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7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74화(74/221)
74. 전생과 다르게 (3)
74. 전생과 다르게 (3)
생물 올림피아드 대비반 교실로 들어가니 송형민이 미리 와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떨떠름한 상태로 창가 맨 자리에 앉았다. 전생의 경험상 많은 아이들이 지원했을 테니까.
그렇게 한명씩 빈 자리를 채워갔다. 압도적으로 여학생의 수가 많았다. 전교에 20명밖에 안 되는 여학생 중 10명 이상이 이곳에 있을 정도였으니까.
“어디보자… 익숙한 얼굴들이 몇몇 보이네. 출석 한번 불러볼까?”
얼추 자리가 다 찬 걸 확인한 송형민이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는 출석부를 열더니 한 명씩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김만덕.”
“예.”
내 이름이 한번 불리자 앞에 앉아있던 여학생 무리가 쿡쿡대며 웃었다. 목소리가 이상했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체험학습 때 사탕을 건네주던 여학생이었다.
“자…출석은 여기까지.”
휴, 역시 오류였나보네. 전날 반별로 공지된 ‘생물올림피아드 대비반 명단’ 제일 밑에 적혀있는 최한별 이름을 본 순간 식은땀을 흘렸었다만 다행히 오류였나보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뒷문이 열렸다. 최한별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다보니 늦어져서…”
“어, 그래. 괜찮아. 안그래도 담임 선생님한테 전달 받았었다. 그럼 총 14명. 다 왔네.”
오류는 쥐뿔. 나는 내 옆에 앉는 최한별을 바라보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그녀도 생물 올림피아드에 신청했다.
‘전생때도 마찬가지지만 어마어마하네.’
생물 전공 자체가 18명이다. 아니, 이제는 생물 전공이 된 최한별까지 포함한다면 19명. 그중 5명을 제외하고 모든 학생이 생물 올림피아드에 참가했다.
송형민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보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앞으로의 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너희도 알고 있겠지만 생물 올림피아드는 원격 수업을 다 한 후 1차 시험을 친다. 여기 있는 너희 모두 원격 수업은 잘 듣고 있지? 과제도 다 해서 제출하고 있고?”
“네.”
“좋아. 이번에는 작년에 비해 일정이 한 달 정도가 지연된 상태야. 너희도 접수한 날을 보면 알겠지만, 올해는 공고 자체도 늦게 난 편이고.”
송형민은 작년과 달라진 일정을 짚어줬다. 원래라면 8월 말에서 9월 초에 1차 시험을 치러 가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밀린 관계로 10월 말에 시험을 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또한 전생에서도 같았기에 불안한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전생과 같이 밀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 말인즉슨 이제 앞으로 2주 후에 국가대표 1차 후보자 선발고사가 있다는 말이야.”
“2, 2주요? 그럼 준비하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그때 살짝 원망이 섞인 학생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송형민은 생긋 웃으며 답했다.
“어차피 시험은 원격교육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거고, 우리는 문제 풀이에만 집중할 거니까 차라리 단기 속성으로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 하지만 2주 안에 어떻게 다 해요!”
“그래 맞는 말이지. 음… 학생 이름이 민서? 이민서?”
“…네.”
앞자리에서 사각 안경 뿔테를 쓴 여학생이 다소 앙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상과 다른 송형민의 태도에 그녀는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이 이후에 어떻게 할지 알고 있다. 전생 때도 한번 겪어 봤을 뿐더러, 불과 몇 달 전 화학 올림피아드 대비반을 운영하던 김영환을 통해 이미 겪은 유경험자니까.
“그러니까 다 할 수 있는 애만 집중적으로 케어하자. 너희 어차피 곧 기말고사도 준비해야 하잖니?”
“그, 그건 불공평해요. 저도 생물 올림피아드 나가고 싶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번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으면 되겠네.”
“그니까 이렇게 갑자기 시험을 치는 건-”
“세상은 널 중심으로 흘러가지 않는단다.”
송형민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민서의 표정은 곧 울기 직전이었다.
“생물 올림피아드는 기본적으로 암기해야 하는 양이 많아. 그걸 학교 외 수업으로 다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애초에 2주 전에 공부를 하든 한 달 전에 공부를 하든 암기 자체는 이미 되어있는 상태로 수업을 시작해야 해.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건…”
그는 잠깐 뜸을 들였다. 그 탓에 반 학생들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까지 공부를 안 했다고 제 입으로 말하는 거나 다름없단다. 민서야.”
…역시 묘하게 기분 나쁘게 말하는데 뭐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사람하고는 안 엮여야지, 하고 다짐하고 있는데 송형민이 시험지를 나눠줬다.
“자, 작년이랑 재작년 기출문제를 무작위로 섞어놨고 일반 생물학 전 범위니까 수월하게 풀 수 있을 거야.”
일반 생물학 전 범위라. 말은 간단했지만, 그 안에는 방대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세포생물학, 생화학, 유전학, 분자생물학, 생태학, 계통분류학 등.하나하나 암기해야 하는 내용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시험문제는 총 100문제고 시간은 음… 넉넉하게 줄게. 원래 시험시간이 3시간이니까, 우리는 석식 먹기 전까지. 어떠니?”
“그러면 2시간인데요?”
“그러니까. 어차피 기본 암기가 안 되어있으면 풀 수 있는 문제도 없으니까 모르는 문제는 빠르게 넘어가는 것도 전략이지.”
송형민의 말에 다들 언짢았지만 달리 할 말도 없었다. 생물학이 오직 암기로만 이루어진 과목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하지만 암기가 필요 없는 과목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험 시작이다. 다 풀면 쌤한테 제출하고 나가도 된다.”
차락, 소리와 함께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가 시작됐다. 학생들은 눈에 불을 켜고 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나는 이 모습을 바라보다가 시험지로 눈을 돌렸다.
[4. 세포분열 중에 염색체가 정렬되는 단계는?] [11. 세포주기에서 DNA가 중복되는 단계는?]‘문제 자체는 쉽네. 전생이랑 같아.’
물론 전생 때 풀었던 문제가 하나하나 기억나는 건 아니다. 실제 국제 생물 올림피아드의 이론 평가 때도 80여 문제나 나왔으니 문제를 모조리 기억하고 있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굳이 문제를 기억하지 않아도 됐다.
‘4번의 정답은 메타페이즈이고… 11번은 S단계.’
이미 내 머릿속에는 일반 생물학 전 범위가 입력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길 가던 사람이 갑자기 물어보더라도 대답할 수 있는 수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부러 암기하려고 해서 암기가 된 거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게 생물학이란 학문은 동화책 읽듯이 술술 읽혔고, 동화책의 그림마냥 그대로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망설임 없이 문제를 쭉쭉 풀어나갔다. 100문제라는 압도적인 문제량이었지만 풀면서 막힌다거나 어려운 문제는 없었다. 단순 암기형 문제를 풀고 나니 자료 해석 문제가 나왔다.
[68. 다음은 유전자 A의 염기서열이 변형된 세포에서 나온 mRNA의 발현 수준을 보여주는 그래프이다. 다음 ⓐ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X축은 다양한 유전자 A의 염기서열을 나타내고, Y축은 각 서열에 대한 mRNA 발현 수준을 나타내. 여기서 ⓐ는 유전자 염기서열 중에서 3번에서 돌연변이, 그중에서도 난센스 돌연변이 (Nonsense Mutation)이니까…’
정답은 1번. [단백질 합성이 일찍 종료된다.]
난센스 돌연변이 (Nonsense Mutation)란 일정 지점에서 무의미한 염기로 대체되어 조기 종결되는 돌연변이로 단백질 합성이 일찍 종료되는 경우였다.
그렇게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100번째 문제를 다 풀어버렸다. 검토를 할 생각으로 시간을 확인했는데 두 눈을 의심했다.
고작 1시간밖에 안 흘렀기에.
주위를 둘러봐도 학생들은 아직 두 번째 장도 못 푼 듯했다. 그렇게 검토까지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풀었니?”
“네.”
“그래, 그럼 내고 가면 된다.”
송형민은 내가 낸 시험지를 빠르게 스캔했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씰룩인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학생들의 부러움과 선망이 가득 담긴 눈빛을 받으며 퇴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별로 [생물 올림피아드 대비반 학생 명단]이 뿌려졌다. 그 명단에는 학생 이름과 점수가 적혀있었다.
[김만덕|100점]“넌 진짜 대체 뭐냐…?”
“집에서 죽다 살아왔는데 이건 또 뭐야. 얘 뭐 시험 쳤었어?”
콜록, 거리는 이인영이 마스크 너머로 물었다. 목소리도 걸걸한 걸 보니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모양이었다.
“생물 올림피아드 수업 듣는 거 때문에. 그나저나 몸 상태는 괜찮아? 더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엣취! 쓰읍… 아냐. 여기서 더 수업 빠지면 진도 못 따라가.”
“아무리 그래도…”
“괜찮대도. 뭐야, 내 걱정 해주는 거야?”
“독감은 옮잖아… 다 낫고 와야지…”
지극히 맞는 말을 했을 뿐인데 이인영의 눈이 도끼눈이 되었다. 이제 이인성뿐만 아니라 내게도 폭력을 가하기로 마음먹었는지 팔꿈치로 날개 죽지를 찍어댔다.
“야, 만덕이 좀 그만 괴롭혀. 막말로 맞는 말이잖아.”
“이씨… 맞는 말? 맞는 말?! 쳐맞는 말이겠지!”
“아아악! 미안, 미안! 항복. 잘못했어. 나 말고 만덕이 때려!”
“야. 왜 갑자기 날 팔아!”
이인영이 도끼눈을 한 채로 우리 둘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나와 이인성은 열심히 반 안을 돌아다녔다. 마치 진짜 고등학생이 된 것처럼, 유치하고, 철없게.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네, 이장님. 제가 갔어야 했는데…감사해요.”
[어유, 뭘. 수술은 아주 잘 끝났어. 성공적이여 성공적! 의사 선생님도 초기에 잘 검사 받아서 수술하기 쉬웠다고 하더구나.]나는 이장님과 통화를 하며 지하철 교통 카드를 찍고 올라왔다. 날씨는 어느덧 완연한 가을이었다.
[만덕아. 엄마 걱정은 전혀 하지 말고 시험 잘 치고 와. 알았지?]“네.”
[그리고 과일은 무슨 바구니로 보냈니? 이게 다 얼마인데-]“얼마 안 해요.”
그래도 돈 아껴써야지-라고 말하는 어머니와 “아이고, 효자네. 효자.” 라고 말하는 이장님의 목소리.
‘다행이야. 수술이 평일로 잡혀서 걱정이었는데.’
원래는 수술날 학교를 빠지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학교를 빠진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어머니한테 엄청나게 혼났다. 정말로.
‘오히려 야단법석을 떨면 될 일도 안 좋게 된다! 엄마 걱정때문에 오려는거면 학교 빠지고 여기 오는게 더 걱정시키는거야!’
어머니의 단호한 말씀. 그리고 이장님의 걱정 말라는 말. 나는 그 두개를 믿으며 학교에 남아있었다. 어머니의 성공적인 수술 이야기에 한시름 마음을 놓았다.
“생물 올림피아드 1차 지필고사 치러 온 학생인가요?”
“네.”
“화살표 따라서 쭉 가시면 됩니다. 화이팅 하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목도리를 다시한번 여미며 대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생물 올림피아드 1차 지필고사 날이 찾아왔다.
*
“…기어코 생물로 전공을 바꾸겠다는 소리니.”
“…네.”
“그래서 지금 생물 올림피아드 1차 합격자 명단을 나한테 들이민 거고?”
“…”
차갑게 내려앉은 분위기 속에서 최한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친인 최강석은 그 명단을 한번 훑었다. 그리고 미간을 좁혔다.
“…김만덕. 이 아이도 있구나. 우연이니?”
“…”
“혹시… 이성 친구라든가?”
“어머! 우리 한별이가 남자친구요?”
옆에서 가시방석 위에서 눈치만 살피던 모친 한은영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녀는 마치 10대 소녀와 같이 밝은 목소리로 최한별에게 말했다.
“어쩜, 그러면 다~ 이해돼죠. 여보. 우리 한별이도 벌써 고등학생이에요. 막말로 과학고는 죄다 남자애들뿐이라는데 우리 한별이를 가만 냅두겠어요? 이렇게 이쁜 딸을?”
“…조용히.”
최강석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마치 강아지 훈련시키듯이 절제된 행동에 한은영은 입을 꾹 닫고 시선을 떨궜다.
이 집의 서열은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 최강석은 가장 꼭대기에서 집안의 모든 것을 통제했다. 그리고 통제 대상에는 가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부드럽지만 섬찟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별아. 나는 너를 존중한다.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모두 다 존중해. 하지만 존중한다는 게 네가 모든 걸 해도 된다는 건 아니란다.”
최강석은 명단 종이를 찢지 않았다. 그저 반으로 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부모가 자식을 존중하는 만큼, 기대에 부응해 줘야 하지 않겠니.”
“…기대 안 하시잖아요.”
“기대를!”
최강석은 저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온 것을 꾹 참아냈다. 입술을 잘근 짓씹고는 다음 말을 품격있게 내뱉었다.
“…기대를 안 할 리가 없잖니.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인데.”
“…”
“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건 충분히 이해한단다. 학창 시절에 진로 고민은 누구나 다 한 번씩은 하는 거지. 어릴 적부터 의대 이야기만 듣다 보니 싫증이 난 걸 수도 있어. 아니면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걸 수도 있지.”
최강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목소리만 그럴 뿐, 고압적인 건 여전했다.
“하지만 다른 하고 싶은 일이 뭐든 간에 의사보다 좋은 직업 소리 듣기는 어려울 거다. 사람들은 의사를 욕하는 것 같아도 결국 다 부러워서 그런 거거든. 여우의 신 포도처럼 자신이 될 수 없는 직업을 보고 손가락질하며 깎아내리는 거지. 참 안 된 사람들이야.”
“…의사는 절대 안 할 거에요.”
“대체 왜! 왜! 안 하겠다는 건데! 이제와서!”
결국 최강석은 최한별의 말을 듣고 폭발했다. 꾹 참고 있던 감정이 순식간에 터져 올랐고, 결국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최한별은 그런 상황에도 덤덤한 상태로 말했다.
“저도 근본적인 치료를…”
“근본적인 치료? 근본적인 치료가 뭔데! 치료를 하려면 의사가 되야 할 거 아니야!”
“…그러는 아버지는 의사인데 왜 그러신 거에요?”
최한별은 한 글자 한 글자 감정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녀는 울고 있지 않았지만 눈에는 원망이 가득 서려 있었다.
“…할아버지 치매 치료. 그만하라고 하셨다면서요.”
그녀는 양손을 꽉 쥐었다. 두려움에 몸이 떨리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