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6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69화(69/221)
69. 영입 (1)
69. 영입 (1)
“먼 길 오느라 수고했네. 오는 길이 어렵지는 않았나?”
“네. 전에도 와봤었어요.”
“전에도? 그때는 버스 타고 단체로 온 거였지 않나?”
주말 오전, 나는 김성진의 개인 연구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익숙한 검은색 가죽 소파가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전생때 제집처럼 자주 왔었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이 상황을 무마시켰다. 김성진도 으레 하는 이야기라 생각했던건지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할 이야기가 따로 있었기에.
“전에도 말했지만…나는 생각보다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일세.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법이지.”
“네.”
김성진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네를 이렇게 부른 이유는 자네 연구 때문이네. 사실 유전자 편집 기술 자체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네. 꽤나 전에 나왔던 기술이었지. 하지만 여러가지 부작용과 윤리적 문제.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부작용들까지. 이런 여러가지 장애물들 때문에 쉽사리 생물학계에서도 도입하지 못하고 있던게야.”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네는 그 기술을 이용해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축적을 유의미하게 줄였네.”
테이블 위 올려진 둥굴레차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김성진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그 위에서 손가락을 천천히 까딱이기 시작했다.
“기사에는 실리지 않은 연구 내용에 대해 더 들어보고 싶네.”
그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검은색 안경테 뒤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는 40대 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생기가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열정을 오롯이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나 역시도 카이스트 기자 백가영이 쓴 기사를 안 읽어본 건 아니었다. 그녀가 쓴 기사는 일목요연하고 깔끔했다. 이 분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하더라도 술술 이해할 수 있도록 알기 쉽게 설명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말은 곧, 전문가가 볼 때는 구멍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공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학술적 용어를 설명하느라 지면의 대부분이 사용되기도 했으니까. 그렇기에 박사 과정, 적어도 석사과정을 진행중인 사람이 본다면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기사에는 많은 내용이 생략되어 있었다.
나는 둥글레차를 한모금 마신 후, 천천히 연구 내용을 정리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전에 설명드렸던 내용에서 조금 추가해서 말씀드리자면…그 연구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생성해내는 염색체 내 유전자를 제거하여 단백질 생성량을 줄이는 방향의 연구였습니다.”
“그리고 그 유전자는 ‘우연히’ 발견되어진거고?”
“…네.”
나는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어차피 여기서 그가 이상함을 느끼고 반론을 제기해봤자 대답해 줄 수 있는게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려면 김영재가 전생에 발표했던 논문을 제시해야하지만…지금은 너무 일러.’
김영재는 최근들어 유전 공학, 그 중에서도 자신의 본 전공이나 다름없는 유전자 편집 기술과 관련해 난항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박성민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연구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게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래도 만덕이 너 덕분에 꿈에 대해 확신이 생겼어. 솔직히 이 분야에 대해선 내가 할 수 있는 건 논문을 찾아 읽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거든. 정말 고마워.’
그는 내게 연신 고마워했다. 내년이면 조기 졸업을 하고, 높은 확률로 김영재는 좋은 대학교에 갈 터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유전 공학에 대해 공부하겠지.
하지만 그걸론 부족하다.
“사실 완전히 우연히라고 할 순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유전자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있어 도움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사뭇 달라진 내 태도에 김성진이 냉철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는 더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전에는 분명 운이 좋아서 발견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거짓말이었나?”
“거짓말이라기보단… 운이 좋아서 발견한 것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어서 그랬습니다. 그 기사 속에는 저만 나와있지만 사실 그 앞에 먼저 발표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발표한 사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에서 김영재의 연구 노트와 포트폴리오를 꺼냈다. 김성진의 연구소에 오기 전날, 동아리 시간에 김영재로부터 받은 것들이었다.
‘근데 이걸 갑자기 왜?’
‘교수님한테 보여드리려고요.’
‘!?’
갑작스러운 내 발언에 김영재는 당황한 듯 포트폴리오를 내게 내밀다가 꽉 쥔채로 놓지 않았다.
‘교, 교수님한테는 왜? 갑자기?’
‘선배도 연구실 필요하지 않아요? 새 연구실 구해야죠.’
‘아니 그렇게 말해도…’
마치 집 구하듯 연구실을 구하려는 내 발언에 김영재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안그래도 박성민 연구원이 떠나고 갈 곳 없는 처지인 건 맞지만 이런식일 줄은 예상도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박성민 연구실을 이용하기 전 김영재가 적었던 연구노트는 사실 그냥 아이디어 모음집에 불과했다. 구체적인 실험 내용은 없고 ‘이렇게 된다면?’ ‘예상 부작용은?’ 정도였으니까.
만약 김영재의 전공이 생물이 아니라 물리나 수학이었다면 이 연구노트는 가치가 있었을 수도 있다. 물리같은 경우에는 사고 실험으로도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생물같은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이 일어났다. 특히 유전자와 같이 미시적으로 일어나는 분야에서는 더더욱.
‘선배 연구실에서 박성민 연구원님이랑 같이 연구 진행한 거 있지 않아요? 전에 언뜻 들으니까 같이 논문까지 작성한다고 들었는데.’
‘어? 어. 같이 논문 작성까지는 아니고…그냥 아카이브에 기고해볼까, 하는 말만 오갔지 올리지는 않았어. 애초에 그렇게 대단한 내용도 아니고.’
아카이브. 논문에 본격적으로 올리기 전에 다양한 비판을 듣고 토론을 하고자 먼저 올리는 곳이었다. 일부 괴짜들은 유명한 저널에 올리는 것 대신 아카이브에 올리는 것으로 퉁치는 경우도 있었다.
김영재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그가 미래에 보여줄 엄청난 업적을.
‘선배. 저는 살면서 운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운보다 더 중요한게 뭔지 아세요?’
‘어?’
‘운이 왔을 때 잡는 능력이요.’
김영재는 운이 없었다. 그렇기에 대학에 가서도, 석박사 과정을 진행하면서도 유전자 편집과 관련한 논문은 빛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는 미진한 관심속에서 엄청난 결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만약 그에게 좀 더 좋은 시설이 있었다면, 좀 더 이 연구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래서 그의 전생에 냈던 논문이 조금 더 일찍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면?
“흐음…”
김성진은 받아든 연구 노트를 찬찬히 훑었다. 김영재는 자신의 연구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기에 연구노트를 내미는 순간까지도 떨떠름한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된다고.
탁, 소리를 내며 김성진이 노트를 덮었다. 그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이리저리 섞여있었다. 나는 그 표정을 이미 알고있었다. 전생때도 그는 김영재의 논문을 읽고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이걸 나한테 보여준 목적은? 단순히 유전자 위치를 알아낸 이유를 말하려는 거면 굳이 연구노트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 더군다나 이렇게 두꺼운 포트폴리오까지 들고오고 말이야.”
“이 노트의 주인도 같이 연구에 참여해도 괜찮겠습니까?”
“어디 소속인가?”
“한국과고입니다.”
“허.”
당연히 대학교나 연구실 이름이 나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고등학교 이름이 나오니 김성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수준이 생각보다…수준급이군.”
“감사합니다.”
“이걸 보여준 것 자체가 이미 자네가 짜 둔 판 위라는 소리겠지?”
나는 입꼬리를 씩 끌어올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치매 연구를 하는데 있어서 전생의 정보들을 모조리 이용한다. 그래서 훨씬 더 빠른 상태로 연구를 이어나간다.
그걸 위해서라도 김영재의 연구는 이어져야했다.
“일단 진행중인 프로젝트는 여러개이지만, 김만덕 학생이 참여하는데는 무리가 있을걸세. 지금은 프로젝트 참여보다는 개인 연구쪽으로 생각해보세.”
개인 연구. 효율을 중요시하는 김성진다운 선택이었다.
“그 말인 즉슨 제가 연구실에 있는 기기를 사용해도 괜찮다는 뜻일까요?”
“당연하지. 실험 기기도 안 주고 연구하라는 게 말이 되나?”
오히려 김성진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그였기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놓은 연구 성과만을 보고 이야기하는, 어떻게 보면 한없이 열린 마음의 소유자.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 있길 바라네.”
김성진은 이어서 연구에 대한 설명을 진행했다. 일단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되, 연구 책임자PI(Principal Investigator)는 김성진의 이름을 올려놓기로 했다.
“단 기기 사용은 우리 연구실만 독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게 아니니 다른 연구실하고도 협의해야할거야.”
“그건 문제 없습니다.”
단호한 내 말투에 김성진은 묘하게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연구에 대한 큰 주제를 정하고 우리는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해나가기 시작했다.
“베타-아밀로이드 축적을 줄이는 걸 연구 과제로 삼으면 되겠나?”
“음…일단 그 부분은 좀 더 생각해봐도 괜찮을까요?”
“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는건가?”
김성진의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전에도 단편적으로 치매의 원인이 되는 베타-아밀로이드의 단백질의 양을 줄이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치매는 생각보다 복잡한 병이었다.
‘전생에도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생성하는 유전인자를 제거하는 걸 주 연구과제로 삼았었지만 크게 유의미한 결과는 나타내지 못했지.’
지금 당장 내가 했던 연구를 봐도 알 수 있었다. 물론 단백질 자체는 감소했을지라도 얼마 안가 실험쥐도 같이 사망했으니까. 한마디로 치매를 치료하려다가 목숨 자체가 위협당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 서둘러서 했다간 오히려 더 멀리가게 되는게 연구니까 말이야. 다음에는 그 학생도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군.”
김성진은 김영재의 연구 노트를 가리켰다. 그의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김영재를 본격적으로 연구에 투입시킨다. 연구실은 최첨단 시설로 확보되었다. 거기다 김성진으로부터 하버드 대학 진학을 위한 추천서까지.
그렇게 한동안 연구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문득 시계를 바라봤다.
“오늘 점심 약속이 있어서 말이지. 마음같아서는 밥 한끼라도 사주고 싶지만…”
“괘, 괜찮습니다! 드시고 오십쇼!”
“그럼 잠깐 실례하지.”
하마터면 김성진과 단둘이 밥을 먹을 뻔 했다. 그랬다가는 체했을지도 몰라. 나는 마음을 쓸어내리며 그의 개인 연구실을 나왔다.
‘그래, 어차피 기기 사용과 관련해서 예약도 걸어놔야하니까.’
박성민때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비싼 기기들은 여러 연구실이 공용으로 사용했다. 그렇기에 인기 많은 기계는 미리 예약을 잡아두는게 필수였다.
그렇게 익숙한 길을 따라 걸어갔고, 나는 거기서 익숙한 얼굴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라? 너는…그때 그 전공 대표?”
“찬형이 형, 이 다음 타임에 예약해둔 거 확실해요? 여기 우리 연구실 이름이…어?”
연구실 투어를 도와주었던 최찬형과 쥐 소동의 원인이었던 김영훈이 서있었다. 그 둘은 귀신을 본 것 마냥 두 눈을 비비더니 나를 보고 한차례 더 고개를 갸웃했다.
“안녕하세요.”
“어…그래. 근데 여기는 무슨 일이야?”
“설마 그때 쥐 사건때문에 오늘 불려온 건…? 에이, 설마. 아니지?”
김영훈이 오싹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의 손등에는 캐릭터 밴드가 아기자기하게 붙여져있었다.
“아. 쥐 때문은 아니고 교수님께서 부르셔서요.”
“교수님? 김성진 교수님 말이야?”
최찬형이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되물었다. 나는 허허, 웃으며 난감한 듯 둘을 쳐다봤다.
이걸 사실대로 말하자니 뭔가 그렇다. 그렇다고 둘러대자니 할 말이 없다.
“혹시 너 김성진 교수님의…아들?”
“장난하냐. 교수님 아들은 7살이야, 7살!”
“아니 혹시 모르잖아요! 숨겨진 아들일지! 그리고 묘하게 둘이 닮았단 말이에요.”
“…!”
쑥덕이는 둘의 이야기를 들으니 사실대로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건 몰라도 부자지간이라니. 김성진 교수는 나름 훈훈하게 생긴 편이었지만…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봐봐요, 지금도 표정 썩어들어가는게 꼭-”
“개인 연구를 진행하게 되어서요.”
“…개인 연구?”
내 말에 둘이 쑥덕거리던 걸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표정에는 물음표가 무수히 많이 띄워져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랩실 선배님들.”
엥? 소리를 내는 김영훈과 최찬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