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97)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97화(97/221)
97. 국가 대표 (3)
97. 국가 대표 (3)
화학 올림피아드 겨울캠프는 여름 때와는 배우는 내용도,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이 캠프가 끝나면 최종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어서일까, 사람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역력했다.
“유기화학 내용 진짜 어렵지 않아?”
“나는 유기화학도 유기화학인데 분석화학 부분도 만만치 않아서···”
“실험은 왜 이렇게 복잡한 거야!”
학생들 사이에서도 걱정이 섞인 목소리가 종종 터져 나오곤 했다. 2주라는 기간 동안 화학이라는 분야를 거의 죽어라 파고들다 보니, 웬만큼 화학을 좋아하는 학생이 아니고서는 따라가기 힘들었다.
‘단순 스펙 쌓기를 위해 온 학생이라든가, 학원에서 주입식 교육으로 외워서 온 학생들의 경우 진도를 따라가기 벅찼겠지.’
하지만 그에 반해 진짜 화학을 좋아하는, 그야말로 화학 덕후인 놈들한테는···.
“사이클로알케인 구조 진짜 신기하지 않아? 고리 모양도 이쁘고.”
“벤젠이 넘사벽이지.”
“아 물론 벤젠도 이쁜데-”
이인영과 이재성은 열심히 대화하고 있었다. 화학에 대해 아는 것이 많고 관심도 많은 둘인 만큼 대화가 잘 통하긴 했지만,
“너희···지금 서로한테 말하는 거 맞지?”
둘은 절대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하지 않았다. 유기화학 책을 빤히 쳐다보던 이인영이 툭 하고 말을 던지면, 이재성이 화학 개별 프린트를 읽으며 대꾸하는 형식이었다.
“벤젠의 공명 구조 발견 안했으면 유기 화합물의 안정성 설명하기 힘들었을거야.”
“퓰러렌은 또 어떻고? 모양도 모양이지만 응용할 수 있는 분야만 해도 넘쳐남.”
“역시 너 뭘 좀 아는···!”
이렇게 비대면 대화를 이어가다가 마음이 통하는 순간, 서로를 바라보곤 했지만···.
“…아는 건 쥐뿔도 없는 주제에.”
“뭐라고 침팬지야?”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곤 했다.
뭐···둘 다 사회성이 부족한 친구들이니 내가 이해하도록 하자. 그렇게 애 둘을 키우는 마음으로 싸움을 중재시켰다. 생각보다 이인영은 이재성의 도발에 잘 걸려들었다.
‘하핰, 뭐야. 그럼 이인영 맨날 이재성한테 발리고 있단 소리네?’
‘발리고 있다긴 보단···그냥 둘이 잘 투닥거려. 이재성이 침팬지라고 놀리면 인영이가 화내고. 뭐 그런 식으로.’
캠프에 있는 동안 이인성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집, 학원, 집만 반복하다 보니 심심해 죽겠다는 그에게 가벼운 일화를 들려주자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정확히는 이인영이 강적을 만나 매일같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근데 이인영 침팬지라고 불려도 그렇게 화 안내. 집에서 돼지, 침팬지 그런거로 놀려도 처음에만 화내고 그다음부터는 그냥 무시하거든.’
‘응? 근데 학교에서 보면 너가 놀릴 때마다 화냈잖아?’
‘그거야, 네 앞이니까 그러지.’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내 말에 이인성은 ‘모르는 게 낫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뭔가 찝찝한 통화였지만 오랜만이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나저나 만덕이 너는 괜찮아? 수업 따라오는 건 어때?”
“괜찮아. 내용도 안 어렵고.”
“어쩔 수 없네! 같이 국가대표 나가야 하니까 내가 특별히 알려줄게!”
“어···진짜 괜찮은데.”
그러나 살짝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이인영이 나를 바라봤다.
“특별히 따로 시간 내서 알려줄 테니까 오늘 수업 마치고 바로 도서관으로 가자.”
“뭐야. 나도 갈래.”
“넌 좀 빠져.”
“어쩔.”
약간 고양이들한테 간택당한 기분이었지만 나쁘지 않았기에 수락했다. 이인영한테 배울 내용은 이미 여러 번 복습까지 마친 상황이라 딱히 궁금한 건 없었지만···.
‘전생에 혼자 은메달을 받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같이 올림피아드 대비를 하며 느꼈던 점이 있다. 이인영은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한다.
학교 시험 때도 그녀는 곧잘 쉬운 문제를 틀리곤 했는데, 그럴 때면 분한 듯이 입을 꾹 닫고 앉아있었다. 그때는 이인성도 놀리지 않았고, 이는 꽤나 오래된 고질병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이인영이 평소에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냐고? 음···뭐 자기가 좋아하는 거 앞에선 특히 그렇지?’
‘좋아하는 거?’
‘엉. 물화생지 중에서도 화학에서 제일 실수가 많고, 또 뭐가 있더라···그래. 예전에 중학생 화학 올림피아드 나갔을 때도 실수해서 만점 못 받았어.’
애초에 만점을 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실수를 해서 만점을 못 받았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백 퍼센트 실력 발휘를 못 한다는 소리니까.
이인영이 살짝 업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대답을 기다리는 그녀를 향해 나는 웃으며 답했다.
“오늘 끝나고 바로 도서관으로 갈게.”
실수를 줄이는, 아니 아예 안 하게 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
화학 올림피아드 캠프가 시작된 지 어느덧 2주 차에 접어들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있을 국가대표 선발전을 대비하고자 도서관에 모였다.
그러나 이재성은 지금 이 상황이 몹시 불편했다.
“무기 정성 분석이 뭐야?”
“샘플에서 화합물이나 특정 원소가 있는지 없는지를 식별해 내는 분석이야.”
“그럼 정량 분석이랑은 뭐가 다른데?”
“어···정량 분석은 물질이 있냐 없냐가 아니라 양을 알아내는 거고.”
“맞아. 잘했어.”
분명 겉으로 보면 이인영이 김만덕한테 알려주려고 온 건데···어째 이상하다.
‘저 새끼 분명 다 아는데 저러고 있다에 내 금메달을 건다.’
아직 국대에 선발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만큼 이재성은 미래의 금메달까지 걸 정도로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김만덕은 모르는 척을 하고 있다. 그것도 일주일 내내.
‘하지만 왜? 굳이?’
이재성이 아는 김만덕은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면서 겸손한 척을 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만덕은 똑똑한, 아니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러나 그의 자존심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았을 뿐. 이재성도 김만덕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재성 본인도 알고 있는 내용을 김만덕이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양이온 정성 분석은 어떻게 해?”
“침전 시약과 반응시키면 돼. 예를 들어 Cl⁻과 반응해서 염화물 침전이 생긴다면 2족 양이온인 거지.”
“으음···2족 양이온이구나. 그런데 2족 양이온에 뭐가 있어?”
“야. 너 이제 당장 다음 주가 국대 선발인데 2족 양이온을 헷갈려하면 어떡해! 진짜 너 나 아니면 큰일 났다, 큰일 났어.”
큰일 났다고 이야기하는 이인영의 표정은 전혀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알려줄 수 있어서 싱글벙글하고 있다. 하지만 그 표정이 차갑게 굳기까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
“2족 양이온에는 Bi3+, Cu2+가 있지.”
“그래. Bi3+, Cu2+가 있···.”
“그리고 걔네랑은 염화물 침전이 안 생기고.”
“…실수야.”
이재성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이인영을 바라봤다. 그녀는 살짝 경직된 표정으로 교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뭐 실수할 수도 있지. 순간적으로 헷갈릴 때 많잖아. 특히 화학 같은 경우에는 복잡하기도 하고.”
“마, 맞아! 순간적으로 헷갈렸던 거야. 실수!”
그렇게 도서관에서 이인영이 김만덕을 가르치는 건지, 김만덕이 이인영을 가르치는 건지 모르겠는 시간이 지났고 이재성과 김만덕은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이재성이 미간을 좁힌 채로 물었다.
“너 침팬지한테 뭐 약점 잡혔냐?”
“약점? 아니?”
“근데 왜 모르는 척하면서 오히려 걔 과외시켜 주고 있는 건데?”
“아. 티 많이 나?”
역시. 이재성은 아까보다 한층 더 구겨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김만덕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냥 다 같이 국가대표 되면 좋잖아.”
“허. 여유가 넘친다? 그러다가 네가 떨어질 수도 있어.”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고.”
김만덕이 웃으며 대꾸했다. 내용과 다르게 표정에서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절대 떨어질 리 없다는 걸 아는 사람만이 내보일 수 있는 여유를 비추며.
이재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처음에는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건가 싶었지만···. 김만덕이 이인영을 대하는 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대체 뭔 생각인지 모르겠네. 국대 떨어져도 울고불고하지 마라.”
“절대. 우리 셋 다 국가대표 해야지. 금메달도 따오고.”
“그리고 넌 하버드 가고.”
“에이, 뭐야. 아직도 삐졌어?”
“삐진 적 없거든?”
김만덕이 웃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재성은 졸지에 삐진 사람이 된 것 같아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았기에 그냥 조용히 있었다.
생각에 잠긴 듯 바닥을 한동안 보던 김만덕이 이재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넌 화학이 왜 좋아?”
“갑자기?”
“아니, 그냥 궁금해서.”
평소 이런 대화는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이재성이 미간을 좁히며 김만덕을 바라봤다. 하지만 딱히 의도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재밌잖아. 이것저것 반응 일으키고 성질 뒤바뀌고 그런 게.”
“그럼 제약 쪽으로는 왜 가고 싶은 건데?”
“…누가 말했냐.”
“너희 형이 말해주시던데?”
“아 진짜···.”
이재성이 화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가 말했던 대로 이런저런 반응들이 재밌어 보여서. 그게 다였다.
하지만 굳이 많은 화학 분야에서 제약을 꼽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제일 부담이 없잖아.”
“어?”
“만약 몸이 아플 때 바로 병원에 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대부분은 약국에서 약 하나 먹고 쉬겠지. 그만큼 약은 병원보다 가까이 있어.”
“음···그래도 병원에 가야만 처방되는 약도 있는걸?”
“그 약도 못 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재성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딱히 엄청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보다 10살이나 많은 형이 감기에 걸려 끙끙대는 와중에도,
‘엄마한테는 절대 말하면 안 돼. 걱정하시니까.’
라고 말하며 감기약을 욱여 먹던 모습이 그저 뇌리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이재성은 ‘약이 좀 더 좋으면 나으려나.’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시작이었고, 우연히 알게 된 제약 산업도 이재성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신약을 만들면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는 것도 한몫했고.
“너가 치매 치료를 완전히 치료하는 게 꿈이라면, 나는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치매 치료가 되는 약을 만드는 게 목표야.”
“수술하지 않고?”
“수술은 위험하니까. 치매 환자들이라면 노인들이 대부분일 거고.”
이재성은 말을 하다 멈췄다. 잠시 생각을 고르던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내 목표야.”
간결한 목표. 비록 둘의 방법은 달랐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건 같았다.
치매라는 병을 치료하는 것.
이재성의 말을 들은 김만덕이 씩 웃었다. 어쩐지 홀가분해보이는 그 표정. 이재성은 그 표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 미간을 구겼다.
“뭔데? 기분 나쁘게.”
“그냥. 넌 걱정이 안되네.”
“뭐?”
“너 금메달 딸 것 같다고.”
“갑자기 뭔 소리야.”
그만큼 믿음직하다는거지-라며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김만덕. 하지만 비로소 그는 한시름 던 표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리송한 말들이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호 시간이 다가왔다.
취침 준비를 마치고 “불끈다.”라는 말과 함께 방 안이 어두워졌다. 거의 바로 칼취침에 드는 김만덕과 다르게 이재성은 천장을 바라보다가,
‘…셋 다 금메달 따면 좋겠네.’
라고 생각하다 잠에 들었다.
*
“지금부터 화학 올림피아드 국가대표 선발식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 강의실 앞에 걸려있던 플랜카드가 ‘국제 화학 올림피아드 국가대표 선발식’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긴장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있는 학생들 앞으로 한 교수가 걸어 나왔다. 오리엔테이션과 수업 때 만났던 성준한 교수였다.
“다들 많이 긴장한 것 같군요. 오전에는 강의를 들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선발 평가 시험 치러지고 오후에는 실험 평가가 진행됩니다.”
오전과 오후 모두 시험으로 꽉 차 있는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애초에 모두 다 이 시험을 목적으로 온 거였으니까.
물론 생물 캠프 때와 마찬가지로 이수증만 받고 끝내려는 학생들도 더러 보이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임했다.
그만큼 국가대표 자리는 엘리트들이 탐내는 자리였다.
“모든 실험이 끝나고 나면 올림피아드 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수료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부디 모두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성준한 교수의 말이 끝나고, 조교들이 분주히 시험지를 나누기 시작했다.
국가대표 선발 시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