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bullying and become a genius RAW novel - Chapter (99)
왕따 그만두고 천재합니다-99화(99/221)
99. 괴짜들 (1)
99. 괴짜들 (1)
“Welcome!”
환하게 웃는 남자. 흰 머리가 인상적이었지만 풍채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그의 나이를 더욱 짐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박성민의 뒤에서 잔뜩 경계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씩 웃었고, 이내 박성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한동안 머물 곳이 필요하다고요?”
“네. 갑작스러운 부탁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작스럽다뇨, 하하. 어떻게 보면···.”
남자는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뭔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있는데 또 눈은 정민상이랑 비슷하다.
박성민의 말을 미루어봤을 때 분명 나를 알고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는 외국인은 앤드류 부커 교수, 그 수학자밖에 없다.
남자는 우리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떨떠름한 모습으로 들어가자 높은 천장의 내부가 우리를 맞이했다. 화목해 보이는 가족사진 너머로 집 안도 잘 꾸며져 있었다.
“편하게 있으면 됩니다. 학생이 사용할 방은 조금 있다가 안내해 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오는 길에 피곤하진 않았나요? 커피라도 한 잔?”
“괜찮습니다. 그보다···.”
과한 친절에 나는 박성민을 바라봤다. 그러나 박성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고.
결국 추리하는 걸 포기한 나는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아직 내 소개를 안 하고 있었군요.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집을 빌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한국식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듯 남자는 잠시 눈을 끔뻑이며 상황을 지켜보더니, 이내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하하! 이게 바로 한국의 예의범절이라는 건가요? 말로만 듣다가 실제로 보니 신기하군요.”
“한국에서는 인사를 할 때도 보통 고개를 숙이거나 몸 전체를 숙이곤 합니다.”
“오, 그러고 보니 성민 당신도 한국 사람이었지요?”
남자는 박성민과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동양과 서양의 문화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다가 나를 바라봤다.
“이런, 손님을 불러다가 뻘쭘하게 만들었군요. 제 소개를 하면 저는 하버드대에서 분자세포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는 크리스 에반이라고 합니다.”
“…잠깐만요. 크리스 에반이라면···.”
“맞습니다. 만덕 학생을 미국으로 부른 장본인이기도 하지요.”
아니. 잠깐만. 나는 놀란 눈으로 박성민을 바라봤다. 그는 그제서야 이빨을 드러낸 채로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하하···잠시만요. 잠깐 이야기 좀···.”
나는 눈앞의 하버드대 교수, 크리스를 향해 사회생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옆에 있는 박성민을 잡아 당겼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선생님.”
“왜 갑자기 선생님이라 하는 건데. 나 좀 무서워지려고 해.”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박성민을 바라봤다.
갑자기 하버드대 교수? 그것도 원래라면 이번 일정 중 하버드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그 교수였다.
아카이브에 논문을 올리고 난 뒤, 여러 대학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일부는 논문이 사실인지 물어보는 글들이었고 그중에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는 요청도 담겨있었다.
‘어차피 이번에 미국 오는 김에 만나기로 한 거긴 하다만···’
이번 미국 여행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하버드대 탐방. 앞으로 지내게 될 곳인 만큼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미리 체험해 보는 것도 중요했다.
실제로 무작정 해외로 유학을 떠난 학생 중 일부는 적응을 하지 못해 우울증을 겪는다고 하니까. 가뜩이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내가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설명할 게 뭐 있어. 네가 받은 메일 중에 나도 아는 사람이 섞여 있던 거지 뭐. 어차피 둘이 만나기로 약속 잡았었다며?”
“아니 그래도 잠깐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거랑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거랑은 다르죠!”
“뭐야, 지금 하버드대 교수 앞이라고 긴장하는 거야? 내 앞에서는 한 번도 긴장 안 했으면서?”
“하버드대 교수라 긴장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박성민이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이 사람이 이런 일을 저질러놓고 본인은 태연하게 말장난을 하려는 저 심보가 몹시도 고약하다.
···영(young)하다 못해 유치하다. 이제 선생님이라 부르나 봐라.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만,”
그때, 크리스 에반이 대화를 끊으며 말을 걸어왔다. 갑작스러운 흐름에 그를 바라보니 그의 손에는 종이 한 부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이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말이지요. 사실 김만덕 학생이 온다고 해서 어제부터 잠도 못 자고 밤을 새웠지 뭡니까. 이번에 논문 관련해서 궁금한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흰머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초롱초롱해졌다. 환한 얼굴로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는 말 그대로 무아지경에 빠져있었다. 교수라는 직급에 맞게 그는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 있어서도 심도 깊은 대화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벙찐 모습으로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박성민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치며 말했다.
“완전 네 팬이신 것 같은데?”
“…팬은 무슨. 그냥 논문에 관심이 생기신 거겠죠.”
내 말에 박성민은 “과연?”이라며 애매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바라봤다가 고개를 돌려 크리스를 바라봤다.
‘그래, 궁금한 게 있어봤자 얼마나 궁금하겠어. 어차피 만나서 이야기할 거였으니까.’
이렇게 된 거 논문과 관련해 궁금한 부분들을 지금 설명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렇게 크리스와 논문과 관련해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치매, 혈뇌 장벽, 베타-아밀로이드 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갔고, 크리스 에반이 가르치고 있는 분자세포생물학과 연관지어 결과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날 새벽 2시가 될 때까지 나는 방 안내를 받지 못했다.
*
“으아으···”
“일어났니? 시차 적응때문에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지?”
아침에 여유롭게 기상한 후,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는 박성민. 그의 머리에는 까치집이 생겨있었지만 묘하게 여유로운 모습이···.
좀 짜증 났다.
“아니 어제 그렇게 이야기할 때 좀 말려주시지···!”
“엥? 너도 치매 관련해서 이야기하니까 완전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펄펄 뛰어다녀 놓고는?”
“그야 치매 이야기가 나오면 거의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건 맞지만-!”
어제 밤 새벽까지 이어진 대화는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치매로 이야기하다가 조금 사그라들라 하면 박성민이 “근데 크리스 교수님, 이번에 줄기세포 관련해서 사이언스에 논문 올리셨던데요?”라며 화두를 던졌고,
줄기세포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 온 나에게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했다.
‘손상된 뇌세포를 복구하는 건 이미 많은 과학자가 시도했지만 실패한 부분이지요.’
‘그래서 더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복구가 가능해진다고 해도 윤리적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을 텐데요?’
‘배아줄기세포말고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처음 시작은 아카이브에 올린 논문, 아밀로잽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지만, 점점 주제는 확대되어갔다. 결국 줄기세포 분야까지 넘어온 우리는 새벽이 되어서도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도 혼자 들어가서 자는 게 어딨어요!”
“아 몰라. 피곤해서 그랬다, 피곤해서! 어? 그 먼 한국에서 온다고 해서 차 끌고 픽업해 줘, 어? 머물 곳도 찾아서 대령해 줘, 이 정도면 진짜 참스승 아니냐?”
따지고 보면 박성민은 거의 자원봉사수준으로 나를 도와주고 있는 거긴 했다. 단지 특별반의 좀 유별났던 학생으로 그칠 수 있었던 나를 연구실에서 실험할 수 있게 해준 것도, 김성진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줬던 것도.
다 박성민 덕이 컸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으, 뭐야, 갑자기. 선생님이라 부르지마! 징그러우니까.”
“아니, 전에는 선생님이라고 불러달라면서요.”
“진지하게 부르니까 소름 돋아서 싫어. 그냥 편하게 불러. 성민이 형은 어때.”
“그러기엔 나이 차가···”
나이 이야기가 나오자 묘하게 표정이 꽁해진 박성민이었다. 그렇게 아침에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난 후, 박성민은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 소란을 듣고 깬 걸까, 크리스 교수도 비몽사몽한 상태로 거실로 나왔다.
“오, 다들 일어나 있었군요.”
“아무래도 일하러 갈 시간이 가까워져서 말이죠.”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크리스와 박성민은 이미 몇 차례의 연구를 같이 진행한 적이 있었다. 세계적인 뇌과학 연구소인 앨런에서 일하는 박성민은 각국 석학의 교수들과 함께 연구할 기회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뇌질환 발병과 관련된 연구에 있어 떠오르는 강자, 크리스 에반 교수와도 인연이 깊은 상태였다.
“그럼 만덕아, 앞으로 잘 지내라. 다음엔 한국에서 보자.”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잘 챙겨준 사람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이렇게 헤어진다는 게 좀 아쉽긴 했지만···. 박성민이랑 만날 날은 앞으로도 많을 테니까.
‘당장 9월만 되어도 하버드대에 있을 테니까, 그때 또 만나면 돼.’
아쉬운 마음을 애써 묻어가며 박성민을 배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 교수도 옷을 갖춰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종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오늘 연구실에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저녁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여분 키는 테이블 위에 올려놨어요.”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하버드대 견학은 내일 저와 함께하도록 합시다. 아무래도 교수와 동행하는 편이 더 수월할 거니까요.”
‘시차 적응 하랴, 어제 밤 늦게까지 이야기하랴, 피곤했을 텐데 오늘은 좀 쉬어라.’라는 말을 남기고 크리스는 밖으로 나갔다.
크리스의 말마따나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기에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이동했다. 어제까지는 버틸 수 있었지만···. 오늘은 진짜 쉬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고 나는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을 내리 잠들었을까,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나는 불현듯 눈을 떴다.
부스럭, 부스럭. 큰 소리는 아니지만 분명히 다른 누군가가 뭔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크리스 교수가 돌아온 건가 싶어 시계를 확인했지만, 아직 저녁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아있었다.
‘…잠깐. 나 현관문을 잠갔던가?’
아까 분명 크리스를 배웅해 주고, 피곤해서 바로 방으로 들어왔던···. 그 순간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도둑. 도둑이다. 아니, 미국 도시 한복판에서 도둑이 들어온다고? 그것도 이런 대낮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땀 때문에 손이 흥건해졌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문밖에서 도둑은 내 존재를 모르고 있는지 여전히 뭔가를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아니지, 지금 내가 이럴 게 아니고 경찰에 전화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적어도 크리스 교수한테 이 일을 알려야 하는···’
벌컥!
그 순간 방문이 열렸다.
“…What the···”
햄버거가 툭 떨어졌다. 노란 머리의 남자는 들고 있던 햄버거를 손에서 놓친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화롭게 점심을 먹으려다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난 모습이었다.
그는 빠르게 나를 위아래로 스캔했다.
땀에 젖은 머리. 누가봐도 긴장한 듯한 얼굴. 흔들리는 동공.
누가 본다면 도둑이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What the hell, who the hell are you? (시X, 너 누구야?)”
“아니 잠깐만, 진정하고,”
“…wait, Korean? (한국인?)”
“Wait a sec, keep it down. (잠깐만, 진정해.)”
“Keep it down? who the hell are you? Shit, I’m calling the police! (진정? 너 누구냐고, 젠장, 경찰 부른다!)”
“No, no, no, no! (멈춰!)”
당장이라도 경찰을 부를 것 같은 심각한 상황 속, 나는 양손을 들어보인 채로 이 상황을 설명해야만 했다.
남자는 이미 몸을 뒤로 빼고 핸드폰을 꺼내든 상황이었다. 눈으로는 빠르게 무기로 쓸만한 도구를 찾고 있는 듯 했다. 1분 1초가 긴장감 넘치는 가운데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리스 에반!”
“뭐?”
“크리스 에반 교수님 손님으로 온 거야. 진짜라고.”
남자의 표정에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했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내 목소리에 조금 주춤한 듯했다.
“아버지 손님이라고? 네가 뭔데?”
“어···학생인데.”
“아버지 손님이 왜 내 방에서 자고 있는 건데?”
남자는 교수의 아들인 것 같았다. 의심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긴 했지만 적어도 도둑으로 의심받지는 않는 것 같았다.
지금 내 소개를 하지 않으면 영영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이름은 김만덕이고, 이번에 논문 쓴거 관련해서 크리스 교수님이랑 이야기하려고 여기 왔어.”
“…김만덕?”
“못 믿겠다면 내가 쓴 논문 보여줄 테니까-”
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책상 위에는 내가 쓴 논문이 놓여있었다. 빠르게 논문을 집어 남자에게 건넸지만, 그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불현듯 위화감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내 논문을 프린트해 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고,
이 책상은 내 책상이 아니었다.
‘어···크리스 교수가 논문을 여기에 둔 건가? 하지만 그때 분명 논문을 다시 들고 갔는…’
인지부조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사뭇 달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구나. 미친놈.”
에. 나에 대한 소문이 생각보다 이상하게 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