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05)
-인간이여. 목함을 열어라. 그리한다면 시해를 다스리는 본좌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도록 하마.
‘!?’
목함에서 나온 그 목소리에 목경운이 피식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너무 대놓고 약을 파시네요.”
-······.
이것은 현혹이었다.
대놓고 목함을 열어달라는 말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청령이 기가 찬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제 몸도 고사하지 못하는 것이 무슨 소원을 들어준다는 게냐.
“그 말에 동의하네요. 한데 뭘까요?”
-아무래도 요물(妖物)을 봉해놓은 듯하구나. 한데, 봉해진 상태로 목소리가 들리다니. 이런 경우는 본좌도 처음 보는구나.
그녀는 백 년을 원혼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이 목함에 있는 요사스러운 것처럼 봉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원래 봉해지고 나면 기운이나 모든 것이 막히기에 안과 밖이 차단되기 마련이다.
한데 이것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아아. 균열이 가 있네요.”
-균열?
목경운이 가리킨 목함의 윗부분에 일부 금이 가 있었다.
-그렇구나. 그런데 이 목함···.
“부적 같은 것이 없는 게 이상하군요.”
-너도 알아차렸구나.
기이한 일이었다.
청령의 말대로 목함에는 어떠한 부적이나 요기를 봉하는 무언가가 없었다.
하면 대체 무슨 수로 이 불길한 존재가 이 목함에 갇혀 있는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빌어먹을. 본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웬 행운인가 했더니 부적을 운운하는 걸로 보아 도술을 익힌 도인인가 보구나.
“도인? 그게 무슨 소리죠?”
-아닌 척 시치미 떼지 말거라. 본좌가 속을 것 같으냐?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방술을 배우고 있는 방사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만.”
-방사? 아아. 지난번에 왔던 그 도복을 입은 인간과 같은 족속인가 보구나.
‘같은 족속?’
이야기를 하는 투를 봐선 누가 왔었나 보다.
하긴 방술을 익힌 방사가 이렇게 불길한 요기를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붉은 선도 방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수법이다.
목경운이 이에 물었다.
“누가 왔었나요?”
-왔었지. 삼안(三眼)을 가진 불길한 놈이었다. 상고 시대 이후로 사라졌다던 그 눈을 가진 녀석은 처음 봤다.
“삼안? 그게 뭐죠? 청령은 아나요?”
-본좌라고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아는 것 같으냐?
청령의 그 말에 목경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삼안(三眼)을 그대로 풀어서 말하면 눈이 세 개가 있다는 소리다.
그런 기형의 존재가 이곳에 왔었다고?
의아해하는데 목함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고 시대의 일을 어찌 너희 같은 잡귀와 하찮은 인간이 알겠느냐.
-······아까부터 잡귀, 잡귀 하는데 요물아.
“잠깐만요.”
-뭐?
목경운이 그녀의 화를 제지하며 말했다.
“그래서 삼안이라는 게 대체 뭐죠?”
-말 그대로다. 세눈박이지. 그것은 인간의 태 속에서 탄생하는 이형의 기물. 그것이 태어나면 망조가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망조?”
-한데 참 재미있구나. 상고 시대만 하더라도 삼안은 태어나봤자 하루도 버티질 못하고 죽임을 당할 터인데 말이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에 목경운은 정리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삼안을 가진 도복의 방사가 당신을 이곳에 뒀다는 건가요?”
-그래. 그놈이 무슨 짓거리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다녀간 후로 누구도 본좌를 인식하지 못했다.
“인식하지 못했다는 건···.”
-애초에 없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없는 것처럼?”
이런 목함에서 흘러나온 말에 청령이 강하게 부정했다.
-그럴 리가. 아무리 세월이 흘러 인간의 방술이 강해졌다고는 하나, 인식을 없앤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호오. 잡귀 주제에 별걸 다 아는구나.
-잡귀? 아까부터 이 망할 요물이!
-두드드득!
청령을 봉하고 있던 목각인형에 금이 갔다.
당장에라도 빠져나와 목함을 그대로 박살낼 기세였다.
이에 목경운이 그녀를 만류했다.
“청령. 참으세요.”
-중생 너 같으면···.
“계속 이러는 것보다 일단 제 것으로 만들면 만사형통하지 않을까요?”
-네 것? 호오.
이런 목경운의 속삭임에 청령이 구미가 당긴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표현은 결국 식신으로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미였다.
격이 높은 원혼마저 식신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목경운이다.
목함에 가둬져서 힘이 줄어든 이매망량이라면 충분히 식신으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녀석의 가능성은 고독을 흡수하는 걸로 확인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조심해라. 봉인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서 요기를 줄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럴 생각이에요.”
목경운도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다.
요기(妖氣)의 경우 응축된 사기와 마찬가지라 흡수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는데 목함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인간.
“네.”
-여기에 갇혀 있어서 네 눈에는 본좌가 가볍게 보이나 본데. 본좌는 시해를 다스리는 주인이다.
“그래서요.”
-본좌를 이곳에서 빼주기만 한다면 네가 원하는 소원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아까 할아버지라고 했느냐?
“······.”
-그 할아버지가 보고 싶지 않느냐?
이 목소리에 목경운의 눈매가 방금 전과 달리 날카로워졌다.
다른 장난질도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할아버지를 건드리는 것은 정말 달갑지 않은 그였다.
이에 목경운이 대답하지 않고서 목함에 다가갔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옳지. 목함을 부숴다오.
“그러려고요. 아. 물론 그 전에···.”
-슥!
목경운이 목함의 균열이 간 부분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그리고 이내 속으로 착(着)의 식(式)을 외웠다.
그러자 균열에서 흘러나오던 불길한 요기(妖氣)가 이내 목경운의 손바닥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우우!
-!?
이를 느꼈는지 목소리가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인간······ 너 지금 무슨 짓을······.
“오래 갇혀 있는데도 기운이 상당하시네요. 좀 나눠주시죠.”
-멈춰!
“늦었어요.”
그 말과 함께 목경운은 흘러나오는 요기를 그대로 흡수해나갔다.
상당히 방대한 양에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많아.’
예상보다 기운이 훨씬 많았다.
균열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기운이 이 정도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조금만 흡수했는데 벌써 사기 스무 명분에 이르는 기운을 흡수했다.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이매망량이기에 갇혀 있는데도 이렇게 강한 요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머··· 멈춰라. 이놈 하찮은 인간 따위가 본좌의 기운을···.
“다 돼가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균열의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기운은 거의 다 흡수되어간다.
거의 오십여 명에 이르는 사기에 육박하는 요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육인강령술로 생시귀를 만들어내면서 소요한 사기와 필요한 부분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운이 좋은 것 같다.
-슈우우우욱!
이윽고 더는 요기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걸로 보아서 갇혀 있는 녀석의 기운을 대부분 흡수한 듯했다.
-이노오오옴······.
녀석의 목소리를 들으니 힘이 상당히 빠졌다.
화를 낼 기운도 없는 모양이었다.
-약해진 것 같다. 이제 식신으로 삼아라.
“네.”
목경운이 이내 목함의 균열이 간 부분을 향해 검결지를 쥔 손을 가져갔다.
-스스스!
검결지를 쥔 손의 주위로 공기가 일렁였다.
예기를 일으킨 것이었다.
단순한 목함으로 보이지 않으니 예기로 이것을 베어내려는 것이었다.
목경운이 목함을 향해 예기가 실린 검결지를 갖다대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앙!
“헛!”
강한 반탄력과 함께 목경운의 신형이 이내 뒤로 다섯 보 가까이 밀려났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청령도 놀랐는지 물었다.
목경운이 검결지를 쥔 자신의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손가락은 무사했는데, 목함을 예기로 찌르는 순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밀려나고 말았다.
‘뭐지?’
분명 목함의 균열에서 흘러나오던 요기는 전부 흡수했다.
한데 이게 무슨 영문이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령목(聖靈木)으로 만든 나무가 그리 쉽게 부서질 것 같으냐?
“성령목?”
-그것도 모르는 걸 보아하니 선인들은 더 이상 내세에 남아 있지 않나보구나.
“선인들? 무슨 말씀을 하는 거죠?”
-모르면 됐다. 그보다 성령목을 부수는 방법에 대해 알···.
-쩌저저저적!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목소리가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목함의 균열된 부근이 갈라졌다.
-아니?
-파스스스스!
그러더니 이윽고 갈라진 부근을 중심으로 목함이 썩어들어가더니 이내 그것은 재처럼 흩어져 내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었는데 기이한 일이었다.
이에 목경운이 자신의 검결지를 쳐다보았다.
‘사기 때문인가?’
그의 예기는 평범한 내공이 아니라 죽음의 기운 그 자체인 사기로 형성되었다.
사기는 양생의 기운과 반대되기에 그것을 흩어지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그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균열이 나 있었던 것에 힘이 더해져서 부서진 것인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긴 힘들었다.
하나 어찌 되었든 목함은 부서졌다.
-저거 족자 아니냐?
“그런 것 같네요.”
목함의 부서진 잿가루 속에 파묻혀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돌돌 말려져 있는 족자였다.
이에 목경운이 다가가 그것을 주웠다.
상당히 낡은 족자였는데 길이가 꽤 되는 걸로 보아서 안에 시문이나 그림 같은 것이 그려져 있을 듯했다.
-족자를··· 족자를 펴다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더니 족자를 잡은 손으로 이내 착의 식을 외우며 그것을 입안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지금 뭘 하려는 것이냐?
“먹으려고요.”
-뭐?
요물의 장단에 맞춰줄 생각은 없었다.
이 족자가 이매망량과 관련된 본체라면 먹어서 식신으로 삼을 작정이었다.
그렇게 입으로 족자의 끝부분을 집어넣으려던 순간이었다.
-고얀 것!
-파치치치칙!
그 순간 족자에서 푸른 불꽃이 번개처럼 튀어올랐다.
그와 함께 족자가 목경운의 손에서 튕겨나가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더니 이내 저 홀로 펴지기 시작했다.
-잡아!
-팟!
목경운이 화상을 입은 손으로 족자를 향해 뻗고서 착의 식을 펼쳤다.
당연히 끌려올 거라 했는데 그것이 공중에서 버텼다.
하더니 이내 완전히 펴진 족자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
이를 바라보는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족자 안에는 한 폭의 산수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마치 무릉도원을 보는 것처럼 그것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기세가 좋은 산봉우리에 안개가 자욱했고 그곳에 꽃이 달린 나무들이 수를 놓았다.
‘아름답다.’
한데 거기서 유일하게 거슬리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한 폭의 산수화 한가운데의 봉우리 위로 한 백발의 중년인이 정좌를 하고서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필 왜 여기에 사람을 그려 넣은···.’
그 순간이었다.
-팍!
그림 속의 백발의 중년인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러더니,
-쑤욱!
그림 속으로 안개를 밟고서 그 안에서 걸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
-오싹!
그것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목경운은 난생처음으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고오오오오오!
백발의 중년인이 그림을 투과하여 나온 순간 엄청난 요기(妖氣)가 풍겨져 나오는데, 그것은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의 기운들이 하나로 집결한 것처럼 보였다.
-말도 안 돼.
청령이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여태껏 어떠한 이매망량이나 원혼이 나타나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흔들리는 기색이 없던 그녀였다.
한데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영수(靈獸) 급의 이매망량이?
‘영수?’
산해경에서는 이렇게 저술한다.
세상에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수많은 이매망량이 존재한다.
그런 이매망량들 중에서도 인간뿐만이 아니라 그것들조차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고차원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아득히 오랜 세월을 장수해온 영수(靈獸)이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