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7)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7화(7/221)
7. 배치고사 (2)
7. 배치고사 (2)
사각사각.
교실에는 샤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에도 쪽지 시험을 치긴 했지만 그것과는 무게가 다른 시험이었다.
배치고사. 원래 목적은 단순 반 배정을 위한 시험이겠지만… 한국 과고에서는 그 의미가 달랐다.
이번 시험을 통해 보충반과 특별반이 나뉘어 질 것이다. 둘 다 남들과 다른 혜택을 받는다는 점에선 같았지만,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 점에서 의미가 달랐다.
상위 5%, 1학년 정원이 총 120명인 관계로 6등까지는 특별반 소속이 된다.
‘단순히 특별반이 된다고 감투만 얻는 게 아니야. 각종 대회 출전 기회와 장학금, 해외 연수 등 특전이 우선적으로 주어진다.’
다들 바짝 긴장한 얼굴로 분주히 손을 놀렸다. 시험지에 인쇄된 그래프를 해석하고, 분석하고, 저마다 문제를 푸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문제를 푸는 학생들과 대조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저 문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답을 찍는 학생들.
그런 경우는 보통 둘 중 하나였다.
공부를 안 해서 찍었거나,
암산으로 다 풀었거나.
지금은 어느 쪽인지 장담할 수 없었지만 어차피 곧 밝혀질 터였다. 둘 중 하나라면 결과도 보충반 혹은 특별반일 테니까.
‘…보충반은 다신 가고 싶지 않은데.’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사배자 전형으로 간신히 입학했던 나는 과고식 시험에 대해 무지했다. 중학교 때 하던 만큼으로만 공부하면 당연히 성적이 오를 거라고 생각했다.
전혀 다른 시험 유형.
압도적으로 부족한 시험 시간.
도저히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도 안 오는 문제 난이도까지.
학원에서 12시간 이상 훈련 받아온 학생들과 경쟁조차 불가능했다. 그렇게 첫 배치고사에서 나는 120등을 했다. 한마디로 전교 꼴등을 했다는 소리다.
‘그때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 그래도 0점이 나온 것도 아닌데 전교 꼴등이라니.’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은 온갖 천재, 괴수들만 모인다는 한국과고. 이미 공부에 손 놓은 학생들은 입학조차 불가능한 학교였다.
어떻게 보면 입학한 내가 이상한 정도였으니까.
물론 이렇게 힘들게 입학하고 나서도 중간에 삐딱선을 타는 학생들은 존재했다. 뒤늦은 사춘기가 온 녀석들도 있었고 수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아예 학업을 놓아버리는 놈들도 있었다.
그 녀석들 덕분에 전교 꼴등을 면하게 되었지만 ‘보충반’이라는 꼬리표는 내가 졸업할 때까지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보충반이 마냥 나쁜 건 아니었어. 오히려 선생님들로부터 집중 케어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한국 과고는 국내에서 명문고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학교였던 만큼, 낙제생 관리도 철저하게 들어갔다. 혹시라도 한국 과고 졸업생이 변변찮은 대학에 다니게 된다면 그것 역시 학교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는 걸 테니 말이다.
보충반에서 기초를 다지고 난 뒤, 어느 정도 공부에 요령이 생긴 나는 다행히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보충반에 있었던 기간은 한 학기 남짓.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후 나는 조기 졸업할 성적까지 맞출 수 있었다. 애초에 처음에 그런 취급을 받고 난 뒤, 나는 더욱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리기도 했으니까.
‘킥킥. 쟤 좀 봐. 보충반이래.’
‘와. 쟤는 진짜 여기 어떻게 온 거래?’
‘기생수잖아. 기초생활수급자. 가난한 이유가 뭐겠어? 집안 머리가 나쁜 거겠지. 유전자 어디 안 간다니까? 그래도 쟤가 바닥 깔아줘서 다행이지 뭐.’
보충반에서 수업을 듣던 시절. 사람들은 나를 보고 비웃었다. 손가락질했다. 한심하게 여겼다. 부모 욕도 서슴없이 했다.
‘전교 꼴등이라고? 아… 같은 팀 안되면 좋겠다.’
‘어차피 너 수업 안 듣지 않아? 그냥 유기화학책 나 주면 안 돼?’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고 들어가라.’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동급생부터 내 교재들을 탐내는 승냥이들까지. 심지어 선생님 중 몇몇은 내가 앞에서 문제를 풀 차례가 되면 돌려보내기도 했다.
‘두 번 다신 그러지 않아.’
이런 모욕을 당했을 때 처음엔 부끄러웠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 시험을 못 쳐서, 머리가 나빠서 사람들이 이렇게 대하는구나, 내가 못나서 부모님까지 욕을 먹는구나…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곤 억울했다. 쟤네는 학원에서 미리 비슷한 문제들만 수천 개 풀고 왔을 텐데 어떻게 경쟁을 하라는 거지? 내가 사배자 전형으로 들어온 게 그렇게 나쁜 건가? 그렇다면 애초에 왜 사배자 전형이 왜 있는 건데?
그런 일련의 감정을 겪고 난 후, 내게 남은 건 분노였다.
‘고작 몇 문제 더 맞혔다고 사람을 이렇게 깔보는 게 당연한 건가? 시험을 못 본 사람은 이런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한 거냐고!’
‘두고 봐.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너희보다 내가 더 똑똑하다는 걸 증명해 보일 테니까.’
그렇게 120등에서 10등까지 올렸다. 전교 꼴등에서 10등까지. 그리고 그다음 시험 때는 5등. 그리고 그다음엔 2등.
‘…전교 1등 축하한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잃어버린 게 너무 많았었다. 사람에 대한 신뢰, 공동체 의식, 유대감 따위는 오래전에 버린 상태였다. 누군가 나를 공격하는 듯한 느낌이면 먼저 달려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여유가 없이 늘 긴장 상태에 있는, 미치기 직전의 상태였다.
시험 종료령이 울려 퍼졌다. 몇몇 학생들이 안절부절못한 채로 OMR에 마킹하고 있었다.
“자! 다들 양손 머리 위로 올려라. 지금부터 마킹할 경우 부정행위로 간주하겠다. 0점 받고 싶지 않으면 당장 손 떼!”
감독관의 불호령에 학생들이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교실 안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다들 배치고사 수고했다. 임시 담임쌤 오시거든 종례하고.”
OMR과 시험지를 챙긴 감독관이 나가자 몇몇 학생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흐,흑. 마, 망했어. 뒤에 하나도 마킹 못했, 흑.”
“하, 존나 어렵네. 시험 치는데 땀나서 에어컨 틀어달라고 할 뻔.”
“17번 답 몇 번 했어? 나 마지막까지 계속 고민하다가…”
시험이 끝난 학생 중 몇몇은 시험지를 들고 서로 답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전생을 이미 겪어본 나는 이제 곧 ‘그것’이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
“얘들아. 성적표 나왔다.”
“벌써요?!”
성적표. 한국 과고 내에서 자체적으로 치러지는 시험인 만큼 교사들은 OMR을 바로바로 돌렸다. 그 결과 모든 학생의 성적이 실시간으로 채점 가능했다.
임시 담임인 김영환은 실처럼 길게 잘려진 종이를 손에 쥐고 번호순으로 학생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에 있는 과목부터 국어, 수학, 영어,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이다. 1번 강민우.”
“넵!”
잽싸게 앞으로 나간 녀석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다. 마치 살면서 이런 등수는 처음 본다는 눈이었다.
“선생님 혹시…”
“채점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다음 2번 권원석!”
다른 고등학교들이 국어, 영어, 수학만 본다면 한국 과학고는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도 각각 시험을 쳤다. 나중에 학생들에게 더 적성에 맞는 전공을 미리 고르게 한다는 취지였다.
‘국어는 그렇다쳐도 영어랑 생명과학은 잘 나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적어도 전생부터 갈고 닦아온 두 과목만큼은 배신하지 않았길 바라며 나는 내 순서를 기다렸다.
“5번. 김만덕.”
“네.”
앞으로 나갔는데, 김영환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는 미간을 좁힌 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류인가?”
“네?”
“아니다. 받아가도록.”
떨떠름한 목소리로 성적표를 건넸다. 그리고 받아 든 성적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국어 4/120수학 1/120
영어 5/120
물리 2/120
화학 1/120
생명과학 1/120
지구과학 3/120]
“와, 미친.”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생각보다 훨씬 웃도는 성적이었다.
‘끽해야 전교 10등 안쪽으로 들 거라 생각했는데. 수학이 1등이라고? 화학도 1등이네?’
생물이 1등인 건 확신하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 나보다 생물, 즉 생명과학을 잘 하는 학생은 없을테니까.
그런데 수학과 화학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수학은 그렇다쳐도 화학은 이인영이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물리 2등이라는 건 1등은 역시 이인성이란 말이겠지? 역시 물리 괴수…?’
그 순간, 이인성과 이인영이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동시에 누군가를 찾는 듯 고개를 홱홱 젓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뭐, 뭐야. 왜 이쪽으로 오는 건데.
“김만덕. 성적표 좀 보여줘라.”
“뭐? 싫어.”
“제발. 지금 여기에 우리 자존심이 걸려있어서 그래.”
‘우리?’ 평소에 이인성과 엮이는 걸 죽는 것보다 싫어하던 이인영이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나오자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는 성적표를 뒤로 숨겼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사람들 시선을 끌어봤자 좋을 거 없어. 게다가 이인영이 대충 뭐 때문에 흥분했는지도 알 것 같고.’
이인영은 겉보기와 다르게 매우 자존심이 쎈 타입이었다. 또 승부욕도 더럽게 센 편이라 지는 걸 누구보다도 싫어했다.
그런데 만약 내가 화학 1등한 걸 알게 된다면? 분명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었다. 소리를 지르지 않더라도 별로 좋지 않은 일이 펼쳐질 게 뻔했다.
그렇게 이인영과 성적표로 씨름을 하고 있는데, 옆 반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야! 최한별이 전교 1등이래!”
“뭐? 그 엄청 이쁜 애?”
“뭐야, 얼굴도 이쁜데 공부까지 잘한다고?”
최한별에 대한 이야기로 반 분위기가 떠들썩해졌다. 교탁 앞에 서있던 김영환은 다른 반 학생의 소란으로 인해 불편한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여기가 아직도 중학교인가?”
“…죄송합니다.”
“거기 둘. 너희도 나가. 타 반 학생 출입금지다.”
김영환은 이인성과 이인영을 가리켰다. 그 탓에 쌍둥이들은 내게서 눈을 고정한 채 뒷걸음질로 반을 빠져나갔다. 나가는 그 순간까지도 입모양으로 ‘있다 봐.’를 외치고 있었다.
휴. 간신히 한 숨을 돌린 나는 손에 들린 성적표를 다시 확인했다.
[국어 4/120수학 1/120
영어 5/120
물리 2/120
화학 1/120
생명과학 1/120
지구과학 3/120]
처음 볼 때는 그냥 놀란 마음뿐이었는데, 다시 보니 뿌듯한 마음이 밀려들어왔다.
그동안 해온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라서.
‘새삼 김진수한테 고맙네.’
물론 김진수 역시 내가 가지고 온 네이쳐를 톡톡히 잘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학술지 정리 잘 해놨더라? 물론 이미 연구되고 있는 부분이고 우리 팀에서 진행하기엔 무리가 있는 연구 주제이긴 한데 참고 문헌으로 넣기에 좋더라. 다른 아이디어 낼 때도 도움되고.’
서로가 서로한테 윈윈인 좋은 딜이었다. 물론 김진수는 성적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생 때와는 다르게 스스로 주제를 선택하고 자료 찾으면서 공부하는 게 즐거워 보였어.’
지금 당장의 결과는 안 좋을지 모르지만 먼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이건 김진수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등수를 다시금 바라봤다.
‘국어는 공부를 안 했으니까 이해해. 그래도 4등이면 나름 선방인데? 영어는 흠, 조금 아쉽네. 아무리 전생 때 논문 읽고 썼더라도 입시 영어랑은 차이가 있다는 건가.’
기본적인 해석과 어휘 문제, 문맥 파악 등 대부분의 문제들이 쉬웠다. 하지만 문법 문제에서 몇 개 헷갈린 게 있었는데 이렇게 등수가 낮을 줄은 몰랐다.
‘물론 5등이 낮은 등수는 아니지만 많이 틀려봐야 1, 2문제 정도일텐데. 과고여도 영어 잘하는 놈들이 많다는 뜻이겠군.’
과학고라고 해서 국어와 영어를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본으로 탑재된 국어와 영어 스킬이 있기 때문에 일반 고등학생들보다는 잘하는 편이었다. 쉽게 말해 다 잘하는 녀석 중에 특히 과학이랑 수학을 더 잘하는 애들을 모아놓은 곳이 과고였다.
‘그리고 물리가 2등이라는 건 1등은 이인성일 거고. 화학이 1등이라니. 나 사실 이쪽으로도 재능이 있는 건가?’
생물을 전공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화학도 끼고 살게 된다. 가끔은 내가 생물학을 공부하는 건지 화학을 공부하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을 만큼 화학과 생물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1등으로 나와버리다니. 새삼 이런 생각이 문득 튀어 올랐다.
‘나, 천잰가?’
하지만 나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로지 이번 시험, 배치고사를 위해서 3주를 태웠다. 자율 시간 때면 자습실로 가서 문제집만 풀었다. 문제집을 다 풀고 나선 쌍둥이들과 스터디를 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문제집도 야금야금 풀었다.
다른 학생들은 R&E다, 학교 탐방이다, 멘토-멘티 프로그램이다 뭐다 학교를 즐기느라 정신이 없을 때 나는 공부만 했다. 자습실에서 치열하게.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놓고 천재라니. 웃기네.’
천재는 그런 게 아니다.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하는 걸 생각해내는 존재. 단순히 이런 시험에서 점수가 좋다고 해서 우쭐대는 건 천재가 아니었다.
만약 진짜 천재가 있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최한별. 그래, 지금 나를 향해 다가오는 저 여자애일 것이다.
잠깐, 최한별이 왜 여기에?
“너야?”
최한별은 나를 보며 물었다. 상황파악이 아직 덜 된 상태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봤다.
‘뭐지? 이 상황은?’
하지만 그녀는 수군대는 주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내게 다시 물었다.
“수학 1등.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