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6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64화(64/221)
64. 체험학습 (7)
64. 체험학습 (7)
최찬형의 연구실 투어가 어찌저찌 마무리되고, 우리는 학생회관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자, 다들 점심 먹고 근처 구경하다가 2시까지 이 앞으로 집합한다.”
“네에.”
학생들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 뒤, 일사불란하게 배식대로 향했다. 송형민은 그런 학생들을 한번 확인한 후, 내 쪽으로 왔다.
“만덕아. 2시에 와서 애들 인원 파악하고, 혹시 안 온 애들 있으면 쌤한테 바로 연락해 줘.”
“네.”
“그래, 믿는다. 그 외에도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송형민은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밖으로 나갔다. 보아하니 아는 사람이 잠깐 찾아온 모양이었다.
‘뭐, 별일 없겠지. 어차피 학교 내에서 구경이라해봤자 기념품샵 정도일테니까.’
고등학생들이 돌아다니기엔 지나치게 넓은 곳이다. 적어도 고등학교보단 넓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 역시 멀리 나가는 것 보단 근처 기념품샵이나 학생 서점을 들르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았다.
“나 기념품샵에서 대학 로고 새겨진 샤프 사 가려고.”
“나는 과잠. 걸어놓고 자극 받을 거야.”
“서점에 가면 학부생들이 쓰는 책이 있다던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캠퍼스 생활에 대한 로망을 펼치는 학생들. 연구실 탐방이긴 했지만 대학교 탐방 역시 프로그램 속에 있었기에 다들 한껏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낭만을 가지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저 웃으며 지나가는 새내기들은 조만간 머리도 감지 못하고 다크서클이 내려온 상태로 좀비마냥 대학교를 활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학식을 다 먹고 자리에 일어서니 이미 학생 중 대부분이 식당을 빠져나간 뒤였다. 나는 아까의 대화를 떠올리며 김성진 교수가 있는 건물로 이동했다.
‘밥 다 먹고 연구실로 오게.’
김성진은 내 손에 들려진 쥐를 보더니 발걸음을 돌려 개인 연구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한국과고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연구원들의 낯빛은 파래졌다.
‘마, 만덕아. 너 교수님한테 혼나는 거 아니야?’
‘선배. 교수님 화나신 것 같죠? 표정이 굳으셨던데.’
‘아무리 그래도 따로 부를 정도는 아니지 않나? 더군다나 고등학생인데…’
나를 둘러싸고 연구원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송형민도 두통이 이는지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말했다.
‘만덕아. 넌 여기 있어라. 선생님이 대신 가서 잘 말씀드릴게. 교수님 입장에서는 분명 화 나실 만해. 학생 한 명이 연구실을 들쑤시고 다닌 것처럼 보일 테니 말야.’
‘? 화 안 나신 것 같은데요?’
오히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 송형민이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김성진 교수를 누구보다 오래 봐왔던 나로서는 그가 전혀 화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김성진 교수는 화가 나면 그 자리에서 다 이야기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설령 그 장소가 교수들이 모두 모이는 회의더라도 그는 따로 누군가를 불러서 조곤조곤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고로 김성진 교수가 지금 이 쥐 때문에 화가 났다면, 현장에서 바로 즉결 처분을 내렸을 거란 말. 그러나 이 모든 걸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최대한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괜찮아요.’
‘진짜 괜찮겠니? 괜히 혼자 갔다가 일이 더 커질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다.’
‘저도 같이 갈게요. 연구실 투어를 제대로 못 한 제 잘못도 있으니까-’
최찬형까지 합세해 점점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 가는 가운데, 문득 ‘대체 김성진 교수의 이미지가 어떻길래 다들 이러는 걸까.’하는 생각이 미쳤지만,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나는 이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다.
‘저, 전공 대표잖아요. 제가 잘 말씀드리고 올게요.’
‘…!’
‘그리고 괜히 절 부르셨는데 다른 분들이 오시면 더 안 좋게 보실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만덕아…’
내 말에 다들 감동을 받은 듯했다. 말 없이 어깨를 두드리는 연구원들, ‘멋지다!’라고 외치는 친구들, 다시 본다는 듯이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송형민까지.
뭐, 이상한 오해를 산 것 같긴 하지만 거짓말한 건 아니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건물 입구로 향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불쑥 과거의 향수가 떠올랐다.
입학 첫날, 치매 치료제를 만들고 말겠다는 포부로 이곳에 왔었다. 그때의 설렘, 긴장감, 떨림이 다시한번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이번 생에는, 기필코.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러나 김성진 교수의 연구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가 않았다.
‘널 팀에서 받지 않기로 했다.’
점점 이동하면 이동할수록 그때의 기억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때 김성진 교수가 나를 바라보던 표정이 어땠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무 충격이었어서 기억에서 지워진 건가.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개체의 생존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한다. 그중에는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기억을 왜곡하거나 지워버리는 일도 있었다.
인정받고 싶었지만 결국 인정받지 못했던 나.
김성진은 내게 어떤 존재였을까.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그의 연구실 문 앞에 섰다.
[512호, 김성진 교수 연구실]후, 심호흡을 한 뒤. 나는 문을 두드렸다. 두드림과 동시에 안쪽에서 소리가 났다.
“들어오게.”
바짝 긴장한 상태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김성진 교수가 있었다. 그는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연구실 안은 내가 익히 알고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한쪽 벽면을 가득 장식한 것으로도 모자라 책상 뒤쪽에까지 진열되어 있는 책들. 장식용으로 진열된 게 아니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곳곳에는 인덱스 스티커들이 끼워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ㄱ’자로 놓여있는 책상 위에는 각종 논문과 학술지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편한 곳에 앉게나.”
“넵. 감사합니다.”
나는 책장 앞에 있는 검은색 소파에 앉았다. 편한 곳에 앉으라 했지만, 이곳은 언제 와도 결코 편해지지 않는 곳이었다. 히터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나는 김성진 교수의 말을 기다렸다.
“신문을 봤네. 치매 치료에 진심이라고?”
“네. 진심입니다.”
“흠, 그렇군. 차 한잔하지. 녹차? 둥굴레차?”
“…둥글레차로 부탁드립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접대용 티백을 뜯었다. 커피포트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둥굴레차가 담긴 종이컵을 내 쪽으로 밀어주며 그가 말했다.
“그럼 의대 지망생인가? 치매 치료를 하려면 그쪽이 좋을 테니 말이야.”
“아뇨. 저는 보다 본질적인 치료법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신경과학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치료법이란 건 존재하지 않네.”
호록, 소리를 내며 그는 차를 마셨다. 김성진은 아까의 쥐 소동 때문에 날 부른게 아니었다.
나에 대해 알고 싶어서 부른 것이었다. 정확히는 내 ‘연구’를.
“많이들 착각하는 개념 중 하나가 병을 치료하는 어떤 핵심적인 키가 존재할 거란 환상을 갖고 있지. 예를 들면 자네가 신문에서 말한 치료법도 그중 하나라네. 베타-아밀로이드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유전자 편집 기술로 제거한다라… 아이디어 자체는 딱 고등학생 생각해 낼 법한 수준의 치료법이지.”
언뜻 듣는다면 무시하는 어투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나 역시도 이재성과의 여러 논파 끝에 이 연구 방식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을 뿐더러, 그가 고작 고등학생을 무시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든게 아니란 걸 알아차렸기에.
김성진은 할 말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한다. 그러니까 빙빙 돌려서 깐다거나 무시하는 일은 그에겐 비효율적이었다. 그러니 이건…
“고등학생 수준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네만.”
인정. 그는 내 연구를 인정해 주고 있었다. 비록 그 안은 구멍이 숭숭 뚫려 전공 교수가 봤을 때는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답하는 것 대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치매를 치료한다는 아이디어는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후, 김영재의 논문을 통해 얻었었지. 지금의 지식수준으로 이 내용을 설명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
타임 패러독스. 미래의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왔지만, 아직 그 지식의 바탕이 되는 이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영재의 논문을 읽긴 했어도 그 모든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없는 나로서는 반쪽짜리 이론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때 당시 진행하던 연구에도 오류가 많았었고.’
그때 당시의 나는 김영재의 연구를 바탕으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생성해 내는 유전자를 제거한다.’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했었다. 하지만 통계적 모델링의 한계, 단일 유전자를 제거했을 경우 발생하는 여러 부작용, 이를 실제 치료에 사용하는 데까지 겪게 되는 무수히 많은 문제점들 등. 결국 연구는 실패로 돌아갔다. 아니, 정확히는 실패하기 전 팀에서 쫓겨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종이컵에 담긴 둥굴레차가 점점 진해졌다.
“혈뇌장벽(BBB)으로 인해 뇌에 외부 물질이 들어오는 것이 제한됩니다. 그렇기에 평범한 약물 투여로는 뇌까지 약효가 미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둥굴레차 티백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망 사이로 찻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하지만 망 안의 찻잎은 빠져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두개골을 열어서 뇌를 수술한다거나 하는 방법도 효과적이진 않죠. 치매 중 하나인 알츠하이머의 경우엔 뇌세포가 사멸되는 병이고, 사멸된 뇌세포를 제거해봤자 이미 진행된 알츠하이머를 치료한다고 볼 순 없으니까요. 결국 뇌세포를 사멸시키는 주원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라고 생각한 거군?”
“네. 그래서 그 유전자의 위치와 다른 유전인자와의 관계만 파악할 수 있다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이재성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재성은 나와 다르게 치매의 원인을 제거하는 쪽이 아닌 치매의 진행 속도를 늦추자는 입장이었고, 혈뇌장벽을 뚫고 뇌에 직접 전달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었다.
김성진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뭔가 깊게 생각하더니 나를 향해 물었다.
“신문에 나온 걸 보니 베타-아밀로이드의 수치가 감소했던데.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어렵진 않았습니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생성과 관련된 유전인자를 제거한 뒤, 그 이후의 경과를 지켜봤을 뿐이니까요.”
“유전자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낸 건가?”
“…있을 거라 생각되어지는 유전인자들을 무작위로 선정해 제거했습니다.”
나는 시선을 회피하며 답했다. 거짓말이었으니까.
전생 때는 김영재의 논문 발표 외에도 다양한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는 유전자 자리, 즉 염색체 상의 유전자들의 위치도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었는데 그중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생성하는 아밀로이드 베타 전구 단백질의 위치도 밝혀졌던 것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김성진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무작위로 선정해 제거했는데, 하필 그곳에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과 관련된 유전인자가 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과학계란 말도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니까.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도 우연히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김성진은 생각에 잠겼다. 딱히 운이 좋았다는 내 말에 태클을 걸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가 싫어하는 것에는 무의미한 논쟁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 주제는 끌고 간다면 무의미한 논쟁이 될 게 뻔했다. 대충 “그게 운으로 되는 일인가?” 와 “운이 좋아서 발견한 건데, 어쩝니까?” 정도의 대화로.
그 대신 그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찾는 듯했다. 나는 떨리는 손끝을 애써 티를 내지 않으며 둥굴레차를 한 모금 마셨다.
‘지금의 김성진이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그를 만나는 건 지금으로부터 2년 후다. 그의 밑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건 훨씬 더 이후의 일. 그러니 나는 지금 그가 무엇에 초점을 맞춰서 연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몰랐다. 그저 치매라는 큰 분야 안에 있을 거라 짐작할 뿐.
혹시라도 이런 내 발언이 그의 연구 방향을 바꿔버리는 일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도 밀려왔다. 이 대화가 어떤 파장을 미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선 예상외의 말이 나왔다.
“운이 좋다고 했나?”
“…예?”
“그렇다면 그 운, 조금 나눠 써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예?”
뜬금없는 말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데 순간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극도의 효율충이다.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와 연구를 같이 해보지 않겠나?”
“…!”
“내가 생각하던 연구 방향이랑 결이 비슷한 것 같아서 말이지. 아마 우리는 좋은 팀이 될 수 있을 것 같네.”
그는 진심으로 웃고 있었고, 이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표정이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를 쫓아내던 날, 김성진의 표정이 기억나지 않았던 이유가 떠올랐다.
‘널 팀에서 받지 않기로 했다. 다른 연구원들의…반발이 너무 거세다 보니. 하지만 네가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면 다른 연구소를 알아봐 주마. 네 연구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구나.’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충격에 애써 지워버렸던 기억의 일부.
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었다.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불편한 듯,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분명 좋은 경험이 될걸세. 쉽게 오는 기회는 아닐테니, 자네한테도 일종의 운이 찾아온거지.”
다시 특유의 표정으로 돌아오며 덤덤히 말하는 김성진. 그러나 여기서 선뜻 그렇다고 말할 순 없었다. 나에겐 새로운 목표가 있었으니까.
‘이번 생엔 해외 유학을 떠난다.’
이미 전생때 한국 연구실에서 이리저리 구르며 배워온 몸이다. 유럽이나 선진국들에 비해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할 뿐더러 그 해의 정책이나 여러 요소에 따라 연구실 예산은 들쑥날쑥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연구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분야마다 다르겠다만, 꽤나 고달픈 일이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고등학생이다보니 연구에 임할 시간이 없습니다.”
“흠. 그런가?”
“지금은 입시에 신경쓸 때여서요.”
김성진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내 사정을 이해해주는 듯 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그럼 시간만 확보 되면 되는건가? 주말마다 나오면 되네. 방학때도 오고.”
“어…그, 그게 주말에는 공부를 해야해서요. 내년에 졸업을 하고 대학을 가려면-”
“그럼 대학 문제인건가?”
묘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이었지만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해외 유학을 가는 것도 대학이랑 관련이 있었으니까.
“그럼 바로 카이스트로 지원하게나. 자네가 연구한 내용들을 정리해서 낸다면 뽑히고도 남을테니. 그럼 이젠 연구할 시간이 있겠지?”
과학 특기자 전형. 과학고에서 대학을 보내는 전형 중 하나였다. 과학이나 수학에서 영재성을 보이는 학생들이 포트폴리오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이를 인정해 입시에 반영하는 제도였다. 아무렇지 않게 나의 대학을 정해버린 김성진 교수를 보니 팔 위로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전생때도 이랬지. 한번 정한 건 어떻게든 끌고 오는 외고집.’
연구비 예산을 늘릴때도, 프로젝트 사업을 따올때도, 일 잘하는 대학원생을 데리고 올 때도…그는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정해놓고 문제들을 해결해가는 스타일이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런 그의 화법에 넘어가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런식으로 처리하게 된 일만 수십개였다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그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었다.
“해외 유학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해외 유학이라. 생각해둔 대학은?”
“구체적으로 정해두진 않았지만 일단 하버드를 목표로 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대학, 하버드. 기초 과학 분야에서도 많은 지원이 이뤄지고 있을 뿐더러 각 분야의 대가들에게 수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단지 걱정되는 건 하버드 입시는 한국 입시와 달랐기에, 그만큼 정보가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김성진은 생각에 잠긴 듯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따금씩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젠 어쩔 수 없겠지.’
어찌보면 꽤나 집요했던 김성진의 수라에서 벗어난 것이라, 생각하기도 찰나. 그가 테이블을 가볍게 치더니 나를 바라봤다.
“하버드 대학 입시는 한국 입시와 많이 다르네. 특히 에세이와 추천서가 꽤 큰 영향을 주곤 하지.”
“예?”
“내가 도와주겠네. 하버드 입학말일세.”
이게 뭔…너무도 쉽게 말하는 탓에 나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정말로 김성진은 너무나 쉽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야 개운하다는 듯이 그는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럼 연구는 같이 할 수 있겠군?”
“그,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쉽다고 한 적 없었네. 오히려 어려운 일이지. 그런 어려운 일을 혼자서 해낼 자신이 있나? 아니면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건가?”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군. 다음주 주말부터 연구실로 오면 되네. 자세한 안내는 그때 마저 하도록 하지.”
김성진은 효율을 추구한다. 그는 턱짓으로 시계를 가리켰고 시계는 어언 2시를 달려가고 있었다.
“그럼 이동하도록 하지.”
“…예.”
나는 자리에 일어나면서 시계를 멍하니 바라봤다. 사실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모든게 결정되어있던 게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가 내 신문을 본 순간부터일수도…?
결국 나는 그의 수라에 말려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