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9화(9/221)
9. 변화 (2)
9. 변화 (2)
입학식이 찾아왔다. 입학식을 하루 앞두고 입소했던 터라 길을 잃거나 헤맬 일이 없었다.
“안녕. 그새 얼굴이 더 잘생겨진 것 같다?”
이인성이 능청스럽게 아는 척을 했다. 그 옆에 이인영이 고양이처럼 눈을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아. 얘는 무시해도 돼. 지금 너한테 화학으로 발렸다고 저러는, 아악! 아파! 아프다고!”
이인영은 있는 힘껏 손을 비틀었다. 그 탓에 이인성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얘가 하는 말은 헛소리니까 무시해도 돼. 그나저나 방학동안 잘 지냈어?”
“응. 공부도 하고 운동도 좀 하고. 너는?”
“나는…그냥 평범하게.”
“평범은 개뿔. 하루 16시간 동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게 평범이냐? 김만덕 이기겠다고 이를 갈더니—아악!”
결국 이인성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이인영이 등짝을 연이어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차례 쌍둥이들의 화려한 만담을 보고 있자니 비로소 학교에 다시 돌아왔다는 게 체감이 됐다.
‘어머니, 잘 지내시고 계시겠지.’
잠깐이었지만 어머니와 같이 보내는 시간은 꿈만 같았다. 너무도 소중해서 차라리 과고 따위는 그냥 포기하고 어머니와 같이 살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어머니가 바라는 것도, 내가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만덕아. 네가 좋아하는 걸 해라. 그게 설령 아무리 힘든 길이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다보면 결과가 나올 테니까.’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유일한 가족. 어머니를 떠올리며 입학식이 열리는 강당 내부로 이동했다.
강당은 한창 입학식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리허설이라고 해봤자 학교 오케스트라의 조율 소리, 대표로 입학 선서를 하는 학생이 마이크를 조정하는 소리 정도였다.
“선-서.”
또렷하고 듣기 좋은 음색이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아직 리허설일 뿐이지만 미리 온 학생들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최한별. 엄친딸이자 학교의 아이돌 같은 존재.
공부면 공부, 얼굴이면 얼굴. 뭐 하나 빠지는 데다가 최한별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그녀의 인기는 나날이 치솟고 있었다.
‘고작 3주 동안 같이 있었는데 벌써 고백을 받았다니 뭐. 말 다 했지. 물론 거절한 것 같긴 하지만.’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데, 글쎄. 그게 진짜 이유였을지는 최한별만 아는 일이었다.
“어? 우리 같은 반인가 본데?”
“정말? 와!”
입구에 붙여져 있는 대자보를 보니 이인성과 이인영의 이름이 나란히 있었다.
그 위에 김만덕이라고 적힌 내 이름도 같이.
1103 김만덕
만(萬)가지 덕(德)을 보라는 이름. 새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근데 아무리 봐도 너 이름 진짜 촌스럽다.”
“야! 그걸 말하면 어떡해!”
“아니 촌스러운 걸 촌스럽다고 하지, 그럼 뭐라해? 너도 솔직히 니 이름 마음에 안 들지?”
“난 마음에 드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지어주신 이름이거든.”
본 적 없는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것. 그게 바로 내 이름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못 보고 자라온 탓일까 딱히 별생각도 없던 나와 다르게 이인성과 이인영이 얼음장처럼 변했다.
“아, 아니. 내 말은 어쩐지 센스가 넘치신다는 뜻이지.”
“센스 만점!”
촌스럽다는 거랑 센스가 넘친다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눈앞에서 쩔쩔매는 쌍둥이들이 가엾은 관계로 웃으며 둘의 어깨를 쳤다.
“근데 나도 촌스럽다고 생각함. 요즘 시대에 만덕이가 뭐야.”
“야! 넌 너희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
“됐고, 빨리 자리에 앉자.”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얼추 사람들이 다 모인 듯했다. 앞에서 박민철이 마이크를 잡고 안내 방송을 시작했다.
“잠시 후 입학식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식순은 앞의 스크린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고등학교나 되어서 그런지 별다른 주의사항은 없었다. 게다가 학생들 모두 반에서 나름 모범생이라 불리던 애들만 모아놨어서 그런지 다들 경청하고 있었다.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학교 동아리 오케스트라의 축하 공연을 시작으로 학교 홍보 영상이 상영되었다. 대충 한국 과고가 얼마나 잘나가는지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전인교육이 실현되는 곳,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가 있는 곳! 한국 과학 고등학교입니다.]마무리 멘트를 끝으로 중후한 외모의 남성이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단상 앞에 선 남자는 목을 가다듬고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 과학 고등학교의 교장 이철규입니다.”
이철규.
명문고 졸업 후 서울대에서 물리학으로 석·박사 학위까지 딴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거기다가 교육학 관련 학위까지 취득해 과학 영재 양성에 힘쓰고 있는 존재라고 하니 어떤 의미에선 진짜 천재인 사람이기도 했다.
‘천재가 천재를 키우는 건가.’
전생에는 그저 지루한 연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새삼 사람을 알고 보니 그의 말이 다르게 들렸다. 어쩌면 한번 인생을 살고 온 지금, 저 조언이 얼마나 값진지 깨닫게 된 걸 수도 있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2년은 앞으로 더 없이 중요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여러분들이 몸 담글 전공을 정하게 될 것이고 이는 대한민국의 과학 분야의 발전과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조금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한국과고 졸업생 중 대다수가 국내 및 해외 연구소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오죽하면 ‘한국 노벨상 수상자는 한국과고 졸업생일 거다.’라는 우스갯소리도 돌고 있었다.
교장의 말은 요약하면 이랬다.
최선을 다해 공부할 것.
체력 관리에도 힘쓸 것.
선생님,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것.
“이곳 대다수의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이미 정하고 온 것 같지만, 지금 1년 동안은 좀 더 마음의 문을 열어두길 추천합니다. 그곳에 여러분의 천재성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교장의 연설은 끝이 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입학 선서식 차례. 우리는 선서식을 진행하기 위해 자리에 일어났다.
“학생 대표 앞으로.”
사회자의 말에 최한별이 앞 단상을 향해 걸어왔다. 꼿꼿하게 세운 허리, 걸음걸이마다 맞춰 흔들리는 머리카락. 여러모로 빈틈이 없는 학생이었다.
“선서.”
오른손을 들고 선서문을 읽는 최한별. 아니, 자세히 보니 뭔가를 읽고 있지 않다.
선서문을 통으로 암기해서 그 앞에서 읊고 있었다.
‘진짜 독하네.’
잘못하면 실수할 수도 있는 자리. 평소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더라도 이렇게 백여명의 사람들 앞에 서야한다면 외웠던 것도 잊어버리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한별은 이러한 압박감을 이겨내고 자연스럽게 술술 말하고 있었다.
광기어린 그녀의 선서문이 끝나자, 입학생 전원이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폐회식 연주가 이어지고 입학식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와, 나 아까 소름 돋았잖아. 그걸 어떻게 외워?”
“내 말이. 그런 애랑 1년 동안 같이 있을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기 빨려.”
최한별 역시 1반이었다. 전교 1등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쌍둥이들의 요란한 호들갑을 들으며 반으로 들어갔다. 이미 캠프 동안 서로 아는 사이였기에 입학식 특유의 어색한 분위기는 덜한 편이었다.
이미 무리를 지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으니까.
이인영은 그 무리를 말없이 노려봤다. 사뭇 다른 그녀의 태도에 이질감을 느끼고 있는데 이인성이 조용히 속삭였다.
“쟤 저기 무리에 있다가 나가리 됐거든.”
“어쩌다?”
“몰라. 말 안 해줘.”
가뜩이나 과고 특성상 여학생의 수는 적다. 120명 중에서 20명. 즉, 반에서 5명.
그중에서 3명과 적이 되어버린 이인영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자리에 앉았다. 이인영을 발견한 무리는 서로 곁눈질하더니 조용히 쿡쿡 거리며 웃어댔다.
‘전생과 다를 줄 알았는데…’
저 학생들 역시 나도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전생 때 누구보다 악질적으로 괴롭히던 녀석들. 눈에 보이는 폭력은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종 루머를 짜깁기 해 퍼뜨리던 주동자들이었다.
“자, 다들 오랜만이네. 잘 지냈나?”
박민철이 옆구리에 출석부를 낀 채로 나타났다. 오늘부로 진짜 담임이었다.
“입학식 이후 일정을 간단하게 말하면, 정상 수업이다. 지금 시간에는 도서관에 가서 교재를 받아올 거다. 시간표는 앞에 붙여진 걸 참고하면 된다.”
짧은 소개에 맞춰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눈앞에 산처럼 쌓인 교재들을 보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미적분학, 일반 물리학, 일반 화학, 유기 화학, 일반 생물학 등…
지금 학기에 배우지 않는 과목의 교재들도 미리 챙겼다. 대학교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교재라 그런지 두께가 엄청났다. 모서리로 사람을 친다면 상당한 타격을 줄 정도.
‘한번에 다 들고 가는 건 무리겠는데. 여러 번 나눠서 와야…’
“내가 들어줄게!”
“무겁지? 팔 부러질 것 같은데 내가 들게.”
진귀한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최한별을 주위로 남학생들이 너도나도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순수한 의미로 도와주려는 녀석도 있을 거고, 다른 의도를 가진 놈도 있는 것 같지만.
“도와줄까?”
“엉?”
나는 옆에서 끙끙대며 옮기고 있는 이인영을 바라봤다. 항상 고양이같이 올라가 있던 눈매가 땡그래졌다.
“아냐. 별로 안 무거워.”
“그럼 나랑 같이 한 번 더 오자. 나도 이거 한 번에 다 못 옮기겠거든.”
내 제안에 머리끝까지 교재를 쌓던 이인영이 잠깐 멈칫거렸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필요 없다는데 억지로 도와주진 말자.’
이인영은 자존심이 센 타입이었다. 남의 도움을 쉽게 받지 않으려 했고, 잘못된 걸 보고 그냥 넘어가지도 못했다. 가뜩이나 남초인 과학고에서 그녀는 편한 길보단 어려운 길을 늘 택했다. 애초에 친구가 없던 나도 이런 행동이 영 어색하기도 했고.
그렇게 이인성이 무식한 힘 자랑을 하며 교재를 한 번에 옮기고 있을 무렵, 우리는 옮길 수 있는 만큼만 반으로 옮긴 뒤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다 챙겼어?”
“응. 이것만 챙기면 끝이야.”
유기 화학책을 마지막으로 올린 이인영이 대답했다. 그녀는 책 표지를 빤히 보더니 물었다.
“너 화학 좋아해?”
“어?”
느닷없는 질문이었지만 이인영은 진지했다.
화학. 생물학을 공부하다 보면 다른 학문을 공부해야 할 때가 있는데, 특히 화학이 그랬다. 화학과 생물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으니까.
“응. 좋아하는 편인데 왜?”
“물화생지 중에서 제일?”
“그건 아냐. 제일 좋아하고 관심있는 건 생물이거든.”
내 대답에 이인영은 어쩐지 조금 분한 표정을 지었다. 나란히 걷던 위치에서 그녀는 살짝 감정을 담은 발걸음으로 저만치 앞으로 나갔다.
“나는 화학뿐이야.”
이인영의 화학 사랑은 전생에서도 유명했다. 그 어렵다는 유기화학책을 통으로 외우고 화학 관련 연구로 전국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다. 오죽하면 고등학생이던 이인영을 각자 대학으로 데려가려고 각 대학의 화학과 및 화학공학과에서 난리였고.
‘자존심이 엄청 상했나보네.’
지금까지 화학에서만큼은 1등을 해오던 그녀가 처음으로 그 자리를 내줬다. 그것도 화학을 제일 좋아하지도 않는 녀석한테.
과고는 천재들이 많다. 그리고 천재들은 유독 한 분야에 꽂히면 무서울 정도로 집착했다. 그리고 그 집착은 때때로 자신과 그 분야를 동일시했다.
“너 R&E는 잘 돼가?”
내 질문에 이인영의 발걸음이 주춤했다. 아까 이인성의 말로 미루어보면 그 무리하고 같은 팀을 했을 거다. 그리고 나가리 되었을 거고.
하지만 자존심이 센 이인영은 아무 말 안 하기를 선택했다.
“나랑 같은 팀 할래?”
“…!”
뒤돌아서 나를 바라보는 이인영. 놀란 고양이 눈이다.
“이미 팀 있으면 말고.”
“주, 주제가 뭔데?”
넌지시 던진 말에 이인영이 되물었다. 나는 전생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이인영을 영입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생 때 그녀가 있던 팀이 1위를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이길 것 같으니까 영입한다의 개념은 아니었다. 뭐랄까…
그녀와 팀이 되고 싶었다. 갑을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동료.
‘나중에 알고 보니 이인영 혼자 캐리했다고 했지. 나머지는 무임승차에 가까웠고.’
그때는 그녀의 독단적인 성격으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던 모양이고.
“그래핀(graphene) 관련해서 연구해보고 싶은데.”
그래핀(graphene). 탄소 원자들이 모여 육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 구조로 지금으로부터 2년 뒤. 영국의 연구팀이 흑연에서 그래핀만을 떼어 내는 데 성공해 이 공로로 이들은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이인영의 눈이 더 커다래졌다. 그도 그럴 게 이건 원래 그녀의 연구 주제였으니까.
“너도 그쪽에 관심 있어? 어떻게?”
“과학 좋아하는 애들이면 어느 정도 다 알지 않나?”
“그, 그건 그렇지만…”
그래핀이 세상에 알려진 건 2004년. 흔하디 흔한 재료인 스카치 테이프로 흑연에서 그래핀을 떼어낸 물리학자 덕에 유명세를 탔다.
“이쪽으로 연구하고 싶은데 주변에 너만큼 화학 잘하는 애가 없는 것 같아서.”
콕 찝어서 칭찬하자 이인영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싸늘한 표정이었다.
‘너무 노골적이었나? 하지만 이인영이랑 같은 팀을 하는 게 도움이 되는데.’
연구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물론 골방에 틀어박혀 1인 연구를 하는 연구원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팀으로 진행되었다.
놀라운 발견은 혼자서도 가능하겠지만, 발견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좋은 팀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렇다고 대학원생 때 하던 연구 주제를 끌고 오기엔 현실과의 갭이 너무 크고.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인영이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 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탓에 빠르게 뒤따라가는데,
“하긴 나보다 화학 잘하는 애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네.”
걸을 때마다 그녀의 단발머리가 흔들렸다. 살짝살짝 보이는 귀가 빨개져 있었다.
“나 화학 1등인데?”
“이번 시험만 말고! 실험까지 다 포함해서 말이야! 어쨌든 앞으로 각오하는 게 좋아. 나 엄청 깐깐하거든. 실험하다가 이상하면 다 엎어버리고 다시 할 수도 있어.”
“좋은 자세네. 망치면 처음부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뜻이지?”
이인영은 별다른 대꾸 없이 앞서나갔다. 기분 탓일까 그녀의 귀가 점점 빨개지는 듯했다.
입학식 첫날, 좋은 동료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