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78)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78화(78/221)
78. 성장 (4)
78. 성장 (4)
“…왜?”
갑작스런 내 물음에 최한별은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평소에 감정 변화가 없던 그녀였던 만큼, 이렇게 선명하게 드러나는 감정이 낯설었다.
‘그만큼 당황했다는 거겠지.’
나도 모르게 너무 조급했던 모습을 살짝 자책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게, 내가 지금까지 하려고 했던 연구를 미리 했던 사람이 있다. 그것도 내가 봤고, 실제로 이야기까지 나눴던 사람.
사실 논문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해도 좀 깐깐한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다. 그와 좀 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물론 전에 전화번호를 받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최한별의 친구라는 이유로 받은 번호. 이런 개인적인 이유로 전화를 거는 건 어찌 보면 무례했다.
갑자기 전화해서 “그 논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고등학생이 있다면··· 미움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최대한 낮춰두고 싶었다.
“사실 전에 우연히 너희 아버지가 쓰신 논문을 읽게 되었거든.”
“논문?”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 최한별. 아버지가 쓴 논문이지만 최한별은 처음 듣는 소리인 것 같았다. 하긴, 자식들이라고 부모가 하는 일을 다 아는 법은 아니니까. 어쩌면 가족이기에 더 일적인 부분은 모를 수 있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대단한 연구 결과를 담고 있는 논문이거든. 치매 관련한 동물실험 데이터인데 왜 후속 연구가 안 이뤄졌는지도 궁금하고 논문 자체로도 설명이 자세하지만 직접 만나 뵙고 더 듣고 싶은 부분도 있고.”
“…그렇구나. 엄청 감명 깊게 읽었나 보네.”
최한별이 손끝으로 입가를 가리켰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갸우뚱하고 있는데, 그제야 내가 내 입꼬리가 광대까지 올라가 있다는 걸 자각했다. 논문에 대해 말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큼큼, 살짝 부끄러운 모습이었기에 나는 목을 가다듬고 최한별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벽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말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인 건 어떻게 알았어?”
“어?”
“논문이라면 그냥 이름만 써져 있었을 텐데···”
아차. 최한별의 예리한 지적에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최강석을 알게 된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었다.
그렇게 적당한 이유를 찾고 있는데, 최한별이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했다.
“근데 아마 아버지를 만나도 그 논문은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응?”
“아버지 치매 치료는 완전히 포기하셨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치매 치료를 포기한다니.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분명 어려운 분야인 건 알지만 그렇다고 연구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 순간 그때 있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최한별의 할아버지, 분명 그는 치매를 앓고 있었다.
그러나 더 물어보기 전에 송형민이 다시 들어왔고, 우리는 생물 올림피아드 관련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
“형.”
“어, 만덕아. 왜?”
김성진 교수의 연구실에서 일하게 된 지도 몇 주가 흘렀다. 덕분에 연구실 사람들과 어느 정도 친분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우리 팀을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고 있는 최찬형과도 친해졌다.
“엄청난 논문을 쓰고도 후속 연구를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나요?”
“후속 연구? 음···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아예 없는 경우는 아니지.”
최찬형은 안경알을 닦으며 말했다.
“제일 큰 문제는 아무래도 예산이지. 예산이 부족한 연구는 진행될 수 없으니까.”
예산 문제. 연구원이라고 해서 돈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굴러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최강석이 돈이 부족해서 연구를 못 했다? 물론 논문이 나온 시점을 보니 7년 전 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 정도 성과의 연구를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기업체이고 나라에서 지원해 주기 바쁠 테니까.
“아, 아니면 개, 개인적인 사, 사정 때문에, 그, 그만둔 연구, 자들도 있어.”
“개인적인 사정이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내 주위에도 연구하다가 그만둔 애들 많거든.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서 말이야.”
“왜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재형이 말을 덧붙였다.
“그, 그야, 다, 답이 아, 안 보이니, 까···?”
“답이 안 보이는 걸 연구하려고 연구원이 된 거 아니에요?”
“그게 10년, 20년 이어진다고 생각해 봐. 버틸 수 있는 사람 몇 없을걸.”
흠. 여전히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있자 이재성이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실험 데이터 분석하다 말고 뚱딴지같은 소리하고 난리야. 빨리 결과 나온 거나 해석해 봐.”
“그래, 이번에 너희 실험한 거 결과 나온 날이지? 한번 볼까?”
“네.”
나는 출력한 데이터값 및 뇌 영상 사진들을 팀원들에게 나눠줬다. 종이를 받아 든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했다.
“영재 선배가 집중적으로 연구하던 CRISPR-Cas9 기술을 활용해서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인자를 직접 편집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되, 이재성이 연구하던 내용도 같이 진행시켰어요.”
“흠···NGF라.”
“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 형성을 억제하고 동시에 치매를 억제하는 단백질을 늘린 건가?”
다시 연구 이야기가 시작되자 말 버벅임이 사라진 이재형. 아까까지의 어벙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진지한 모습만 남아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NGF, 즉 신경 성장 인자라고 알려진 이 단백질은 신경 세포의 성장과 유지를 돕는 단백질이에요. 신경계에 없어서는 안 되는 단백질이기도 하고요.”
“알츠하이머병 환자한테 NGF 수치가 유의미하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 있어.”
최찬형은 말없이 종이를 한 장씩 넘겼다.
“시냅토파이신의 형성도 촉진했네? 이것도 유전자 편집으로 진행한 거야?”
“아 그건···”
나는 설명을 하다 말고 이재성을 바라봤다.
“글루타메이트를 투약했어요.”
“글루타메이트?”
“시냅스 수용체에 결합해서 시냅스 소포 방출을 촉진시키는 물질이에요. 그 덕에 시냅스 단백질을 늘리는 시냅토파이신이 더 늘어났고 인지 저하가 개선되었어요.”
이재성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아무렇지 않은 발견이라는 듯이.
그는 한동안 종이를 뒤적거리더니,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 너희 진짜 고등학생 맞아?”
최찬형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재형도 마찬가지인 듯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우리를 바라봤다.
사실 이재성이 지금 글루타메이트를 발견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원래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중점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기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던 이재성은 내가 준 논문들을 읽으면서 점점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치매 단백질을 형성하는 건 단순히 하나의 유전인자가 아니라···’
‘잠깐, 그 말은 시냅스 연결과 관련 있다는 소리니까 억제가 있다면 분명 촉진 인자도 있을 텐데.’
‘단백질···단백질은 아미노산···아미노산 형성은···’
영어 논문을 해석하는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그의 사고에도 날개가 돋듯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전생의 일을 떠올렸다.
‘치매를 지연시키는 화학 물질을 발견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소감은 잘 모르겠고, 빨리 집에 가고 싶습니다.’
그 이유로 집에 읽어봐야 할 게 많다고 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관련 논문들이었겠네. 나는 새삼 내 앞에 엄청난 천재들이 앉아있다는 걸 실감했다.
유전자 편집 기술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김영재,
치매를 지연시키는 화학물질을 개발, 전 세계의 제약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이재성.
어마어마한 괴수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그렇게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김영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만덕이 역할이 컸어요.”
“…인정.”
엥? 갑자기 내가 언급되자 절로 물음표가 나왔다.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김영재가 웃으며 말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결과가 뜻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나, 방향성이 안 잡힐 때마다 만덕이가 하자는 대로 했거든요. 그러니까 실험이 술술 풀렸어요.”
“…쟤가 평소에 헛소리를 좀 많이 하는데···. 거기서 힌트를 좀 얻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조금, 아주 조금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니까.”
김영재가 연구 절차나 연구 방법에 대해 잘 모르는 건 당연했다. 그는 어디까지나 고등학생이고 이런 전문적인 연구 과정을 거쳐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좀 도와준 것뿐이다. 이재성 역시 그냥 전생에 그가 주로 했던 부분들에 대해 조금 조금씩 언급해 줬을 뿐이다. 그럴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타박 받기 일쑤였는데···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고 있는데, 최찬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내용 아직 교수님한테 안 보여드렸지?”
“네. 아무래도 형들한테 먼저 검사받고 보여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김성진이 보기엔 엉성해 보일 수도 있는 연구. 미리 둘에게 검사를 받는다는 마음으로 데이터를 넘겼던 것이었다. 최찬형은 웃으며 말했다.
“현명하네. 아마 전체적인 내용들을 건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문장만 조금 수정하면 될 것 같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김성진 교수님이 말하셨는데, 만덕이 너 하버드 대학교 진학한다며?”
“뭐?!”
“진짜?!”
갑작스러운 하버드 대학교 이야기에 김영재와 이재성의 눈이 커다래졌다. 둘의 표정이 기쁨과 동시에 묘하게 일그러졌다. 살짝 배신감을 느낀 듯한 표정이었다.
“뭐야, 둘한테 말 안 했어? 설마 비밀이었던 거야?”
“하하···그, 그게 사실 붙을지 안 붙을지도 모르는 내용이고-”
“아니야. 만덕이 지금까지 네가 한 활동들을 보면 충분히 입학할 가능성이 있어.”
“…와. 하버드대라니···”
김영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붙을지 안 붙을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이제 대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는 김영재에게 괜한 열등감이나 불안감을 줄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고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공부를 잘한다. 거기다 스스로도 공부를 잘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명확하게 드러나는 대학교 입시 결과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주곤 했다.
마치 나랑 같이 다니던 녀석이 나보다 월등히 높은 대학을 갔을 때의 심정이란, 말로 다하기 씁쓸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김영재는 달랐다.
“하긴, 만덕이 네가 한국에 있을 레벨이 아니긴 해.”
“한국에 있을 레벨?”
“얘 엄청나거든요.”
그 순간 김영재가 씩 웃더니, 최찬형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대단하냐면요, 일단 들어오자마자 전교 1등하고 시작한 건 기본이고 미국에서 열린 수학 학회에서-”
“혀, 형! 우, 우리 밖에 나가서 이야기할까요?”
“왜. 너 대단한 거 말하는 건데? 그리고 밖은 추워.”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조금 눈에 광기가 돌았다.
이 사람 백퍼 삐졌다. 지금 하버드대 이야기 안 했다고 삐진 거야···!
김영재는 모든 사람 앞에서 내가 한 업적들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생물이랑 화학 올림피아드 두 개 다 참가한 건 또 소문이 난 건지 ‘화학과 생물을 둘 다 씹어먹은 괴수’, ‘미래의 노벨상 3관왕’, ‘어마어마한 과학계 인맥 소유자’ 등 나도 모르는 별명들을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최찬형과 이재형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았고, 이재성도 적잖이 놀랐는지 나를 새롭게 보고 있었다.
다만 본인이 있는 자리에서 칭찬 당하는 것은···. 꽤나 수치스럽다. 분명 이인성이었다면 “제가 좀 잘났죠.”라며 받아쳤겠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없는 능력이었다.
“어쨌든 진짜 천재라니까요? 천재! 100년에 1명 나올까 말까 하는-”
“형···제발···그만···”
“전에 과학의 날 전시 때 연구한 걸 발표하는데, 완전 논문 하나를 써서 낸 급-”
“아, 그게 그 김성진 교수님의 마음을 훔친 발표 말하는 건가?”
“…마음을 훔치다뇨···”
교수의 마음을 훔치는 정신 나간 대학원생, 아니 고등학생이 있을 리가. 이어지는 칭찬들에 얼굴이 실시간으로 빨개지는 걸 느끼던 중에 이재형이 갑자기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 그러면, 거, 거기에, 나, 나가보는 건, 어때?”
“거기요? 거기가 어딘데요?”
“구, 국제 R, R&E 대회···!”
“오, 좋네! 거기 나가면 교과 외 활동 부분에서 엄청난 플러스일 테니까.”
에? 갑작스러운 이재형의 제안에 최찬형이 맞장구를 쳤다.
“그때 썼던 논문 보여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