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65)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65화(65/221)
65. 각자의 사정 (1)
65. 각자의 사정 (1)
하버드. 과학고에서 해외 유학을 가는 일은 꽤나 흔한 일이었다.
“SAT 준비도 잘 하고 있겠군?”
SAT.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말했다. 본격적으로 해외 유학을 준비해본 건 이번이 처음인지라 나는 멋쩍게 반응할 뿐이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해외 유학을 간다고 해서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 오히려 한국에서 연구 생활을 이어나갈거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말하는 김성진은 정작 MIT대 출신이다. 뇌인지과학과 출신.
“하지만 한국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걸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에서 못 본 걸 외국에 나갔다고 볼 수 있겠나?”
“환경의 중요성은 꽤 엄청나니까요.”
흠, 내 말에 김성진은 반박도 수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정도 납득은 했는지 그는 엘리베이터를 내리며 말했다.
“부디 내 연구실이 자네에게 좋은 환경이면 좋겠군.”
그 말을 끝으로 강의실로 들어가는 김성진. 나는 그가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있을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학생회관으로 가자.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학생회관 앞으로 갔다. 2시 집합이라는 말에 학생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모여있었다.
“만덕아, 미안. 애들 지금 뛰어오고 있대.”
“오케이. 그럼 걔네 빼고는 다 왔네.”
때마침 저 멀리 늦은 학생들이 달려왔다. 뒤늦게 합류한 학생들은 헉헉 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지각생들을 향한 약간의 타박과 그리고 변명이 이어지는 와중에 송형민이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그래, 애들은 다 왔고?”
“네. 18명 모두 왔습니다.”
“좋아. 그나저나 너 안색이 안 좋아보이는데,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예?”
송형민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아이들이 호들갑을 떨며 내 표정을 살폈다.
“헐, 진짜. 얘 얼굴이 사색이 되었는데.”
“식은땀도 흘렸던 거 같아. 여기 머리카락 다 붙어있어.”
“설마 아까…교수님한테 불려가서?”
아이들의 얼굴에 호기심과 걱정이 번갈아 피어올랐다. 의혹이 확신이 되어가려는 순간을 진압하고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교수님때문이 아니라-”
그러나 말이 나오다 멈췄다. 생각해보니 교수님 때문인 것 같은데? 내가 쉽사리 말을 못하고 있자 애들이 험악해진 얼굴로 말했다.
“야, 근데 생각해 보면 쥐 탈출한 거 우리 때문 아니잖아. 왜 만덕이가 혼나야 해?”
“그렇게 따지면 그 쥐를 보여주려고 한 연구원님은 뭐가 되냐? 일부러 우리한테 보여주시려고 그러다 그렇게 된 건데.”
“그래도 만덕이가 대표라고 해서 혼나는 건 선 넘었지…”
다들 내가 김성진 교수한테서 쥐 소동으로 인해 한소리 세게 듣고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직은 고등학생. 잘못을 하면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듯, 대학교에서 선생님의 포지션이 교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교수들은 바쁘고, 이런 자잘자잘한 일에 신경을 쓸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아마 다른 교수가 쥐 소동을 봤어도 그냥 지나가던 대학원생에게 “잡아놔.”라고 말하고 갈 길 갔겠지.
그렇다고 해서 김성진과 같이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떠들어서 시끄러워질 필요는 없으니까. 결국 나는 최대한 웃어 보이며 말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근데 진짜 괜찮아.”
미래의 나는 조금 고달파지겠지만…지금은 괜찮다.
“만덕쿤…”
“진짜 전공 대표 누가 뽑았냐. 최고다!”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좋고, 사기다 사기.”
내 말에 감동을 받은 듯 아이들의 눈이 초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생물 화이팅!’ 이라고 말하는 학생을 시작으로 생물 전공 안의 유대감이 생긴 듯 끈끈해진 느낌이었다.
그 순간 아까 늦었던 여학생 무리가 우르르 오더니 나를 둘러쌌다.
“야, 니가 줘.”
“아 왜! 너가 산거잖아!”
“아 진짜…”
한 여자애를 중심으로 서로서로 옆구리를 찔러대기 시작했다. 설마 집단 린치인가? 하는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중심에 서있던 여자애가 뭔가를 내밀었다.
“…저기. 이거.”
“응?”
“아니, 아까 기념품샵 가려다가 매점이 있길래…!”
“?”
여학생은 막대사탕 몇 개를 내 손위에 올려두더니 바로 내 시야에서 멀어졌다. 대충 “어떡해. 난 몰라!”, “미쳤다, 진짜 이걸 줬다고?”라며 웃는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코끝이 찡해진다. 분명 전공 대표로 수고했다고 주는 선물이겠지? 송형민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학생들을 인솔하기 시작했다.
다시 체험학습 일정이 시작되었다.
“일단 빈 자리 없게 앞에서부터 채워앉아라.”
김성진 교수와의 간단한 질의응답을 할 시간이었다. 대충 생명과학 분야의 전망, 대학 와서 배우는 내용 등.
그러나 강의실에 들어온 학생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딴 걸 대체 왜 만든 거야…?”
“필기를 하기엔 책상이 너무 멀고 그렇다고 의자를 당길 수도 없고.”
“심지어 의자도 딱딱해…”
학생들은 늘 교실 의자에만 앉다가 책상과 의자가 일체형인 의자에 앉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학생들이 의자에 적응해 가고 있는 와중에, 나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앉았다. 대학교 강의는 기본 75분에서 연강이면 3시간까지. 바른 자세를 한 자만이 허리를 지킨다.
학생들은 정석이나 다름없는 내 자세를 보고 “오오.”거리더니 나를 따라 바르게 고쳐 앉았다. 그 순간 강의실 앞문이 열리고 김성진이 들어왔다. 그는 누가 봐도 마른 체격이었는데 안경마저 사각형이다 보니 더욱 날카롭게 보였다.
갈색 블레이저를 걸친 채로 앞쪽에 서더니 학생들을 쭉 훑어봤다. 아까 봤던 모습과 다를 게 없었지만, 책상에 앉아 만나는 건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마치 새내기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
“…다 온 것 같은데 맞나요.”
“네. 교수님. 다 왔습니다.”
김성진의 물음에 송형민이 짧게 대답했다. 김성진은 별다른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리를 바라봤다.
“편하게 질문하세요.”
지금 이 시간은 전공 교수와의 질의응답 시간. 평소에 뇌바이오 학과에 관심이 있던 학생들이나 혹은 생물학과 관련된 미래가 궁금한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시간이었다. 전생 때는 물리 전공에 빌붙어 간 상황이었기에 당시 생물과 애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시간만 보내다가 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도 전공 교수님이 있다고! 그러나 뿌듯해지는 마음과 달리 손을 드는 학생은 없었다. 다들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김성진 교수를 무서워하고 있는 게 겉으로도 보였다.
“하하, 저희 애들이 좀 긴장을… 얘들아, 너희 연구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궁금해하던 거 엄청 많았잖아. 그래, 형석아. 아까 버스에서 교수님 만나면 뭐 물어본다고 하지 않았니?”
“아, 안 그랬는데요.”
“…”
“…하하. 애들이 낯을… 조금 가려서. 하하.”
입도 뻥끗 안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송형민이 식은땀을 흘렸다. 애들이 긴장했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는 한국과고 전체의 평판이 흔들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적어도 생물 전공 자체의 이미지가 안 좋게 보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김성진 교수가 처음에는 좀 무섭게 보여도 나쁜 사람은 아닌데 말이지.’
전생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 역시도 김성진을 어려워하던 시기가 있었다. 워낙 날카롭게 생기고 말 수도 없는 양반이다 보니 학부생 시절 동안에는 줄곧 어려워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그의 밑에서 연구하면서 그 생각은 천천히 바뀌게 되었다.
내가 아는 김성진은 절대 무서운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섭다기 보단…
“…여러분.”
김성진이 침묵 가운데에서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이런 모습을 꾸짖으려는 걸까, 학생들의 표정에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대충 ‘한국 학생들은 질문이 없군요.’라든가, ‘과고 학생이라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흠.’이라든가. 뭐가 되었든 좋지 않은 말이 나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뛰어난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통제 능력은 필수입니다. 수많은 유혹들을 뿌리치고 긴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선 매 순간 마음을 다 잡아야 하죠.”
김성진 교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학생들도 긴장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도 이 분위기를 따라 집중하려고 하는데,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 이야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그런데 다양한 전공을 연구하는 학자 중에서 특히나 생물학자들은 뛰어난 자기 통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통제 능력? 생물학자들은 실험 변수가 더 많아서 그런가?”
“미생물이나 살아있는 것들을 다룰 때 더 주의해야해서 그런게 아닐까?”
다들 아까보다는 조금 느슨해진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전히 조심스러운 대화였지만 ‘생물학자들은 왜 통제를 잘하는가.’를 두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열띤 토론들이 이어져갔다.
그렇게 김성진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 초조한 얼굴로 김성진을 바라봤다.
‘아, 안 돼!’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렸다. 이 기시감의 원흉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간절한 바람과 다르게 김성진 교수는 입을 열었다.
“cell control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망했다…”
학생들은 김성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바로 옆자리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cell? 세포?”라고 중얼거리던 학생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우리는 소위 유쾌하고, 재치 있는 말장난을 두고 개그라고 한다. 그리고 개그는 크게 두 가지로 평가된다. 성공한 개그, 망한 개그. 즉, 설명을 하는 순간부터 그 개그는 망한거다.
“자기 통제는 영어로 self-control입니다. 여기서 ‘자신의’라는 뜻의 self와 ‘세포’라는 뜻의 cell의 발음이 유사한 것에서 착안한 유머로…”
꿋꿋하게 김성진은 개그 풀이를 시작했다.
“…”
“…”
망했다. 망했어. 차라리 설명이라도 안 하면 어찌저찌 흘러갔겠다만, 김성진은 기어코 개그의 숨통을 끊어놨다. 그 덕에 숨도 못 쉬고 동공만 세차게 흔들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다른 전공에 비해 세포를 다룰 일이 많은 생물학자는 자기 통제 능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성진은 단 한 번도 목소리에 변화를 주지 않고 개그 풀이를 마쳤다.
끔뻑끔뻑. 다들 뭐라 말해야 할 지 감도 못 잡고 있다. 여기서 뒤늦게 웃어봐야 안 웃느니만 못하다. 이와중에 송형민만 고개를 푹 숙이고 끅끅대며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생물 전공 중엔 정상이 없다… 나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워지는 분위기를 바라보다 결심했다. 이대로면 끝날 때까지 어색한 공기 속에서 시간만 보내게 될 것이고, 모처럼의 체험학습이 악몽처럼 기억될 것이다.
“교수님.”
“…질문이 있나요.”
“네. 왜 생물학자들이 사회성이 없는지 아십니까?”
“…!”
내 말에 학생들이 경악하며 뒤를 돌아봤다. 다들 미친놈 보는 눈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젓고 있었다. 김성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글쎄요. 생물학자들이 사회성이 없는 축에 속한다고 딱히 생각해본적은 없습니다만…”
“정답은 이기적이어서 그렇습니다. ‘selfish.’”
“!”
일동 경악. 심지어 김성진의 개그는 말이라도 됐지, 단순히 self와 cell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것으로 억지로 밀어붙인 개그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푸흡-.”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진 사람을 시작으로,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무슨…?!”
“와 나 방금 소름 돋았어…”
경멸하는 사람들,
“크하하하핳!”
“하하핰, 미친, 방심했다, 쟤 표정 봐. 뿌듯해하고 있어.”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까지. 어쨌거나 아까의 싸늘했던 분위기에 비하면 뭐라도 반응이 나왔다. 아재 개그도 처음이 받아치는 게 어렵지 두 번, 세 번 이어지면 적응이 된다. 적응이 된다는 말은 곧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따라 웃거나, 경멸하거나.
나는 아이들에게 물론 이 일로 인해 타격을 받게 되는 건 없다. 그저 약간의 경멸 정도?
약간의 경멸과 교환한 분위기 반전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덕분에 한결 나아진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질문 타임으로 이어졌고, 김성진 역시 티를 내진 않았지만 아까보다는 누그러진 듯한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평소 궁금해하던 질문들을 자유롭게 하기 시작했다.
“교수님. 생물 전공은 보통 어느 쪽으로 취직을 하나요?”
“일반적으로 제약회사 분야로 많이 가는 편이긴 합니다만, 요즘은 일반 사기업에서도 많이 채용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화장품이나 제품 안전성 연구 등… 하지만 생물 전공 안에서도 분야가 달라 한가지 답으로 말하긴 어렵군요.”
“교수님 저도 질문 있습니다! 아까 연구실 탐방을 했을 때 연구실이 여러 개던데-”
생명과학 분야의 전망이라든가, 기초 과학에 대한 지원이 어느 정도인지. 뿐만 아니라 김성진이 학과장으로 있는 뇌바이오학과에선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는지, 비전은 무엇인지 등. 정말 다양하고 자유로운 대화들이 오고 갔다. 아이들도 김성진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오히려 ‘깐깐해 보이지만 약간 허당인’교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공 대표 미션 클리어.’
괜시리 마음이 뿌듯해지는 가운데 성공적으로 질의응답 시간이 끝났다. 다들 밝은 표정으로 김성진을 향해 인사했다.
“모쪼록 생명과학에 대한 여러분의 궁금증이 해소되는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모든 일정이 끝이 나고, 우리는 버스로 향했다. 버스로 가는 동안 몇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며 멈칫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그 개그, 연구원 시절 김성진이 했던 내게 던졌던 개그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이 경멸은 내 것이 아니다. 아마도.
“오늘 진짜 재밌지 않았어?”
“그러니까. 쥐 탈출했지, self control 드립도 배웠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
“다음에 또 오고 싶다!”
이제 학교로 돌아갈 시간. 학생들은 버스에 앉아 쉬지 않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피곤할 만도 한데, 체력이 대단했다. 나는 그런 대화를 흐뭇하게 들으며 창가에 기대어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송형민이 말을 걸었다.
“어이, selfish한 학생.”
“…재미없어요.”
“월요일에 학교 가면 선생님들께 꼭 전해줄게. 생물 전공 대표의 개그는 차원이 달랐다고.”
싱글벙글 웃는 송형민을 보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내일은 주말. 부디 주말 동안 엄청난 일이 일어나서 다들 이 개그 따위는 잊어버리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자, 다들 안전벨트 매고. 피곤했을 텐데 가는 길에 좀 자두렴.”
“네에!”
송형민은 학생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리곤 “쌤도 좀 피곤해서 따로 앉을게.”라고 말하더니 앞자리로 이동했다.
‘이제 좀 조용히 갈 수 있겠네.’
그제야 해방되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버스 안도 점차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슬쩍 뒤를 보니 다들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창가에 머리를 대고 있으니 덜덜 떨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저 멀리 모교가 보였다. 한때 내 전부였던 곳.
‘함께 연구해 보지 않겠나?’
대학 로고가 점점 멀어져갔지만, 김성진의 목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까 나눴던 대화들을 다시 되새겨보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여보세요?”
[…내일 옴?]이재성이었다. 평소 전화나 문자 따위는 전혀 안 하던 놈이었는데, 무슨 일이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일? 연구소? 아마 이번 주는 못 갈 것 같은데. 이제 곧 있으면 중간고사여서.”
[…정 없는 놈.]“뭔데, 갑자기. 우리 그날 약속 있었던가?”
[…? 너 소식 못 들었어?]이재성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당황한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뭐야. 내일 무슨 일인데?”
[송별회한다던데.]“송별회? 누구 송별회?”
[…박성민 연구원님 송별회.]“에?”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