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11)
의식조차 하지 못했는데 닿아있는 손가락 끝.
“느리네요.”
-주르륵!
목경운의 그 말에 모하랑의 고운 뺨 위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조금만 움직여도 목이 관통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내심 당혹스러웠다.
목경운이 다른 자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기이한 힘이 있는 것은 인정하나 그것이 무(武)로서의 우위라고는 여기지 않았었다.
한데 이게 뭐지?
‘……달라졌어.’
하루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애초에 기감으로는 목경운의 무위를 판단할 수 없기에 그것은 논외로 친다고 해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검결지의 손가락 끝에서 전해오는 날카로운 기운은 흡사 상승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에게서 느껴질 법한 느낌에 가까웠다.
‘이 느낌 아버지, 아니……’
모화방의 방주에게서 느꼈던 그것과 흡사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겨룰 수 있었던 초절정의 고수인 모화방의 방주.
그 느낌이 목경운에게서 풍겨졌다.
‘아냐. 그럴 리가.’
모하랑은 순간 이를 부정했다.
아무리 무재가 뛰어나다고 해도 초절정의 경지는 고작 열일곱, 열여덟에 오를 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설령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어떻게 하루 사이에…..
‘아!’
설마 그것을 먹어서 그런 건가?
천지단(天地丹).
천지회의 비전으로 만들어져 한 알을 먹기만 해도 10년에서 15년의 내공을 얻을 수 있다는 단약이었다.
10년에서 15년은 절대로 무사할 수 없는 간극이었다.
‘…….하나 이걸로 이 정도까지 차이가 벌어질 수 있나?’
계속해서 혼란스러워하는 모하랑.
그런 그녀를 보며 목경운은 내심 만족해했다.
보고에서의 겹쳐진 여러 기연들로 인해 초절정의 영역에 들어섰으나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아직까지 확실하게 판단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 겨뤄봤던 모하랑과의 대련으로 얼마큼 늘었는지 확인에 들어간 것이었다.
‘괜찮네.’
청령의 말대로 격차가 확실해졌다.
초절정과 절정의 고수는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이라 했던 말이 이제 납득이 간다.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지난 번과 다르게 너무 훤히 보였다.
-아직 멀었다. 중생.
그때 청령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애송이 딱지를 뗐다고는 하나 초절정의 영역부터는 초입과 완숙, 극 간에도 차이가 극명하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래야죠.’
당연히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복수의 대상이 초절정의 극에서 화경에 가까운 절세고수일지도 모르기에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다른 감정이 생겨났다.
무공이나 검법 이런 것은 그저 복수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목경운이었다.
그런데 한층 높은 경지에 오르자 이 무공이라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무공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을까?
‘더…..더 맛보고 싶다.’
오랜만에 가지게 된 순수한 감정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모하랑이 목경운에게 말했다.
“…….혹시 천지단을 복용하셨나요?”
“아아. 그거요.”
목경운이 품속에서 작은 복주머니 같은 것을 꺼내서 보여줬다.
이 안에 천지단이 들어 있었다.
청령은 이를 천지단이라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
해서 그녀의 앞에서는 월명단이라고 한다.
“아직 안 먹었어요.”
“네?”
이런 목경운의 말에 모하랑이 놀랐는지 미간을 찡그리고서 복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목경운이 이를 복용했을 거라 여겼던 그녀였다.
한데 이를 먹지도 않았는데 단기간에 이렇게 강해졌다고?
‘…….괴물인가.’
무공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왠지 모르게 착잡해진다.
과연 이 마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 *
다음날 정오 무렵.
시혈곡의 숙소 뒤편에 있는 광장의 단상 주변으로 여러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하나 둘씩 내성의 손님들이 도착해가고 있었다.
단상에 서있는 시혈곡주 이지염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의외의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암종주?’
왜소한 체구에 날카로운 인상을 한 중년인.
처음 보는 얼굴에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그 정체를 듣고서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암종주는 여태껏 종관식에 참여한 적이 없는 위인이었다.
맡은 직위도 그렇고 워낙 비밀스러운 인물이었는데다 들리는 소문 역시도 워낙 특이한 것 투성인지라 궁금하긴 했었다.
한데,
‘…….예상 이상이로구나.’
기감으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엿보려고 했는데,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는 건 암종주의 무위는 자신과 거의 동격이거나 혹은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게 된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상당히 의외였다.
요 며칠 사이에 목경운이 준 비전으로 깨달음을 얻어 더욱 무공이 진일보한 이지염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파악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띠잉!
그때 고막을 울리는 현(絃) 소리.
이 소리에 먼저 도착해있던 이들의 시선이 광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으로 향했다.
그곳에 사인교(四人轎)를 타고서 요염한 자세로 누워있는 한 미녀가 보였다.
겉보기에는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는데,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가 않았다.
-띠잉!
현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리자 의자에 앉아있던 한 간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간부는 다름 아닌 오왕의 일인 벽력권왕 원병학이었다.
‘또 시작이로군.’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여자였다.
제멋대로의 저 성격만 아니었다면 네 번째 종주의 자리에 올랐을 텐데, 워낙 통제불능인지라 곡주의 직위를 받아 내성에 들어오지 못했다.
실력만으로는 종주 아니 그 이상도 가능할 텐데 말이다.
-띠잉!
“흡.”
한 번 더 울리는 현 소리에 주변에 있던 붉은 혁대의 무사들 중 몇 명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것은 현을 튕길 때 마다 음에 실리는 진기 때문이었다.
음(音)에 내공을 실을 수 있는 그녀는 초음곡주(招音谷主) 항여량이었다.
시혈곡주 이지염이 속으로 혀를 찼다.
‘저 여자까지 오다니.’
암종주와 달리 그녀에 대해선 잘 알고 있는 이지염이었다.
정사를 통틀어 무림에서도 독특한 무공 계보를 가진 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음공(音功)이었다.
실질적으로 중원 무림에서 제대로 된 음공을 다룰 수 있는 자는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데, 초음곡주 항여량이 바로 그 중 한 명이었다.
-띠잉!
사인교 위에 요염한 자세로 누워있는 초음곡주 항여량이 비파의 현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러자 조금 전 음을 통해 퍼져나가는 파동이 커졌다.
이로 인해,
“윽.”
붉은 혁대의 무사들 중 내공이 다소 약한 자들이 이를 참지 못하고 귀를 틀어막았다.
‘여전하구나.’
참으로 악취미였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느닷없이 비파의 현에 음공을 실어 주변을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이를 보다 못해 그 사람 좋은 부회주가 강하게 경고를 할 정도였다.
물론 그녀는 그 경고를 귓등으로 들었는지 여전히 이런 악취미를 이어가고 있었다.
‘후우.’
어쨌거나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지염이 포권을 취하며 소리 높여 말했다.
“오랜만에 뵙소이다. 초음곡주.”
-곡주~ 곡주~ 곡주~
메아리처럼 광장 전체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
목소리에 담겨진 웅후한 진기에 요염하게 누워있던 초음곡주 항여량의 눈이 이채가 띠었다.
아니 먼저 도착한 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인사 한 번으로 그들은 이지염의 내공이 전보다 깊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항여량도 그랬다.
그녀가 놀랍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못 본 사이에 시혈곡주의 내공이 더 깊어지셨군요.”
“그럴 리야 있겠소이까?”
“겸양이 지나치시군요.”
“겸양이 아니오. 그보다 아름다운 비파 현 소리를 들으니 오히려 초음곡주야말로 날이 갈수록 공력이 깊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음에 실린 공력에 본인조차 속이 들끓을 것 같소이다.”
“후후후. 그렇습니까?”
돌려서 말했지만 진의는 간단했다.
주변 사람들이 내상을 입을 수 있으니 현에 공력을 싣는 것은 적당히 하고 멈춰라.
이런 의미였다.
그녀 또한 이를 단번에 알아들었지만,
-띠잉!
“하면 곡주께 사죄의 의미로 제대로 된 곡을 들려드려야 할 것 같군요.”
‘이 여자가 정말……’
참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관행상 참석해달라는 전서구를 날리기는 했으나 당연히 그녀의 성격상 오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한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특유의 성정대로 제멋대로 굴어대니 곤란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이지염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 오왕의 일인인 벽력권왕 원병학을 바라보았다.
높은 직위를 가진 그가 나서주길 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
원병학이 가만히 앉아 고개를 돌리고서 딴청을 피우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제멋대로인 그녀라고 해도 상위 간부인 오왕의 일인인 그가 나서서 경고한다면 그래도 무시하긴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가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미안하오. 시혈곡주.’
사실 사전에 그녀를 만나 비경문의 아이를 건들지 않기로 확답을 들은 원병학이었다.
서로 간의 주고받을 것이 있기에 차마 나설 수가 없는 그였다.
워낙 제멋대로인 그녀가 심기가 불편하다고 자신이 점 찍어둔 비경문의 아이를 노리기라도 한다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슥!
영문을 모르겠지만 벽력권왕 원병학이 나서주지 않으니, 아쉬운 대로 한 단계 위인 삼종주의 일인인 암종주를 바라보았다.
하나 암종주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서 여인네처럼 웃을뿐이었다.
나설 생각이 조금도 없어보였다.
‘별 수 없나.’
이지염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와 불편해지더라도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는 듯 했다.
이에 비파의 현을 튕기는 그녀를 향해……
“항 곡주. 그쯤 해라.”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비파를 튕기던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서있는 자는 다름 아닌,
‘명도왕?’
오왕의 일인인 명도왕 손윤이 커다란 태도를 어깨에 얹고서 험악한 인상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보통 사람보다 거구에 흉터투성이인 그의 위압감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단연 발군이었다.
“명도왕…..께서도 오셨군요.”
초음곡주 항여량이 비파를 튕기던 손을 멈추고서 포권지례를 했다.
이런 손윤의 등장을 이지염은 속으로 반겼다.
오왕들 중에서도 워낙 강단 있기로 명성이 자자한 손윤이었다.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하고 호불호를 확실히 하는 그는 예전부터 제멋대로인 항여량과 여러 차례 부딪친 적이 있었다.
소문에는 그녀가 명도왕 손윤의 태도에 목이 달아날 뻔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찌 보면 항여량에게 있어서 천적이라 할 수 있었다.
“내가 못 올 곳에 왔나?”
“아니요, 그럴 리가요.”
“하면 적당히 하고 자리에 앉아라. 그대 때문에 시혈곡주가 마지막 관문을 진행하지 못하지 않나.”
이런 그의 날이 선 말투에 항여량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확실히 서로 간에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분위기가 상당히 냉랭해졌다.
거의 일촉즉발의 상황에 가까워졌다.
그때 시혈곡주 이지염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명도왕께서도 이리 참관해주시니 영광입니다.”
무거웠던 분위기가 잠시 해소되었다.
항여량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명도왕 손윤이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풀고서 말했다.
“시혈곡주. 오랜만이오.”
“오랜만입니다. 종관식에 명도왕께서도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시혈곡주 이지염이 이리 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명도왕 손윤에게는 이미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다.
특히 그의 대제자 우호랑 같은 경우는 그 재능이 워낙 출중하여 천지회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후기지수였다.
한데 이런 그가 종관식에 참여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이유가 있어서 말이오.”
“그럴 이유라면?”
이런 이지염의 말에 명도왕 손윤이 고개를 돌리며 광장에 서있는 여섯 명의 소년들 중에 누군가를 쳐다보았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목경운이었다.
[뭐? 누구한테 졌다고?]불과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이곳에 올 예정이 없었던 그였다.
그러나 막내 제자 엽위선이 대사고를 친 것도 모자라 누군가에게 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하…….’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삼류 애송에 불과했던 목경운이다.
그런 그가 절정의 경지에 이른, 그것도 자신에게 무공을 전수 받은 엽위선을 이겼다고?
도저히 이곳에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