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7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72화(72/221)
72. 전생과 다르게 (1)
72. 전생과 다르게 (1)
“뭐?”
김영재는 단 한글자로 심경을 표현했다. 치매연구라니, 그와는 관련 없는 분야였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 김영재가 유전자 편집 기술과 관련해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건 무리다. 아무리 과거의 정보를 일부 가지고 오고, 과거보다 훨씬 좋은 설비 시설을 마련해준다고 해서 수 년간의 연구 기간이 단 몇달로 줄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노선을 틀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서 이번에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축적량을 유의미하게 줄일 수 있던 거잖아요? 그럼 치매 치료에 있어서 형이 연구할 만한 내용도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니 그건 다른 문제지. 애초에 유전자 편집 기술은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해. 그 중 하나가 치매일 뿐이고.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분야는 농업쪽이야.”
김영재는 생각보다 확고했다. 그런 모습에 나는 불현듯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김영재가 농업에 관심있는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다. 김영재 역시 딱히 나서서 먼저 말하지 않는 성격이다보니, 우리는 연구 동기와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진 않았다.
“형. 근데 왜 하필 농업인지 물어봐도 돼요?”
“어?”
그러나 내 물음에 김영재는 조금 망설이는 눈치였다. 마침 해가 지고 있던 터라 그런지 그의 등 뒤로 어스름히 지는 석양이 분위기를 더욱 가중시켰다.
그리고 약간동안의 침묵. 진지한 얼굴로 그는 말했다.
“이대로면 인류는 멸망할지도 몰라.”
“…예?”
“생각해봐. 최근 들어 말도 안 되는 한파, 말도 안 되는 폭염. 이 모든 게 단순히 기후 문제에 끝날거라 생각해?”
“어…”
예상과는 다른 ‘멸망론’에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는 진지한 얼굴로 두 손으로 턱을 받친 후 말을 이었다.
“이렇게 기후가 바뀌다보면 어떻게 될까? 가장 먼저 생태계, 그것도 식물쪽에서 타격이 오겠지. 폭염에 적응하지 못한 식물들은 자연히 소멸할 거고, 겨울 동안 싹 틀 준비를 갖춰놓지 못한 토지에선 봄이 되어도 제 기능을 못 하겠지.”
“어… 그러니까 지금 형 말은 그날이 오기 전까지 유전자를 변형해서 생존할 수 있는 식물을 만들어 두겠다는 거에요?”
“비슷하지만 좀 달라. 나는 어떤 기후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완전 식물 유전자를 만들 거야.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생태계가 변형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겠지.”
마치 음모론에 대해 맞서는 숨은 집단과 같이 김영재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진지해서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감도 안 왔다.
“…그럼 선배가 생각할 때 언제 그런 기후가 오는데요? 그니까 인류가 멸망할 것 같은 기후요.”
“적어도 20년 안. 최악의 경우엔 10년 안에 올 거라 생각해.”
“진지하게 말한 거죠?”
“완전 진지해.”
세기말 종말론이 끝난 지가 언젠데, 김영재는 21세기 종말론을 신봉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쩐지 좋아하는 소설이나 영화 물어보면 다 아포칼립스 이야기만 한다 했다.
나는 살짝 두통이 이는 것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안심했다. 혹시라도 농업에 엄청난 계기가 있는 거면 치매 쪽을 연구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하기도 뭐했겠지만, 이런 이유라면야.
“선배. 인류가 그렇게 쉽게 멸망할 리가 없잖아요. 갑자기 전 세계가 핵폭탄이라도 던지지 않는 한 갑자기 멸종한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원래 이런 주장은 늘 비판받기 마련이지만, 대비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지.”
이 사람, 말이 안 통한다.
‘하긴, 어떻게 보면 유전 공학 하나 연구해 보겠다고 동아리까지 만든 사람이니까.’
그의 두 눈에서 광기에 가까운 신념이 있는 걸 보며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은 진짜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포기해 줄 생각도 없었다.
나는 김영재의 연구가 계속되길 바라고, 그게 최종적으로 농업이 되었든, 치매가 되었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지금 그는 김성진 교수의 흥미를 끌었고, 나는 이 기회를 그가 놓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선배. 그러면 더더욱 김성진 교수님 연구실이 필요하겠네요.”
“응?”
“생각해 봐요. 형 말대로면 이제 곧 있으면 이상기후도 오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난리도 아닐 텐데, 지금 선배 환경에서 그걸 연구할 여력이 될까요? 이제 대학교에 들어간다고 한들 연구실을 사용할 수 있을 리도 없고요.”
애초에 과학자들은 에고가 강한 집단이다. 자신이 오랫동안 해온 생각을 바꾸려면 엄청난 충격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나는 전략을 바꿨다.
그의 종말론을 비판하는 비판자가 아닌, 신봉자로.
“기후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일어날지도 몰라요.”
“!”
“선배. 나무 하나를 보려고 하지 말고 숲을 봐요. 치매 연구라고 생각해서 배척하는 게 아니라 선배는 유전자를 연구하러 가는 거에요. 그리고 그 연구는 결국 완전, 어…”
“완전 식물.”
“그래요. 그 완전 식물을 만드는 토대가 될거라고요.”
“!!”
내 말에 김영재의 눈이 커졌다. 마치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풀고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선배. 우리는 인류 종말로부터 세상을 구해내는 거에요.”
“…너 종말론 같은 거 안 믿지 않았어?”
“선배.”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인류 종말? 그런거 없다.
10년 뒤에도, 약 20년 뒤에도 인류 종말 따위는 안 일어난다. 생태계 변화도 김영재가 말하는 수준은 아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종말론자였어요.”
“…!”
타앗, 우리는 마치 만화 속 장면처럼 악수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억압과 놀림을 당해오던 주장이 드디어 지지자를 만나 벅차하는, 그런 감정.
그리고 나는 그런 눈빛을 받는 내내 양심이 바늘로 쿡쿡쿡 찔러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동아리실을 빠져나왔다.
*
“네, 이제 곧 출발해요. 도착하려면 좀 시간 걸리니까 쉬고 계세요. 음식 같은거 만들어두지 마시고요.”
[어유, 우리 아들이 오랜만에 온다는데 엄마가 밥은 해둬야지~]새벽 6시. 나는 매표소 창구에서 버스표를 끊고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이 쾌활하고 다정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늘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2월 말에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단 한 번도 내려가지 못했었다. 나는 최대한 짐을 단출하게 챙긴 상태로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다.
수십 대의 버스들이 마치 테트리스를 하듯 각 주차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이제 출발을 앞둔 버스 앞으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이동했다.
‘확실히 아침 공기는 쌀쌀하네.’
기숙사에 있을 때야 뭐, 늘 따뜻한 방에 따뜻한 밥을 먹고 교실로 들어가다 보니 추위에 노출될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나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핫팩 2개를 만지작대며 대합실에 앉아 있었다.
‘집에 내려간다고? 연휴 내내?’
‘집에 도착하면 꼭 연락해. 집에서 놀 때도 연락하고.’
‘음… 전화 잘 안 터지는데.’
‘그런 곳이 대한민국에 어딨냐! 농담도!’
하하 웃는 이인성을 보며 뻘쭘하게 서있자, 점점 표정이 굳는 녀석이었다. 그제야 장난이 아닌 걸 알아챈 이인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대체 어디에 살고 있는 거야? 무슨 전화도 잘 안 터지고, 하루에 버스도 1개만 다닌다고?’
‘비밀.’
어차피 말해줘도 모를 게 뻔하기에 나는 장난스레 웃었다. 서울 외에는 다 시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쌍둥이들한테 내 고향은 존재하지도 않을 터였다.
쌍둥이들이 챙겨준 핫팩을 주머니에서 굴리고 있는데 집으로 가는 버스가 주차장에서 나와 대기소로 왔다. 역시나 이 버스를 타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나를 포함해서 고작 6명.
이러다가 나중엔 버스 노선까지 없어지는 거 아니야? 살짝 불안해하며 자리에 앉는데 차창 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보자기로 보이는 천에 이것저것 싸 들고 이동하는 아주머니부터 버스를 찾지 못해 기사님을 붙들고 물어보고 있는 할아버지. 군복을 입고 버스에 올라타는 청년.
모습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들 표정 속에는 작은 설렘이 깃들어져 있었다.
이윽고 6명의 검표를 마친 버스 기사가 버스 시동을 걸었다. 출발 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간신히 탄 사람까지 태운 후, 그렇게 버스는 출발했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히터의 열기가 버스를 점점 데우고 있었다. 아침부터 이동한 탓에 노곤해진 나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전교 1등. 특별반 입학.
박성민과 함께 연구했던 시간들.
수학학회와 과학의 날 발표에서 받았던 박수갈채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하버드라고? 진심이냐?’
하버드 대학교를 가겠다고 말하던 날,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나를 바라보던 박민철의 모습까지.
과거로 회귀한 뒤, 장애물은 없었다. 모든 일들이 술술 풀려가고 있었다.
‘완벽해. 이대로만 가면 정말로 전생 때는 못 이뤘던 것들을 이룰 수 있을지도.’
치매의 원인을 밝혀낸다. 그리고 치료한다.
언뜻 보면 간단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간단해 보이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쭉 정리하며 생각에 잠겼다.
“휴게소 들렀다가 이동하겠습니다~ 다들 40분까지 모이세요.”
얼마나 생각에 잠겼던 걸까, 어느덧 휴게소 도착 시간이 되었다. 이동하는데 고속버스로만 장장 4시간이다. 내려서 또 버스를 타고 2시간 동안 가야 하는 말도 안 되는 곳.
‘그래도 어머니를 볼 수 있다면야. 이 정도쯤은 10시간이 걸려도 올 수 있어.’
마음 같아서는 여름 방학 때도 가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번 겨울 방학 때도 올림피아드 일정과 김성진 연구실로 인해 바쁠 예정이었기에 지금이 아니면 아마 영영 못 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 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나는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존재인 어머니를 향해 또 긴 버스에 몸을 맡겼다.
“학생, 여기가 종점인디 내리는 거 맞아?”
“아, 넵. 감사합니다.”
중간에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잠시 눈을 붙였을 뿐인데 그사이에 잠에 빠져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입가에 말라붙은 침을 닦아내며 비몽사몽한 상태로 버스에서 내렸다.
그렇게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밟는 순간, 서울보다 훨씬 더 추운 기온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차가운 공기가 뺨에 닿자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오래된 버스 터미널에서 매표소 끊는 창구를 기웃대며 구경하던 일, 대합실 안에 팔고 있는 간이 매점에서 맥반석 계란을 보며 침을 꼴딱 삼키던 일 등.
“만덕아!”
“…!”
고개를 돌려보니 어머니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추운데 나오지 마시라니까요.”
“아이고, 어떻게 안 나와. 하나뿐인 우리 아들이 얼마 만에 오는 건데.”
꼭 쥐어진 손. 또 코끝이 찡해지는 걸 애써 참으며 우리는 집으로 갔다. 여전히 오래되고 낡은 집이었다.
“지붕에 저건 뭐에요?”
“아, 별거 아니야. 어제 비가 좀 많이 왔는데 천장에서 물이 좀 새서.”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구멍 뚫린 천장 밑에는 양동이가 놓여져 있었다. 똑똑 소리를 내며 물이 떨어졌다.
“…어머니. 이 집 몇 년 됐죠?”
“응? 만덕이가 태어나기 전에 지어졌었으니까 좀 됐지? 그리고 옛날 집이어서 더 빨리 낡기도 하고.”
나는 오래되어서 이제 제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집을 바라봤다.
물론 지붕을 고치면 살 수는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어머니. 서울에 올라오시는 건 어떠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서울에 좋은 집을 구해드리고 싶지만, 지금 있는 돈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어머니만 원하신다면 어떤 식으로든 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내 간절한 바람을 듣고는 빙긋 웃으실 뿐이었다. 그리곤 오래될 대로 오래된 낡은 집을 보며 말하셨다.
“만덕아. 그래도 엄마한테는 여기가 고향이고 터전이야. 여기서 만덕이 키우고, 밥도 먹이고. 학교도 보내고.”
“이제 저는 여기 없잖아요.”
“만덕이는 없어도 만덕이를 추억할 건 많지.”
어머니는 웃으며 마당에 있는 것들을 가리켰다. 어릴 적 내가 타던 고물 자전거라든가, 이제 낡아서 쓰지 않는 줄넘기라든가, 어릴 적 물건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여기서 농사일하시면 힘들진 않으세요?”
“농사일이야 뭐 예전부터 해오던 건데 이제와서 힘들건 또 뭐니? 그리고 서울 그 사람 많은 곳은 엄마 모시고 간다 해도 안 가련다.”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에 나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닫았다. 그 모습을 보더니 어머니는 따뜻한 어조로 말하셨다.
“만덕이가 꿈을 이루려고 서울에 간 것처럼, 엄마도 여기가 좋아. 만덕이처럼 꿈이 있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맘 편하고 마을 사람들도 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라 맘 붙일 수 있어서 좋고.”
어머니 말처럼 마을 사람들은 우리 가족에게 다정했다. 아버지가 어마어마한 빚을 남기고 돌아가셨을 때도 다들 앞장서서 우리 집을 도와주려고 했었으니까. 집이 어렵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것도 없었고.
“…네. 죄송해요.”
“죄송할 건 또 뭐 있니? 됐고 어서 집에 들어가서 밥이나 먹자. 만덕이 좋아하는 고등어 조림 해놨어.”
“무 많아요?”
“당연하지. 큼직하게 썰어서 넣어뒀다.”
헤헤, 맛있겠다. 나는 헤실헤실 웃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이미 따뜻하게 데워진 방. 밥상을 들고 온 어머니는 노란 양은 냄비 뚜껑을 열었다.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러운 고등어조림과 흰 쌀밥.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었다. 순식간에 먹는 내 모습을 어머니는 그저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추석 연휴 첫날이 지나고 추석 당일이 찾아왔다.
“어머니, 뭐 잊으신 건 없으시죠?”
“없어, 없어. 그나저나 안 가도 된다니까 그러네. 지난주에 갔다 왔다니까?”
“거기 말고 이번엔 좀 더 큰 병원에 가봐요.”
“아이고, 큰 병원이면 돈 더 많이 드는 거 아니야? 얘는 건강하다는 데도 자꾸 병원에 데려가려고 안달인 거라니? 게다가 그 병원은 추석 당일에도 일을 한다니? 거기는 쉬지도 않어?”
“원래 명절에 아픈 사람이 더 많은 법이니까요.”
여전히 불편한 듯 가방을 챙기던 어머니를 데리고 시내 병원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자는 말에 어머니는 진심으로 화난 목소리로 나를 꾸중하셨다.
“만덕아. 너가 이번에 장학금을 받고 또 연구비인가 뭔가로 돈을 받는 건 알겠지만, 함부로 쓰면 안 돼. 돈 쓰는 것도 다 습관이다. 자꾸 쓰는 버릇 들이면 나중에 가서 못 고쳐.”
순간 ‘펑펑 쓰더라도 줄지 않을 돈이라면요?’라는 소리가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꾹 삼켰다. 괜히 낭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드렸다간 서울에 올라가서도 걱정을 이만저만하실 게 눈에 선했기에.
‘안 그래도 시내 큰 병원에 가는 것도 마뜩찮아하시는 상황인데, 여기서 더 미운털이 박혔다간 병원도 취소하고 집으로 가실지도 몰라.’
결국 어머니의 말을 따르기로 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긴 여정 끝에 우리는 병원에 도착했고,
꽤나 진지한 표정의 의사와 마주했다.
“방금 X-ray를 찍어봤는데 왼쪽 유방에 멍울이 있네요.”
“멍울이요?”
의사는 모니터 상에 띄워진 X-ray 화면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단순 물혹일 수도 있고 유방암일 수도 있습니다. 정밀 검사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네요.”
“정밀 검사는 바로 받아볼 수 있나요?”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에 받아보실 수 있고, 초음파 검사는 바로 가능합니다.”
“아유, 물혹이야, 물혹. 내 몸 내가 제일 잘 알지.”
나를 안심시키는 어머니였지만 내 결정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바로 정밀 검사 받아볼게요.”
“얘도 참! 정밀 검사가 얼마나 비싼-”
“엄마.”
만류하는 어머니의 말을 끊었다. 아마 처음일 거다. 아니, 전생까지 포함하면 이번이 두 번째.
‘대체 왜 검사 안 받으셨던 거에요! 제가 돈 보내드렸잖아요!’
‘아니, 그냥 나이 들어서 저절로 아픈 건데 좀 쉬면 나으니까 그랬지… 그리고 너가 어떻게 번 돈인데-’
‘말기라잖아요, 말기! 말기래요… 엄마…’
어머니 세 글자로 부르기엔 벅찬 마음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나온 엄마란 단어.
손에 땀이 나는 듯 했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다르게 만들 것이다.
“하여튼 더이상 헛돈 쓰지 말고 어서 집에 가자.”
“엄마.”
나는 어머니의 양손을 맞잡고 말했다.
“저 이번에 해외 유학생 장학금 받을 것 같아요.”
“응? 해외 유학? 그러면 만덕이 미국 가는 거니?! 어머나!”
방금까지 정밀 검사 이야기에 인상을 쓰고 있던 모습이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어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하셨다. 유학에 대해 더 말하려고 하시는 찰나,
나는 찬물을 부었다.
“근데 엄마가 아프면 저 유학 안 갈래요.”
“뭐?”
“정밀 검사 받아볼 정도로 아픈데 제가 어딜가요. 안 갈게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가 유학 이런거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가기 힘든 거 아니야? 그런데 안 간다고?”
금세 엄한 목소리로 나를 다그치는 어머니였다. 언제나 어머니 말에 늘 져드리는 아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그러니까 검사 받고 아무것도 아닌 거 확인되면 유학 갈게요.”
“아니, 얘가…”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반항을 했다. 불속성 효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