아지 키링.
‘나중에 같이 놀자.’
‘이건 선물.’
최한별은 그날 일을 떠올렸다. 딱히 감정 변화가 없는 그녀에게 있어 오락실에서 나오는 김만덕의 모습은 꽤나 큰 충격이었다. 오죽하면 잠깐 차를 세우고 나와 볼 정도로.
‘놀 시간이 있나?’
분명 저 키링도 오락실에서 얻은 게 분명했다. 그 말인즉슨 오락실에서 꽤나 게임을 했다는 건데… 최한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지금까지 그녀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없었다.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그녀는 항상 1등이었고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남들보다 다른 출발선에 있다는 걸 기억해라.’
아버지가 늘 말씀하시던 말. 남들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의 것들을 누리고 있는 만큼 몇십 배의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말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별아, 너 그 이야기 들었어? 김만덕 기생수래!’
‘…기생수가 뭐야?’
‘기초생활수급자! 한마디로 흙수저 중에서도 흙수저!’
김만덕의 가정 환경에 대해 일파만파 소문이 퍼졌다. 학원을 다녀 본 적도 없고, 집안 사정도 안 좋은 아이.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최한별은 처음으로 찝찝한 감정을 느꼈다. 자꾸만 신경이 쓰이게 되는… 정의 내릴 수 없어서 더 찝찝한 감정.
하,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조금 후에 과외 선생님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감정을 다시 덤덤하게 만들어둬야 했다. 괜히 김만덕을 생각하느라 수업에 집중을 못 했다간 성적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김만덕이 아닌 다른 사람한테 등수가 밀리는 건 그녀 스스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지금 김만덕에게 밀린 것도 간신히 받아 들이고 있는 중이기도 했으니까.
‘정신 차리자, 정신…?’
그렇게 애써 떠오르는 생각을 떨쳐내며 수업을 준비하려는데, 핸드폰 액정이 번쩍거렸다. 문자메시지가 왔다는 뜻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김만덕?”
김만덕에게서 문자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