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93)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93화(93/221)
93. 생물 올림피아드 캠프 (4)
93. 생물 올림피아드 캠프 (4)
“이 논문. 김만덕 학생이 쓴 게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한영호 교수는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내게 물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논문은 아카이브에 올렸던 그 논문이었다.
내 대답을 들은 후, 한영호의 표정이 미묘하게 밝아졌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생물 올림피아드 강의를 하러 와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죠. 가만보자···김만덕 학생의 학교가?”
“한국과학고등학교 입니다.”
“한국과고 출신이군요···”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요란스럽게 쳤다. 9시가 넘어가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강의를 하던 때보다 피로가 덜해보였다.
아니, 오히려 더 각성한 상태인 것 같았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시간이 늦었으니 본론부터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연구와 관련해서 우리 연구실 사람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길 원합니다.”
“네? 공동 연구요?”
“저희 연구실 과제도 치매 연구이거든요.”
한영호가 논문에 있는 베타-아밀로이드 단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김만덕 학생이 연구했던 것처럼 베타-아밀로이드에 대한 연구는 저희 연구실에서도 활발히 진행중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수를 뺏겼다고 해야할까요. 뭐 그렇다고 해서 원망을 한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자극이 된거죠.”
“자극이라···”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연구팀에도 새로운 자극으로 받아들여졌을겁니다.”
한영호는 논문에서 이뤄진 실험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그 결과들이 생물학계에 미친 영향들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남을 통해 듣는 건 또 새로운 일이었다.
“김만덕 학생이 낸 논문 덕에 아마 뇌와 관련된 치료가 더욱 가속화될겁니다. 의학 분야에 있어서 진보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지요.”
“감사합니다.”
“뭘요. 감사를 오히려 받아야하는 입장인데요.”
한영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아까 꺼냈던 주제를 다시 언급하기 시작했다.
“공동 연구라고 해서 어려울 건 없습니다. 저희 연구실에서 진행하던 치매 연구와 김성진 교수님 밑에서 진행하고 있던 연구의 방향성만 맞다면 크게 어려울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김만덕 학생의 목표가 치매 치료라고 했죠?”
“네, 맞습니다.”
흠? 논문에 대한 이야기는 이해가 되는데 나에 대한 정보, 그러니까 치매 치료라는 목표까지 알고 있다는 건 조금 이해가 안되었다.
그런 의문을 해소해주려는 듯, 한영호는 기사 하나를 내게 건넸다. 카이스트 신문이었다.
“신문에 실린 발표 내용은 인상 깊게 봤습니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눈에 띄게 줄였더군요. 이 연구는 과학고 시설로 할 수 있는 실험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지라···사실 내용에 대한 신뢰도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뻥카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논문 낸 거 보고 다시 보게 되었다-라는 말을 한영호는 천천히 풀어가며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실험 결과를 보고 의심을 받았다는 건 썩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믿을 수 없었던 내용이기도 했다.
한영호는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나를 보며 물었다.
“이 다음 연구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인지 능력에 초점을 맞춰서 연구중에 있습니다.”
“인지 능력이라면?”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연구 내용을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연구 방향을 따라한다고 해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게 아닐 뿐더러 연구를 경쟁할 필요는 없었기에.
내가 원하는게 명예나 돈이었다면 이런 주제를 이야기하는게 껄끄러웠을지도 모른다. 혹은 전생의 나였다면 다른 사람과 소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피드백을 나누는 게, 비록 그 당시에는 쓸데없어 보이더라도 훗날 엄청난 일로 돌아온다는 것을.
‘연구는 혼자서 하는게 아니니까.’
나는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영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기존의 연구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카이스트 신문에 실려있는 연구도 그 맥락이고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건 그것보다 한단계 상위 차원의 일이었기에···지금은 손상된 뇌세포를 복구하는 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손상된 뇌세포 복구라!”
한영호가 박수를 치며 따라 말했다. 그의 눈이 형형이 빛나고 있었다.
“뇌세포 복구라면 줄기 세포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겠군요. 가만보자, 내일 첫 수업이 몇시부터지요?”
“9시부터입니다만···”
한영호는 시계를 보더니 웃었다. 그리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수업 전까지 11시간이나 남아있군요!”
···맑은 눈의 광인은 여기에도 있었다.
*
“…괜찮아? 피곤해 보이는데.”
“어? 어. 괜찮아, 괜찮아. 그냥 조금 덜 자서 그래.”
“어제 늦게 들어오더니! 나 안자고 기다리다가 결국 곯아떨어졌다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최한별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하이텐션을 장착한 정민상이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어제는 새벽 1시에 기숙사에 들어왔다. 다행히 기숙사 생활을 담당하고 있는 조교에게 한영호 교수가 미리 연락을 해 둔 상황이었기에 큰 탈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아직 1시밖에 안되었지만···내일 수업도 있다고 하니 이만 보내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아줄기세포, 성체 줄기세포, 유도 만능 줄기 세포 등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마치 내게 모두 전달하려던 한영호는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포기한 건 아니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그의 명함을 애써 무시하며 밥을 먹었다. 지금 떠올렸다간 체할것 같았으니까.
그렇다고 시간을 낭비한 건 아니었다. 한영호는 국내 유전공학, 특히 줄기세포와 관련해서 입지가 있는 사람. 그와의 인연은 어떻게든 도움이 될 터였다.
‘게다가 필요하면 연구 시설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지.’
내 연구도 연구였지만 김영재와 둘을 만나게 한다면?
필시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유전자 편집 기술에만 몰두해있는 그를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끌어줄 수도 있고.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도움이 될 터였다.
‘아직 공동 연구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본 건 아니지만···일단 김성진 교수님한테도 말해둬야겠어.’
김성진 교수가 보내줄 지는 미지수이긴 하지만, 일단 말을 꺼내보는 것 정도는 괜찮으니까. 나는 반찬으로 나온 버섯 조림을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까지도 쉼없이 옆에서 이야기하고 있던 정민상이 문득 말을 멈추더니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실험평가는 조별로 이뤄진다는데···같은 조 되겠지?”
“안될걸.”
“아 왜! 될 수도 있지!”
“절대 안됨.”
“왜 확신하는건데!”
단호하게 말한 탓일까 정민상의 눈썹이 축 내려갔다. 하지만 전생과 같게 흘러간다면 조는 온전히 이름순으로 끊긴다. 그 말은 김씨인 내가 최한별이나 정민상과 같은 조가 될 일은 없다는 말이었다.
실험교육은 총 4개의 파트로 이루어진다.
생화학, 실험정보학, 식물생리학, 계통생물학.
각각의 내용은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상황이라 걱정될 건 없었지만, 단지 조별로 진행된다는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전생때의 기억을 되돌아봤을 때···썩 좋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교재와 간단한 필기구를 챙겨 실험실로 이동했다. 전생의 기억과 동일한 실험실. 문득 그 문턱을 다시 밟으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조금은 낡은 커다란 실험 책상. 그 옆에 비치되어있는 현미경들과 각종 실험 장치들.
“자, 오늘부터는 실험 교육이 진행됩니다. 교육은 크게 4가지로 조별로 진행됩니다.”
첫 실험교육인 식물 생리학을 담당하는 교수가 들어와 설명을 시작했다. 열심히 듣는 학생들 중 나는 전생에 같은 조원이었던 녀석들을 찾아냈다.
‘…? 근데 3명이 안보이는데.’
국가대표 선발때 치뤄지는 실험 평가는 8명씩 한팀이 된다. 이번 실험 교육도 8명이서 한팀이 되어야 하는데···
문득 드는 불안감을 애써 떨쳐내며 조별 명단을 확인했다.
“아.”
“…”
“와!와아!와아아아!!!”
전생과 다른 조가 되었다. 나는 내 옆에서 눈을 빛내며 잔뜩 기대하고 있는 정민상을 무시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대체 왜? 전생과 달라진 거라곤 최한별이 올림피아드에 신청했다는 것 정도. 해맑은 표정으로 짐을 들고 온 정민상과 여전히 무표정이지만 묘하게 들뜬 것 같은 최한별을 바라봤다.
‘그래. 어차피 크게 달라진 것도 없으니까. 실험 내용도 전생때랑 같고.’
교수가 나눠준 종이는 작년도 국제생물올림피아드 실험 평가 문제였다. 영어로 써진 종이를 보고 몇몇 학생들이 불안한 시선으로 교수를 바라봤다.
“실제 시험에서는 영어로 된 프린트가 나갑니다. 오늘 수업을 위해서 영어 해석도 옆에 적어놨지만 본 대회를 준비할 학생이라면 영어 실력도 어느정도 갖추고 있어야 할 겁니다.”
“…교수님. 영어 해석이 안 적혀 있는데요?”
“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된 교수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조교한테 원본 파일을 프린트 맡겨놨었나보네요. 지금 다시 출력하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이걸로 진행해보도록 합시다.”
교수의 말에 몇몇 학생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도 그럴게 1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종이를 일일이 해석하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었기에.
“어떡해? 우리 실험 평가 다 망하는거 아니야?”
“엄살 떨지마. 너 이거 해석할 수 있잖아.”
“헉! 어떻게 알았어?”
장난스럽게 놀라는 정민상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민상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이번생이긴 하지만···성원과고 출신이라는 것만 봐도 기본은 한다는 소리니까.
‘그나저나 국가대표까지는 못갔나 보네. 전생때 같은 팀이 아니었던 걸 보면.’
지금은 이렇게 낄낄 거리며 웃고 있는 녀석이지만 국가 대표에 떨어질 수도 있다. 나역시 전생에 내가 국가대표였다고 해서 이번 생에도 국가대표로 선발될 거라 100퍼센트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적어도 여기 학생들 중에 나보다 생물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학생은 없을거라고.
“일단 같이 실험을 시작하게 될 조원들끼리 간단하게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장비 설명이 마치고 난 후에 본격적인 실험은 다음 교시부터 진행하도록 할게요.”
네, 하는 목소리에 맞춰 나는 조원들을 바라봤다. 새로운 구성, 새로운 느낌이었지만 처음 만나는 조 답게 어색함이 가득했다.
‘확실히 화학 올림피아드 캠프때랑 분위기가 다르네.’
화학 올림피아드 여름 캠프때는 실험이 따로 없었던 것도 한몫하겠지만, 성비도 큰 문제였다. 생물 올림피아드의 경우 여학생들의 수가 눈에 띄게 많았고, 우리 조에도 절반이 여자였다.
“어···안녕? 나는 김연수이고 음, 잘 부탁해.”
“안녕! 나는 정민상이야! 너 진원 과고 맞지? 오일러 수학학원?”
“어? 맞는데? 어떻게 알아? 너도 그 학원 다녀?”
“아니? 그냥 내 친구가 거기 다니거든.”
정민상의 인맥은 여기서도 엄청났다.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니어도 한다리만 건너서 아는 사이면 마치 친한 친구처럼 친화력을 자랑했다.
그저 엄청난 인싸를 중심으로 화기애애해지는 분위기 가운데서 단 두 사람만이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넌 이름이 뭐야?”
“아···김만덕.”
“하핫, 이름이 김만덕이야? 이름 진짜 신기하다.”
하하···멋쩍게 웃어보이자 질문한 애도 멋쩍게 웃으며 대화가 끝났다. 그래도 전생이었다면 ‘지금 이름가지고 뭐라 그러는거야?’ 라든가 ‘신기할 것도 많네.’ 같이 쏘아붙였을텐데···
‘장하다.’
그래도 전생에 비해 사회성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남학생들 몇명이 살짝 들뜬 마음으로 최한별을 바라봤다.
“안녕? 너 한국과고 맞지?”
“…응.”
“나! 나도 너 알아! 최한별 맞지?”
“야, 내가 먼저 말하고 있었잖아.”
“어쩔.”
역시나 최한별은 아이들의 관심을 한번에 끌고 있었다. 다만 그 관심의 주인공이 말 수가 적고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지만.
계속되는 질문에 “…응.”, “…어.”로만 대답하는 최한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좀 더 사회성이 높은 것 같다고.
그렇게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고 교수는 실험 용액들을 비롯해 준비된 장치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여러분 앞에 놓여있는 시약들은 각각 아세톤 혼합액과 에탄올입니다. 200ml에 들어있는게 혼합액이고 25ml에 들어있는게 에탄올이니 헷갈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하나씩 프린트에 나와있는 내용을 설명하자 아이들이 필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볼 때 딱히 필기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어차피 실험 과정을 다 암기해서 진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실험 평가가 시작되면 모든 과정을 착착 진행해야하는 건 맞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부족할거고, 실험 재료를 추가로 주지 않는만큼 실험이 잘못되면 큰일이니까.
그렇다고 암기해서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다. 실험이란 변수의 연속인만큼 기본적인 걸 바탕으로 적용하고 응용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자, 그러면 일단 과제 1부터 진행해볼까? 식물의 색소를 측정해야하니까···”
조장을 맡은 학생이 기합을 넣으며 실험 과정을 읊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과 다르게 내 목표는 국가 순위 1위. 즉 모든 조원들이 금상을 받을 수 있게 드림팀을 꾸리는 것이었으니까. 누가 국가대표로 될지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이상 지금부터 준비해놓을 필요도 있었다.
‘개인 순위 1순위.’
전생때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내 개인 순위는 8위였다. 개인 순위권이 25위 이내로 들어오면 금메달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느슨했지만··· 같은 금메달이라고 같은 위치인 건 아니었다.
25위 금메달과 1위 금메달 사이에는 꽤나 큰 벽이 있었으니까.
과학창의재단 한학수와의 약속도 약속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과연 한국 전원이 금메달을 딸 수 있을지, 국가 1위로 당당히 올라설 수 있을지.
그렇게 기대감 반, 설렘 반으로 조원들의 실험을 지켜봤다. 열정에 가득차고, 의욕이 앞서는 학생들의 실험을.
그리고 결국,
“…그거 그렇게 하는거 아닌데.”
꾹 참던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