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8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84화(84/221)
84. 발견 (4)
84. 발견 (4)
김성진 교수의 이마의 주름이 더 깊어졌다.
“객원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릴려면 적어도 박사 학위, 혹은 그걸 입증할 만한 최소한의 결과물이 있어야한다더구나.”
“결과물이라···”
역시. 대학교에 정식으로 소속된다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었다.
“박사 학위를 지금 당장 딸 수도 없고, 이것 참.”
쯧, 가볍게 혀를 차는 김성진. 최성훈이 센터장으로 있는 미래기술육성센터의 지원을 받기 위해선 적어도 박사 학위 소지자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던 김성진이 말을 이었다.
“이렇게 된 거 연구비 없이 진행해도 괜찮지 않겠니? 내 연구실에 있는 대학 내 공용으로 사용
해도 되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연구는 가능할 테니 말이다.”
“물론 그건 가능하지만···이번에 제가 하려는 연구에서는 최신 장비가 필요해요. 연구 시설도 새로 갖춰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연구비는 크게 4가지로 사용된다. 인건비, 연구 시설 및 장비비, 연구 재료비, 연구 활동비 등. 물론 이번 연구에서는 인건비는 거의 들고 있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연구라는 것이 보통 한두 달로 끝나는 게 아니다. 더더욱 ‘치매 치료’라는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 기간동안 연구비 없이 연구를 하는 건 불가능이기도 했고.
더군다나 뇌세포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려던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실험 재료, 즉 샘플을 구입하거나 직접 처리해 실험에 들어갈 차례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실험에 쓸 실험 동물들을 구해야했으니까.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꼭 미래기술육성센터의 연구비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연구비 지원은 필수였다.
“결과물의 기준은요?”
“네이처나 사이언스같은 유명한 학술지에 등재된 논문 정도면 수락할 것 같은 분위기지만… 사실 어디에 올리냐보다 어떤 내용인지가 더 중요한 거겠지.”
결과물. 연구원 인사팀에서 요구하는 결과물은 생각보다 기준이 높았다.
박성민 때처럼 쉽게 객원 연구원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 연구는 이미 박성민이 진행하고 있던 연구에 내가 피실험자이자 보조로 참여하는 느낌이었지만 이건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연구였으니까.
김성진은 스스로 말하고도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고등학생들이 쓴 논문이 네이처에 실린다는 건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으니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너희만 괜찮다면 연구팀에 너희 이름 대신 다른 연구원 이름을 넣고 일단 진행 시키거나···아니면 더 연구원들을 모집해서 진행해도 돼.”
한마디로 연구에 참여는 하지만 공식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건 엄연히 불법, 적어도 편법이었고 그런 경로로는 연구 성과가 나오더라도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치매 치료라는 목적 아래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김영재와 이재성이었지만···. 연구를 이유로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희생이 먼저 되는 연구의 끝은 늘 좋지 않았으니까.
“괜찮습니다. 일단 지금 있는 장비들과 연구 재료들로 진행하던 것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난 뒤, 김성진의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장 김영재와 이재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둘은 베타-아밀로이드 응집체 형성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별도의 실험실에서 막 실험을 끝내고 온 상황이었다. 이재성은 형광 현미경을 통해 얻어낸 응집체 이미지를 컴퓨터 화면상에서 조정하고 있었다.
“Congo red 염료로 염색한 거야?”
“네. 저기 보이는 빨간색이 아밀로이드 원섬유에요. 염료의 아조기(Azo)랑 아미노기(Amine)는 아밀로이드의 헤마톡실린(hematoxylin)이랑 수소 결합하면 붉게 나오거든요.”
“오호···”
둘은 전보다는 덜 어색한 사이였다. 여전히 이재성의 사회성은 결여된 상태였지만 김영재가 좀 더 사회성이 있는 편이다 보니 어느 정도 밸런스가 맞았다.
현미경 사진을 보며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던 둘은 내 기척을 눈치채고 내 쪽을 바라봤다.
“뭐야. 언제 왔었어?”
“방금이요. 그보다 둘 다 바빠요?”
“아니. 실험했던 거 정리하고 있었어.”
김영재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베타-아밀로이드 응집체에 대한 연구는 이재성 연구였지만 김영재 역시 베타-아밀로이드의 사슬 구조에 대해 연구해야 했기에 둘의 연구는 관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뭔데? 무슨 일 있어?”
“우리 연구, 세상에 좀 알려야 할 것 같아서요.”
“세상에?”
갑작스러운 내 말에 당황한 김영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재성도 무슨 개소리냐-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이렇다 할 결과물이 나온 것도 없는데?”
“치매 치료라는 큰 관점에서 보면 없지만 세세하게는 있으니까요.”
“…어떻게 알린다는건데?”
이재성이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카이브에 올릴거야.”
아카이브(ArXiv). 원래는 물리학과 수학 부분에서 활성화되어 있던 논문 투고 사이트였지만 이제는 그 분야를 확장해서 생물학, 경제학, 통계학 등 다양한 분야의 논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카이브?”
“네. 학술지나 저널에 투고하면 심사받는 기간 동안 묶여있어야 하지만···. 여기는 올리는 즉시 일단 논문에 대해 우선권이 주어지거든요.”
“근데 그거 아무나 올려도 되는데야? 막 전문 연구원들만 글 올려야 하는 건 아니고?”
“아카이브 내에서 자체 검사를 한번 하기때문에 아마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는 글은 1차로 걸러질거에요.”
물론 우리 연구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재성과 김영재는 아직도 이 상황이 얼떨떨한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김영재가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과 함께 조심스레 말했다.
“그런데 만약, 혹시라도 우리 연구에 잘못된 게 있으면···어떡하지? 그럼 너무···부끄러울 것 같은데.”
“…좀 더 연구해 보고 올려도 되잖아. 꼭 지금 올릴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이재성도 내키지 않는 듯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직 논문을 올리거나 누군가로부터 검증을 받아본 적이 없는 둘 인만큼, 이런 경험이 낯설고 걱정이 될 만했다.
“괜찮아요. 사람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내용이면 분명 소리 소문없이 잊혀질 거고, 한번쯤 더 볼만한 내용이면 사람들이 주목하겠죠.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요? 우리가 한 연구를 보고 대학에서 서로 모셔가겠다고 싸울지?”
“에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손사래를 치는 김영재의 입꼬리가 씰룩이고 있었다. 이재성도 이런 쪽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역시 살짝 기쁜 내색이다.
“그럼 뭐 올리면 될까?”
“저희 초반에 알츠하이머병이랑 관련지어서 연구했던 것 중에서···”
그렇게 아카이브에 올릴 내용을 정리하고 초고를 작성하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
앨런뇌과학소로 복귀한 박성민의 삶은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와 다르게 미국에서 연구원으로서의 삶은 말 그대로 실험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한국에 있을 때가 재미있었지.’
박성민은 추억에 잠겼다.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짧았지만 그에게 있어 강렬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김만덕을 떠올릴 때면 그도 모르게 기가 찬 웃음이 나오곤 했다.
처음 만난 날부터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더니, 이내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치매 치료에 획을 그은 녀석.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전까지 하던 걸 엎어버리는 깡까지 있는 녀석.
‘연구 방향이 잘못되었더라고요. 정작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형성을 억제해도 이미 저하된 인지능력이 회복되지는 않으니까요.’
‘잘못되었다고?’
‘네. 그래서 엎었어요.’
오랜만에 걸려 온 국제 전화. 김만덕은 마치 종이 뒤집듯 연구를 엎었다.
‘그, 그래도 괜찮니? 지금까지 해오던 게 있잖아. 안 아까워?’
‘? 전혀요? 오히려 새롭게 방향을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인데요?’
‘허어···’
진짜 난 놈일세, 박성민은 혀를 내둘렀다. 지금까지 하던 연구를 뒤엎는 건 제아무리 노련한 과학자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오히려 그 분야에서 어느정도 성과를 낸 사람이면 더더욱 그 방식에 매달렸으니까.
그는 모처럼 떠오른 제자 생각에, 전화를 걸어볼까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몸이 두 개여도 부족하던 녀석이다. 괜히 쓸데없는 일로 안부 전화를 해서 부담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안 그래도 방학때 한번 온다고 했으니까. 그나저나 하버드대라니.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했으면서?’
문득 김성진을 통해 들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물론 박성민이 먼저 김만덕에게 대학과 관련해서 이야기한 기억이 없긴 하다만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성진을 통해 들으니 좀··· 그랬다. 뭔가 점찍어 놓은 대학원생을 옆 교수가 컨택해서 뺏긴 기분이랄까.
물론 김성진에게 김만덕을 알려준 사람은 박성민 본인이긴 했지만 말이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여보세요.]“어이, 잘 지내고 있지?”
[…끊는다.]“잠깐! 잠깐만!”
받자마자 전화를 끊으려는 김성진. 박성민이 다급하게 말리자, 김성진이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인데?]“무슨 일은 뭐. 그냥 궁금해서 전화했지.”
[하아···또 김만덕 학생 관련해서 물어보려는 건 아니고?]“또라니, 몇 번 물어본 거 가지고 되게 뭐라 하네!”
[…그냥 이 정도면 본인한테 전화 거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김성진은 투덜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중간 다리가 아니다, 안 그래도 요즘 바쁜데 전화하지 마라, 애초에 그렇게 궁금하면 다시 한국으로 오든가- 하는 이야기였지만 요약하면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해석하기 좋을 대로 해석을 마친 박성민이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이번에 연구실에 들어온 거면 신분은 어떻게 돼?”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요즘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중이야.]김성진은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을 박성민에게 간단하게 전달했다. 박성민은 김성진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그럼 연구원 신분으로 못 있는다는 거네? 하여간 왤케 절차가 까다로워?”
[절차가 까다로운 게 아니라 원래 이게 정상인 거야.]“그런가? 흠···하긴 대학기관은 또 다를 수도 있겠네. 하여튼 근데 거기도 웃겨. 박사 학위 소지자랑 동등한 자격에 네이처를 언급하는데? 네이처가 무슨 장난도 아니고! 차라리 박사 학위 따고 오라고 해라.”
[…네이처에 투고하는 게 그렇게-]“어려운 일이거든?”
박성민은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김성진의 말을 잘랐다. 김만덕도 김만덕이지만 지금 통화하고 있는 이 녀석, 김성진도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으니까. 그가 생각하는 천재 범주에 들어가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김성진이랑 통화를 하며 그들의 대화 주제 대부분은 김만덕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만큼 김만덕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둘에게 큰 자극이자 또다른 연구 대상이기도 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오랜 통화를 하게 된 둘은,
[다음엔 이런 쓸데없는 전화하지 마.]“또 전화할게~”
를 마지막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싱글벙글 웃으며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던 박성민은 기지개를 쭉 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치매 치료를 위해 저렇게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제자의 모습을 보고, 박성민이 가만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가 주로 해오고 있던 영재와 천재에 대한 연구와 관련해 새로운 연구가 없나 찾아보고 있는 중에 전화가 왔다.
[헤이, 성민! 뭐 하고 있었어? 바빠? 엄청난 걸 발견했어! 지금 생물학계가 떠들썩하다고!]“스티븐, 진정해. 대체 뭐길래 그래?”
[아카이브에 들어가 봐!]동료 연구원인 스티븐의 입에서 아카이브 이야기가 나오자, 박성민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아카이브. 신박하고 번뜩이는 논문들이 종종 발견된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검증이 안 된 경우가 많아 신뢰하긴 어려운 경우도 다수였다.
한마디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은 빈, 그런 논문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물론 거기서 시간이 지나면 정식으로 투고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 하지만···’
“스티븐. 아카이브는 믿을 게 못 돼. 애초에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말하는 스티븐의 이야기에 결국 박성민은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오류를 지적받으려고 논문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니까 뭐.’
이렇게 된 거 얼마나 대단한 논문인지 확인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아카이브에 들어갔다.
“제목은 뭐라 치면 돼?”
[‘베타-아밀로이드 분해, 혈뇌장벽 통과 수준으로’라고 치면 돼!]베타-아밀로이드라, 요즘 들어 자주 들리는 단어라고 생각하며 논문 제목을 친 그는 순간 얼음이 된 채로 모니터를 빤히 쳐다봤다.
전화기 너머에는 흥분한 목소리가 박성민을 부르고 있었다.
[어때? 봤어? 대박이지?]“어···아직 저자밖에 못 봤는데···”
[저자를 검색해보니 어디에도 안 뜨더라고, 가명인 건가?]“어···”
그건 아닐걸. 이라는 목소리가 턱끝까지 차올랐다. 그의 눈에 보이는 이름은 총 세 명.
김만덕, 이재성, 김영재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