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8)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8화(8/221)
8. 변화 (1)
8. 변화 (1)
최한별의 등장에 반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진짜 최한별이잖아?”
“진짜 이쁘다…”
“근데 왜 여기 온 거래? 설마 쟤 보러?”
최한별을 향한 시선들이 고스란히 내게로 왔다. 최한별을 볼 때와는 다른 눈빛들이었다.
그러나 최한별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는 듯, 나를 조용히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번 배치고사 수학 1등 너야?”
“어. 난데?”
“…성적표 보여줄 수 있어?”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성적표를 내밀었다. 성적표라 하기엔 정식으로 나온 것도 아닌 흰 띠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바로 낚아챘다.
그리고 굳어지는 표정.
‘그나저나 내가 수학 1등인 걸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최한별이야 학교의 전설, 아이돌같은 존재다 보니 내가 그녀를 아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시점의 나는 별다른 존재감도 없는 이 흐리멍텅한 존재다. 그런 나를 그녀가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와 내가 제대로 이야기 한 건 적어도 정규 학기가 시작되고 난 이후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시기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물론 몇몇 학생들 사이에선 개또라이라고 소문이 난 것 같긴 하지만 그게 공부랑 이어지지는 않는데 말이지.’
그렇게 천천히 분석하고 있는데 그녀 뒤로 이인성과 이인영이 다가왔다. 둘 역시 내 성적표를 보고는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내 화학 1등이…”
“내 물리 천재 타이틀이…”
동시에 탄식하듯 주저앉는 쌍둥이들. 그러나 그 소란스러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시 담임 김영환의 말로 정리되었다.
“지금 종례해야 하니까 다른 반 학생들은 다 나가라.”
그의 말 한마디에 최한별도 정신을 차렸다. 얼마나 세게 손을 쥐고 있었는지 손이 하얗게 변했을 지경이었다.
반 좀비가 되어 터덜거리며 나간 쌍둥이들까지 확인한 후, 박민철은 몇 가지 안내사항을 전달했다.
“우선 이번 배치고사는 반 편성 및 보충반, 특별반 선발을 위한 시험일 뿐 내신 성적에는 일절 반영되지 않는다.”
히끅, 끅. 김영환의 말에 한 학생이 울음을 삼켰다. 시간이 부족해 OMR 마킹을 제대로 하지 못한 학생이었다.
“보충반은 말 그대로 정규 수업 후 방과후에 추가로 지도를 받는 반이다. 이 반의 경우 다른 방과후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 도중에 그만두는 것 역시 안되므로 성실히 참여할 것.”
“보, 보충반은 하위 몇 퍼센트인가요?”
“하위 10퍼센트다.”
하위 10퍼센트. 12명이 해당되었다. 전생의 나도 그중 한명이었고.
“반대로 특별반의 경우 상위 5퍼센트에 해당하는 학생으로 따로 심화 수업을 듣게 된다. 이 학생들의 경우 국제 올림피아드 우선 출전권이 주어지고 각종 전형에서도 우선적으로 선발된다.”
특별반 이야기가 나오자 몇몇 학생들이 눈을 빛냈다. 우선적으로 혜택이 주어진다는 말에 모두 부러워하는 눈빛이었다.
“특별반과 보충반은 1년동안인가요?”
“정기고사가 치러지고 난 뒤 재편성된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결과 멤버들이 변하는 경우는 별로 없더군. 특히 특별반의 경우에 말이다.”
하위권들은 하위권 나름대로 그 서열이 있다. 공부 안 하는 놈 밑에는 공부를 놓은 놈이 있듯이 보충반 멤버들은 큰 이변없이 유지되었다.
오히려 그 멤버 중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던 내가 특이 케이스였으니까.
하지만 특별반의 경우는 그 서열이 너무도 분명하고 선명해서 결코 바뀌는 일이 없었다. 간혹가다 5등과 6등 정도가 뒤바뀌는 경우는 있었어도 1, 2, 3등은 부동의 순위였고,
그 결과 특별반 멤버가 변했던 기억은 없었다.
‘1등은 학교의 전설이자 자랑인 최한별, 2등은 게으른 천재 강태우, 3등은 매스컴에 떠들썩 했던 영재 곽진환.’
그 밖의 인물들도 쟁쟁했지만 내 기억 속 강렬하게 남아있는 건 이 3명이었다. 전생에 있을 당시 나 역시도 그들을 동경하곤 했었으니까.
“이 중에 자신의 석차가 궁금한 학생들은 종례 후 교무실로 찾아오도록.”
옛날같으면 석차를 복도에 게시해뒀겠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금지되었다. 그 대신 이렇게 자신의 등수를 알고 싶은 용자들은 따로 담임쌤에게 물어보곤 했다.
“아, 그리고 김만덕.”
“네?”
“끝나고 교무실로.”
김영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의 기억이 맞다면 이건 일종의 호구조사를 위한 대면 상담이었다.
종례가 끝나자 몇몇 학생들이 분주하게 가방을 챙겼다. 이번 시험 성적에 자극을 받았는지 책을 한가득 챙기는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뒤로한 채, 나는 교무실로 향했다.
그러나 교무실에서 나를 맞이하는 건 다른 사람이었다. 과거 1학년 담임이던 물리 박민철이었다.
“이쪽으로 와라.”
“네.”
박민철은 열쇠함에서 키를 하나 꺼내더니 ‘상담실’이라고 적혀진 곳으로 나를 데리고 왔다. 테이블엔 과자와 각종 사탕 그리고 둥글레차 티백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전생에 봤던 모습 그대로네.’
“편하게 앉아라.”
“네. 감사합니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박민철도 이윽고 준비된 서류철을 들고 내 앞에 앉았다.
“아직 반 편성이 시작도 안 된 상황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네 담임이다.”
박민철은 올해로 1학년 부장을 5년 연속 맡고 있다. 한국 과학고의 경우 사립학교로 교사들의 이동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 말은 한번 부장 교사를 맡으면 쭉 부장 교사다.
반 편성의 경우 등수대로 돌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예외의 경우도 있다. 바로 ‘사회통합대상자’ 혹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입학한 학생들이다.
기초생활 수급자, 차상위계층, 다문화, 소년·소녀가장, 한부모 가족 등…
통칭 ‘사배자’라고 불리는 학생들은 등수보다는 반별로 고르게 배치하는 편이다. 한 반에 몰려있을 경우 담당 교사의 행정 업무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별로 안 놀라는 눈치네.”
“아, 지금 정신이 없어서요.”
“하긴 시험친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어쨌든 내가 널 미리 부른 이유도 이것들 때문이다.”
박민철은 각종 서류들을 내게 내밀었다. ‘사회적배려대상자’들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각종 지원들이었다. 학비 지원부터 시작해서 교복비 지원, 기숙사비 지원, 교재비 지원 등…
“지원을 받으려면 서류들이 필요하다. 어머니한테 문자로 안내드리긴 했지만 한 번 더 알아두면 좋으니까.”
“네.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인데,”
박민철은 말을 꺼내기 어려운 듯이 머리를 긁었다.
“사배자인건 웬만하면 애들한테 말하지 않는 게 좋을거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말이야.”
아까도 말했듯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는 일반적으로 기초생활 수급자, 차상위계층, 다문화, 소년·소녀 가장 등 종류가 다양하다.
그러나 과학고의 ‘사배자’들은 종류가 한정되어 있었다.
전생에 우연히 담임 컴퓨터에 켜져 있던 사배자 명단.
120명 중 12명이 사배자로 들어왔고, 그 중 기초 생활 수급자는 나 하나.
나머지는 다자녀이거나 군인, 경찰 자녀로 들어온 학생들이었다. 경제적으로 집안이 어려운 학생들은 없었다. 다들 잘 먹고, 잘 입고, 평범한 가정에서 살다가 온 학생들이었다.
적어도 나보다는 잘 살았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노파심에 말한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는 말고. 여기 애들은 다 사교육 받고 필요한 거 다 받으면서 살다 보니 부족함이 없어. 괜한 오해로 애들 사이에서 문제가 될까 봐 그런 거다.”
박민철도 스스로 말하고도 멋쩍었는지 계속해서 덧붙였다.
친구라고 해서 모든 걸 말해도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걸 말했다가 불편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사실을 지독할 정도로 잘 알고 있던 난, 씁쓸하게 웃으며 교무실을 나왔다.
*
배치고사까지 끝나고 난 뒤, 우리는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3주간의 브릿지 캠프까지 보내고 난 후 입학식까지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만덕아. 학교는 어떻든? 친구는 사귀었고?”
“서울 학교는 다르던데요. 다들 삐까뻔쩍하더라고요.”
2월, 집 앞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쓸어냈다. 앞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면 이 일도 못 할거라 생각하니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얘가 서울갔다오니 변했나,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네.”
“그냥요. 그나저나 엄마 병원 예약은 하셨어요?”
“그래, 그래. 내일 시내 박병원 들리기로 했다.”
과거로 회귀해서 한가지 다행인 점은 어머니의 병을 미리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초기 발견이 중요한 유방암. 과거에 발견했을 땐 너무 늦은 뒤였다.
‘이번엔 꼭 지켜드릴게요.’
전생에는 그저 못난 아들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질 터였다. 빗자루로 마당을 쓸다말고 어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 사랑해요.”
“으이그, 갑자기 징그럽게 왜 이래?”
“저 없는 동안에도 잘 지내셔야 해요. 방학마다 꼭 내려올게요.”
마음 같아서는 주말마다 내려오고 싶었지만 가는 데만 6시간이었다. 심지어 기상이 악화되는 경우엔 아예 버스가 끊겨 등교도 못 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등을 토닥여주셨다.
“만덕아. 어디에 있든 엄마가 늘 응원하는 거 알지? 어디서나 씩씩하고, 당당하게!”
“네. 꼭 그럴게요.”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내게 있어, 어머니는 내 유일한 가족이자 후원자였다.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걸 아시곤, 동네에 안 읽는 과학 서적들을 죄다 모아오시던 어머니.
궁금한 게 생겨 물어볼 때마다 어떻게든 대답해주려고 애를 쓰시던 어머니.
먼 타지로 공부하러 올라가는 아들이 섭섭할 법도 한데, 티 한번 내지 않고 이렇게 안아주시는 분이셨다.
그렇게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알람 소리였다.
“그럼 잠깐 운동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무리하지 말고!”
“네!”
시간은 오전 6시. 또래라면 잠들었을 시간이지만 내게는 1분 1초가 귀했다. 그중에서도 나한테 필요한 건 체력. 몇 시간동안 공부해도 쓰러지지 않을 강인한 체력이었다.
“헉, 헉.”
산 정상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밤중에 눈이 온 탓에 전경은 눈으로 덮인 설산이었다. 나는 비현실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발을 멈추지 않았다.
회귀하고 난 뒤, 나는 내가 실패했던 이유를 분석했다.
첫째, 자만했었다.
고작 다 합쳐봤자 7명밖에 안 되는 작은 시골 중학교에서 늘 1등을 해오던 촌뜨기. 사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던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똑똑한 줄 알았다.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과학고에 와서 ‘진짜’ 천재들을 마주하고 깨졌다.
둘째, 약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는 약했다. 산골에서 뛰놀며 자랐으니 체력이 좋았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학교에서도 책만 읽는 범생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빼빼 마른 몸이었고 이런 몸은 내 의지를 따라오기 역부족이었다.
‘공부하다가 코피를 쏟는 건 일상이었지. 하루는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었고.’
응급실에 실려 가고 난 뒤로 동급생들의 태도가 더욱 싸늘해진 건 덤이었다. 그렇게 약한 몸으로는 몇 시간씩 이어지는 강도 높은 수업을 따라가기도, 수업 후 이어지는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기도 역부족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여간 트롤이 아니었네.’
수업하다 픽픽 쓰러져, 방과 후 활동은 아파서 불참. 자연히 같은 반 학생들과 팀원들한테 폐를 끼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따돌림의 이유가 될 순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그들에게 빌미를 준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약한 몸에 따돌림까지 당했으니 정신적으로 버틸 수가 없었지.’
기숙 학교인 만큼 24시간 학교에 머문다. 그리고 그곳엔 내 편이 한 명도 없다. 그것만큼 숨 막히는 곳이 또 있을까? 그 와중에 학생들 사이에 퍼진 사배자 명단은 내게 더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허, 헉.”
숨을 가쁘게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저 멀리 해가 뜨고 있었다.
집으로 온 뒤, 매일 같이 빼먹지 않고 등산을 했다. 매일 학교 운동장도 10바퀴씩 뛰었다. 처음에는 한 개도 못 하던 턱걸이를 이젠 쉬지 않고 10개를 연속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입학 장학금을 미리 달라고? 아, 음… 그래. 알겠다.’
원래라면 사배자들에게 주어지는 입학 장학금. 하지만 나는 박민철에게 따로 양해를 구했다. 굳이 사람들 앞에서 장학금을 받아 튀고 싶지 않다고 전하면서.
그리고 그 돈으로 대학 교재들을 중고로 구매했다. 어차피 입학식 때 나눠주겠지만 새 책은 다시 팔면 된다.
다른 학생들이 이미 학원에서 사교육으로 공부하고 있는 동안 가만히 앉아있을 순 없었다.
‘전생에 배웠던 기억이 있지만 너무 흐려진 상태야. 적어도 여러 번 다시 볼 필요가 있어.’
그리고 따로 요약 노트도 만들었다. 이건 나를 위한 게 아니었다. ‘거래’를 위한 포석이었다.
‘이게 얼마나 가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김진수의 구미를 당길 순 있겠지.’
노트에 정리를 하면서 중요한 내용들은 이미 내 머릿속에 들어온 상태였다. 나는 학원가에서만 유통된다는 문제집을 얻어야 했다.
전생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달라질 각오를 했다.
‘못 이룬 꿈을 이룰 차례야.’
생물학에 뼈를 묻겠다는 다짐은 전생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그렇다면 어디서 뼈를 묻을 것인가?
‘하버드, MIT, USFC. 국내보다는 해외 쪽이 연구에 유리해.’
기초 과학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국내보다는 해외가 뜻을 맘껏 펼치기 쉬웠다. 실제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들 모두 해외에 있기도 했고.
금수저 집안에 태어났다면 해외 유학쯤은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다. 한 학기에 수천,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수억까지도 커버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난 아니었다.
정상 위에 올라서자 초라한 우리집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슬레이트 지붕이 녹슬어있었다. 못사는 동네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집.
모든 계급의 최하층인 내가 해외로 가는 방법은 하나. 장학금이었다.
전생 때도 초반에는 성적이 낮았지만, 이후에 급성장. 그리고 각종 올림피아드 수상과 논문 등재 등 고등학생이 쌓을 수 있는 업적은 모두 쌓았던 탓에 장학금을 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외가 아닌 국내를 택한 이유는 하나.
‘어머니.’
그 당시의 어머니는 눈에 띄게 몸이 약해지신 상황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그저 나이가 드셔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나중에서야 암인 걸 알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해외가 아닌 국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가족은 최우선사항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라. 초기에 암을 발견하고 치료를 제때 받을 수만 있다면 다시 예전처럼 건강해지실 테니까.’
국내가 아닌 해외 유학도 내 선택지에 들어왔다.
한 학기에 수천씩 깨지는 돈을 지원해줄 정도로 자금력이 빵빵한 곳은 몇 군데 없었다. 게다가 단순 학부생으로 끝날 경우 연구도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흐지부지 귀국할 가능성도 있었다.
‘금성 해외 장학생.’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금성에서 운영하는 장학제도였다. 타 장학제도가 단순 지원에서 끝이 나는 것과 다르게 지속적인 지원이 특징이었다.
한 학기당 5만 불 지원. 거기다 생활비 및 주거비는 따로 지급된다고 하니 압도적인 장학금을 지급하는 곳이었다.
그만큼 뽑는 인원 역시 치열했다. 한 해에 1명만 선발되며, 해당하는 장학생이 없다고 판단되면 한 해를 건너뛰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선발 기준은 얼마나 잠재 가능성이 있는가.
이미 최상위 대학교에 진학 후 해외 대학원 진학을 노리는 학생들이나 이미 석박사를 진행중인 대학원생들이 주로 지원했다.
물론 고등학생도 지원은 가능했지만… 상대적으로 연구 실적이나 활동 이력이 적은 고등학생이 선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머릿속으로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생 때의 기억을 살려 주변에 장학생을 준비하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야 할 일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차디찬 공기가 코를 타고 몸 안에 깃든다. 하지만 꿈에 대한 열기로 몸은 이미 뜨거워진 상태였다.
‘우선 시작은 전교 1등부터.’
가장 기본이 되는 성적. 부동의 1위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각종 대회 실적들과 개인 연구 실적.
해외 연계 프로그램을 비롯한 국내외 대학들과의 공동 연구 등.
이 모든 게 가능한 곳이 바로 한국과고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혜택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
띠링. 진동이 울렸다.
‘[특별반 안내 문자]’
‘본 문자를 수신한 학생은 특별반으로 배정되었습니다. 특별반 수업 및 교재 관련하여 안내드립니다.’
첫 단추가 끼워졌다.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 전율에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방금까지 캄캄하던 산등성 너머로 빛이 새어 나왔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