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96)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96화(96/221)
96. 국가 대표 (2)
96. 국가 대표 (2)
화학 올림피아드 캠프 첫날. 대학 내 화학관 강의실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여름캠프 때보다 학생 수가 적었기에 비교적 자리는 널널했다.
“넌 왜 여기 앉아?”
“내 맘. 관심 꺼.”
“진짜 짜증나···. 쟤 딴 데 가라고 하면 안 돼?”
좌 이재성, 우 이인영. 둘 사이에 낑겨 앉은 나는 그저 허허 웃었다. 시간이 지나도 둘의 관계는 여전했다.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해외에서 같이 지내야하는데…
“니가 뭔데 가라 마라임?”
“같은 학교끼리 앉으려고 하니까 눈치껏 빠지는 게 어때?”
“그렇게 치면 같은 연구실끼리 앉으려고 그러는 건데? 니가 빠지던가?”
“야, 너 친구 없지?”
“지는.”
…아웅다웅 다투기 시작하는 둘을 보니 미래가 그려지는 것 같았다. 어느정도 해탈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강의실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교수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강단에 능숙하게 섰다.
“반갑습니다. 화학 올림피아드 겨울캠프 총괄을 맡게 된 성준한 교수입니다.”
중후한 목소리는 저절로 학생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인영과 이재성도 어느새 강단에 선 교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강단에 선 채로 학생들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매서워보였기에, 장내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미묘한 표정이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갔다.
‘성준한. 김성진 교수와 한때 공동 연구팀을 꾸렸던 화학과 교수이자, 치매와 관련된 화학 물질들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 중 국내 탑에 드는 사람.’
그에 대한 정보는 이미 전생에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치매와 관련된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중 몇몇 연구실들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곤 했다.
뇌인지신경 쪽으로 뇌의 행동 기작을 분석하는 김성진 연구팀과 다양한 신경전달물질들을 연구하고 새로운 화학 물질들을 개발하던 성준한 연구팀.
화학 올림피아드 강사진으로 나올 거라곤 예상 못했지만, 그의 업적으로는 충분히 오고도 남았다. 아니, 이런 곳에 오기에 거물급 인사였다.
“뭔가 빡세보여.”
“저 교수님은 뭐 가르치시려나.”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둘은 성준한 교수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금방 싸우다가도 또 이야기하는 걸 보면 둘이 은근 잘 맞을지도?
‘성준한 교수라면 이 분야에서 꽤나 권위있는 사람이지. 평소 이런 강의는 잘 안하는 사람으로 유명한데…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군.’
사람에 대한 평가를 잘 내리지 않는 김성진조차도 그를 인정하면서도 의아해했으니까.
문득 나는 전날 밤, 김성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합숙을 위한 짐을 다 준비해 둔 상황 속 우리는 하버드대 조기 입학을 위한 서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는 자신이 했던 말에 책임을 지듯 최선을 다해 알아봐 주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화학 올림피아드에 출전할 필요가 있겠나? 시간 낭비인 것 같다만.’
‘대학 입학까지 시간이 남아있으니까요. 그리고 약속이기도 하고요.’
‘약속?’
김성진 교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국가 종합 1위. 한국을 알리고 오겠습니다.’
작년, 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인 한학수와 했던 약속이었다. 그 덕에 화학과 생물 올림피아드 국가대표 선발전의 날짜가 겹치지 않았고, 이렇게 캠프에 참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한학수와의 약속 때문은 아니었다.
‘이인영 쟤 혼자 은메달이래.’
‘일반고 애도 금메달 따갔다는데…학교 망신에 나라 망신까지.’
‘평소에 화학 부심이라곤 다 부리더니, 실력 들통난거지 뭐.’
그 당시 이인영을 향해 쏟아지던 비난들. 그 중 일부는 평소 이인영을 고깝게 보고 있던 무리로부터 나온거긴 했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하긴 했었다.
그리고 이재성 역시 금메달을 따고나니 더는 학교에서 배울게 없다고 판단한 걸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학교에서의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역시 학교를 자퇴하게 된다.
내게 소중한 두 명이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화학 때문에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 화학 올림피아드 출전도 분명 입학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테니까요.’
‘뭐, 너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맞는거겠지. 그럼 또 준비할게-’
그 이후로 여러가지를 설명해줬던 김성진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작게 미소지었다. 예나 지금이나 은근히 잘 챙겨주는 건 여전하다.
“이번에는 캠프는 총 36명으로 2주동안 합숙을 하게 됩니다. 여름 캠프 때와 같이 이론 수업을 듣습니다만, 겨울 캠프 때는 실험 과정이 추가됩니다.”
성준한 교수가 캠프와 관련된 일정을 열심히 소개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마무리 멘트. 대충 한국 화학의 미래와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은 다 미래의 과학자들이다, 하는 흔한 환영사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국가대표 선발전 시험이 치뤄집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오리엔테이션이 끝이 났다. 우리는 2주간 일정이 담긴 책자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자 안에는 수업에 관한 내용도 간략하게 적혀있었다.
[아스피린 합성, 성준한]아스피린 합성 실험이면 어려운 실험은 아니지만···. 성준한 교수가 맡은 강의가 하필 아스피린과 관련된 내용인게 단순히 우연인지 아닌지 궁금할 뿐이었다.
진통제, 해열제로 쓰이는 아스피린이 뇌졸중 예방과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옆에서 이재성이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국가대표 선발때는 실험 평가도 있네.”
“왜. 걱정 돼?”
“걱정은 무슨.”
하지만 말과 다르게 이재성의 표정은 영 편해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일반고인 만큼 화학 실험이 자주 이뤄지지는 않았을 터, 게다가 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은 이재성에게 실험은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었다.
나는 이재성의 어깨를 툭 쳤다.
“연구실에서 매일 실험만 했잖아. 크게 다를거 없어.”
“다를 게 왜 없냐? 당장 화학전지 실험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뭐야. 왜? 쟤 못하겠대?”
이인영이 가방을 맨 채로 이재성을 바라봤다. 생글 생글 웃고 있는게 눈으로 비웃고 있다. 이인영의 도발에 손쉽게 걸린 이재성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 나는 연구실에서 전문 기계만 다뤄봤어서.”
“전문 기계는 무슨. 기계 다 비슷하거든?”
“뭐, 그렇게 생각해라. 침팬지한테 설명해봤자 이해도 못 할텐데.”
“…침팬지?”
이인영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강렬한 살의가 느껴졌다. 지금껏 이인성과 투닥거리던 정도와 다르다.
나는 금방이라도 머리채를 잡고 싸울 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말릴 수 있는가?
답은 아니오.
“야! 야! 김만덕! 얘 좀 말려봐! 아악!!”
“침팬지? 사람한테 침팬지라고 하는게 말이 되냐 이 싸이코패스야!”
“물지마! 물지말라고! 침팬지가 아니라 이건 미친개-”
그렇게 둘이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걸 지켜보며 나는 빠르게 기숙사로 향했다.
*
“이젠 놀랍지도 않다.”
“그거 칭찬이지?”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번에도 같은 방을 쓰게 된 이재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정도면 이재성이랑 악연을 넘어선 뭐가 있나 의심이 될 정도다. 나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이재성을 바라봤다.
“너 설마 나랑 같은 방 쓰게 해달라고 민원 넣은 건 아니지?”
“어디 아파? 약 먹을 시간 지났어?”
“그게 아니고서야 왜 또 같은 방인데. 과학적으로 설명해 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너랑 같은 방 쓰는 거 싫거든?”
36명 중 여학생 6명을 제외하면 30명. 이 중 2명씩 같은 방을 쓰니까 내 룸메이트는 29명중에 1명.
29분의 1의 확률로 걸리다니···라면에 다시다가 2개 들어있을 확률정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확률에 대한 가벼운 고찰을 하며 짐을 풀고 있는데,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배신자.”
“?”
“의리없는 놈.”
“…”
“사대주의자.”
“···뭔.”
“매국노.”
“야. 매국노는 선 넘었지-”
갑자기 쏟아지는 매도에 뒤를 돌아봤다. 이재성이 뚱한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몹시 불편한 모양이었다.
“너 지금 나 유학 가는 거 때문에 그러는 거야? 해외로 가는 게 왜 매국노인데?”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연구잖아. 근데 굳이 왜 해외로 가려는 건데?”
“…한국에서 힘드니까.”
아직 이재성이나 김영재에게 구체적인 연구 방향을 말하진 않았었다. 어디까지나 사멸된 뇌세포, 그러니까 세포 재생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었지만 둘의 분야가 아닌 만큼 대화가 이어지긴 어려웠다.
“…대체 무슨 연구길래 한국에서 불가능인 건데? 시설이 부족한 거야?”
“시설도 시설이지만 선행 연구를 진행한 사람이 없어. 다 해외에 있거든.”
“그게 하버드다?”
“응.”
차근차근 설명하자 이재성의 표정도 아까보다는 누그러졌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이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결국 나는 앞으로 진행할 연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풀어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재성은 함께 연구를 진행하던 동료니까. 오히려 내 연구 방향에 그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유도만능줄기세포?”
“분화가 끝난 체세포에 자극을 줘서 배아줄기세포처럼 특정 세포로 분화가 가능해지게 만든 세포야. 다른 말로 역분화 세포라고도 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은데.”
“뭐, 원래 말도 안 되는 걸 설명하는 게 과학이니까.”
그러나 여전히 불신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이재성은 화제를 전환했다.
“…존슨앤존슨에서 찾아왔다며. 계약은 안 하고.”
“응. 일단 계약은 보류했어.”
“너 치매 치료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왜 보류한 건데? 그리고 그런 회사랑 계약을 하면 분명 무지막지한 돈을 떼돈으로 벌 수 있을 텐데?”
“계약은 급하게 해봤자 좋을 거 없어. 그리고 돈은 나중에 약이 팔리기 시작해야 버는 거지.”
“그래도! 논문에 대한 권리를 넘기면 돈 벌 수 있다던데?”
“…너 어디가서 덥석 계약부터 하지 마라. 절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른 채 눈을 빛내는 이재성을 바라봤다. 물론 아직 고등학생이니 돈에 대한 관심이 많은 건 이해하지만···. 이 연구는 돈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쓴 논문은 여러 연구실에서 검증이 이미 완료된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네이처에서도 곧 정식으로 게재하겠다고 연락이 온 상황.
이 논문이 더 퍼지면 퍼질수록 제약회사들은 달려들겠지. 그때 가장 괜찮은 제안을 하는 회사와 계약을 해도 늦지 않다.
“그럼 넌 어떻게 할 생각인데? 이대로 그냥 둘 거야? 아무하고도 계약을 안 맺고?”
“아니. 이 논문이 제일 가치있어지는 순간에 할 거야. 다들 당장 연구를 시작할 마음이 들게끔.”
나는 이재성을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이재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영악해.”
“영리하다고? 고마워.”
“진짜 싫다.”
배신자, 사대주의자, 이제 영악한 놈까지···. 새로운 별명을 수집하며 이재성과 투닥거리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언제 나오냐고 재촉하는 이인영의 문자였다.
[언제 나와? 얼어죽겠어!] [내가 준 노트 들고 나와. 첫 수업 탄화수소의 구조 파트래.] […이재성 걔는 두고 나오고.]메시지를 다다다 보내는 이인영. 평소라면 한 메시지에 꾹꾹 눌러 담아 보내는데,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불쑥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나는 문득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유기화학 책과 노트를 바라봤다.
[유기화학 요약노트]국제 화학 올림피아드. 2주간의 합숙이 끝나면 바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게 된다.
생물은 자신있지만 과연 화학에서도 금메달을 따올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있을까?
화학 천재인 이인영과 이재성. 이 둘과 나란히 설 수 있을까?
“…고민할 것도 없지.”
나는 웃으며 노트를 챙겼다. 김영재와 이재성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의를 듣기 위해 방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