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92)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92화(92/221)
92. 생물 올림피아드 캠프 (3)
92. 생물 올림피아드 캠프 (3)
임상시험이 사람들에게 박혀있는 이미지는 사실 좀 도시괴담 급이었다.
임상 시험을 받다가 죽은 사람이 수백명이다, 범죄자들을 실험에 동원한다더라, 사실상 반 협박으로 진행된다더라 등··· 근거없는 헛소문으로 인해 웬만한 사람이라면 임상 시험을 피했다.
“임상시험센터?”
“응. 우리 아버지가 거기서 일하시거든. 의사는 아니고 연구원으로!”
“…무슨 연구 하시는데?”
“엉? 뭐야? 관심 있어? 아하, 역시 만덕이 너도 연구원이라 그런지 연구 내용에 관심이 많은 거구나? 하지만 아쉽게도 치매 관련 연구는 아니야.”
노화성 근감소증이라고 근육이 줄어드는 현상인데- 라고 운을 띄운 정민상은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민상 아버지의 연구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이야기가 따로 있었다.
‘최한별 할아버지가 임상 실험 대상자로 들어갔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최한별 할아버지가 다른 지병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병명은 치매. 높은 확률로 치매와 관련된 연구를 위해 투입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일의 장본인은 최강석일거고.
‘치매 연구를 다시 시작한건가?’
최강석은 분명 ‘치매 치료는 불가능이다.’ 라며 못 박은 상태였다. 약물치료로 증상을 지연시킬 수는 있어도 미미한 정도라며 그것마저 회의적이었으니까.
표정을 보아하니 최한별 역시 지금 안 듯 했다. 나는 침을 튀기며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 정민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한번씩 고개를 돌려 힐끗거리기 시작했다. 대화 주제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음···근데 얘는 어떻게 알게 된거야? 방금 보니까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던데.”
“응? 우리 고등학교에 최한별 모르는 애는 없을걸? 엄청 유명하거든. 그리고 너도 말야.”
“…나?”
“뭐야. 그 표정은? 아마 여기 올림피아드에 온 애들 대부분은 너희 알 걸?”
“왜?”
“그야···”
정민상이 손가락으로 최한별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명은 중학생때부터 금수저 천재로 계속 유명했었고,”
손가락을 휙 꺾더니 나를 가리켰다.
“너는 흙수저 천재라고 유명하던데?”
흙수저 천재. 정민상의 입에서 흙수저라는 말이 나왔지만 조롱의 의미는 없어보였다. 말 그대로 들리는 소문을 그대로 전달해준 것 같은 늬앙스.
‘애초에 학기초 ‘기생수’ 사건이 있었으니 소문이 퍼졌을거라곤 예상했다만…’
근데 그게 다른 학교까지 전달 될 줄은 몰랐지.
하지만 더이상 내게 흙수저라는 별명은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그건 곧 사라질 낡은 별명에 불과할테니까.
“그런데 흙수저 천재가 전교 1등이라는 말에 애들이 얼마나 경악을 했는데! 우리 학원에서는 매 시험때마다 너랑 최한별 등수 물어보는 애도 있었다니까?”
“내 등수를 왜 물어봐?”
“그냥 재미지! 축구팀 경기 보면서 누가 이겼나, 구경하는 것처럼 말이야.”
별로 와닿지는 않는 비유였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내가 어느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최한별은 그저 이 대화를 들으며 두 눈을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대화에 끼기 어려운건지, 아니면 별로 끼고 싶지 않은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정민상은 그런 최한별을 바라보곤 우물쭈물 말을 삼켰다.
그러나 5초 이상 침묵을 지키는게 어려운 정민상은 결국 조용히 나만 들릴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최한별 할아버지 어디 아프셔?”
“…나는 모르지.”
“남친이어도 그건 모르는건가. 어쩌지 너무 궁금한데.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도 되려나?”
“남친 아니라고. 그리고 그런건 본인한테 물어보든가. 아니지, 애초에 그런 거 물어보는건 실례-”
“너가 물어봐도 된다고 했다!”
“아니, 야.”
정민상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맑은 눈을 마주한 최한별이 당황한 듯 몸을 뒤로 살짝 뺐다.
“혹시…너희 할아버지 어디 아프셔?”
“…”
“임상시험센터까지 올 정도면 진짜 아프거나 난치병일 수도 있는데, 많이 심각하신거야?”
“…”
안되겠다. 침묵하는 최한별 주위로 으스스한 아우라가 퍼졌다. 말은 하지 않아도 불편해하는 게 느껴졌으니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정민상을 말리려는데,
“치매셔.”
“헐. 진짜? 그래서 이번에 노인 환자분들이 대거로 들어왔던건가? 많이 심하셔? 경증? 중증?”
“…중증이셔.”
의외다. 나는 살짝 놀란 기색으로 최한별을 바라봤다. 원래라면 자기 집안 일을 꾹 숨기거나 말하지 말라고 할 애인데, 처음 본 정민상한테 말할 줄이야.
분명 최한별의 부친, 최강석이 알았다면 들고 일어났을 일이다. 그가 나를 처음 본 날 당부했던게 ‘이 일은 비밀로 해달라.’ 였으니까.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려는 정민상을 보며 물었다.
“근데 너는 어떻게 아는건데?”
“나? 그야 아빠가 말해주셨는데?”
“…?그거 환자 개인정보 유출 아니야?”
“그런가? 근데 내가 말 안하면 되는거 아니야?”
“네가 지금 말했잖아.”
“헐. 그렇네. 이제부터 비밀로 할게. 비밀! 너희도 유출하면 안된다?”
이 무슨···말도 안되는 논리지? 하지만 마냥 안 좋은 건 아니었다. 덕분에 알게 된 정보도 있었다.
‘최강석이 연구를 시작했나본데···’
치매 치료에 회의적인 그가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의 가족을 임상 대상으로 참여시키면서까지 말이다.
나는 아카이브에 올린 내 논문을 읽고 감명받아 울었다는 정민상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밥을 먹었고 자연스레 정민상은 최한별을 보며 내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그렇게 폭풍같던 점심시간이 끝났고, 우리는 식당을 빠져나와 바로 강의실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빼곡하게 앉아있는 학생들을 피해 빈자리를 찾았다.
“어…자리가.”
“뭐야. 자리를 다들 왜 띄엄띄엄 앉았대?”
3명이 같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물론 가방을 치워달라고 부탁하거나 한칸만 이동해달라고 하면 자리는 생기겠지만···
굳이 그럴 이유라도?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애매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그 모습을 본 정민상이 자연스럽게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히히, 그럼 여기는 내가 앉아야···”
탁. 정민상이 머릿속 꽃밭 모드로 내 옆자리 의자를 빼내는데, 책상 위에 두꺼운 전공 서적이 올려졌다.
최한별이 책상 위에 먼저 책을 올려뒀다.
묘한 기류가 흘렀다. 최한별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정민상을 바라봤다.
“뭐, 뭐야. 여친이라고 자리 비켜달라는 거야? 그런 게 어딨어! 여긴 내가 먼저 앉았어!”
“…책 안 들고 왔지 않아?”
“채, 책 없어도 어차피 프린트물 주신다고 하셨으니까-”
“…지금부터 밤 9시까지 쭉 강의인데? 계속 책 없어도···괜찮을까?”
그녀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이제 10분 정도만 지나면 수업이 시작할 터. 밥 먹고 기숙사에 들러 책을 가져오려고 했던 정민상의 계획이 어긋난 탓에 그는 교재가 없었다.
정민상이 풀 죽은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봤다. 자기편을 들어달라는 무언의 암시.
“나도 책 없어서 얘랑 봐야 할 듯.”
“…너무해!”
둘이 잘 먹고 잘 살아라, 라는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붓고 정민상은 기숙사로 달려갔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9시까지 내리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책 없이 있는 건 무리였을 거다.
게다가 생물 올림피아드 캠프는 고작 2박 3일. 오늘 배운 이론 강의 중 대부분이 마지막 날 치러지는 시험 때 출제될 가능성이 컸다.
“…노트 빌려줄까?”
그제야 자유로워진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정민상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는데, 최한별이 책을 중간으로 밀며 물었다. 빼꼼 얼굴을 내민 탓에 순간 놀랐다.
“아냐. 괜찮아. 프린트물에 필기하면 되니까.”
“…펜 있어?”
“…아니.”
나 역시도 정민상처럼 밥 먹고 바로 기숙사로 향할 생각이었다. 예상보다 식당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 탓에 기숙사에 들를 시간이 없었고, 결국 빈손으로 이곳에 오게 된 터였다.
‘물론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니까 좀 편한 마음으로 온 것도 있고.’
어차피 전생 때 치열하게 듣고 필기하고 암기했던 내용들이었다. 심지어 그때 암기했던 내용들은 생물 올림피아드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에도 계속 암기했던 부분인지라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빌려줄게.”
“고마워.”
최한별은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 인형 필통에서 펜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강아지 만화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펜이었다. 뭔가 최한별이랑은 안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그 모습을 보고있던 나는 무심하게 툭 말했다.
“강아지 좋아하나 보네.”
“…아니?”
“필통이랑 펜 모두 강아지길래.”
“…아.”
펜을 흔들며 말하자, 최한별이 옅게 웃었다.
“맞네. 나 강아지 좋아해.”
···? 뭔가 말이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그 순간 강의실 문이 열리고 교수가 들어왔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뭐, 별 뜻 없겠지. 그렇게 혼자 앉아 수업을 듣던 전생때와는 다르게 최한별과 함께 생물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
“죽을 것 같아…”
“대학 수업은 다 이런거야? 어떻게 2시간을 스트레이트로 수업 해?”
“쉬는 시간 안 주고 빨리 마쳐주신다며…결국 꽉 채우고 쉬는시간까지 넘겼어…”
쉬는시간, 아이들이 죽어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첫 강의를 시작으로 약 4시간 동안 우리는 강의를 연달아 2개나 들었다. 중간에 정민상이 문자로 [나도 자리 옮길래!] 라든가 [그냥 의자 하나 끌고 와서 붙이면 안 돼?] 라든가 [저기 애들 너무 살벌하게 공부한단 말이야. 무서워!] 라며 징징댔지만 무시했다.
폭풍 같은 강의는 전생과 동일했다. 교수들은 내용을 이해시키는 것보다는 무지막지한 양의 지식을 우리에게 효율적으로 주입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생물 올림피아드 시험 자체가 사고력을 요하는 시험보다는 막대한 양의 지식을 암기하는 유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하나의 강의때 제공되는 프린트 양만해도 책 한 개는 나올 정도였다.
전생 때는 강의에 집중하느라 그 외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프린트에 담긴 내용들, 순서, 전달 방식 등 다양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새롭게 느껴졌던 건 바로 강의하는 교수였다.
고등학생때는 이 교수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몰랐으니까.
“자···어디 보자. 유전공학 강의를 맡게 된 한영호입니다.”
저녁 식사까지 끝이 나고, 마지막 강의를 앞두게 된 학생들은 말 그대로 탈진 상태. 한영호 교수는 탈진한 학생들을 보며 수업을 시작했다.
“유전공학은 유기체의 유전 물질인 DNA 혹은 RNA를 조작하는 과학분야로 21세기에 들어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학문 중 하나입니다.”
한영호는 짧게 유전공학에 대한 설명을 한 뒤, 본 수업으로 들어갔다. 2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내에 그가 전수해야 할 지식의 양이 많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한 명씩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책에 얼굴이 닿을락 말락 하는 학생, 벽 쪽에 기댄 채 그대로 눈을 감은 학생, 자기도 모르게 졸았는지 갑자기 경기를 일으키며 일어나는 학생 등.
애초에 인간의 집중 시간은 사실 25분 정도라고 하니···. 두 시간씩, 총 4시간 동안 이어진 수업은 쉬는 시간이 있다고 해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을 터.
잠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학생들 속에서 나는 한영호의 수업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도 그럴게 그의 전공을 들으며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영재 형이 들으면 좋아하겠는데.’
김영재가 평소 관심있어 하던 분야. 유전 공학은 전생에 나도 주의깊게 보던 학문 중 하나였다. 애초에 내 연구 중 하나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 인자를 제거하기’ 였으니까.
물론 그 연구는 실패로 끝이 나긴 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많은 가능성들을 열어두고 끝난 연구였다. 그 덕에 다른 방향으로도 연구를 접근할 수 있었다.
“줄기세포 연구도 유전공학의 한 부분입니다. 줄기세포란 다양한 세포 유형으로 분화할 가능성이 있는 세포를 일컫는 말로 일종의 미분화 세포입니다. 줄기세포의 경우는 배아 줄기 세포(ESC)와 성체 줄기 세포로 나뉘어져 있으며···”
한영호는 잔잔한 목소리로 수업을 이어나갔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 수업에 진심으로 듣고 있는 학생은 나와 최한별을 포함해 10명도 채 안 되는 것 같았다.
“유전 공학은 의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학문으로 특히 손상된 조직과 기관을 복구시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조혈 줄기 세포 이식의 경우 혈액 질환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보이지만···아직까지는 부작용을 비롯해 윤리적 이슈도 있기에 신중하게 연구에 임할 필요가 있습니다.”
줄기세포라… 나는 펜으로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손상된 조직을 복구할 수 있다는 건 마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뇌라는 기관은 상상 이상으로 복잡했고, 아직은 줄기세포를 뇌에 적용할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연구 단계.
‘뇌세포, 사멸된 뇌세포. 이미 죽어버린 뇌세포를 다시 살릴 방법이 없을까? 저하된 인지 능력을 다시 복구 시킬 방법은?’
톡톡. 톡.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수업보다 연구 생각에 빠져들었다.
뇌는 뉴런이라고 하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전기 자극이나 신호를 생성 및 전달할 수 있는 세포들로.
‘뉴런 자체는 수명이 길지만 다른 세포들에 비해 재생 능력이 떨어지지. 말초 신경계의 뉴런은 어느 정도 재생이 된다고는 하지만 뇌나 척수의 경우엔 거의 영구 상실 수준이니까.’
사멸된 세포를 되살리는 법. 죽은 세포를 살려내야 한다.
어떻게?
미간을 좁힌 채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수업 막바지를 알리는 멘트가 들려왔다.
“자, 오늘 유전 공학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3일 차, 그러니까 마지막 시험을 치를 때 다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잠이 묻어있었다. 삼삼오오 강의실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아, 수업에 집중을 하다보니 깜빡했네요.”
한영호가 출석부로 보이는 명단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내려가더니 중간에 멈춰세웠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말했다.
“김만덕 학생?”
“네?”
“지금 잠깐 끝나고 따라오세요.”
“네? 지금요?”
갑작스러운 호출에 나는 반사적으로 시계를 바라봤다.
저녁 9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