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80)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80화(80/221)
80. 성장 (6)
80. 성장 (6)
“사실 너가 아버지에 대해 물은 날 어머니한테 여쭤봤거든. 아버지랑 너 아는 사이냐고.”
“아.”
“아버지라면 모른다고 하실 테니까.”
최한별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에게 손가락 상처는 더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최한별의 모친이 어떤 식으로 이야기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도.
우연히 마주친 사이? 아니면 할아버지를 구한 일까지?
‘할아버지를 뵈었냐고 묻는 걸 보니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 것 같은데…’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렇게 된 거 굳이 거짓말 하고 싶진 않았다.
“어, 실제로 뵈었는데. 잘못하면 사고 날 뻔하셨거든. 차도에 뛰어 드셔서 말이야.”
“…그랬구나.”
“그때 너희 아버지도 같이 뵈었어. 학교까지 태워다주셨거든.”
최강석은 비밀로 해달라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녀가 모르고 있었을 때의 일이지,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해봤자 괜한 의심만 살 뿐이었다. 애초에 거짓말까지 하면서 숨길 내용도 아니고.
“혹시라도 내가 애들한테 말할까 봐 걱정하는 거면 안 그래도 돼. 굳이 말하고 다닐 생각은 없으니까.”
“…”
“그럼 나도 하나 물어봐도 돼?”
마무리 밴드까지 붙였다. 갑작스러운 질문이 들어온다 생각해서인지 손가락이 빳빳해진 느낌이었다.
“왜 생물 전공한 거야? 생물 올림피아드는 갑자기 왜 신청한 거고?”
“…”
“의대 포기했다는 것도. 전에 급식실에서 이야기했던 게 진짜 이유는 아닐 거 아냐.”
궁금했다. 최한별이 의대를 포기하든, 생물로 전공을 바꾸든 아무 상관은 없었지만 그 이유는 상관 있었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바꾼 거면?
‘근본적인 치료를 하고 싶어서.’
그때 최한별이 이야기했던 이유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뭐에 대한 치료인지는 말하지 않았었다. 애써 내가 생각하는 ‘그’ 병이 아닐 거라 부정했지만, 이제는 물어봐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나 때문이야? 내가 치매 연구를 한다고 해서?”
“…그건 아니야.”
“그럼 왜?”
최한별은 말하지 않았다. 말하기가 어려운 건지, 아니면 말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최한별의 할아버지의 치매 정도는 중증.
언제부터 치매 증상을 보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기대 수명을 생각해봤을 때… 그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기대 수명은 최소 3년에서 최대 20년. 그러나 평균적으로 10년.’
어쩌면 지금쯤이면 말기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을수도 있었다. 최한별은 시선을 피한 채로 말했다.
“…이제 더이상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보셔. 대화도 안 통하고.”
“…”
“그런데 아버지는 더이상 치료하지 않겠다고 하셔서…”
“왜?”
“무의미하다고…”
나는 미간을 좁혔다. 치매 환자의 경우 지금 의학 기술로는 완전한 치료가 힘들다. 그렇다고 치료를 포기하는 집은 드물었다. 실낱같은 희망만이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치매 약물치료를 두고 실효성에 대한 논의는 계속 이어지곤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안 할 수준은 아닐 텐데. 그걸 최강석이 모를 리가 없었다.
최한별은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뜻 들으면 남의 집 이야기를 하는 거라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내가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의대 말고 생물 쪽으로 가기로 마음먹은 거야. 생물 올림피아드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서 나가는 거고.”
“아하…”
그러나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무수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최한별을 바라봤다. 처음으로 그녀가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치매 치료가 쉬운 게 아닐 텐데.’라든가,
‘알츠하이머 병을 가진 사람의 평균 수명은 10년이야. 그 안에 만드는 건 불가능해.’라든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냥 의대나 가는 게 나을 거야.’와 같이.
현실적인 이유들, 말릴만한 수십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전부 다 전생의 나였다면 거리낌 없이 했을 말들이었다.
…그만큼 치매 치료가 힘들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이 분야에 뛰어들려는 최한별을 마냥 응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을 뱉을 수는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한마디뿐이었다.
“…힘들었겠네.”
“…으응.”
“진짜 힘들었겠다.”
“…응”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잊힌다는 건 잔인한 일이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최한별을 기다려줬다. 더이상 그녀가 의대를 포기했든, 생물로 전공을 바꾸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얼마나 간절한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 생물 올림피아드 잘해보자.”
“…응.”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막고 있던 벽 하나가 사라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
오늘은 토요일. 그러나 평소와 같이 김성진 연구실로 가는 것이 아닌, 새로운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전생에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곳.
으리으리한 대저택 앞에 서니 자동으로 몸이 굳었다. 쌍둥이들 집도 엄청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집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누르니, 커다란 정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 안녕하세요.”
“반갑네. 전에 봤을 때보다 더 수척해진 것 같은데.”
정문 뒤에서는 중년의 남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남자.
최강석이었다. 그렇다, 나는 최한별의 집에 오게 되었다.
“한별이 말을 들어보니까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그, 그게 정확히는 바쁘시냐고···”
“음···물론 바쁘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오늘은 마침 오프여서.”
과연 우연히 ‘오프’인건지, 아니면 ‘오프’로 만든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게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에게 논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최한별이 나에 대해 어떻게 전했기에 최강석이 나를 만나보겠다고 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이동했다. 현관문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며 내부로 들어가자 어마어마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리석 바닥, 웬만한 집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큰 내부, 게다가 2층집. 인테리어 하나하나가 고급진 건 물론이고 돈만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닌 듯했다. 딱 보기에 오래된 명화도 거실 복도 중앙에 걸려있었으니까.
‘애초에 집 안에 복도가 있는 것부터가 낯설다고.’
최한별은 금수저가 아니었다. 그 이상. 적어도 3대가 금수저가 아니고서는 이 정도 부를 쌓을 수 없을 터.
나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가죽 의자에 앉았다. 차가운 냉기가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곧바로 맛있어 보이는 과일들과 다과들이 준비되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최강석은 내게 다과를 권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사실 한별이가 요즘 사춘기가 왔는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잘 되었네.”
“사춘기요?”
“의대를 안 가겠다고 해서 말이지. 게다가 생물로 전공도 바꾸고. 또 최근에는 생명과학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나. 좀 골치를 썩고 있네.”
최강석은 최한별에 대해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녀가 얼마나 엘리트 코스대로 살아왔는지, 집안 대대로 의사 집안이었던 것도, 외동이라 거는 기대도 많다는 것도.
나는 그 말을 묵묵히 들었다. 최강석은 최한별의 꿈을 잠깐 있다 사라질 꿈 정도로 여기고 있었고, 그녀가 치매를 치료하고 싶다는 내용은 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냥 생명과학 연구원이 아니라 목표가 있는 것 같던데요.”
“목표?”
“네. 치매를 치료하고 싶다고···”
하하! 내 말을 들은 최강석이 소리 내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넓은 집에 울려 퍼졌다. 그는 가볍게 후, 하고 한번 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만덕 학생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 우리 애가 왜 그런 꿈을 꾸는지?”
“네. 아마 할아버지와 관련 있지 않을까요?”
“고맙네. 지금까지는 이유를 몰라서 설득을 하려고 해도 안 먹혔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는군.”
감이 온다?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런데 꼭 의사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응?”
“주제넘은 소리라는 건 알고 있지만···의사로 성공한 삶도 좋지만, 치매 치료제를 발견한 연구원으로 사는 것도 멋있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오호.”
최강석은 짧게 반응했다.
딱히 최한별을 두둔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보건실에서 그녀가 보였던 모습이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마치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던 내 모습과 닮아있었으니까.
게다가 최한별 정도의 집이라면 돈 걱정 없이 연구에 임할 수도 있었다. 오히려 전생에 그녀가 보여줬던 성과들이라면 치매 분야에 뛰어든다면 더 좋은 결과를 보일수도, 아니 뇌 분야의 전문가인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놀라운 일을 해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치매 치료제는 ‘발견’해내는 건가?”
“네?”
“만덕 학생이 지금 이야기했지 않나. 치매 치료제를 ‘발견’한 연구원으로 사는 것도 멋있는 삶이라고. 그 말은 치매 치료가 가능한 약이나 수술법이 존재한다고 가정한 후에 나온 말이지 않은가?”
“…그렇습니다만.”
“하하하···”
최강석이 저렇게 웃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의 논문에 대해 이야기하러 온 것인 이상, 지금이 이 주제를 꺼내기 가장 적기였다.
나는 양 주먹을 쥔 채로 가방에서 논문을 꺼냈다. 그때 봤던 최강석이 쓴 논문이었다.
“…이 논문은?”
“치매 치료를 연구하던 중에 발견한 논문입니다. 박사님.”
호칭을 뭐라 할까 순간 고민했지만, 나는 논문에 적혀진 대로 박사라는 호칭을 붙였다. 물론 의사, 혹은 교수님 등. 여러 호칭이 있지만 지금은 박사라는 말이 가장 적합했다.
그가 오랜 시간 연구해 왔던 분야라는 걸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했으니까.
따로 알아본 결과 최강석은 의사로 활동하면서도 연구직에 수년간 몸을 담았던 경험이 있었다. 이 논문 역시 그 시절에 나왔던 것이었다. 그 이후 그는 대학 교수와 대학 병원 의사를 함께하는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그는 논문을 바로 받아들지 않고 나를 찬찬히 바라봤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그는 자신이 썼던 논문을 집었다.
그리고 한번 쓱 읽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걸 아직까지 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네?”
“딱히 주목할 내용은 아니네. 그렇게 놀랄만한 내용도 아니고.”
내가 예상했던 거와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침착한 모습을 보니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내가 말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치매 치료라. 안 그래도 최근에 만덕 학생이 학교에서 발표했던 내용은 봤네. 그 분야에 있는 내가 볼 때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지. 이런 애라면 전교 1등 할 만하지, 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연구를 진행하면서 빠뜨린 것도 있을 텐데?”
“!”
최강석은 내 반응을 보더니 쓴 미소를 지었다. 단번에 그 연구 내용을 파악하고 그 뒤의 내용까지 알아내는 모습.
그는 이미 이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일단 베타-아밀로이드를 생성하는 유전자의 염색체를 알아낸 건 대단하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네.”
“…”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줄어든 것과 치매 증상 경과 사이에 대해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발견했나?”
“…그건.”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애써 못 본 채 부정하고 있던 일이었기에.
“아마 아니었겠지.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줄어들어도 쥐의 치매 정도에는 변화가 없었을 테니 말이야.”
“…치매는 단순히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축적 정도로만 발병하는 게 아니라 복합적인 이유로-”
“맞네. 복합적인 이유라네.”
그는 들고 있던 논문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문제가 되지. 그렇다고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모조리 잘라버리자니 그럴 수도 없지. 유전자 편집이라는 건 사실 위험한 기술이니 말이야. 그렇다고 뇌에 약물을 투약시키기엔 또 혈뇌장벽까지 도달하는 게 난관이고. 참 어려운 문제야.”
“그래도 계속 연구하다 보면 답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 아마 연구하다 보면 언젠가 답이 나오겠지. 인간이 병을 정복해 왔던 것처럼.”
최강석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 자네도 알고 있겠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의 연속. 답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 채로 반복하는 것 말일세.”
“…”
“애초에 유전자를 편집해서 단백질 축적도 아닌 생성 자체를 억제한다는 건 잘못된 가설이었던 거야.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지.”
“잘못된 가설···”
“나는 내 딸이 좀 더 편한 길을 가길 바라네.”
그뿐이네. 최강석은 그걸 끝으로 치매에 대해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과가 놓여있지만 그 누구도 먹지 않았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뭘 먹었다간 체할 게 분명하다.
그의 논문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 같았는데, 그를 만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자네도 모쪼록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네. 안 되는 일에 젊음을 투자하기엔 너무 아깝지않나.”
“…감사합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심장이 세차게 뛴다. 손바닥이 땀으로 흠뻑 젖은 지 오래다. 분명 냉기가 느껴졌던 집안이었는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전생 때 내 연구가 실패했던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