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8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83화(83/221)
83. 발견 (3)
83. 발견 (3)
예상치 못한 전화였던 탓일까 최성훈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때, 그 한국과고 발표?]“네. 갑작스럽게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다름아니라 연구비 관련해서 몇가지 여쭤보고 싶은게 있어서요.”
[연구비? 우리 회사에서 주는 거 말하는거니?]“네.”
[하하하!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미안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고등학생이 아니라 대학 교수나 기관 연구원들 대상이어서 말이지. 좀 더 공부하다가 연구소에 취직하면 그때 연락주렴.]“아, 제가 아니라 교수님이 신청하시는거라서요.”
[교수님?]전화기 너머 최성훈이 잠잠해졌다. 그 사이 나는 김성진 교수를 바라봤다.
전생때는 김성진 교수가 먼저 나서서 연구 과제를 따올 일은 많지 않았다. 보통 그의 논문을 보고 기업쪽에서 먼저 제안해오거나 국책 사업과 관련한 굵직한 사업들 위주로 봐왔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맨땅에서 헤딩하는 단계. 아무런 기초 자료도 없는 우리에게 연구비를 줄 기업은 만무했다.
[혹시 그 교수님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최성훈의 목소리에 진지함이 묻어났다. 아까까지는 학생이 건 장난전화 수준으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본업의 모습이었다.
“카이스트 김성진 교수님이요.”
[카이스트 김성진 교수님이라면···]뭔가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높은 확률로 관련 논문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는 중이겠지. 그리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만나서 이야기할까?]“만나서요?”
고개를 돌려 김성진을 바라봤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으시다는데요?
김성진은 시계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대전으로 갈게.]“지금요?”
[KTX타면 금방이야.]아무리 그래도 대학까지 1시간은 더 걸릴텐데, 하지만 최성훈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곧 보자.” 라는 말을 남기고 통화를 종료했다.
우리는 통화가 끝난 핸드폰을 보며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 상황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김성진이었다.
“…열정이 넘치는 사람인가 보군.”
“열정···열정이라···열정 넘치죠. 그렇죠.”
전생에도 최성훈은 연구비 지원 사업에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 보이는 과제들은 눈 앞의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그 장래성에 주안점을 뒀었다.
‘치매 치료라고요? 이거 엄청난 거 아닙니까?!’
전생에 그가 활짝 웃으며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같은 모습일지는 모르지만···부디 변함없는 마음이길 바랐다.
“안녕하세요.”
생각보다 최성훈은 빨리 도착했다. 대학교 안 카페테리아 안에서 만난 우리는 악수를 나눴다.
“생각보다 엄청 빨리 도착하셨네요?”
“기차표가 바로 있었거든. 그나저나 김성진 교수님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교수님. 미래기술육성센터장을 맡고 있는 최성훈이라고 합니다.”
그는 능숙하게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김성진에게 건넸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그에게 연구비를 따내려고 하는 분위기인데도 최성훈은 ‘갑’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다 문득 그의 얼굴에서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최강석이랑은 분위기가 영 딴판이네.’
최강석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이미지라면 최성훈은 바늘로 찔러도 말랑하게 들어갈 것 같은 느낌. 김성진과의 인사를 마무리하고 난 그는 친근하게 나를 대했다.
“그때 R&E 발표 이후로 이번이 처음인가?”
“네. 갑작스럽게 전화를 드렸는데도 흔쾌히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 뭘. 만나자고 한 건 나인데.”
그는 웃으며 김성진과 나를 번갈아봤다.
“귀사에서 연구비 지원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김성진은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서론을 싫어하는 건 여기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김성진의 이야기에 최성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 센터에서는 과학과 기술 연구 부분에 있어서 다른 기업들보다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 자체에 대해서도 자율성을 크게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자율성이라···자율성을 보장해주다보면 연구 과제가 중단되는 일도 많을텐데요.”
“사실 그 부분도 우려되는 부분이긴 하지만···중단될 걸 미리 알고 연구에 뛰어드는 팀은 없을테니까요. 사실 아직 센터가 세워진지도 1년도 채 안된 상황이어서요.”
아하, 그제야 최성훈이 조금 조급해보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생때는 꽤 큰 센터였는데 말이지, 지금은 신생이겠구나.’
연구비를 지원하는 센터라고 해서 실적 보고가 없는 건 아니다. 사회공헌기업이라고 무작정 퍼주기만 해서는 금방 망해버리기 쉽상이다.
센터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연구를 지원하는 것도 있지만···동시에 이 기업의 대외적 브랜드 이미지를 고취시키는 것.
“김성진 교수님께서 연구하신 내용들을 살펴보고 왔습니다. 뇌과학과 관련해서 저명한 논문들을 많이 내셨던데요. 이미 하고 계시는 연구가 있으실거라 생각합니다만, 혹시 이번에 신청하시려는 연구 과제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최성훈은 그 짧은 새에 김성진에 대해 파악한 것 같았다. 불필요한 미사어구나 칭찬은 최대한 빼고 핵심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 질문에 김성진은 대답 대신 나를 쳐다봤다.
“사멸된 뇌세포를 복구하는 연구에요.”
“?”
예상과 달리 내가 대답을 하자, 최성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학생도 제 연구실 소속입니다.”
“아···그러니까 설마 그 말은···?”
최성훈이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김만덕 학생이 제안한 연구 과제를 중심으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뇌세포 복구, 엄밀히 말하면 단백질 축적으로 인해 사멸된 치매 환자의 뇌세포를 복구 하는 것 말이죠.”
“하하하···”
최성훈이 품 속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갈색 체크무늬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두어번 닦더니 웃으며 말했다.
“뭐, 김만덕 학생이 우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저기, 혹시 둘의 관계가?”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 이런 관계는 아니신거죠?”
“절대.”
“절대요.”
나와 김성진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의심을 완전히 지워버리진 못한 최성훈이었지만, 그는 두어번 목을 가다듬더니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만덕 학생의 아이디어라고 해도 연구원으로 넣을 수 없습니다.”
“흠. 나이가 문제인건가요?”
“나이가 문제라기보단 연구원 자격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는 준비해온 서류 파일을 꺼냈다. 그 안에는 ‘연구팀 지원 자격’에 대한 규정이 적혀있었다.
“연구 책임자는 전임 교원, 그러니까 대학 교수인 경우 신청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밑에서 일하게 되는 연구원의 경우엔 적어도 학교 내 연구원 소속이어야 하죠.”
“학교 내 연구원 소속이라···”
“그리고 카이스트도 제가 알기로는 정식 연구원 소속이 되려면 적어도 박사 학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역시 모교라 그런지 최성훈은 연구원 자격 조건에 대해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연구실에는 학부 연구생 분도 있고, 석사나 박사 과정 진행 중이신 분도 계신걸요?”
“국내 소재 연구기관에 소속된 연구원이라면 가능하지만, 단순히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이라고 다 지원할 수는 없어.”
연구실에 있는다고 모두 연구원 신분인 건 아니다. 석박사 과정을 밟더라도 정식으로 학교 내 연구원 소속이 된다는 건 다른 의미였다.
최성훈은 단호한 표정이었다. 뭘 생각하는 건진 알겠지만, 그렇게는 안된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
하지만 이정도도 예상 못한 내가 아니다.
“음···그럼 객원 연구원은요? 비전임 연구원이요.”
전생때 객원 연구원 신분으로 연구팀에 참여했던 사람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시기가 이르고, 규정이 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은 아직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어···규정상으로 비전임 연구원들도 참여가 가능해.”
“연령 제한은요?”
“연령 제한은 딱히 없는데···”
“그러면 객원 연구원으로 카이스트 내 연구원으로 소속이 인정되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네요?”
나는 씩 웃었다.
내 말을 들은 최성훈은 한동안 벙쪄있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김성진을 바라봤다.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김성진과 함께 연구를 시작하기로 한 날, 나는 대학교 규정집을 내밀며 말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제대로 연구할 수 없어요. 기기 예약하는 문제도 매번 다른 연구원님들한테 부탁할 수도 없는 부분이고요.’
나는 ‘객원 연구원’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에 형광펜을 친 부분을 가리켰다.
‘원래라면 최소 박사 학위 이상의 사람들만 객원 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지만…이 부분을 보면 박사 학위에 상당하는 경력을 보유한 자도 인정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력은 연구실 담당 교수를 비롯한 연구 인사팀의 허가가 있을 경우 인정한다고 되어있고요.’
‘그 말은 스스로 박사 학위에 준한다고 생각하는건가?’
‘스스로 박사라고 생각한다는 것보단···’
박사학위? 없다. 그렇다고 박사 학위를 따자고 당장 대학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까지 허비할 시간은 없으니까.
‘이 부분에서만큼은 증명해보일 수 있으니까요.’
김성진은 내 말을 듣고 웃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성진 역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말없이 웃고 있었다.
“어···아직 그 부분은 규정에 없긴 한데···”
최성훈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 객원 연구원으로 인정만 받으면 참여할 수 있는거네요?”
“음···일단은 그렇지?”
“고등학생이더라도요? 그쵸?”
“맞긴 한데···그게 사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사실 규정에 없는 이유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일단 되면 가능하다는 소리네요?”
“그러니까 그게 사실상 불가능한-”
최성훈은 이리저리 해명을 늘여놓더니 규정집을 슬그머니 다시 가방속으로 넣었다. 여기서 더 말해봤자 본인만 말려든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후였다.
“일단 뭐가 됐든간에 정식으로 지원해주신다면 그 이후에 면밀히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성진과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우리는 [학교 내 연구원은 지원 가능]이라는 답을 얻어냈고,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아마 그냥 고등학생이 지원한다고 했거나, 연구실 소속생이 지원한다고 했으면 거절당했겠지. 아직 센터가 세워진지 얼마 안되어서 다행이야.’
미래기술육성센터장은 훗날 모든 기초분야 과학자들이라면 한번쯤은 지원해볼 정도로 큰 센터로 성장한다. 그럴수록 경쟁률은 치열해졌고, 나중에는 모든 서류 평가를 블라인드로 진행할 정도로 엄격해졌다.
우리는 앞으로 진행하려는 연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직 정식으로 지원한 건 아니지만 최성훈은 이 연구에 대해 관심이 많아보였다.
‘…하긴 그럴수밖에 없나.’
최한별과 최성훈은 친척이다. 최성훈과 최강석은 형제.
그 말은 최한별의 할아버지가 곧 최성훈의 아버지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 연구가 꼭 이뤄졌으면 좋겠네요.”
그는 우리의 연구 과제를 듣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의 의미를 모르는 김성진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걸려온 전화에 김성진은 밖으로 나갔고, 카페 안에는 나와 최성훈만 남아있었다.
그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였다. 하지만 그는 질문하지 않았다.
“응원하마.”
어찌보면 단답에 가까운 그의 말에 나는 그의 명함만 빤히 쳐다봤다. 미래기술육성센터, 말 그대로 미래에 쓰일 기술을 육성하기 위해 지원하는 곳.
“궁금한 게 있어요.”
“뭐니?”
전생때도, 지금도. 이곳에 연구비 지원 사업을 신청하면서 늘 궁금했던 내용이었다.
“심사 기준을 잘 모르겠어서요.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연구’라는 게 사실···음, 애매하잖아요?”
“미래를 여는 연구라···”
그는 씩 웃었다.
“맞지. 지금으로선 알 도리가 없어.”
“예?”
“연구라는게 얼마나 많이 엎어지는 줄 아니? 연구 과제도 진행되면서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고.”
“아···”
“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말아야하는게 연구니까.”
연구. 기본적으로 연구는 실패를 바탕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모든게 가설에 맞춰 딱딱 떨어질거라 생각한다면, 연구조차 할 필요가 없을테니까.
“엎어지고, 또 엎어지고. 할때마다 오차와 오류 발생은 기본이고 아예 이렇다 할 답도 못 알아내고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도 부지기수지. 이럴 줄 알고 시작했는데 아니었습니다-가 대부분일거다. 하지만 그래도 다들 연구를 시작하는 이유가 뭘거라 생각하니?”
“…실패할 거라 생각하고 덤벼드는 연구는 없으니까요.”
“바로 그거야.”
최성훈은 소리 없이 웃었다.
“누가봐도 안될 일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세상은 바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그런 바보들을 지원하는게 일이란다.”
“뭔가 모순적이네요.”
“원래 세상에 큰 일은 바보들이 해내거든.”
연구원들이 연구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우리 일이니까. 그때 마침 통화를 마친 김성진 교수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짧게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떤 연구를 준비하는 건진 몰라도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연구가 아니라면 통과하기 힘들거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렴.”
“…감사합니다.”
“아, 그렇다고 아직 통과됐다고 말한 건 아니다?”
장난스레 웃어보이는 그의 모습에 나도 미소로 화답했다. 묘하게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 우리는 바보처럼 헤헤 웃어대고 있었고, 김성진 교수가 이상한 사람을 보듯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
“그럼 일단 연구원 신분부터 정식으로 받아오겠습니다.”
박사 학위에 준하는 경력. 전생의 치트키를 좀 이용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