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06)
산해경(山海經)에서 이르길.
천지에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수많은 이매망량이 존재한다.
그런 이매망량들 중에서도 인간뿐만이 아니라 그것들조차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고차원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아득히 오랜 세월을 장수해온 영수(靈獸)이다.
‘영수?’
백발의 중년인을 쳐다보는 목경운의 눈동자에 이채가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수라고 한다면 신화 속에 나오는 신수를 제외한다면 이매망량의 체계에 있어서 전설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한데 이 모습은 대체 뭐지?
겉보기에는 영수가 아니라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중생, 싸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청령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긴장되다 못해 경직된 말투.
항상 오만하고 위압적인 모습만 보이던 그녀가 눈앞의 존재를 보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힘을 전부 흡수한 게 아니었나.’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목함의 균열에서 나오는 불길한 요기를 전부 흡수했기에 약해진 상태라 여겼다.
그런데 이 정도로 엄청난 요기를 발산하다니.
그때 백발의 중년인이 도도하게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입을 열었다.
-떨고 있느냐? 인간.
“글쎄요.”
떨진 않는다.
애초에 죽음이라는 것에 큰 의의를 두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목경운이다.
하나 확연한 힘의 차이로 인한 긴장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봉인되어 있던 것치고 힘이 넘치시네요.”
-힘이 넘쳐? 풋.
백발의 중년인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자신의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펴며 말했다.
-수천 년 동안 이 족자 안에 봉해져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고 하나 너희 같은 하찮은 벌레들이 범접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벌레?’
목경운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하나 딱히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눈앞의 존재가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고작 벌레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현실을 파악한 것뿐이었다.
‘이 자에게 나는 벌레 수준에 불과하군.’
부정하기 힘들다.
이 자가 풍기는 요기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는 것일까?
이게 약해진 상태라면 이 괴물이 모든 힘을 회복한다면 얼마나 강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니 이것은 재앙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바로 그때였다.
-슥!
백발의 중년인이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팍!
목경운의 가슴 옷자락을 찢고서 두 개의 목각인형이 튀어나왔다.
‘앗?’
이에 목경운이 황급히 손을 뻗어서 착의 식을 펼쳤다.
그러나 압도적인 요기로 끌어당기는 힘에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착의 식을 펼쳤는데도 조금도 멈추지 않고서 날아간 목각인형 두 개는 그대로 백발의 중년인의 손에 안착했다.
-주, 주인님!
-큭.
그 안에는 녹령 규소하와 청령이 있었다.
목각인형 안에 있음에도 얼마나 요기가 강한지 녹령 역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에 목경운이 침착하게 말했다.
“곤란하게 만드시네요. 돌려주실 수 있을까요?”
-흐음. 특이한 인간이구나. 살아있는 놈이 이런 잡귀들을 데리고 다니는 걸 보니.
-······.
-······.
평소라면 노발대발할 만도 한데 청령이 입을 열지 않았다.
아마도 괜히 놈을 자극했다가 어떤 사달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신중해진 듯했다.
청령은 이 상황이 굉장히 난처했다.
‘최악이다.’
죽어서 영체가 되어 힘을 소모한다는 개념과는 다소 다른 원혼과 달리 이매망량은 요기(妖氣)를 소모하게 되면 급격히 약화된다.
그런 측면에서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었다면 굉장히 약해져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설마 이런 목함에 봉인된 것이 영수일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떻게 하지?’
인간이 형태로 변이마저 할 수 있을 정도의 고차원에 이른 영수라면 거의 득도한 선인과 비슷한 영역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자신조차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한참 초월했다.
‘끝인가······.’
그녀는 절망의 감정을 느꼈다.
운이 없어도 이런 식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
기껏 원한을 달랠 수 있는 기회를 겨우 잡았다고 여겼는데, 하필 이런 곳에서 재난과도 같은 존재를 만나다니.
‘목경운······.’
평소라면 녀석의 영악한 머리에 기대를 해봤을 것이다.
하나 상대가 너무 안 좋다.
인간이 아닌 존재였고 너무도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에 어지간한 말주변으로는 이 상황을 넘어가기 힘들었다.
어쩌면 녀석도 난생처음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처음 만나는 절대적인 존재에게 말이다.
바로 그때였다.
-마침 배고팠는데 식사 거리를 가져다줘서 고맙군.
“네?”
-아아.
그 말과 함께 백발의 중년인이 그대로 청령과 규소하가 봉해져 있는 목각인형에 그대로 입에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가가각!
그의 입으로 들어가던 목각인형이 부서지며 이내 청령이 그 안에서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오며 규소하의 목각인형을 쥐고서 앞으로 날았다.
그러나,
-팍!
-잡귀 주제에 영력이 제법이구나.
청령의 다리를 백발의 중년인이 붙잡더니 이내 그녀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물리적인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그녀였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바닥에 패대기가 쳐지자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흘렸다.
-으윽!
-본좌는 시해의 주인. 망념이 모여서 탄생한 존재이니라. 너희들의 주인을 위해 그 영력을 갖다 바치거라. 후읍.
-솨아아아아아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청령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며 백발 중년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가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악!
바로 그때였다.
-팍!
목경운이 신형을 날리며 이내 백발의 중년인의 미간을 향해 예기가 실린 검결지를 찔러들어갔다.
방심하는 틈을 노리려고 한 것이었는데,
-팍!
그 순간 백발의 중년인이 목경운의 오른팔 손목을 가볍게 낚아챘다.
그러더니 위로 가볍게 들어올리는 시늉을 했는데,
-쾅!
목경운의 몸이 동굴 천장을 반 장 가까이 파고들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쿵!
“쿨럭쿨럭!”
바닥에 떨어진 목경운의 입에서 피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사기로 몸을 보호했으나 방금 전의 일격으로 일부 뼈에 금이 가고 내상을 입고 말았다.
-중생!
“쿨럭··· 쿨럭··· 이거 제대로 잘못··· 쿨럭······ 걸렸네요.”
목경운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그를 내려다보며 백발 중년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특이한 인간이로구나.
고통을 느끼면서도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에 의아함을 느낀 것이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이런 상황에 처해지면 두려움으로 공포에 질릴 만도 한데, 이 녀석의 얼굴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이에 백발의 중년인이 고갯짓으로 들어올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둥둥!
바닥에 엎어져 있던 목경운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
목경운의 두 눈에는 정확하게 보였다.
백발의 중년인에게서 흘러나온 엄청난 요기가 자신을 감싸고 들어올리고 있는 것이 말이다.
-인간. 네 얼굴에 공포심이 번지는 걸 보고 싶구나.
백발의 중년인이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목경운의 어깨에 손을 가져가려 했다.
-촤르르르르르르!
바로 그때였다.
바닥에서 영력으로 만들어진 쇠사슬이 튀어나와 백발의 중년인의 팔다리와 몸을 순식간에 구속시켜버렸다.
쇠사슬은 뱀처럼 움직이며 중년인의 목을 감쌌다.
‘규소하?’
이것은 녹령 규소하의 힘이었다.
규소하가 소리쳤다.
-주인님을 놔줘! 안 그러면···.
-파스스스스스!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백발 중년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쇠사슬이 한순간에 박살이 나며 재처럼 흩날렸다.
-!?
허무하리만큼 너무도 쉽게 부숴진 영체의 쇠사슬.
규소하의 눈동자가 미친듯이 흔들렸다.
-잔재주가 있는 잡귀로구나. 한데 본좌의 옥체를 건드린 대가는 치러야겠지.
-슥! 탁!
백발의 중년인이 규소하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파팡!
규소하의 양팔이 그대로 터지며 사라져버렸다.
영체로 이루어진 팔이 요기에 의해 터져버리자 규소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고통에 휩싸인 듯 했다.
‘이건······.’
영기를 흡수당해 힘겹게 바닥에 엎어져 있던 청령은 기가 질렸다.
아무리 영수라지만 이게 정말 봉인 당했다가 막 풀려난 것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너무 압도적으로 강했다.
놈의 말대로 자신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벌레가 날갯짓을 하는 수준일지도 몰랐다.
‘······그걸 쓰더라도 가망이 있을까?’
하나 이대로라면 전부 죽게 생겼다.
그럴 바에야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는 게···.
그러고 있던 차였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이 작은 공동의 바깥이었다.
붉은 선 밖에 보고지기 양무원 단주가 놀란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그는 동굴 안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광경에 두 눈을 의심했다.
‘저 백발의 중년인은 대체?’
그렇지 않아도 굉음 소리에 놀라서 뛰어 올라온 그였다.
소리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그곳이었다.
그렇게 들어가지 말라고 누차 경고를 했는데 결국 사고를 쳤구나 싶어서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저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상을 입은 목경운이 공중에 떠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허공섭물이었다.
저 정도 고위 수법을 펼칠 수 있는 자는 천지회 내에서도 오왕 급 이상이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양무원은 이를 어찌해야 할지 당혹스러워졌다.
저 정도 절세고수가 어떻게 이곳에 침입해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 계속 너도 먹고 싶었다.
-슥!
백발의 중년인이 양무원 단주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순간 놀란 양무원 단주가 진기를 끌어올리며 기수식을 취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하고 있는데 백발의 중년인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바닥에 그어져 있는 붉은 선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삼안 놈이 해놓은 것인가.
그 말과 함께 목경운을 그대로 공중에 방치한 채 붉은 선을 향해 걸어갔다.
“머, 멈추시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본 양무원 단주가 소리쳤다.
당연히 백발의 중년인은 멈출 리가 없었다.
백발의 중년인이 계속 걸어가며 그대로 바닥에 그어진 붉은 선을 통과하려고 했다.
그 순간,
-파아아아아아앙!
강한 압력과 함께 공간이 휘어지더니 이내 백발의 중년인의 몸이 뒤로 튕겨나가 안쪽에 있던 책장을 부수고 말았다.
-콰앙!
그러더니 이내 공중에 구속되어있는 목경운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탁!
‘뭐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청령이 영수라고 부르던 백발의 중년인이 붉은 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렇다면,
“나가요!”
지금이 기회였다.
그 외침에 기다렸다는 듯이 청령과 두 팔이 터져나간 규소하가 밖으로 몸을 날렸다.
영체인 그들의 움직임은 목경운보다도 훨씬 빨랐다.
혹시 붉은 선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파악!
두 원혼들은 그 선을 무리 없이 통과했다.
그렇게 목경운도 경공을 펼치며 선을 통과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아악!
바로 코앞에서 목경운의 몸이 멈춰졌다.
-중생!
청령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큭.’
목경운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부서져서 쓰러진 책장 사이로 백발의 중년인이 손을 내민 채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어딜 가려고 하느냐?
“하아··· 하아··· 참 난감하신 분이네요.”
-난감한 것은 본좌다. 선인도 아닌 망조의 징조가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백발의 중년인이 붉은 선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봉인에서 풀려난 자신이 저것을 통과하지 못하고 튕겨나간 것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중생!
그때 붉은 선 밖에서 청령이 머뭇거리다 이내 안으로 손을 뻗으려는 게 보였다.
이에 목경운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선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자신처럼 붙들리게 된다.
그러고 있는데 백발의 중년인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상황 판단이 좋구나. 조금만 늦었으면 저 잡귀를 먹어치웠을 텐데 말이야.
그 말에 손을 뻗던 것을 멈췄던 청령이 흠칫했다.
목경운의 판단이 옳았다.
자신이 손을 뻗는 순간 놈은 자신을 저 안으로 끌어들였을 것이다.
하나 이대로 목경운을 저 안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목경운이 목숨을 잃게 되면 식신의 연 때문에 자신들 역시도 소멸되고 만다.
‘빌어먹을!’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목경운이 바닥의 붉은 선을 힐끔 쳐다보았다.
밖에서는 몰랐는데 바닥의 붉은 선은 이 작은 공동 안 전체에 쳐져 있었다.
마치 놈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말이다.
이에 목경운이 백발의 중년인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아까 전에 했던 제안 아직 유효한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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