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6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62화(62/221)
62. 체험학습 (5)
62. 체험학습 (5)
“아니 번호 정도는 직접 물어보라고.”
“친구 좋다는게 뭐냐? 제발 부탁이다.”
이인성이 양 손을 모은채로 나를 바라봤다. 최한별의 번호를 얻기 위해 애를 쓰는 이인성. 명목은 ‘물리 전공 대표끼리 번호라도 알아둬야지!’이었지만, 누가봐도 그 이유가 아닌게 뻔히 보였다.
“하, 알았어. 그럼 최한별한테 물어보고 그 다음에 주든지 말든지 할게. 그건 괜찮지?”
“진짜 너밖에 없다. 이 은혜는 잊지 않으마.”
나는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버튼을 꾹꾹 눌러가며 아래로 내리자 ‘최한별’ 이라고 쓰여진 번호가 나타났다.
대충 ‘이인성한테 너 번호 줘도 되냐.’라는 요지의 문자를 입력해 보냈다. 옆에서 이인성이 히죽거리며 웃자 이인영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꼬집어댔다.
“보냈어. 답장 오면 알려줄게.”
탁. 슬라이드 폰을 닫으며 말했다. 주말에는 과외때문에 바쁠테니 저녁이 되야 답장이 올 터였다. 어쩌면 안 올 수도 있고.
‘그러고보니 최한별한테 먼저 연락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
R&E를 준비할 때 최한별한테 연락이 온 적은 있어도 내가 먼저 할 일은 없었다. 칼같이 시간약속을 지키던 최한별은 회의 시간에 늦은 적도 없었을 뿐더러 그렇다고 개인적인 일로 연락할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보낸 문자가 번호 넘긴다는 내용이라니…최한별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예측과는 다르게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지잉, 소리와 함께 온 문자. 보낸이를 확인하니 최한별이었다. 핸드폰에는 [응. 그래도 돼.] 라는 짧은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그 내용을 확인한 이인성이 소리를 질렀다.
“야. 이거 최한별도 나한테 호감 있는거 맞지? 그래서 이렇게 칼답온거지?”
“등신. 이래서 모쏠은 안된다니까.”
“뭐래 지도 모쏠이면서.”
한바탕 또 투닥이는 둘을 말리기 위하여 나는 빠르게 이인성에게 최한별 번호를 넘겼다. 이인성은 이인영에게 등을 맞으면서도 헤헤거리며 웃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나저나 너희 연구실에서 전화 온 거 있어?”
“난 없는데. 최한별한테 왔으려나?”
“나는 전화는 아니고 이메일 알려달라 하시던데. 몇 가지 주의사항 보내주신다고.”
이인영이 문자함을 열어 내게 보여줬다. 연구실 조교라는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이메일을 물어보고 있었다.
“너는? 이번에 생물 전공만 연구실이 바뀐거잖아. 따로 연락온 건 없었어?”
“응. 나도 연락 올 줄 알았는데 감감 무소식이네.”
“뭐, 바쁘신 거 아닐까? 아니면 굳이 학생한테 연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걸지도.”
이인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도 그 말에 어느정도 동의하는 편이지만…어째선지 등골이 살짝 서늘한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쌍둥이들과 체험 학습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토요일 점심 메뉴는 계란볶음밥과 어묵국. 점심을 먹고 학원으로 떠날 준비를 마친 둘은 아련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잘 있어… 곧 올게…”
“우리 까먹지 말고…”
“누가 보면 유학이라도 가는 줄 알겠다. 얼른 가. 앞에 학원차 왔다며.”
학교 정문을 보니 ‘과고생 전문 입시 학원’이라고 적힌 버스가 앞에 와있었다. 주말마다 쌍둥이들을 싣고 가는 학원 전용 버스였다.
“그러지 말고 너도 같이 우리 학원 다니면 안 돼? 전에 원장님한테 너 이야기 했더니 엄청 좋아하시던데.”
“맞아. 학원비도 다 무료로 해주신다고 하셨어. 그냥 몸만 오면 된다니까?”
“됐어. 난 혼자 공부하는 게 더 적성에 맞아서.”
내 거절에 풀이 죽은 쌍둥이들을 달래서 학원 버스로 보냈다. 물론 저 제안에 흔들리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주말에는 연구실 일정도 있었고, 무엇보다 공부에 있어서 중요한 건 자습량이었으니까.
그렇게 쌍둥이들과 헤어진 뒤, 나는 문제집을 챙기기 위해 기숙사로 향했다. 김진수가 넘겨준 ‘2학기 한국과고 중간고사 대비집’이었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진수는 벌써 학원에 갔나보네.’
분명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그 사이에 학원으로 떠난 모양이었다. 그렇게 문제집을 챙겨 자습실로 향하려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하지만 나는 그 번호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여보세요.”
[한국과고 김만덕 학생 휴대전화가 맞습니까?]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온 목소리는 딱딱했다.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 맞습니다.”
[카이스트 뇌바이오학과 인지신경연구실의 김성진 교수입니다. 통화 가능할까요.]“…네. 가능합니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지만 그의 표정이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연구실 견학과 관련한 이야기겠거니, 하고 마른침을 삼키고 있는데 예상과 다른 질문이 나왔다.
[일전에 올라온 신문 확인했습니다. 학생 본인이 연구한 내용이 맞나요?]“!”
[흥미로운 내용이더군요. 고등학생이 연구한 수준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김성진은 무뚝뚝한 말투로 감상을 전했다.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화가 난 건가 싶을 정도였지만 김성진에 대해 알고 있는 나는 그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베타-아밀로이드 관련한 연구는 인상 깊었습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한 부분에서는 논의점이 많아 보였지만, 고등학생 수준에서는 확실히 심도 깊은 연구였다고 생각합니다.]“…감사합니다.”
[정말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개입은 없었는지요.]김성진은 집요하리만큼 내 연구에 대해 물었다. 그 연구 자체에 대한 질문 보다는 이 연구에 개입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카이스트 신문에 실린 연구는 내가 과학의 날 전시 때 발표했던 내용으로, 온전히 전생의 내가 했던 연구였다.
정확히는 그의 팀에서 했던 연구.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디까지나 이 연구는 내가 진행한 게 맞다. 박성민의 연구실을 빌렸지만 박성민은 이 연구에 참여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이재성은 이후에 만났으니 더더욱 연관이 없었고.
하지만 이 연구의 시작은 전생에 그의 연구실에 있으면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다름 아닌 김성진 교수가 제안한 것이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는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후 김영재의 논문이 주목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은 없었는데요.”
[학생 수준에서 진행하기 어려운 연구들이 많아서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겁니다. MRI 기계라든가, 각종 실험 기기들을 준비하는 데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까요.]“실험실을 빌려주신 분이 계셔서 연구를 진행할 순 있었습니다만, 연구 방향이나 내용과 관련해서는 저 혼자… 진행한 게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견학 날 보도록 하겠습니다.]뚝.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예나 지금이나 마이페이스인 한결같은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식은땀이 났다. 내 기억이 맞다면 김성진은 거짓말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다. 과학자에게 있어서 거짓말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누누이 말하곤 했었으니까.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는 지금 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째 시작부터 미운털이 박힌 느낌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괜찮아. 어차피 이번 생에는 해외로 유학갈 거고, 김성진 교수 밑에서 있을 일은 없을 테니까.’
전생 때는 집안 사정상 해외 유학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돈도 돈이지만, 대학을 정하던 시기에 어머니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던 탓에 해외로 갈 생각은 접어두었기에.
하지만 이번 생에는 이렇다 할 걸림돌이 없었다. 어머니도 병원에 가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있을뿐더러 설령 금성 장학생으로 선발되지 못하더라도 돈이 없어서 못 갈 일은 없다. 나한테는 ‘보험’이 있으니까.
나는 일전에 나눴던 LK머티리얼즈 이광용과의 대화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1시. 나는 짐을 챙겨 자습실로 향했다.
*
“어라… 선생님은 2학년 담당 아니셨어요?”
“아, 원래라면 황대문 교수님이 오시기로 했는데 일정이 생기시는 바람에.”
2학년 생물을 맡고 있는 송형민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체험학습 당일. 우리는 대절된 버스 안에서 마주쳤다.
“그럼 만덕이가 애들 인원 파악 좀 해줄래?”
“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학생들 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총 인원은 18명. 그중에 여학생이 반 이상이었다. 다들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짝이 없었다. 고로 내 옆자리에는 송형민이 앉았다.
“어, 저 혼자 앉아도 괜찮은데…”
“아냐. 가는 길 꽤 걸리던데, 심심하잖니.”
아뇨. 괜찮은데요. 나는 거절하고 싶었으나, 송형민의 웃는 얼굴을 본 이상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와 불편한 동석을 하게 된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출발했고 버스 안은 화기애애한 소리로 가득찼다.
“이번에 가는 연구실 말이야. 내가 검색해 봤는데 엄청 유명한 곳이래.”
“나도 검색해 봤어! 김성진 교수님 젊은 나이에 교수로 임용된 엄청난 엘리트라며?”
“나도 그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고 싶다…”
이야기의 주제는 대부분 연구실 혹은 김성진 교수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과학고 학생이더라도 연구실에 방문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과고 학생에 대한 메리트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나 있는 거지, 대학교 교수들이 볼 때는 아직 어린 학생들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게 꿈과 희망을 가진 채로 연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걸 듣고 있는데, 송형민이 넌지시 물었다.
“이번 체험학습 기대되니?”
“아, 네.”
“흐음… 그렇구나.”
알 수 없는 미묘한 반응을 보이는 송형민. 그는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김성진 교수님하고는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니?”
“…아뇨. 전혀요.”
“그래? 근데 왜 교수님은 널 알고 계실까?”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에 나는 입을 꾹 닫았다. 지금 시점에서 김성진이 나를 알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 루트뿐이었다. 박성민이 말해줬거나, 신문을 보고 알았거나.
김성진한테서 걸려 온 전화로 미루어 볼 때 신문 내용을 보고 나를 알게 된 것 같다만… 박성민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본 나로서는 찝찝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박성민한테 물어봐도 계속 아니라고 이야기하긴 했다만…’
주말에 박성민의 연구소에 가자마자 물어봤지만, 그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 ‘아니? 너 이야기는 한 적도 없는데?’ 라며 헤실헤실 웃어 보일 뿐이었다. 뭘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밝혀내고 만다.
그렇게 박성민과의 대화를 생각하고 있는데, 송형민이 연구실 섭외와 관련된 뒷이야기들을 풀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에 생물과 연구실 선정과 관련해서 말이 좀 많았거든. 원래 하기로 한 연구실에서 갑작스럽게 일정을 취소해 버려서 말이지. 너도 들은 적 있을 거야. 학생이 실수로 기계를 꺼버려서 샘플들이 다 사멸해 버린 거.”
“…네.”
“그래서 생물 전공 관련 연구실에서는 학생들 받는 걸 다 꺼려하고 있었는데, 마침 김성진 교수님 연구실에서 연락이 다시 왔지 뭐니.”
진짜 운이 좋았어. 라고 말하는 송형민의 눈꼬리가 말려 올라간 게 의뭉스러웠다. 김성진 교수가 꼭 찝어서 나를 언급했다, 너 덕분에 생물과도 연구실 견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복덩이다…라는 말을 끝으로 송형민은 더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분명 칭찬을 받고 있는데도 칭찬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칭찬을 한 후, 내 반응을 살폈으니까. 마치 관찰하는 것처럼. 저번 특별반 수업 때 유전 관련한 문제를 다 풀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운이 좋았네.”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송형민과 같은 반응은 사실 과거로 회귀한 이후 익히 본 반응이었다.
‘쟤가 이번 1학년 1등이라고요? 흐음… 평범해보이는데.’
‘천재라, 한국과고에 그런 애들이 한둘이겠습니까?’
‘1학년 때 천재 소리 듣던 애들 2학년 되면 무너지는 게 부지기수입니다.’
1학년 담당 교사들 사이에서 퍼진 나에 대한 소문. 그 소문은 다른 학년에서는 그저 뜬 소문처럼 퍼질 뿐이었다. 그렇게 지나가듯 나를 향한 탐색들은 급식실이나 복도에서 종종 이뤄지기도 했고.
그런 탐색들은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진짜 천재인가?’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굳이 내 입으로 아니라고 말하고 다닐 생각은 없다. 어차피 말해봤자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게 인간이니까. 박성민에게도 말해봤고 쌍둥이들에게 말해 본 결과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김성진 교수. 과연 그도 나를 보며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자, 도착했습니다~”
버스 기사님의 말과 함께 버스가 멈췄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대학 로고에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의 모교, 나의 랩실, 나의 집.
이곳에 다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