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94)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94화(94/221)
94. 생물 올림피아드 캠프 (5)
94. 생물 올림피아드 캠프 (5)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라는 말 한마디의 위력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다들 생물 올림피아드는 처음이다 보니 실수를 할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래서 모범생들은 힘들다. 말 한마디에 쉽게 경직되니까.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줄기 구조를 분석해야 하니까, 종이 아니라 횡으로 잘라야 할 것 같은데요.”
“횡으로?”
“네. 가로로 절단해야지 그 안의 구조가 한번에 보이니까요. 페이퍼 보니까 관다발 분포 양상도 봐야 하는 것 같고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학생을 향해 말했다. 보아하니 그림을 보며 대충 진행한 모양이었다.
지금이야 실수를 해도 재료를 더 받을 수 있겠지만, 실제 시험장에서는 실험 재료를 더 주는 것도 아닌 만큼 샘플을 망쳐버리면 답도 없다. 내 말을 들은 남학생이 당황한 얼굴로 나눠준 페이퍼를 읽기 시작했다.
“어…맞네. 고마워.”
떨떠름한 목소리로 고개를 꾸벅이는 남학생. 아까 잠깐 자기소개를 할 때 들어보니 일반고 고2 학생이였지. 다른 올림피아드와 다르게 생물은 일반고 학생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와, 이거 다 해석한거야?”
“혹시 이건 어떻게 해야해?”
모둠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바라봤다. 그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걸 무시할 수 없다.
그래, 평가도 아니고 수업이니까. 게다가 모둠당 실험 기구도 한정되있는만큼 협력할 필요도 있었다.
“일단 monocotyledonous plants이라고 적힌 건 외떡잎 식물이고요, 쌍떡잎 식물은 a dicotyledonous plant라고 적혀진 건데…”
실험을 위해 나눠준 페이퍼를 읽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어떤 실험을 해야 하는지 적혀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분석한 내용을 적어야 했다.
나는 페이퍼를 보며 조원들에게 실험을 안내했다.
과제 1은 비교적 간단한 실험이었다. 식물의 줄기 구조, 잎의 구조를 분석하고 이 식물이 외떡잎인지 쌍떡잎 식물인지를 판단하는 문제로,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간단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오히려 어려운 건 과제 2이지.’
식물의 인산 농도를 감지하여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실험으로 따로 실험과 관련해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하기엔 난이도가 높은 과제였다.
“와, 너 영어 진짜 잘한다.”
“실험 학원을 따로 다닌 거야? 아니면 올림피아드 대비반에 실험 특강?”
“너 한국과고 다니지? 아까 명단에서 봤어.”
몇 학생들이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옆에서 감동 받은 눈으로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는 정민상보다는 덜 부담스러웠다.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더 무서운데.
“···예습했어.”
나는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상황을 무마시켰다. 여기서 학원을 안 다녔다고 말해서 관심을 끌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나는 조용히 페이퍼를 읽고 있는 최한별을 바라봤다.
아마 200%의 확률로 최한별 역시 실험 내용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말하지 않은 건···
“우리 팀에 에이스가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되겠는데?!”
“저기봐! 저쪽 팀도 지금 실험 실수했나 봐. 조교쌤한테 재료 더 받아 가는데?”
“만덕아 조장 하자! 조장 해줘!”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가? 그냥 실험에 대해 조언을 해줬을 뿐인데 조원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올림피아드 캠프는 내일로 끝난다. 짧은 기간동안 최대한 배워가야 내일 있을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국가대표에 올라갈 수 있다.
여기선 나이가 적거나 많은 게 중요하지 않았다. 잘하냐, 못하냐의 문제일 뿐이지.
···어차피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실험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면도날로 샘플을 가로로 자른 후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그 이후 얇은 커버 글라스를 기포가 생기지 않도록 덮은 후 현미경 위에 올려두었다.
현미경 사용은 중학교 과학 시간만 되어도 진행되는 부분이기에 새로울 것 하나 없는 과정이었지만 다들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지금 현미경으로 보니까, 관다발 세포에 결정이 보이는 것 같은데?”
“잘 찾으셨어요. 이제 탄산칼슘 결정을 찾아주실래요?”
“탄산칼슘 결정?”
“네. 어떻게 보이냐면···”
나는 종이 위해 간단하게 결정 구조를 그려 보였다. 내 그림을 본 학생이 기쁜 목소리와 함께 결정을 찾아 실험을 진행했다.
그렇게 실험을 도와가며 진행하고 있던 중,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전생이었다면 이렇게 도와줄 일도, 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일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국가대표?”
“뭐야. 만덕이 넌 진짜 국대 생각하고 온 거구나?”
“역시 에이스는 다르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조원들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난 국대까지 안바라는데. 그냥 이수증 받으려고 왔어. 생물 올림피아드 캠프만 갔다 와도 이수 확인증 주잖아.”
“생기부에 캠프 내용은 적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대학교 갈 때 스펙으로 쓰려고 왔지.”
“솔직히 여기 80명 중에 4명만 국대로 선발되는데···. 에이, 무리야 무리.”
이 당시에는 영재 교육이나 과학 캠프 관련해서도 생활기록부에 기재가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덕분에 스펙 열풍이 학원가에 불기도 했고.
가벼운 마음으로 캠프에 왔다는 이야기에 묵묵히 듣고 있는데, 정민상이 의외의 말을 했다.
“그리고 대부분 고3들이 국대에 선발될 걸? 고2가 국대되는 건 극히 드무니까.”
“암기량 차이를 어떻게 이겨. 기회는 줘도 선발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야. 우리는 그냥 캠프 참여한 것만으로도 충분해.”
학생들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체념보다는 현실 수긍쪽이긴 했지만, 딱히 비관적으로 들리진 않았다.
“과고생들도 비슷해. 국제 올림피아드 출전 조건이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20세 이하의 학생이거든. 그런데 과고생들은 대부분 조기졸업을 해버리니까 굳이 올림피아드 가려고 1년 더 다니는 학생은 없다 이거지.”
정민상도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대부분 과고생들은 올림피아드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1년 남아있기보다는 대학 입학을 선택했다.
애초에 한국에서 올림피아드란 대학을 위한 수단 중 하나일뿐, 이미 대학에 합격한 상태에서 굳이 이걸 위해 대학을 포기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전생 때도 고2는 나 하나뿐이었지.’
생물 올림피아드의 경우 고1들도 바로 국가대표 시험을 칠 수는 있었다. 선발이 될 경우 고2가 되는 그 다음 해에 바로 국대로 참가하는게 절차상 가능은 했다.
단지 그걸 해내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지.
‘고2이라고? 음···그래. 잘 부탁해.’
‘한국과고면 유명한 곳이잖아. 그래서 붙은건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들은 대회가 끝날 때는 놀란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국 유일 금메달, 개인 8위. 그게 나였으니까.
그렇게 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쉬는시간이 끝났고, 우리는 다시 실험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내 지시에 맞춰 실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이어지는 4과목에 대한 실험. 그 시간동안 어설프던 실험들이 점점 태가 나기 시작했다.
“현미경 배율을 어떻게 맞춰야한다고?”
”으, 해부학이 제일 싫어. 냄새 역해.”
“판막 분리해 내, 아니 그게 판막이 아니고-”
내 지시에 맞춰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불현듯 지금쯤 연구실에 있을 김영재와 이재성이 떠올랐다.
지금 이 과정들 역시 즐겁다. 생물학과 관련된 모든 지식, 실험들은 늘 재밌었으니까.
하지만 이전과 다른 떨림이었다.
···연구하고 싶다.
빨리 캠프가 끝나고 연구실로 돌아가서 치매와 관련된 세포를 분석하고 유전인자를 두고 실험해 보고 싶다.
김영재와 함께 유전자 편집 기술을 두고 이야기하고, 이재성과 가루가 되도록 서로의 의견을 비판하며 연구하고 싶다.
지금 이 실험들도 좋지만,
치매. 치매를 연구하고 싶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는 기숙사 책상에 앉았다. 그러자 취침 준비를 마친 정민상이 하품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뭐야. 지금 공부하게?”
“잠깐 책 좀 보다가 자려고.”
아직 점호까지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미 수십 번도 읽었던 책들이었지만 교수진들이 나눠준 프린트물은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진 상태.
물론 내용들은 다 알고 있지만 오랜만에 실험하는 모습을 보니 한 번 더 책을 들춰보고 싶었다.
첫 수업이었던 생화학 파트를 읽으며 펜을 끄적였다.
생명체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화학 작용들. 특히 단백질, 핵산과 관련된 부분을 꼼꼼하게 읽었다.
이재성이 본다면 ‘이걸 왜 생물이 해?’ 라며 미간을 좁혔을 일이지만···. 원래 생물이랑 화학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니까.
우리가 만든 약. 어떻게 보면 아직 약의 수준이라고 볼 수 없으니 화학 물질이라고 하는 게 더 가까운 아밀로잽에 적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 중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정민상이 눈을 빛내며 서 있었다.
“그런데 진짜 너무 궁금해서 그런데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
“네 논문에 나온 아밀로잽 있잖아···”
내가 메모하는 걸 본 걸까, 그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이거 꼭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만 분해해? 뇌에서 일어나는 단백질 축적을 막을 수 있다면 뇌 말고 다른 기관에 축적되는 것들도 막을 수 있어?”
“아니. 이건 표적 단백질만 분해하는 약물이라서 다른 종류의 단백질은 안 돼.”
“아아···.”
단호한 내 말에 그는 살짝 아쉬운 듯 입을 우물쭈물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가 듣고 싶어 할 말을 살짝 흘렸다.
“하지만 조만간 가능해질 거야. 연구원 중 한 명이 그거 관련해서 눈에 불을 켜고 연구 중이거든.”
나는 김영재를 떠올렸다. 김영재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시작으로 연구를 뻗어나가고 있었고, 아직은 실험적인 부분이 많던 유전자 편집 기술 분야를 표적 단백질 연구와 결합시켜 생각하기 시작했다.
‘유전 인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면 아미노산을 만들어 내는 코돈, 그러니까 배열도 조작할 수 있어. 그 말은 특정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기작을 역으로···’
김영재는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여전히 ‘종말론’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버티고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동력 삼아 성장한 건 확실했다.
‘이 속도라면 조만간 그가 과거에 보였던 업적을 이뤄내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치료 분야에 새 패러다임을 연 그가 얼마나 성장할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데, 정민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다른 연구원? 연구원마다 역할이 있어?”
“역할이 나눠졌다기 보단···주 연구 분야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나.”
“오···고등학생 수준의 연구랑은 차원이 다르네. 그럼 너는 뭐 담당이야?”
나는 교재를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노트에 적혀있는 ‘아밀로잽’을 펜으로 천천히 두드렸다.
담당. 담당이라.
‘사멸된 뇌세포를 복구하려고 합니다.’
내 말을 들은 김성진 교수의 표정에는 다양한 감정이 일순간 섞였었다.
좁혀진 미간에는 불신이, 닫힌 입 위로는 머뭇거림이.
그러나 마지막에 그는 웃었다.
‘쉽지 않은 연구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본격적으로 객원 연구원 신분으로 올라갔겠다. 원하는 게 있나? 필요한 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다음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였다. 내 목표는 오로지 치매 치료였으니까.
치매가 무서운 병인 이유 중 하나는 학습 능력을 비롯한 모든 사고 체계가 퇴행한다는 점이었다.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이었어도 치매라는 병 앞에서는 서서히 어린 아이로 변해간다는 것. 손상된 뇌는 서서히 기억을 잃게 만들고 인지 기능에 저하를 불러일으켰다.
…손상된 뇌를 복구해야만 했다.
나는 집중한 상태로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정민상을 바라봤다.
“줄기세포.”
“응? 줄기세포? 설마 몇 년 전에 전 세계를 뒤집어놨던 그 줄기세포 이야기하는 거야?”
“응.”
나는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재 사이에 한영호한테 받았던 프린트가 끼워져있었다.
“줄기세포 그거 개구라였다고 밝혀졌던 거 아니야?!”
“…전부 다 거짓이었던 건 아니야. 데이터 조작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분야 자체가 거짓인 건 아니니까.”
줄기세포와 관련된 논문은 종종 세상에 나왔었다. 단지 그 내용이 어디까지나 실험적인 부분이 강하고, 아직은 공상과학적인 측면이 강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만···
그 분야를 연구하던 사람들은 우직하게, 계속 연구를 이어나갔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연구가 거의 없잖아. 물론 아빠가 이야기하는 거 들어보면 임상센터에 관련해서 종종 연구가 들어오는 것 같지만···. 3상까지 가는 경우는 만분의 일 수준이라는데?”
실제로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치료 수준까지 이어진 경우는 지금까지 딱 하나의 케이스 밖에 없었다. 지금 이 시기에는 말이다.
만분의 일. 아니 어떻게 보면 그 이상.
그만큼 이미 손상된 세포를 다시 재생시킨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이 분야에선 새로 시작하는거나 다름없는 내가 비빌 언덕은 없었다.
적어도 국내에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도와주겠네.’
그 날, 신뢰 가득한 목소리로 김성진 교수는 내게 말했다. 뭐든지 도와주겠다는 그의 말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두 손을 꽉 쥐었다.
내가 필요한 것?
돈? 시설? 아니···.
’하버드대에 잠시 다녀오려고 합니다. 방학 동안만요.‘
김성진의 무표정한 얼굴이 일순 깨졌다. 나는 준비해왔던 노트북을 꺼내 메일 한 통을 보여줬다.
[안녕하십니까? 하버드대학교 분자세포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는 크리스 에반입니다. 귀하의 논문에 대해 좀 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참고로 제 박사학위 논문은 ‘줄기세포 정체성 및 분화를 조절하는 에피제닉 수정’으로···]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
줄기세포에 대한 지식. 검증된 지식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