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76)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76화(76/221)
76. 성장 (2)
76. 성장 (2)
“야.”
“뭐.”
“너 솔직히 말해봐. 나 스토킹하지.”
“지랄. 병원 가라.”
아악,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단말마를 내질렀다. 이재성은 그 모습을 보며 “쯧쯧.” 하고 혀를 찰 뿐이었다.
이재성, 김영재, 그리고 나.
이재형과 최찬형은 김성진 교수와 상담을 하러 자리를 떠났다. 졸지에 우리 셋은 연구실 옆 세미나실에 남게된 상황. 김영재는 두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재성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잔뜩 경계하고 있는 눈치였다.
결국 이 둘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은 내가 대화를 시작했다.
“형. 얘는 이재성이고요. 나이는 저랑 동갑이고 학교는 범화고에요.”
“범화고? 나 알아, 집 근처거든. 신기하네. 안녕?”
“…”
잔뜩 털을 세운 고양이처럼 말은 안 하고 김영재만 빤히 쳐다보고 있는 이재성.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닌고로 나는 일일이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의외로 이재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쪽은 뭐 연구하려고 왔어요?”
“야. 그래도 형인데 그쪽이라니. 적어도 예의는 갖춰.”
“…형은 뭐 연구하려고 왔어요?”
짧게 타박하자 이재성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로 호칭을 바꿨다.
“하하, 괜찮아. 어차피 나이 차라고 해 봤자 한 살 차이인데 뭐. 그쪽이라는 호칭이 나쁜 의미도 아니고. 나는 유전자 편집 기술 관련해서 연구를 하려고 왔는데. 너는?”
“치매요.”
“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치매 부분에서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없을지 좀 더 깊게 연구하고 싶어서 온 거거든.”
“…그래요?”
김영재의 말에 이재성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나는 이재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김성진 교수님하고 알던 사이야?”
“아니.”
“근데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건데?”
“왜. 와서 꼽냐?”
“꼬운 게 아니라 놀라서 그런다. 하여간 애가 삐뚤어져선.”
“흥.”
이재성은 여전히 성격이 개차반이었지만 예전처럼 무턱대고 공격적이진 않았다. 과고에 대한 열등감도 나와 지내면서 많이 없어진 것 같았고. 그렇기에 과고생인 김영재를 보고도 따로 과고 언급을 하거나 비아냥거리지 않았다.
이재성은 나를 한번 흘겨보더니 말을 이었다.
“박성민 연구원님이 따로 전화 주셨어. 김성진 교수 밑에서 연구해 보지 않겠냐고. 그래서 하겠다고 했지.”
“너 김성진 교수님이 누군지는 알고 한다고 한 거야? 아니, 애초에 김성진 교수님하고는 말이 된 거고?”
“잠깐만. 박성민 연구원님도 알고 있어?”
박성민 이야기가 나오자 김영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김영재와 박성민은 꽤나 콤비가 맞았는지, 박성민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한참 동안 아쉬워했다.
그도 그럴 게 박성민은 김영재가 연구를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었으니까. 단순히 연구실을 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논문을 검색하고 자료를 찾는 것부터 통계 자료를 해석하는 법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알려준 것 같았다.
그 덕에 김영재는 웬만한 학부 연구생 수준의 숙련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재성은 김영재를 보더니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낯선 사람, 그것도 나이 많은 사람 앞에서는 묘하게 온순해지는 게 형이 있는 집의 막내 느낌이었다.
“형. 미안해요. 얘가 성격이 좀… 그래서. 그래도 연구하는데 쓸모는 있을 거에요.”
“그럼 이 친구도 치매 관련 연구 때문에 모인 거야? 생각보다 스케일이 크네.”
“일단 그런 것 같긴 한데… 자세한 건 교수님 통해서 들어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을 하자마자 세미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최찬형이었다.
“얘들아. 교수님 연구실로 와줄래? 할 이야기가 있어서.”
“넵!”
“네.”
“…”
각자의 방식대로 대답한 뒤, 우리는 최찬형을 따라 김성진 개인 연구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얼굴들이 보였다. 이재형은 동생을 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야. 근데 너 형이랑 따로 온 거야? 아까 재형이 형은 찬형이 형 차 타고 있던데.”
“따로 온 게 아니라 형이랑 나는 아침 9시에 왔었어. 그러다가 너 데리러 형이 나간 거고.”
“아하.”
작게나마 들었던 궁금증이 해소되고, 우리는 검정색 가죽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김성진 교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길게 이야기할 거 없이 본론부터 말하도록 하지. 여러분은 지금 치매 연구, 그것도 김만덕 학생이 진행했던 연구를 좀 더 심화시켜서 진행하려고 모인 거네.”
“만덕이 연구요?”
최찬형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여기서 내 연구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는 사람은 최찬형뿐이었다.
김성진은 나를 보며 턱짓했다. 설명하라는 뜻이었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형성하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뭐? 그게 가능해? 특정 단백질을 제거하는 유전인자의 위치를 파악해낼 수 있는 거였어?”
“…운이 좋아서요.”
“근데 아무리 그래도 유전자 편집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는 건 좀… 그런데.”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는지 최찬형은 미간을 좁혔다. 그 모습을 본 김성진은 프린트된 논문을 한 부씩 돌렸다.
[Enhancing Anti-Tumor Efficacy through Gene Editing in CAR-T Cell Therapy: Focusing on Tumor Cell Targeting Abilities]‘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한 CAR-T 세포 치료: 종양 세포 공격 능력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이었다. 비록 논문 전체는 영어로 적혀있었지만 읽는 데 무리는 없었다. 나는 받은 그 자리에서 빠른 속도로 논문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전생 때 봤던 연구와 비슷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람이 아닌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했을 때 나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논문이었다. 선행 연구 같은 느낌.
“보면 알겠지만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서 병을 치유한 실험이지. 비록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지만 인간에게도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김성진 교수가 말하는 중에 이재형과 최찬형이 논문을 다 읽었다. 그래도 연구원 짬밥이 있어서인지 이 정도 길이의 영어 논문은 바로 해석이 되는 모양이었다.
김영재도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마지막 장까지 다 읽은 눈치였다. 그의 눈은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긴, 나라도 치매 관련한 논문이 나온다면 김영재처럼 눈을 빛내고 있었겠지. 그렇게 의지에 불타오르고 있는 김영재 옆에 미간을 잔뜩 찡그린 이재성이 있었다.
이재성은 논문 첫 장을 보며 인상이란 인상은 다 쓰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떠야 해석이라도 되는지 눈을 최대한 가늘게 뜬 채로 한 문장, 한 문장 해석하고 있었다.
‘맞다. 얘 영어 못했지.’
생각해보니 전에 이재형이 언뜻 지나가듯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동생이 영어에 콤플렉스가 있다나? 그래서 영어로 된 서적이나 논문을 보려고 하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그러나 그런 부분에 무심한, 아니 어쩌면 해외 대학에서 공부하고 영어로 논문을 읽는 게 당연한 김성진 입장에서 영어로 된 논문을 못 읽는다는 건 배려해 줘야 하는 부분이 아닐 수도 있었다.
‘애초에 연구원이면 영어 실력은 거의 필수니까.’
한국과 관련된 내용이거나 국어 쪽 연구원이라면 꼭 영어를 쓸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한국과 관련한 논문들은 한글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클 테니까.
하지만 그게 생물학 혹은 의학 부분이라면 전혀 말이 달라졌다.
영어는 세계 만국 공통어이다. 그 말인즉슨 비 영어권에서 연구한 사람들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저널에 올리고 싶다면, 혹은 자신의 논문이 좀 더 널리 알려지길 원한다면 영어로 논문을 작성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렇기에 이쪽을 연구한다면서 영어 실력이 낮다는 것은… 엄청난 페널티를 달고 살아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김성진 교수는 이어서 앞으로 할 일들을 간략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재형은 이번 달부터 김성진이 운영하는 인지신경망 연구실에서 지내게 되었다. 박성민의 언질이 있었던 것 같지만 김성진 성격상 부탁한다고 다 받아줬을 리는 없다. 분명 이재형의 연구 중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거겠지.
최찬형은 박사 졸업 논문을 준비중인 관계로 따로 연구에 참여하는 건 힘들다고 했다. 결국 김성진의 연구를 돕는 이재형, 졸업을 준비하는 최찬형은 사실상 연구에 배제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연구를 하면서 모르는 점이 있거나 어려운 점이 있으면 이 둘이 잘 알려줄 테니 걱정 말도록.”
김성진의 경우엔 이 연구에 참여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즉, 국가 과제로 따온 연구들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입장이라 우리 연구는 1순위가 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기에 별로 걱정할 건 아니었다. 오히려 교수가 세세하게 관여하는 지도 스타일보다 풀어주고 질문하면 알려주는 방목형 지도가 더 잘 맞았으니까.
그렇게 간략한 설명과 앞으로 할 일들을 정리하고 난 뒤, 우리는 다시 세미나실로 이동했다. 이재형과 최찬형은 김성진을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하아… 큰일이네. 우리 셋이 잘할 수 있을까.”
“…”
그러나 김영재와 이재성은 불안한 눈치였다. 이재성도 굳이 말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손끝을 탁탁 부딪히는 게 불안한 마음이 전해졌다.
“뭐 어때요. 오히려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으니까 좋은데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니 좋긴한데… 하지만 이런 본격적인 연구를 해본 건 처음이다 보니.”
멋쩍게 웃는 김영재를 바라봤다. 확실히 김영재의 연구는 수준이 높았지만 어디까지나 고등학생 한정이었다. 박성민으로부터 배운 자료 수집 능력이나 통계 활용 능력 자체는 높았지만, 결국 어떻게,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는 큰 쓸모가 없었다.
혼란스러워하는 그에게 필요한 건, 단 하나.
“선배. 지금부터 선배는 유전자 편집 기술, 치매와 관련된 논문을 싹 다 검색해서 모아주세요.”
명확한 과제를 제시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목표가 없는 상황에서는 시간만 낭비할 위험이 있었기에 나는 그에게 과제를 던졌다.
“노, 논문?”
“네. 박성민 연구원님 통해서 논문 검색하는 법 배우셨다면서요?”
“으응. 배우긴 했는데… 유전자 편집 기술이랑 치매로 논문을 검색하면 너무 양이 많지 않을까?”
“일단 각각의 키워드에서 인용이 많이 된 순으로 정리해 주시고요,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학술지 위주로 먼저 정리해 주셔도 좋아요. 검색 사이트는 Google Scholar를 기본으로 찾으시는 것도 좋은데 생물학 쪽은 PubMed랑 ScienceDirect를 이용하시는 게 좋을 거에요. 그리고 시간되시면 IEEE Xplore에서 유전자 통계 모델에 대해서도 검색해 주시겠어요? 거기가 컴퓨터 과학 쪽으로 논문이 잘 되어있어서요.”
“으, 응!”
김영재는 빠른 속도로 내가 말하는 사이트를 옮겨 적었다. 김영재에게 과제를 이것저것 제시하고 있는데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이재성을 바라봤다.
“야.”
“…왜.”
이재성은 아까보다는 조금 누그러진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 아까 회의에서 자기만 빼고 영어 논문을 술술 읽는 모습에 주눅이 든 거겠지.
하지만 이재성은 영어만 못할 뿐 화학 분야에서는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훗날 치매를 지연시키는 화학 물질도 개발해 내니까.
그렇지만 영어를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비단 지금 때문이 아니라 이재성이 연구를 하는데 있어서 영어는 필수니까.
“너 아까 논문 어디까지 해석했어?”
“…다 해석했는데.”
“거짓말 하지 말고.”
단호한 목소리로 다그치자 이재성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3페이지까지.”
“완전히 이해는 했어?”
“…어.”
“거짓말하면-”
“70퍼센트 정도 이해했다. 됐냐?”
결국 두손 두발 든 이재성이 사실대로 말했다. 70퍼센트라. 나쁘지 않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3페이지를 읽은 것도 나름 빠른 편이다.
나는 이재성을 바라봤다. 그가 이번 연구에 해줘야 하는 것. 김영재가 유전자 편집 관련해서 사전 지식을 쌓는 단계라면, 이재성은…
“너 잠깐 나랑 연구실 좀 가자.”
“왜?”
“육각형 찍으러 가야지.”
“육각형?”
육각형? 미간을 찌푸리는 이재성. 나는 씩 웃으며 그를 연구실로 데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