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68)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68화(68/221)
68. 각자의 사정 (4)
68. 각자의 사정 (4)
담임과의 대학 상담을 마치고 난 뒤, 나는 머리를 식힐 겸 바로 운동장으로 나왔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난 직후라 그런지 특별반 수업은 조금 널널하게 진행되었다.
“담임이랑 무슨 말 했어?”
“뭐, 그냥 대학 얘기지.”
“아, 부럽다. 만덕이 너는 걍 프리패스 아니냐? 가고 싶은데 골라 가면 되잖아.”
이인성이 사과 주스를 빨대로 쭉 들이마시며 크으, 소리를 냈다.
“무슨 사과 주스를 소주처럼 마시고 그래. 너희도 성적 나쁜 편은 아니잖아.”
“너 덕에 물론 성적 자체는 어느정도 올렸지만 뭐랄까···딱히 가고 싶은데가 없달까.”
실제로 쌍둥이들은 성적이 준수한 편이었다. 수학이 발목을 잡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나와 함께 스터디를 하며 어느정도 극복된 상황.
이인영의 경우 유명 공대에 진학할 성적 정도는 얼추 맞춰진 상황이었다.
“하여간 평소에 생각이란걸 좀 하고 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진짜 노답이다.”
“뭐래? 지도 못 정한 주제에.”
“나는 너랑 다르거든? 오히려 가고 싶은데가 너무 많아서 고르고 있는거랑 어떻게 같냐?”
“예예, 결국 못 정했다는 소리 잘 포장하셨고요~”
이인성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쩐지 요새 기운이 없어 보인다고 했더니 이런 고민을 하느라 복잡한 듯 했다.
“난 오히려 인성이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상? 그럼 나는 비정상이라는거야?”
내 말에 이인영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저번부터 왜 자꾸 얘 편만 드냐는 눈치다. 하지만 연구실에서도 그런 사람은 많았다.
‘여긴 내 길이 아닌가봐.’
‘그냥 취직 잘 되는 과로 전과하려고. 내가 생각했던거랑 너무 다르네.’
‘박사과정까지 생각하고 온 거긴 한데···현실적으로 좀 힘들 것 같아서.’
너무 빨리 전공을 정했던 탓일까, 혹은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한 상태에서 전공을 정했던 탓일까. 생각보다 전공을 바꾸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나마 전공을 바꿔 적응을 하면 다행이었지만 바꾼 전공마저도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 두는 경우도 허다했다.
전생때는 집안 사정상 의대를 선택한 이인성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과학고에서 의대를 가는 걸 못마땅해하던 이인성이었으니, 더더욱 의대를 갈 이유는 없을 터.
“물리 잘하니까 물리쪽으로 가보는 건 어때?”
“엄···그것도 생각 안해본 건 아닌데, 뭐랄까. 내 성격이랑 안맞는다고 해야하나. 하루종일 연구실에 있는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진이 빠져.”
체험학습으로 광공학 연구실이 그다지 마음에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애초에 활발하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이인성의 입장에서 하루종일 샘플과 씨름을 해야하는 연구원의 생활은 맞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인영이 너는? 이번에 체험학습때 간 연구실 어땠어?”
“음···나는 좋았어. 적당히 연구원들 사이에 있는 선도, 각자 맡은 부분에서 연구를 하다가 또 모일때는 협력한다는 부분도. 너는?”
“나?”
쌍둥이들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이인영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나는···좋았어.”
“그럴 줄 알았다. 또 전처럼 생물 관련한 이야기 나왔다고 막 흥분해서 말하고 그런건 아니지?”
“전혀 안 그랬거든. 그리고 내가 언제 그랬다고?”
“뭐야. 진짜 기억 못 하는거야? 처음 만난 날 막 칠판 앞에 나와서 ‘반박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하면서-”
이인성이 칠판에 뭔가를 열심히 적는 듯한 흉내를 냈다. 그 모습을 보니 목덜미가 뜨거워지는게 열이 오르는 것 같다. 내가 진짜 저랬다고? 의심가득한 눈으로 이인영을 바라봤다. 이인영은 열띠게 ‘김만덕’ 흉내를 내고 있는 혈육을 보며 말했다.
“야. 하나도 안 똑같거든?”
역시 내편은 이인영밖에 없다. 감동받은 눈으로 이인영을 바라봤다.
“아, 왜! 너도 봐서 알거 아냐. 그때 얘 눈빛이 맛이 갔었다니까?”
“그니까 지금 광기가 안 서려있잖아. 더 눈깔 뒤집고 따라해야지.”
···내편이라고 했던 거 취소. 이인영은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이인성과 함께 내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진짜 쌍둥이 아니랄까봐.
그렇게 한참을 웃고 떠드던 우리는 문득 운동장 하늘이 어두워진 걸 확인했다. 이제는 안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이제 낮이 짧다. 그치?”
“그러게. 이제 곧 있으면 또 겨울이야.”
“뭔가 아쉽네. 딱히 뭐 한게 없는 것 같은데 시간만 훅훅 지나가는 것 같아.”
이인영이 학교 가디건을 여미며 말했다. 우리는 다 마신 사과 주스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반으로 향했다.
“졸업하고도 꼭 연락하고 지내면 좋겠다.”
“응?”
“그게 그렇잖아. 우리는 전공도 다 다르고, 나랑 얘는 보기 싫어도 집에서 보겠지만···너는 아니잖아.”
“뭐래? 나는 졸업하면 바로 자취할거거든? 아침마다 니 얼굴 볼 바엔-악!”
이인영이 가볍게 이인성을 제압하며 말을 이었다. 나름 분위기 잡는다고 말했는데 이인성이 산통을 깨버렸다. 결국 진지한 분위기에서 말하는 걸 포기한 이인영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러니가 나중에 성공했다고 모른 척하기 없기라고. 알았어?”
“성공은 무슨···너희야 말로 연락 안하면 모를까.”
내가 볼 때 금수저 집안의 자식들인 쌍둥이들이 먼저 연락을 끊으면 끊었지 내가 먼저 끊을 이유는 없었다. 이 둘은 내가 과거로 회귀해서 다행이라고 느끼게 해 준 사람들이기도 했으니까.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람을 멀리 하던 그때의 나. 만약 이 둘이 없었다면 나는 과거로 돌아왔어도 다시 똑같은 상황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다시 또 사람을 믿지 못하고, 상처주고 헐뜯는 말을 일삼았겠지. 이인성은 내 말에 과장된 리액션을 하며 대꾸했다.
“너 우리 학교에서 뭐라고 불리는 지는 알고 하는 말이야?”
“뭐라고 불리는데?”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 그것도 너라면 물리, 화학, 생리학상 다 받을 거라고 3관왕이라고 부르던데.”
“뭔 말도 안 되는···?”
나도 모르고 있던 내 별명에 경악했다. 셋 중 하나도 어려운데 세 개를 다 받는다고?
“인성아, 그… 노벨상이란게 쉬운게 아니에요, 각 분야에서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발견을 한 사람들만 받게 되는…”
“아니 내가 그렇게 말했다는게 아니라! 애들이, 애들이 그랬다고!”
“꺄하핳, 김만덕 갑자기 또 애늙은이 모드 됐어.”
나도 모르게 선생님 같은 말투가 나와버리자, 이인성이 억울하다는 듯이 반박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인영이 옆에서 깔깔댔다. 그렇게 작은 만담을 펼치고 있는데, 자습종이 울렸다.
“그런데 혹시 모르지? 한국인 최초 노벨상 받을지도.”
“이미 우리나라 노벨상 받았는데.”
“아니, 내말은 과학 분야에서 말이야!”
“그래! 3관왕까진 아니어도 하나정도는 받을 수 있을 수도 있잖아!”
이인영이 던진 화두에 이인성이 맞장구를 쳤다. 아직 목소리에 억울함이 담겨있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묘한 확신도 같이 담겨있었다.
노벨상이라. 애초에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상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기보단, 애초에 그런 건 내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진짜 천재들이나 받는 상이라고 생각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 근거는 있고?”
“근거? 음…”
특별반으로 향하기 전, 갈림길에서 이인영이 짐짓 진지한 태도로 고민에 빠졌다.
“근거 있어.”
“뭔데?”
“내가 촉이 좀 좋거든.”
“유사과학은…”
“누구보다 유사과학을 좋아하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이인성이 장난치듯 말을 덧붙였고 쌍둥이들이 킬킬대며 웃었다. 그렇게 특별반으로 가는 길목 내내 둘은 계속 “노벨상 받으면 한턱 쏴라~” 라든가, “그래도 화학분야는 건들지 마라?” 라든가, 유치한 소리를 쏟아냈고, 마침 지나가던 박민철이 그 소리를 듣고는,
“키야, 나중에 인터뷰하면 꼭 위대하신 박민철 선생님 덕이라고 말해라?”
“…아 제발요.”
쐐기를 박았다.
…평화롭고, 부끄러운 일상의 모습이었다.
*
“만덕이 이번에도 1등 했다며?”
특별반 수업. 송형민이 웃으며 들어오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체험학습 이후 태도가 좀 변한 느낌이었다. 김성진 교수의 연구실을 다녀온 뒤로 조금 달라진 느낌.
친밀감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불편함은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네.”
“시골 소년의 반란, 뭐 그런건가? 나머지 녀석들도 바짝 긴장해라?”
“하하…”
“잡담은 이정도로 하고 수업 시작해볼까?”
예나 지금이나 그의 화법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나쁜 의도는 아니란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팍팍한 특별반 분위기에서 송형민의 말은 이래나 저래나 긴장감을 풀기엔 적합했다.
약간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그 분위기 안에서 우리는 수업을 시작했다.
‘…쉽다.’
송형민은 칠판에 무어라 적어가며 열심히 설명을 했다. 생명과학Ⅱ에 해당하는 내용은 생물 전공이 아닌 학생들에게는 어려운 내용이었지만…학부와 대학원까지 졸업한 나에겐 너무 쉬운 내용이었다. 애초에 그의 수업을 듣는 건 이번으로 2번째이기도 하고.
“자, 그럼 이 문제는 음··· 만덕이가 풀어볼까?”
송형민이 제시한 문제는 세포 내 소기관의 명칭과 기능에 대한 문제. 사실상 암기를 잘 하고 있다면 누구나 맞출 수 있는 쉬운 문제였다.
“A는 세포핵이고, B는 골지체, C는 리소좀입니다. 소화 효소를 포함하고 있는 소기관을 고르는 문제이기때문에 정답은 C입니다.”
나는 간략하게 해설했다. 애초에 문제에서 묻는게 명확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설명할 내용도 없었다. 하지만 송형민은 내 대답에 꼬리를 잡고 묻기 시작했다.
“소화 효소라는 게 뭔지 더 자세히 설명해줄래?”
“소화 효소는 다른 말로 산성 가수분해효소라고도 불리는 물질로, 단백질, 지질, 탄수화물 등을 포함한 것들을 분해하는 효소 입니다.”
“예를 들면?”
“…프로테아아제스, 리파아제스, 글리코시다아제스 등이 있습니다.”
“이야, 구체적인 소화 효소까지 다 외웠네.”
송형민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칠판에 세포 소기관의 명칭과 기능들을 판서하기 시작했다. 특별반 학생들은 그 내용을 다시 노트에 옮겨 적었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으니까. 그는 등을 돌린 상태에서 필기를 하다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생물을 고른거야? 이유가 있니?”
“네? 저요?”
“그럼 여기 너 말고 생물 전공이 또 있으려고.”
고개를 돌리며 웃는 송형민.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한 나를 보며 그가 웃었다. 특별반에서 생물과는 단 한명. 나뿐이었다.
수업을 듣고 있던 다른 학생들도 내심 궁금했는지, 나를 바라봤다. 최한별도 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진 않았지만 신경쓰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치매를 치료하고 싶어서요.”
“치매?”
“네. 그런데 좀 더 본질적인 치료법을 개발하고 싶어요. 치매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오호라···”
‘치매’라는 말이 나오자 최한별이 살짝 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내 말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게 느껴졌다. 송형민은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치더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데 치매를 치료하는게 가능한가? 뭐랄까 너무 먼 이야기 같아서. 정작 우리는 감기 하나도 치료 못하고 있는 현실이잖니.”
“…감기는 바이러스가 원인이죠. 치매는 신경 변성 질환이라 그 원인이 다르고요. 게다가 감기는 애초에 다양한 바이러스들이 작용하다보니 그에 맞는 치료제 찾기도 어렵고 설령 찾았다한들 변종 바이러스가 계속 발생하는 탓에 멸종시키기 더 어려운거고요. 감기랑 치매를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시면 안되죠.”
치매 이야기가 나와서일까, 나는 묘하게 차가워진 말투로 송형민을 대했고,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치매 관련해서 건드리는 건 못 참으니까.
하지만 송형민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만덕이 말처럼 이 두 개를 같은 선상에 두고 보면 안되지. 그런데 말이야. 치료제 하나를 개발하는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 물론 성공하면 그것보다 배로 돈을 벌게 되겠지만 보통 임상 3상에서 꼬꾸라지는 게 흔한 일이지.”
수업과 살짝 다른 이야기에 빠졌지만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때로는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가 수업보다 더 값질때도 있으니까.
“그래서 제약 회사에서도 신약 개발하는 데 있어서 신중을 기하는 편이고. 물론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이 있으면 좋겠지만···나라의 예산도 무한정인건 아닌지라.”
“그래도 대학교나 병원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지 않나요? 치매 치료제가 나온다면 안 살 사람들이 없을 것 같은데.”
“흠…글쎄다. 한번에 낫는 약과 여러번 투약 끝에 낫는 약. 둘 중 뭐가 더 돈이 되겠니?”
“…”
“환자 한명 한명이 돈이 되는 세상인데 마냥 성능 좋은 약을 병원이 반길지는 모르겠네.”
“그게 무슨…”
나는 인상을 쓰며 송형민을 바라봤다. 전생때도 이런 쪽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치매 치료제가 있는데도 돈이 안되니까 판매하지 않는다? 나한테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송형민은 오히려 이런 나를 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과학자도 좋지만 세상 굴러가는 것도 알아둬야지. 표정 풀고 일단 개발부터 하고 생각하자. 그 전에 우리는 이 문제나 마저 풀어야지?”
송형민은 이어서 수업을 시작했고, 다시 반은 집중 모드로 들어갔지만…여전히 나는 찝찝한 표정으로 수업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세상 굴러가는 것. 그건 전생의 나도 잘 몰랐던 일이니까.
“자자, 다들 날씨가 많이 추워진다니까 따뜻하게 입고다녀라.”
“네에”
송형민의 간단한 인사와 함께 수업이 끝났다. 나는 어느덧 해가 져버린 바깥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느덧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