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87)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87화(87/221)
87. 관심 (3)
87. 관심 (3)
“뭐라고?”
“나도 끼워줘”
최한별은 평소와 다르게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그래서 나도 딱 잘라 거절했다.
‘당연히 안 되지. 학교 내에서 하는 연구면 몰라, 카이스트까지 가서 해야 하는 연구인데···. 김성진이 허락할 리도 없고.’
어디까지나 김영재와 이재성은 박성민이라는 중간 다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 반해 최한별이 내밀 수 있는 카드는 한국과고 전교 2등이라는 것뿐.
학교에서는 한없이 높아 보였던 그녀였지만, 한 걸음만 세상 밖으로 나오면 아직 철부지 어린애에 불과했다.
“일단 연구팀에 소속되려면 그에 맞는 자격이 있어야 해.”
“…어떤 자격인데?”
“박사 학위. 혹은 그것에 준하는 것.”
“…”
박사 학위라는 말이 나오자 최한별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치매 연구에 있어서 얼마나 진심인 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구팀에 받아줄 의무는 없었다.
간절함만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는 곳이 사회니까.
“그 말은 너는 그 정도 자격이···아, 그래서 설마?”
“맞아. 네가 봤다는 그 논문. 그걸로 인정됐거든. 그래서 연구원 신분으로 있을 수 있게 되었고.”
내 대답에 최한별은 더이상 억지를 부릴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특별반 문이 열렸다. 더벅머리에 이어폰을 낀 남학생. 곽진환이었다.
“…왜 여깄는데?”
“그야 오늘부터는 생물 올림피아드 수업이 아니라 특별반에서 자습하니까?”
“…짜증 나네.”
곽진환은 다시 이어폰을 끼며 자리에 앉았다. 말은 짜증 난다고 하면서도 옆자리에 앉는 걸 보니 진짜 짜증이 난 건 아닌 듯했다. 하여간 사춘기다.
특별반 자습은 다른 학생들과 동일하게 이루어진다. 단지 반을 감독하는 선생님이 없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반은 매우, 매우 조용하다는 것.
곽진환 역시 그 분위기를 깨지 않은 채 문제집을 펼쳤다. 여전히 문제 풀이를 적지 않고 암산으로 푸는 듯했지만, 이따금 메모를 하긴 했다. 암산 천재라는 타이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곽진환은 메모를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너.”
“응?”
“…됐다.”
“뭔데. 궁금하게.”
“저리가.”
하지만 여전히 말을 하다 마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곽진환 쪽으로 의자를 당겼다.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곽진환은 몸을 반대쪽으로 틀었지만, 그 덕에 문제집에 적혀있는 메모를 볼 수 있었다.
[김만덕 맞나?] [Mandeok Kim] [만덕 킴. 킴만덕.] […아닌가? 동명이인?] [그런 촌스러운 이름이···]“내 이름 별로 안 촌스러운데···”
“…! 왜 멋대로 보고 지X이야!”
메모를 보고 중얼거렸을 뿐인데, 곽진환이 화들짝 놀라며 넘어질 뻔했다. 그 와중에 문제집을 품에 안고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 탓에 조용하던 특별반에 균열이 갔다. 앞에서 문제를 풀고 있던 학생들이 우리 쪽을 돌아봤다. 대충 ‘전교 1등이니까 뭐라고는 못하겠는데 조용히 좀 해라.’라는 내용이 담긴 눈이었다.
안 그래도 시험기간이라 예민한 시기인데, 괜히 소란을 준 건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과 동시에···.
‘아니, 어떻게 보면 소리는 내가 아니라 얘가 지른 건데?’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들어 곽진환을 바라보니 녀석은 이미 씩씩거리며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그래, 어른인 내가 참자.
“미안. 일부러 보려고 했던 건 아니야. 마저 공부해.”
고개를 까딱하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최한별은 이 와중에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놀라운 집중력이라고 생각하면서 김진수에게 받은 기말고사 대비 문제집을 펼쳤다.
김진수는 여전히 학원과 과외의 쳇바퀴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주말에 연구로 인해 지친 와중에도 저녁이 되면 김진수에게 개별 과외를 하는 걸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김진수가 주는 문제집은 고퀄리티였으니까.
‘뭐? 그걸 다 풀었다고? 거짓말. 어디 복사해 놓고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김진수가 건네줬던 문제집들은 과목별로 나누어져 있었다. 기본 300페이지가 넘어가는 두꺼운 문제집을 푸는데 적어도 몇 주는 걸릴 거라고 했지만···. 길어도 3일 내에 풀어버린 탓에 김진수는 혀를 내두르며 내게 문제집을 건네곤 했다.
이번에 받은 문제집은 화학. 화학은 저번 여름 방학 때 올림피아드 캠프를 통해 한 단계, 아니 세 단계는 성장한 상태였기에 문제 풀이 속도가 월등히 빨라졌다. 모르는 개념은 이제 없고 완벽하게 문제 풀이 모드에 들어간 상태였다.
늘 답이 없는 연구에만 매달려 있다가 이렇게 명확히 답이 존재하는 문제를 푸니 나도 모르게 신이 났다. 문제를 푸는 속도에 점점 탄성이 붙어 빨라졌고, 채점을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모든 문제를 다 맞히고 있었다.
그리고 화학 문제집을 절반 정도 풀어가던 중,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망부석마냥 자리에 앉아 문제를 풀던 학생들이 하아, 하는 한숨과 함께 길게 스트레칭을 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곽진환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나도 앉아만 있었던 지라 자리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는데, 문밖에서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게 열린 틈 사이로는 김영재가 있었다.
“어, 형! 여긴 무슨 일이에요?”
“아···혹시 김성진 교수님한테 연락 받았나해서.”
“아.”
생각해 보니 김성진 교수의 직통 번호를 알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김영재와 이재성도 알고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김성진 교수는 자신의 번호 대신 최찬형 번호를 알려줬다고 한다. 어차피 대학원생이랑 연락할 일이 더 많을 거라나 뭐라나?
‘근데 나한테는 왜 번호를 준 거지?’
생각해 보면 아카이브에 올린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도, 연구를 진행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거나 이상한 결괏값이 나왔을 때도, 나는 항상 김성진과 이야기를 했었다. 전생에 그랬던 버릇이 현생에도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김성진 입장에서는 갑자기 걸려 온 전화로 이런저런 연구 이야기를 하면 싫을 법도 한데, 그는 항상 진지하게 논의해 줬다. 새삼 감동을 받으려는데, 앞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는 김영재가 눈에 들어왔다.
“통과됐대요.”
“와···진짜 통과가 된 거구나. 그럼 우리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는 거야? 진짜로?”
“어, 그래. 둘이 여기 있었구나.”
그때 김영재 뒤에서 담임 박민철이 나타났다. 원래라면 퇴근을 했을 시간인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러나 깊게 생각하기도 전에 우리는 박민철의 손에 이끌려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자리에 짐이 있는 걸로 보아하니 퇴근을 안 한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박민철은 우리를 앉혀놓은 후, 복잡한 표정으로 본론을 꺼냈다.
“학교 쪽으로 공문이 왔다.”
“공문이요?”
“너희가···카이스트 객원 연구원으로 임용되었다는 공문이더구나.”
박민철이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김영재를 번갈아 봤다.
“뭔가 착오가 있는 거지? 안 그래도 만덕이 너가 김성진 교수님하고 아는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연구원은···음. 잘못 온 공문이겠지?”
“아, 선생님. 그게 사실은-”
“종종 학교하고 대학하고 연계해서 연구 프로그램을 하는 경우가 있거든. 그런 프로그램인 거지?”
“아뇨. 객원 연구원 맞아요.”
“맙소사.”
설마, 하며 부정하던 사실을 직접 말하자 박민철이 탄식을 내질렀다. 그는 놀라는 감정을 지나쳐 수용하는 단계에 이른 것 같았다.
“카이스트의 객원 연구원으로 임용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근데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객원 연구원으로 임용이 되었다고?”
“사실 한 명 더 있어요. 총 세 명이에요.”
“맙소사···.”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던 박민철은 순간 손을 멈췄다.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는 상태에서 그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약간의 고뇌가 느껴졌다.
손을 얼굴에서 떼낸 박민철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나와 김영재를 번갈아 봤다.
“영재야. 작년에 내가 네 담임이었던 만큼 너를 잘 안다. 그러니 네 걱정 안 한다. 어차피 이제 조기 졸업만 앞두고 있는 실정이니까.”
“…감사합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너다. 만덕아.”
“? 저요?”
갑작스러운 걱정 고백에 고개를 갸웃했다. 박민철은 조금 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까지 이 학교에서 수많은 괴짜 녀석을 가르쳐왔다. 그 녀석들의 특징이 뭔지 아니?”
“어···괴짜였다?”
“다들 과학에 미쳐있다는 거였고···.”
박민철의 미간이 좁아졌다.
“제 실력보다 낮은 대학교에 갔다는 거다.”
“…네?”
“과학고인 만큼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모인 건 당연해. 하지만 그 정도를 너무 넘어서 버리면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못 하고 지나쳐 버릴 때가 있어. 예를 들면 남들 대학 입시 준비할 때 연구하겠다고 설악산에 올라가서 화강암을 긁어온 애도 있었다.”
“…그런 사람이 진짜 있어요?”
“너희 졸업생이다.”
와우···. 김영재와 나는 나지막하게 탄성을 냈다. 어떤 연구를 준비했는지는 모르지만 화강암을 구하기 위해 설악산까지 탈 정도면 엄청난 광기였다.
나는 박민철이 걱정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연구’하는 모습에 심취해 버릴까 걱정하는거겠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정해져 있었다.
‘…애비야. 너무 늦게까지 놀다 오지 마라.’
‘할아버지. 전 아빠가 아니에요. 만덕이에요. 만덕이.’
‘만덕이가 누구여, 됐고 애비야, 애비야 이리 오너라.’
‘아빠가 아니라 만덕이라니까요! 김!만!덕! 김만덕이요!’
‘…’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
‘…애비냐?’
‘…네. 할아버지.’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결국 나는 할아버지에게 이름을 불리지 못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아버지로 살아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버리게 하는 병. 치매.
···공포는 전염된다. 치매라는 병이 노화로 인해 일어나는 병이라면 어떤 인간도 치매라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결코 나조차도.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 만덕이 너라면 내가 하려는 말이 뭔지 알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원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단호한 내 말에 박민철이 흠칫 놀랐다. 옆에 있던 김영재도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놀란 눈치였다.
지금 여기서 연구원 생활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전생과 같이 시간이 흘러간다면, 아마 나는 꽤나 성공한 삶을 보장받으며 살아갈 수 있겠지.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가정을 가지고 남 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전생 때처럼 힘들게 살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치매라는 막연한 공포를 없앨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쓸 수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기억할 수 없게 된다면···.
“저는 치매를 치료하고 싶어요.”
“그래, 그건 알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여기 누가 있니? 선생님 말은, 지금 너무 치매 치료 하나에만 집중하지 말고 좀 더 크게 꿈을 가지고 넓게 보는-”
“그래서 더 넓은 곳에 가서 공부를 하려고 해요.”
“…하버드 말하는 거니?”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매 치료를 하는 데 있어서 물론 김성진의 연구소도 탁월하다. 시설도 깨끗하고 설비도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뇌과학에 대한 지원이 국가적으로도, 확보된 데이터량에서도 부족한 현실이었다.
“하버드, 혹은 그와 같은 대학교에 가려면 연구원 시절의 활동은 필수에요.”
“…다 계획하고 있었다는 말이구나.”
“네.”
짧은 내 대답을 끝으로 박민철은 더 묻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이 멋쩍은지 뒷통수를 긁었다.
“하지만 하버드에 입학하는 게 힘들다는 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만···. 연구에 시간을 쏟다 보면 정작 해야 할 공부를 못하게 되진 않겠니?”
“저한텐 이게 해야 할 공부인걸요.”
학교 공부는···. 이미 전생에 다 끝낸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은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것.
하버드라는 큰물로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