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8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82화(82/221)
82. 발견 (2)
82. 발견 (2)
“어라, 교수님은요?”
“학회. 아마 오늘 못 오실거야.”
일요일 아침, 김영재와 함께 연구실에 방문한 나는 연구 노트를 꺼냈다. 최찬형은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볼때마다 신기해. 너 진짜 고등학생 맞지?”
“네?”
“전에 들고 온 논문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연구를 엎다니? 그런 깡은 인생 2회차는 되어야 나오는 건데 말이야.”
“하하···인생 2회차라뇨.”
“사실 저도 같이 있을때 가끔 가끔 놀라요. 뭐라고 해야 하지···. 애늙은이를 넘어선 뭔가가 있다고 해야하나.”
“마, 맞아! 나, 나도 저, 전에, 느, 느꼈, 어.”
갑자기 이어지는 칭찬 아닌 칭찬에 나는 멋쩍어졌다. 애먼 뒤통수만 만지작댔다.
“글쎄요. 생각이 없으니까 쉽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거라 생각하는데요.”
“재, 재성아···!”
“연구가 장난도 아니고. 쯧.”
이재성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노트북을 두드리며 말했다. 눈 밑이 퀭한 게 밤새 잠도 제대로 못 잔 것 같았다. 그 순간,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재형이 어린아이 혼내듯 사뭇 비장한 눈을 지어보였다.
“재성아.”
“…왜.”
“친구한테 말할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지?”
“…”
동생을 대할 때만큼은 말을 버벅이지 않는 이재형이었다. 그의 달라진 말투에 이재성이 시선을 피하며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무리 틱틱대며 말해도 10살 위인 형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사과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이재형이 한숨을 쉬며 나를 바라봤다.
“만덕아, 미안. 내가 대신 사과할게.”
“괜찮아요, 형.”
이재성 성격 나쁜 건 처음 만난 날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전생에 인터뷰한 글만 봐도 어딘가 삐딱한 녀석이라는 건 눈치 챘었다. 형이 사과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에 찔렸는지, 이재성이 입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재형은 그런 동생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사실 어제 집에 가서 밤새 너가 알려준 방향대로 다시 연구 시작했거든. 연구하면서 계속 ‘진짜 이딴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해 낸 거래. 짜증 나게.’라든가, ‘진짜 짜증 나는데 또 아예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잖아?’라든가, ‘진짜 머리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새끼···’라고 말하는데-”
“아, 형! 형!”
갑자기 난데없는 뒷담화가 아닌 뒷칭찬을 들키자 이재성이 큰 소리를 냈다. 급하게 이재형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애초에 체격으로 봤을 때도 이재성이 호리호리한 여우 같은 느낌이라면 이재형은 곰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체격 싸움에서 밀린 이재성은 결국 동생이 숨기려고 했던 내용들을 하나씩 까발리기 시작했다.
“재성이가 너 만나고 사실 많이 변했거든. 원래는 맨날 고등학교 자퇴할 거다, 자퇴할 거다~하면서 자퇴 소리를 입에 붙이고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 일반고나 과고나 별 차이 없다고 말하더라고?”
“호오.”
“그리고 전에 너가 영어 논문 뽑아줬던 거 하나도 안 버리고 하나씩 모아뒀다? 논문 고르는 감을 배워야 한다나 뭐라나?”
“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형, 제발. 이제 말 착하게 할게. 착하게 말한다고오오!”
역시 형을 이기는 동생은 없군. 하지만 어느 정도 이재성이랑 지내면서 이 녀석이 하는 화법 정도는 마스터한 나였다. 애초에 진짜 싫으면 말도 안 섞을 테니까. 그러니 저렇게 틱틱대는 것도 일종의 관심을 보이는 화법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김영재한테까지 나쁘게 굴 때가 종종 있었기에···. 솔직히 지금 모습을 보며 나는 만족했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뭐야. 재성이 알고 보니 츤데레였네.”
“츤데레? 츤데레가 뭐에요?”
“아, 영재 형. 츤데레가 뭐냐면요. 겉으로는 틱틱대면서도 실제로는 잘 챙겨주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을 츤데레라고 해요.”
“내, 내 동생이 조, 좀, 츤데레긴, 해.”
“아니, 그딴 이상한 별명 맘대로 짓지 마! 형도 인정하지 말고!”
이재성 놀리기에 전념하며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재성을 골려주고 있는데, 연구실 문이 벌컥 열렸다.
김성진 교수였다.
“교수님? 오늘 학회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학회, 학회가···있었지.”
“?”
김성진 교수는 경황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내 다시금 차분한 상태로 돌아와 평소의 어조로 이야기했다.
“학회 측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젯밤에 전화로 이야기한 게 조금 신경 쓰여서 말이지.”
“어···.”
“학회는 다음에도 갈 수 있지만 연구 이야기를 들으려면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니 말일세.”
···? 김성진은 차분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학회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춘계와 추계. 일 년에 두 번밖에 없다. 그 반면 새로 바뀐 연구 내용은 다음 주에 들을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지.”
“교수님, 근데 이번 학회때 우수 논문상 수상하러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우수 논문상? 처음 듣는 이야기에 두 눈이 커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어젯밤에 전화했나? 어제 김성진 교수는 오후 내내 일정이 잡혀있던 터라 간단히 전달하려던 목적이었는데···. 그러자 김성진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다 끝난 발표를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것보다 앞으로 할 연구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게 훨씬 더 중요하지. 안 그런가?”
결국 그의 재촉 아닌 재촉을 이기지 못한 나는 어제 팀원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줬고, 김성진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전 논문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좋은 지적이군.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응집체 형성 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해 사슬 형태가 아닌 직선 형태로 생성되도록 유도한다. 맞나?”
“네. 거기다가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도록 저분자화해서 배출시키는 것까지도요.”
“시냅스에 대한 연구는?”
“…뇌세포를 복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는 알고 하는 말이겠지?”
“네.”
군더더기 없이 나온 내 대답에 그는 말없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나저나 이번 연구를 진행하려면 연구비가 좀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연구비를 좀 더 따와야겠군.”
“연구비를 따온다는 말은···”
“훌륭한 연구가 진행되는 데 있어 돈은 없어선 안 되니까 말일세.”
교수 중 몇몇은 연구비를 받기 위한 계획서를 대학원생들에게 시키거나, 대학원생들로부터 돈을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김성진은 그런 일을 누구보다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교수가 해야 할 일을 학생들에게 시켜선 안 되는 일이니까.”
김성진의 말에 이재형과 최찬형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분명 감동받은 게 틀림없었다. 아직 연구원들의 실정에 대해 모르고 있는 김영재와 이재성만이 ‘저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하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김성진의 말을 들으며 전생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연구비 지원이 빵빵하면서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
“아.”
최성훈. 미래기술육성센터장. 최한별 삼촌.
그에게서 받았던 명함이 아직 지갑에 껴있었다.
*
“그래, 별일 없었고?”
“네. 형님도 잘 지내셨죠?”
“뭐 나야···.”
말끝을 흐리며 말없이 웃는 최강석. 청담동 VIP룸에 마주 앉은 최강석과 단둘이 있게 된 최성훈은 이 상황이 몹시나 불편했다. 둘은 7살 터울이었던 만큼 형제간의 우정보다는 아버지와 아들 같은 느낌이었고, 늘 엄하고 칼 같던 형이 최성훈한테는 영 불편한 존재였던 것이다.
하하···. 멋쩍게 웃은 최성훈이 떨떠름한 모습으로 스테이크를 썰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 양반이 갑자기 무슨 일이지?’
평소에 사적인 연락은 거의 하지 않는 최강석이다.
전에 조카인 최한별이 한국과고에 지원한다며 자기소개서를 봐달라고 했을 때 빼고는 근 1년간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답으로 고기를 사겠다고 하니···. 시기상으로도 적절하지 않았다.
“사실 오늘 부른 이유는 전에 우리 애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고···. 고민이 있어서 말이야.”
“형님,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그리고 한별이가 남인가요? 제 조카인걸요.”
“…한별이가 의대를 안 가겠다고 말했네.”
“예?! 의대를 안 가겠다고 했다고요?”
“···그래.”
“와···.”
최성훈은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최강석, 그러니까 형의 마음은 쑥대밭이 되어있을 거라고.
최강석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의견을 듣고 싶어서 말이지.”
“의견이라···. 뭐 어쩔 수 있나요. 기다리다 보면 다시 의대로 바뀔 수도 있고 아니면 응원해 주는 수밖에 없죠.”
최성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물론 저 두 개 다 최강석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말도 딱히 없었다.
“과고는 하루하루가 남들과 다르게 흘러가. 거기서 하루를 낭비하는 건 엄청난 손실이지. 마냥 기다려 줄 수는 없어.”
“흠···. 그러면 응원해 줄 수밖에 없네요.”
그 순간, 스테이크를 썰던 최강석의 손이 멈췄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동생을 바라봤다. 순간 그 기세에 살짝 눌린 최성훈이었지만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 그래도 한별이가 의대에 가기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보낼 수도 없잖아요. 막말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져줘야죠.”
“아이가,”
최강석은 힘을 주어 칼질했다. 그의 손동작에 맞춰 고기가 썰려 나갔다.
“잘못된 결정을 하려고 하는데 져주는 게 맞나?”
“···잘못된 결정이라뇨. 의대에 안 갔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은 아닌데요, 형님.”
“그건 너의 생각이고.”
한입 크기로 썰려진 고기를 입에 넣으며 맛을 음미하는 최강석. 그는 아무렇지 않게 동생의 의견을 일갈한 뒤였다. 그러나 그의 의견처럼 포장된 폭언은 계속 이어졌다.
“아버지는 그때 분명 너한테 말씀하셨지. 의사가 되라고. 근데 그 기회를 발로 찬 건 너야. 그때 뭐라고 했었지? 의사보다 컴퓨터가 더 뜨는 시대가 올 거라고 했던가?”
“형님. 저희 회사 모르세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마치 의사가 계급 사회의 정점인양-”
“정점은 아닐 수도 있지.”
그는 이미 식사를 마친 뒤였다. 준비된 손수건으로 입 주위를 닦은 그는 품격있게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정점이야. 적어도 월급쟁이인···사람보단 위이지.”
“···여전하시네요.”
“내 생각이 짧았군. 혹시라도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이 있을까 했는데 말이야.”
“허, 제가 무슨 말을 하시길 바라셨길래?”
“음···. 의대를 안 가고 공대를 갔던 걸 후회한다···정도?”
최성훈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최강석에게 있어서 세상은 두 종류의 인간만이 존재했다. 의사 혹은 의사가 아닌 사람. 심한 모욕감을 느낀 최성훈의 머리 위로 순간 R&E 발표날 최한별의 모습이 떠올랐다.
최성훈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근데 형 어떡하죠. 전에 학교에서 보니까 한별이 생물 쪽에 완전 푹 빠진 것 같던데.”
“···.”
“특히 그때, 그 누구더라? 김만덕? 그 학생한테 완전 푹 빠진 것 같더라고요. 한별이가 그렇게 자주 웃는 거 처음 봤지 뭐에요? 맨날 무뚝뚝하던 애였는데. 이러다가 남자친구 따라서 생물 쪽으로 가겠다는 거 아닌가 몰···?”
일부러 상상을 좀 더 가미해서 없던 일도 지어냈는데, 최강석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뭐야. 진짜야? 진짜 남자친구였어? 그래서 의대 안 가겠다고 한거야?’
그제서야 최성훈은 최강석의 행동이 완전히 이해가 갔다. 금지옥엽처럼 키운 귀한 외동딸이 갑자기 남자친구 따라 가겠다고 의대를 포기한다니. 최강석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뒷목 잡고 쓰러져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최강석은 급속도로 말이 없어졌다. 심지어는 최성훈이 고기를 다 먹지도 않았는데 일어나려고 하는 바람에 결국 흐지부지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최성훈은 그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차에 타는 형을 보며 정나미가 더 떨어졌을 뿐이다.
부아앙, 멀어져 가는 차의 뒤통수에 대고 최성훈은 소심한 분풀이를 했다.
“에라이! 이 앞뒤로 꽉 막힌 사람 같으니라고! 이번에 고생 좀 해 봐라! 그리고 뭐? 후회? 후회는 무슨, 너 같은 의사될 바에 안 된 게 백배 천배 낫다, 이 싸이코패스야.”
에베베, 거리며 유치한 장난을 치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네, 여보세요.”
[최성훈 미래기술육성센터장님 핸드폰 맞으신가요?]익숙한 목소리. 하지만 목소리만으로 누군지 떠올리는 건 힘든 일이었다. 최성훈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네,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아, 최성훈 센터장님!]저 한국과고 김만덕입니다. 라는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