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7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73화(73/221)
73. 전생과 다르게 (2)
73. 전생과 다르게 (2)
단호한 내 말에 어머니는 결국 백기를 드셨다. 여러 가지 정밀 검사를 받고 난 뒤, 우리는 ‘일주일 뒤 예약 잡아드릴게요’라는 원무과 직원의 말을 끝으로 병원을 나왔다.
그래도 전생 때처럼 그저 손 놓고 바라만 봐야 했던 때와는 달라서 다행이었다. 다사다난했던 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너 그 소문 들었어?”
”그거 구라 아니야? 걔가 뭐가 아쉬워서 굳이?“
연휴가 길었던 탓일까, 조금 어수선한 반 분위기가 나를 맞이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저마다 무리에서 열심히 뭔가를 떠들고 있었다. 그때 이인성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하이 만덕쓰.“
”하이.“
”추석 때 집은 잘 갔다왔고? 속세를 벗어난 삶은 어때?”
“속세를 벗어나긴 무슨. 오히려 번뇌로 가득했다.”
이인성은 나를 보며 “어쩐지 십 년은 늙어보이더라.”라며 웃더니 내 앞자리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왜, 뭔데. 무슨 일인데?”
“그런 일이 있어. 근데 오늘 무슨 일 있어? 애들 분위기가 좀 뒤숭숭한 것 같은데.”
“음… 그게 사실…”
이인성이 머뭇거리며 건너편 책상을 바라봤다. 아직 자리의 주인은 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인성은 반 아이들이 수근거리는 모습을 쓱 훑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한별이 전공 바꾸고 싶다고 했대.”
“?”
“물리에서 생물로.”
“뭐?”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왔다. 그 탓에 쑥덕이던 반 학생들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체 왜?”
“그야 모르지. 그래서 담임 전공이 하필 물리잖냐. 최한별 데리고 상담이란 상담도 다 했는데 고집을 부리고 있나 봐. 걔 원래 성격이 그랬나?”
이인성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최한별에 대해 잘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결정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물론 한국과고에서 전공의 개념은 거의 무의미하다. 전공대로 대학을 가지 않는 학생도 있고 2학년에 들어서 전공 자체를 바꾸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본인이 선택한 전공에 맞춰 학교생활기록부가 작성되기 때문에…
대학 입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의대 갈 거라서 생물로 바꾼 게 아닐까?”
최한별이 의대 지망생이라는 건 전교생이 모두 다 알고 있었다. 1학기 진로 상담 때 [희망대학]에 의대를 적어냈고, 그 사실을 안 생물 담당 황대문 교수가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한 일이 있었기에.
‘이제 믿을 건 너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황대문에게 붙잡혀 한 시간 내내 생물학의 미래에 대해 듣고 있어야 했다. 그날 죽는 줄 알았다고.
“안 그래도 다른 애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긴 한데, 그럴 거면 처음부터 생물로 하지 이제와서?”
“뭐, 그럴 수도 있지.”
“아이씨. 그것 뿐만이 아니야! 진짜 진짜 이건 비밀인데.”
이인성의 목소리가 더 줄어들었다.
“최한별 의대 안 간다고 했대.”
“…? 진짜야? 믿을 수 있는 정보 맞아?”
“진짜로. 반장이 쌤들끼리 이야기하는 걸 직접 들었대.“
이게 무슨. 전생과 전혀 다른 일이 발생했다. 원래라면 최한별은 의대를 간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기 힘들다는 서울대 의예과에.
‘대체 왜?’
사실 최한별이 의대에 가고 말고는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하지만 전생과 다른 일이 일어나니 찝찝했다.
드르륵, 그 순간 소문의 주인공인 최한별이 들어왔다.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반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최한별은 그런 상황에 별다른 반응 없이 자리에 가 앉았다. 대각선에 앉은 그녀는 책가방을 책상 가방 걸이에 걸었다. 내가 줬던 강아지 키링은 없었다.
‘역시 그 키링은 최한별 거였나 보네.’
그날 최한별의 할아버지 핸드폰에 걸려있던 키링. 높은 확률로 내가 최한별에게 준 키링일 터였다.
’오늘 일은 못봤던 걸로 해주면 고맙겠네.‘
‘가뜩이나 요즘 컨디션이 안좋아서 보여서 말이야.’
최한별의 부친, 최강석과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언뜻 들으면 자식을 생각하는 다정한 부모의 말이었지만…
‘착해봐야 이용만 당할 뿐이니까.’
나는 무덤덤하게 책을 정리하는 최한별을 바라봤다. 그녀는 아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일 법도 한데 꿋꿋하게 문제집을 꺼내 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수군거림을 의식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오히려 더 의식하기에 저러는 건진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잡념을 떨쳐냈다. 최한별네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최한별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관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근데 오늘 인영이는? 늦잠 잔 건가?”
“아. 걔 독감 걸려서 지금 집에 있어.”
“엥. 독감?”
내 물음에 이인성이 골치 아프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이제 곧 화학 올림피아드 겨울학교 있다고 집에서 나대더니 결국 몸살 나서 링거 맞고 집에서 쉬는 중. 하여간 적당히를 몰라요, 적당히를.”
이인성은 짧게 이야기했지만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기 무리는 없었다. 이인영은 늘 모든 일에 진지했고, 진심으로 대했으니까.
그에반해 “근데 최한별 오늘도 졸라 이쁘다. 히히.”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이인성은 진심으로 뭔가를 하는 걸 본 적이 없었고.
‘뭐, 아직 그만큼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지 못한걸 수도 있지. 됐고 내 일이나 생각하자.’
굳이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쌍둥이와 최한별은 잘해낼거다. 성적은 둘째치고, 애초에 직업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는 집안이었으니까.
오히려 걱정해야 하는 건 나였다.
“자 다들 추석 연휴 잘 보냈냐?”
“네에.”
“연휴 전에 입시 상담 못 했던 애들은 오늘부터 다시 번호순으로 교무실에 오면 된다. 아, 그리고 만덕이는 상담은 했지만 잠깐 들르고 가라.”
“네.”
간단한 조례 후, 수업이 이어졌다. 늘 쳇바퀴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지만 그렇다고 긴장을 풀 순 없었다. 조기 졸업은 1학년 내신을 가지고 정해지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었다.
긴 오전 수업이 끝나고 이인성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언제나 붐비는 급식실에서 자리를 찾는데 오늘따라 빈 자리가 없었다.
“3학년들 4교시에 무슨 면접 대비 행사? 하여튼 뭐 있어서 늦게 왔다나 봐.”
“아하. 그래서 이렇게 밀렸나 보네.”
간신히 자리를 찾은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오늘은 코다리 무조림이랑 북엇국.
“과학고까지 왔는데 3학년 하면 좀 현타올 것 같은데.”
“3학년 할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래도. 과학고 메리트 자체가 조기 졸업이잖아. 근데 3학년 꽉 채워서 다닌다고?”
지금은 2008년. 과학고의 조기 졸업과 조기 진학의 비율이 합쳐서 70%에 해당되었다. 물론 조기 졸업 자체는 내신 성적이 상위권이어야 했지만 대학만 붙으면 졸업할 수 있는 조기 진학은 그 허들이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2000년대에만 가능했던 일. 이후 점차 조기 졸업의 비율이 줄어들더니 이윽고 20%의 학생들만 조기 졸업 및 조기 진학이 가능해졌다. 조기 졸업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한별 걔는 왜 갑자기 생물로 바꿨대? 의대도 안 갈 거면 생물해봤자 취직이 되나?”
“생물 걱정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아차, 여기 생물 괴수가 있었지.”
이인성이 장난스레 웃어 보이는데, 순간 표정이 싹 굳었다. 옆을 보니 빈자리를 찾다가 이쪽을 발견하고 걸어오는 최한별이 있었다.
탓. 그녀는 식판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안녕.”
“…안녕.”
아직 어색한 사이이긴 하지만 눈앞의 이인성처럼 돌이 될 정도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밥알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빨리 먹고 자리를 떠야겠다고 다짐한 후, 먹는 데 집중하려는 데 최한별이 말을 걸었다.
“…너 희망대학 어디로 적었어?”
“응?”
“담임 선생님이랑 상담하는 거. 너도 조기 졸업…하지 않아?”
“어…조기 졸업하는데.”
순간 대학교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직 쌍둥이들한테도,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담임인 박민철과 그때 교무실에 있던 몇 명의 선생님. 그리고 김성진 교수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말해도 되나?’
물론 대학교 이름을 말한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단지 하버드라는 그 이름 때문에 애들 사이에서 소문이 오가긴 하겠지만, 크게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한별이 내게 대학을 물어본다? 그 순간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물리 전공이었는데 갑자기 생물 전공으로. 그리고 나한테 대학까지 물어본다.
‘설마 얘 나 따라오려는 건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말도 안 되지, 암암. 그렇고 말고. 기껏해야 말 몇 번 오간 게 다다. 게다가 최한별이랑은 진로나 꿈에 대해서 따로 이야기해 본 적은 더더욱 없다. 나 때문에 그녀가 의대가 아닌 다른 전공을 생각한다는 건 오만한 망상이었다.
망상이어야만 했다.
“…왜?”
“…그냥.”
“그, 그, 그! 호, 호, 혹시 의, 의대 안 간다는 거 사, 사실이야?”
그때 눈치를 챙기지 못하고 민감한 소문을 끄집어낸 이인성이 말을 버벅이며 물었다. 평소에는 분위기도 잘 파악하고 애들이랑 말도 잘하면서 왜 최한별 앞에서만 저러는지 알 수가 없다. 누굴 좋아하면 다 저렇게 되는 건가?
최한별은 살짝 주춤거리더니 이인성을 바라보고 말했다.
“응. 안 가.”
“왜, 왜?”
“좀 더… 근본적인 치료를 하고 싶어서.”
“근본적인 치료?”
하지만 최한별은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한번 바라봤다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복작복작한 급식실 열기 속 우리 셋은 말 없이 젓가락질을 했다.
…급식을 먹는 내내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
“보니까 추석 동안 기숙사 잔류 신청 안 했던데. 집에 갔다 왔니?”
“네. 방학 때도 못 뵈었어서요.”
박민철은 내 얘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짓에 따라 자리에 앉은 내 앞에 그가 팸플릿과 책자를 건넸다.
‘Harvard University’
붉은색 바탕 위 진리를 뜻하는 ‘VERITAS’글자가 새겨져있었다. 하버드대 관련 팸플릿들과 학비 지원 관련 책자였다.
“하버드대 같은 경우엔 입학만 하면 전액 무료로 지원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액 무료요?”
“그래. 저소득 학생 대상으로 학비랑 기숙사비 거기다 생활비까지 지원해 준다는구나.”
하버드대는 다른 대학과 다르게 성적 장학금이 없었다. 단, 재정보조 장학금이란 이름으로 부모의 연소득이 6만달러 이하일 경우 모두 해당되었다. 이렇게 했는데도 20%의 학생들만이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한마디로 금수저 학생들이 우수수 입학한다는 소리지.‘
현대에 들어서 교육의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있다. 그러나 최고 명문대학의 길은 일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고, 대부분 그 기회는 금수저들에게 열려있었다.
찬찬히 팸플릿을 읽고 있는 나를 향해 박민철은 말했다.
“물론 입학만 한다면 돈 걱정은 안 해도 괜찮겠지만… 해외 대학은 한국이랑 입시가 많이 달라서 단순히 공부만 잘한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고.”
박민철은 뒤통수를 긁으며 복잡하다는 듯 표정을 찡그렸다.
“들어보니 에세이, 토플, 심지어는 추천서까지 학원에서 해준다고 하는데… 사실 해외 유학은 학교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토플반을 따로 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괜찮아요, 선생님. 이렇게 알아봐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나에게 있어 박민철은 담임이었지만, 박민철은 나를 비롯해 수십 명의 학생들의 대학 입시를 봐줘야 했다.
더군다나 국내 대학도 아닌 해외 대학을 진학하려는 학생이라면 분명 부모의 발품도 한몫했을 테니 굳이 박민철이 알아봐 줄 필요도 없었을 거고. 지금 그가 이렇게 팸플릿이랑 정보를 모아 온 것만으로도 꽤나 고된 작업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웬만한 건 다 준비되어가고 있으니까.’
토플 같은 경우엔 대학원 시절에 혹시 몰라서 공부해 놨었다. 에세이랑 추천서는 김성진이랑 차차 준비해 가기로 했고.
“근데 말이다… 음. 혹시 너희 특별반에서 따로 뭐 이야기가 오간 게 있니?”
“예?”
“아니다. 그냥 해 본 소리였다.”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종결시켜 버리는 박민철. 영 수상쩍은 모습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요? 특별반 선생님께서 뭐라 하시던가요?”
“그건 아니고…하아. 갑자기 전공을 바꾸겠다는 애가 생겨서 말이다. 마침 들어보니까 이번 특별반 수업은 생물이랑 지구과학 중점이던데 혹시 그것 때문에 맘이 바뀐 건가 싶어서.”
나는 듣자마자 저 말의 인물이 최한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화학에서 생물로 전공을 바꾸는 학생은 있어도 물리에서 생물로 가는 학생은 거의 없다. 애초에 학문적 성격도 다른 느낌이고 취업 분야도 달랐으니까.
“특별반에서는 따로 이야기하신 건 없으셨어요. 오히려 생물 쪽으로 하면 힘들다고 이야기하시던데요.”
“뭐? 그런 말이 있었다고? 그런데도 생물로 하겠다는 거면 뭔가 계기가 있을 텐데…”
박민철은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박박 긁었다. 나는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그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바꿔주시면 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본인 선택인데.”
“그야 그렇게 쉬운 거면 좋겠지만, 또 부모 마음은 다르니 말이다.”
“아…”“학생은 생물로 가고 싶다고 고집이고, 부모는 절대 안 된다고 바꿔주지 말라고 부탁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머리가 빠질 것 같네.”
안 그래도 얼마 안 남은 머리카락을 소중하게 만지는 걸로 태세를 바꾼 박민철이었다. 그러나 순간 그는 아차 싶었는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지금 이야기한 건 다 잊어라. 절대 비밀이다.”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쓰읍… 그래도 괜히 뜬 소문 내지 말고. 학교는 소문이 금방 퍼지니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미 소문은 다 난 것 같지만… 그렇게 나는 박민철이 챙겨준 하버드대 팸플릿과 책자를 손에 들고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오늘은 특별반이 아닌 생명과학 실험실로 향했다.
오늘부터 생물 올림피아드 대비 수업이 있는 날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