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8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89화(89/221)
89. 관심 (5)
89. 관심 (5)
평일 저녁, 퇴근하는 자동차들 너머로 카페를 방문하는 한 남자.
‘여기인가?’
한삼제약의 선임 연구원 김성철은 입꼬리를 올린 채 카페를 찾았다.
‘이렇게 쉽게 진행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제약 회사업계를 놀라계 하고 이어서 생물학 학자들을 모두 놀라게 한 논문, 그 논문의 주인을 만나 계약을 체결하는 것. 그것이 김성철의 목표였다.
한삼제약 이름으로 메일을 보냈지만 김만덕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다른 연구원들에게 보내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답장없는 이메일을 그저 기다리고 있을 순 없었다. 바로 김성진 교수의 연구실 중 김만덕 연구원이 소속된 곳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쉽게 통화할 수 있었다.
‘김만덕 연구원님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만…’
‘안녕하십니까. 한삼제약입니다. 다름아니라 이번 아카이브에 올려주신 논문과 관련하여-’
그러나 계약을 하고 싶다는 말에 전화의 주인은 “흠…그럼 한번 뵐까요?”라고 애매하게 답할 뿐이었지만… 김성철은 자신있었다. 그도 그럴게 국내 1위 기업인 한삼제약이 아니고 누가 계약을 하겠는가?
그 논문의 내용이 진짜라는 건 이미 자사 연구실에서도 수십번을 테스트해봤다. 논문이 나오자마자 했으니 아마 다른 회사들보다 가장 빠르게 검증을 했을거다.
문제는 논문의 저자가 어떻게 나오냐는 것.
‘연구의 데이터는 어디까지나 실험쥐를 대상으로 한 거니까. 임상까지 다 치를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겠지. 그걸 개인은 절대 감당 못 할거고.’
제아무리 뛰어난 연구를 했다고 해서 그게 시장에 나올 수 있다고 보장할 수는 없었다. 치료를 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낸 것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은 동시에 준비되어야 했으니까.
한마디로 치료제로 나오기까지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저는 치매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곳과 계약을 체결하고 싶습니다.’
미팅 날짜를 잡고 김만덕은 그 말을 하며 대화를 끝냈다. 김성철은 그때 통화를 떠올리며 입가에 비소를 띄웠다.
‘치매 치료제? 아직 현실을 모르는 고등학생이긴 하군. 이 논문의 가치는 치매 치료가 아니라 혈뇌장벽을 통과하는 그 약물이야. 만약 이후에 후보물질을 발굴해낼 수 있다면 더더욱 좋고. 일단 약물이 통과되는 기술에 대한 권리만 얻어내면 이후 이 기술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모든 연구는 떼돈을 벌게 될거다.’
김성철의 머릿속에선 열심히 계산기가 두드려지고 있었다. 일단 제약회사에 취업한 이상, 그의 직업은 비록 연구원이더라도 회사원이었다.
최대한 돈을 벌 수 있는 것. 치매 치료는 그 과정까지 돈이 너무, 너무 많이 들었고 그는 그 과정을 견딜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적당한 금액으로 설득하면 먹히겠지. 그래봐야 고등학생이니까.’
머릿속으로 연구를 어떻게 넘겨받을지에 대한 계획을 다 세웠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는 꽤 넓은 곳이었다. 모던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뭐야. 여기가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고개를 둘러봐도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카운터에 있던 알바생이 소리를 높여 말했다.
“예약석은 2층에 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예약석이라니. 김성철은 마음 속으로 작게 웃었다. 그래도 나름 중요한 자리라고 따로 자리를 마련해둔게 고등학생같지 않은 노련함이었다. 그는 계단을 올라 2층에 도착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김만덕 연구원님. 저는 한삼제약의 선임 연구원···?”
그 순간, 김성철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들어가자마자 깍듯이 인사를 하던 그는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잠시 멈춰있었다.
그를 맞이한 건 김만덕이 아니었다.
“허허···자네도 왔구만?”
“제호제약? 제호 제약이 여길 어떻게···”
“한삼제약까지 부르다니. 이거 판 주인이 꽤나 판을 크게 벌렸군.”
“…금양제약까지?”
김성철의 눈이 커다래졌다. 테이블은 6인 테이블. 그 자리에는 이미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 연구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적어도 선임 연구원에서 금양에서는 무려 책임 연구원, 즉 연구팀을 책임지는 직급의 사람까지 온 상황이었다.
일순간 정적이 내려앉은 상황에, 김성철이 눈동자만 굴리며 연구원들을 바라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어떻게 된 일이긴, 자네가 하려는 일. 여기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온 걸세. 그나저나 한삼제약에서는 선임 연구원을 보내다니. 그 논문이 꽤나 심드렁했나보지?”
“그, 그게 무슨···”
국내 1위는 아니지만 나름 2위의 입지를 단단히 지켜가고 있는 제호 제약에서 날이 담긴 말을 건넸다. 최근 신약 개발 사업에 뛰어든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 소문이 사실이었던가. 김성철은 등 뒤로 흐르는 땀을 느꼈다.
그러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그는 여유로운 척, 자리에 앉았다. 이미 이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협상 테이블이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카페에 들어오기 전까지 가지고 있던 여유로움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팽팽한 긴장감이 방 안에 감돌았다. 더군다나 2층 예약석은 룸 형식으로 되어있었기에 밖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제호제약이랑 금양제약에서 치매 치료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요즘같은 고령화 사회에 노인성 질환에 관심을 안 가지는 제약업계도 있나?”
“우리 회사 매출 1위가 틀니세정제일세.”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입니까, 라고 말하려던 걸 김성철은 꾹 삼켰다. 일부러 말로 사람 마음을 흔들어놓고 원하는 걸 얻어가는 건 이 늙은 호랑이들의 주특기였으니까.
더군다나 여기서 직급상, 나이상으로 따지면 김성철이 가장 불리했다. 논문의 주인공이 나타나서 보더라도 자칫하면 성의를 느끼지 못했다고 거절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김성철은 심호흡을 한 뒤,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신약 개발에만 엄청난 돈이 드는 것쯤은 다들 알고 계실텐데요? 저희 한삼제약이야 뭐 자본으로 워낙 튼튼하다보니 걱정은 없습니다만···”
“아무리 자본이 튼튼하다고 해도 신약 개발을 하면 결국 다 똑같은 곳에서 시작하는거지. 막말로 존슨앤존슨 급이면 모를까 자네나 우리 제호제약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만?”
“그리고 어차피 한삼제약에서도 진짜 신약개발을 목적으로 온 게 아니지 않나?”
그 순간 금양제약의 책임 연구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너도 우리랑 같은 생각이면서 다른척 하긴 짜식.’ 하는 눈이었다.
논문의 주인공을 잘 구워 삶아서 논문 속 기술을 라이선스 아웃을 하도록 한다. 물론 그 중간 과정은 우리 제약회사가.
그렇게만 해도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얻을 수도 있었다. 김성철은 카페에 들어오기 전까지 본인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그나저나 얼른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처리해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니 말야.”
똑똑, 그 순간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 곳에는 큰 키의 훤칠한 남학생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김만덕 연구원입니다.”
“오, 드디어. 반갑습니다. 금양제약의 박민식 책임 연구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제호제약의 심수호 수석 연구원입니다.”
“한삼제약의 김성철 선임 연구원입니다.”
그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앞다투어 악수를 청했다. 김만덕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한사람 한사람 악수에 응했다. 그는 자리에 앉아 모두를 바라봤다.
“우선 이렇게 모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여러 기업에서 제안이 오다보니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어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하하, 그럴 수 있지요. 물론 처음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뭐, 이런 자리도 나쁘진 않군요.”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리 유쾌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김만덕은 방 내부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원래라면 한 분이 더 오시기로 했는데 초행길이라 조금 늦는다 하시는군요. 일단 다들 바쁘신 분들이실테니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볼까요?”
본론 이야기가 나오자 연구원들의 눈빛이 변했다. 김만덕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세명을 바라봤다.
먼저 말문을 연 건 금양제약이었다.
“우선 김만덕 연구원님이 한 연구 내용은 여러번 읽어봤습니다. 정말 고등학생이 한 연구라고는 믿기지 않을정도로 엄청난 발견이더군요. 저희 금양제약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더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본격적인 연구라면 어떤 걸 의미하는지요?”
“말 그대로 김만덕 연구원님이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후속 연구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지금은 실험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지만 이게 본격적인 치매 치료제가 되려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도 반드시 거쳐야하니까요.”
자신만만한 금양제약의 말에 김만덕은 별다른 반응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제호제약이 살짝 급한듯이 끼어들었다.
“금양제약과 비슷하지만 저희는 좀 더 다른 제안을 드릴까합니다. 김만덕 연구원님께서 저희 제약회사에서 직접 연구를 이끌어나가실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직접 연구요?”
“네. 재학중이신 한국과고에서 발표하신 논문 내용도 찾아봤습니다. 카이스트 신문에 나온 기사 내용도요. 보아하니 연구 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그런 자식이나 다름 없는 연구를 다른 사람들 손에 맡겨버리면 영 불안하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디까지나 연구는 주체가 된 사람이 계속 끌고가는게 결과도 좋지요.”
제호 제약의 말을 듣고 있던 금양 제약 연구원의 눈이 도끼눈처럼 변했다. 이렇게 되면 금양제약이 날로 논문을 먹으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제안을 덧붙이려던 금양제약은 한삼제약의 말에 가로막혔다.
“저희는 해외 제약회사에게 라이선스 아웃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
제호제약과 금양제약 연구원의 눈이 커다래졌다. 설마 라이선스 아웃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꺼낼 줄이야. 연구원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논문에 대한 권리를 팔아버린다는 내용을 두 팔 벌려 환영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김성철, 한삼제약은 그 포인트를 다른 곳에 두었다.
“김만덕 연구원님께서 제약업계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계신진 모르겠지만···사실 국내에서 신약을 개발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신약이 상용화 될때까지 적어도 10년, 길면 기약을 알 수 없는게 이쪽이기도 하고 신약을 개발하려다가 잘 진행되고 있던 약들마저 망해버리기 쉽상이니까요.”
“…기약을 알 수 없군요.”
“김만덕 연구원님께서는 치매를 치료하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한삼제약의 김성철은 아직 선임 연구원이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보다 나이도, 직급도 어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삼제약에서 김성철을 보낸데는 이유가 있었다.
열심히 계산기를 굴린다. 어떤 말을 해야 이 사람이 넘어올지를.
연구원의 마음. 특히나 난치병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연구에 임하는지를 노린다.
“치매가 치료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그게 비록 국내 지분이 줄어드는 일이라 하더라도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득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국내 지분은 줄어들더라도 한삼제약은 두둑하게 챙겨갈거다. 그 사실을 김성철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일단 마음만 얻고 나면 그 뒤에 어른들의 사정, 돈이라든가 계약이라든가 로열티라든가 하는 부분은 적당히 구슬리면 되었다.
“현재 기술로선 실효성있는 치매 치료제가 없는 상황입니다. 한마디로 불모지란 소리죠. 이런 상황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기업은 국내에서 저희 한삼제약 뿐입니다.”
“해외 제약회사는 어디와 생각중이신가요?”
“미국의 존슨앤존슨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계 1위의 제약회사이죠.”
김성철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제약회사 연구원들의 표정에서 불안한 감정이 이따금씩 보였지만, 그렇다고 김성철이 말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김성철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김만덕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해외 제약회사에 라이선스 아웃을 한다면 굳이 제가 한삼제약하고 계약을 맺을 필요는 없지 않나요?”
“…네?”
“지금 연구원님께서 하신 말씀을 요약해보면···국내에서는 이 연구를 진행할 자본도, 힘도 없으니 해외에 넘기겠다는 소리로밖에 안들려서요.”
“하하, 충분히 그렇게 들릴 수 있겠네요.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게 아니라 좀 더 넓은 기회를 제공할 발판을···”
똑똑, 그때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김만덕을 비롯한 모두가 문을 바라봤다.
“안녕하십니까. 이쪽 길이 초행인지라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는 안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안 했다고? 김성철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게다가 지금 들어온 사람은 김성철도 처음 본 사람이었다. 이 업계의 사람을 모두 아는 건 아니지만 보아하니 어느 제약회사의 영업팀같았다.
김만덕의 손짓에 따라 김성철의 옆에 앉은 남자는 차분한 태도로 사람들을 한명씩 마주봤다.
‘뭐지? 왜 이렇게 이질감이···’
김성철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살짝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다시 대화 주제로 돌아왔다.
지금 중요한 건 경쟁자 탐색이 아닌 저 고등학생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김성철이 판단할 때 반쯤은 넘어온 것 같았다. 김성철은 진지한 분위기로 말을 이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김만덕 연구원님께서 치매 연구에 진심이시라면, 저희 한삼제약과 계약을 하시는게 최고의 선택이실거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저희는 이미 해외 1위 기업과도 공동 연구 개발을 진행 중인 신약도 있는 상황이니까요.”
“공동 연구 개발이라···”
그러나 김만덕은 김성철이 아닌 새로 온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해외 기업과 계약을 하려고 한다면 한삼제약을 통해서 진행해야하는 건가요?”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합작 법인 형태로 한국지부가 출시된 것일뿐, 개발이나 연구를 본사에서 진행을 하신다면 굳이 한삼제약을 거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군요.”
김만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성철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뭐야. 저 남자가 도대체 누구길래 물어보는거지?’
앞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보며 김성철은 찝찝한 기분과 동시에 불쾌한 감정마저 들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제일 경쟁력 있는 기업은 다름아닌 한삼제약, 바로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이었으니까.
김성철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어디까지나 눈앞의 학생은 고등학생. 아직 한삼제약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고 있을게 컸다.
이 협상 테이블에 주인이 있다면 당연히 저 학생이 주인일 것이다.
하지만 제약업계, 자본주의라는 큰 관점에서 본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삼 제약이 아닌 다른 회사와 계약을 맺으신다면 아마 후회하실겁니다.”
“확신하시는군요?”
“업계 1위니까요. 아마 다른 곳과 계약을 해도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곳은 없을겁니다. 적어도 저희랑 계약을 하게되면 공동 연구는 가능하겠지요.”
“기울어진 판 위에서 하는 연구도 공동 연구는 연구겠지요.”
돈이 있는 곳이 힘 있는 곳이다. 해외 기업의 자본을 받은 이상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는 진행될 터.
자연스레 치료제의 금액이 정해질 때도, 지분을 나눠가질 때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연구 방향까지도.
그리고 그건 김만덕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제 연구를 넘겨주고 싶진 않네요.”
“그 말은···”
“국내 제약회사에서도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까 싶어 혹시나해서 연락을 드렸던건데···아직 한국에서는 힘든가보군요.”
“아직 학생이라 현실 감각이 없는건 이해하지만 신약개발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애초에 연구라는 것도 학생이 생각하는 것처럼 뚝딱 이뤄지는게 아니고요.”
김성철의 목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그는 흥분한 상태였다.
“해외 제약회사의 본부에서 바로 연구를 진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외국인이라는 건 둘째치고 애초에 검증 되지도 않은 아카이브 논문을 그런 글로벌 회사에서 인정을 해줄지 부터가-”
“그 점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이미 검증은 마친 상태이니까요.”
남자의 목소리가 김성철의 말을 잘랐다. 침을 튀기던 김성철이 남자를 쏘아봤다.
“…아까부터 자꾸 대화에 끼어드시는데, 적어도 그쪽 소속은 밝히신 후에 이야기해주시지요.”
“아, 제 소개를 안했던가요?”
남자는 명함을 꺼내 김성철에게 건넸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명함. 하지만 그곳에 새겨진 로고를 본 순간 김성철의 모든 털이 곤두섰다.
“…존슨앤존슨?”
“네. 한삼제약과는 인연이 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도 같이 진행 중에 있으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진짜 존슨앤존슨? 얀센을 인수한 그 존슨앤존슨이라고요? 세계 1위의 글로벌 제약회사?!”
명함을 바라보고 있는 김성철의 목소리가 떨렸다. 고개를 들어 싱긋 웃고 있는 김만덕과 눈이 마주치고서야 깨달았다.
이 판의 주인은 처음부터 저 녀석이었구나,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