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15)
‘난감하군.’
단상으로 올라가 비무가 끝났다고 외치려 했던 시혈곡주 이지염이었다.
한데 이 자리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상위 간부 오왕(五王)의 이인이 신경전을 벌이는 사태가 벌어질 줄은 몰랐다.
‘······의도는 알겠지만 너무 과하게 보이셨다.’
이지염이 목경운을 힐끔 쳐다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사실 그 역시도 목경운이 무장약과 겨루며 우권좌장의 묘리를 한 번에 따라하는 것을 보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저 안에 주군이 빙의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를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천부적인 무재에 이들처럼 제자로 받고 싶어 안달이 났을 것이다.
어쨌거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이들의 신경전을 말려야 했다.
“흠흠. 두 분···.”
한데 말문을 떼려고 하는데 좌측 편에서 암종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호호. 두 분 대화 중에 송구하지만 한 말씀 올려도 괜찮을지요?”
암종주가 중재하듯이 나서자 서로 간에 감정이 격해지려고 하던 두 오왕이 동시에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중 좀 더 호전적인 명도왕 손윤이 다소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말씀하려는 것이오?”
“다름이 아니오라 본 회에서 명망 높으신 두 분께서 굳이 인재 하나로 감정이 상하실 필요가 있을까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평소의 그들이라면 이 말에 금방 이성을 찾았을 것이다.
하나 이번만큼은 상황이 예외였다.
시혈곡의 모든 관문을 통과할 정도라면 무인이 갖춰야 할 대부분의 자질이 검증된 것이고, 치열한 생존력까지 갖추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그것에 그치지 않고 17세의 나이에 절정의 경지에 이른 것도 모자라, 초절정의 고수들마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묘리를 한 번 보고서 따라할 수 있을 정도의 천부적인 무재마저 지니고 있다.
이런 자를 어떤 누가 놓치려 하겠는가.
“암종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는 알겠으나, 이것은 벽력권왕과 본인의 일이니 관여하지 마시오.”
명도왕 손윤이 강하게 경고했다.
반면 벽력권왕 원병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군자 같은 그의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간밤에 암종주를 찾아가 비경문의 아이를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 때문이었다.
“흠흠.”
저 정도 인재라면 절대로 놓칠 수 없다고 여겨 철면피를 끼기는 했으나, 당연히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명도왕에게는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지만, 암종주가 부디 이것을 거론하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암종주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한데 여기서 두 분께서 누가 인재를 데려갈지 정하셔봐야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그 말에 명도왕 손윤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설마 암종주 역시도 이 인재 쟁탈전에 참여하려는 것인가?
이에 손윤이 경고하듯이 말했다.
“설마 귀공도 저 아이를···.”
“아아아.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제 말은 종관식의 규칙대로라고 하면 두 분이 이리 설전을 펼치는 것이 부질없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부질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의아해하는 두 왕에게 암종주가 목경운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다른 생도들의 비무를 보지 않아 확정하기는 힘들다고는 하나, 만약 저 생도가 마지막 관문을 수석으로 통과하면······.”
‘!!!!!’
뒷말을 흐렸지만 모두가 암종주의 말을 이해했다.
생각해보니 저 정도 무재라면 마지막 관문 역시 수석으로 통과할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그렇게 되면 선택권은 생도에게 있었다.
결국 목경운 하나를 두고서 누가 제자로 받을지 설전을 하는 게 전부 부질없어질지도 몰랐다.
‘그래. 우리끼리 설전해봐야 부질없지.’
암종주의 말에 수긍하는 이들과 달리 초음곡주 항여량은 목경운을 쳐다보며 두 눈을 반짝였다
* * *
목경운이 바닥에 앉아 팔짱을 끼고서 다음 비무를 지켜보았다.
다음 비무는 삼(三)인 모화방의 모하랑과 사(四)인 비경문 연무웅의 차례였다.
그들은 이미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쾌(快)와 암살 비도술을 바탕으로 하는 모하랑과 철현공이라는 외공을 바탕으로 하는 강권(剛拳)을 펼치는 연무웅의 대결의 양상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대결이라고 해야 할까?
-파파파파팍!
아직까지는 진기의 소모도 적었고 체력이 충분했기에 두 사람의 대결은 비등했다.
다만 싸우는 양상만 본다면 쾌를 중시하는 모하랑의 움직임이 연무웅보다 두 배에서 세 배에 이르기에 더 빨리 지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대결을 지켜보고 있는데,
-누가 이길 것 같으냐?
청령이 물었다.
이에 목경운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작게 중얼거렸다.
“모하랑.”
-호오. 제법 안목이 늘었구나.
그녀 역시도 목경운과 의견이 같았다.
겉보기에는 진중하게 움직이며 강권을 펼치고 있는 연무웅이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할 수도 있다고 여길 수 있지만 두 사람 간의 수준 차가 극명했다.
목경운의 눈에는 연무웅은 이십여 초식을 겨뤘는데도 모하랑의 움직임을 여전히 쫓아가지 못하는 반면, 그녀는 점차 연무웅의 허점들을 공격해가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모하랑이 연무웅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이런 목경운의 예상대로 연무웅은 조금씩 조급해지고 있었다.
아직 철현공이 7성에밖에 이르지 못한 연무웅에게는 세 곳의 취약 부위가 있었다.
그것은 안면과 겨드랑이, 그리고 발목이었다.
철현공이 극성에 이르면 몸 전체가 돌처럼 단단해지게 되는데, 그때에는 대부분의 취약 부위가 해결된다.
하나 아직 연무웅에게는 약점이 존재했다.
-팍!
“흡!”
어느새 모하랑의 비수 하나가 그의 약점 중 하나인 겨드랑이 부위로 파고들었다.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연무웅이 결국 보법을 펼치며 뒤로 몸을 뺐다.
이에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찾았다.’
완성되지 않은 외공에는 필연적으로 약점 부위가 존재한다.
이제 그것을 찾았으니 승부수를 던질 수 있게 되었다.
‘넌 끝이야.’
-탁! 파아아아아악!
그녀가 비수를 손에서 놓자 은사가 연결된 그것이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이며 거리를 벌리려하는 연무웅에게 따라붙었다.
그것은 집요할 만큼 겨드랑이를 노려 연무웅을 괴롭혔다.
“젠장!”
화가 난 연무웅이 은사를 쳐내려고 하는데, 그것이 거미줄처럼 얽히며 팔을 휘감았다.
이를 보며 목경운이 피식 웃었다.
곧 승부가 날 것이다.
본인보다 더 높은 수준인데다 약점까지 들켰으니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때 주살곡의 염가, 아니 그에게 빙의되어 있는 마승이 목경운의 옆으로 다가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주인님. 어찌할까요?”
마승이 누군가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목유천이었다.
목경운이 딱히 그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겉으로는 형제라는 명목이 있기에 어찌 할지 묻는 것이었다.
이에 목경운은 별 다른 고민 없이 말했다.
“그 몸의 주인 수준으로 상대해줘요.”
“알겠습니다.”
주살곡 염가의 몸을 차지한 마승은 그 이상의 무위를 발휘할 수 있었지만, 그리 한다면 괜히 부각될 수도 있으니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염가 수준으로도 마승의 실력이라면 목유천은 어렵지 않게 꺾을 것이다.
생전의 경험은 무시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고 있는데,
“헉!”
옆에 죽은 듯이 기절해 있던 무장약이 깨어났다.
깨어난 그는 호흡을 조절하기 힘들었는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우며 기침을 해댔다.
“쿨럭쿨럭.”
이런 그를 보며 목유천이 다가가 말했다.
“장약. 괜찮아?”
“쿨럭쿨럭··· 괘, 괜찮아.”
몇 번을 더 기침을 한 무장약이 겨우 호흡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씁쓸해진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역시··· 졌군.”
“······충분히 잘 싸웠어.”
목유천이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기운낼 수 있게 위로하고 싶은데 그럴 방법이 없었다.
절정의 극에 이른 것도 모자라, 절세고수들조차 따라할 수 없는 우권좌장이라는 신묘한 수법까지 익혔는데도 졌다.
자신의 수법을 고작 한 번 밖에 보지 못한 상대가 그대로 그것을 재현해냈다.
상대가 너무 최악이었다.
‘목경운···.’
대체 넌 무엇이냐?
연목검장에서부터 뭔가 달라졌다고 여겼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영역의 인간이 되었다.
천재라 불렸던 자신조차 목경운의 무재에 비하면 열등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저건 그냥 괴물 그 자체였다.
“후우.”
그때 무장약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에 목유천이 그를 만류했다.
“무리하지 말고 앉아서 운기조식을 해. 턱과 안면을 맞아서 많이 어지러울 거야.”
이렇게 빨리 깬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런 목유천의 권유에 무장약이 괜찮다며 고개를 젓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목경운에게로 다가갔다.
이에 목유천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승부에 납득하지 못해서 저러는 것인가?
해서 혹시나 사달이 벌어질 수 있다고 여긴 목유천이 이를 말리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는데,
-털썩!
이내 무장약이 목경운 옆에 앉고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졌다. 아니 졌습니다. 약조대로 주군···.”
“아아아. 그게 아니죠. 호칭이 틀린 것 같은데요.”
이런 목경운의 말에 무장약이 볼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간부들과 보는 눈이 많아 제대로 충성의 예를 갖추지 못하는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
사달이 벌어질까봐 만류하려 했던 목유천이 이들의 대화를 듣고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인?’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어째서 무장약이 목경운에게 주인이라고 하면서 저렇게 굴욕적으로 숙이고 들어가는 거지?
설마 앞에 얘기한 그 약조인가 뭔가 때문인 건가?
의아해하는데 목경운이 그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더니,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은 비무가 벌어지고 있던 광장 한 가운데에 있는 연무장이었다.
‘아?’
그곳을 바라보니 비무에 승패가 갈려 있었다.
“하아··· 하아··· 졌다.”
피로 젖은 우측 겨드랑이를 붙들고서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비경문의 연무웅이 모하랑의 비수 앞에서 패배를 인정했다.
그렇다는 건 이제 자신의 비무 차례라는 것을 의미했다.
대체 저 둘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일단 비무를 준비해야 했다.
‘칫.’
목유천이 이내 몸을 돌려서 가려 했다.
그러는데,
“잘하고 와요.”
“네. 주인님.”
‘!?’
목경운에게 주인님이라 답하는 주살곡 염가의 목소리에 목유천이 멈칫하고 제자리에 섰다.
대체 뭐지?
언젠가부터 저 녀석이 목경운과 함께 하는 것은 알았지만 주인님이라니?
마치 그것은 노예들이나 몸종들이 할 법한 호칭이 아닌가?
이에 목유천이 몸을 돌리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투로 목경운에게 말했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이라니?”
“왜 이들이 너한테 주인이라고 부르는 거지? 너 대체 이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런 목유천의 물음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별짓 안했는데.”
“뭐가 별짓 안했다는 거야? 한데 왜 이들이 너한테 주인이니 뭐니 그런 식으로···.”
“목유천!”
그때 시혈곡주 이지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목유천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이내 몸을 돌려서 광장 가운데로 걸어갔다.
이곳 시혈곡에서 녀석을 겪게 되면서 마귀와 같은 진면목을 깨달았다.
분명 녀석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었다.
그때 비무에서 승리한 모하랑이 생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깃발 쟁탈전 당시 같은 조였기에 친분을 생각해 목유천이 말했다.
“승리 축하해”
“······고마워.”
-저벅저벅!
그들이 서로에게 가까워지자 목유천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경고했다.
“목경운 녀석을 멀리해. 녀석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주위 생도들에게 자신을 주인으로 받들게 하는 것 같아.”
같은 조였기에 일말의 정으로 얘기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조언. 이미 늦었어.”
‘!?’
스치며 들려오는 모하랑의 목소리에 목유천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면 그녀 역시도 목경운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목유천이 고개를 돌리며 떨리는 눈동자로 목경운을 쳐다보았다.
너 볼모로 붙잡혀온 주제에 대체 이곳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 * *
그렇게 목유천과 주살곡 염가에게 빙의해 있는 마승의 비무가 시작되었다.
이를 관람하듯이 바라보고 있는데 목경운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녕.
‘!?’
목경운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뭐지?
이건 청령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소리가 귀를 파고 들기는 했는데, 주변을 울려 퍼진 게 아니라 꼭 자신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려왔다.
주변을 가볍게 훑은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대체 그 소리가 어디서 들린 거지?
하는데,
-후후후.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경각심을 끌어올리고 있던 목경운이 들려오는 소리의 울리는 진동과 함께 그것에 실려 있는 희미한 진기의 형태를 감지해냈다.
-휙!
목경운이 고개를 돌리며 단상 옆쪽에 참관인으로 앉아 있는 초음곡주 항여량을 쳐다보았다.
‘하!’
이에 그녀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아아아.
역시 저 녀석은 상상 그 이상이다.
멀리서 소리에 진기를 싣게 되면 누가 말을 걸었는지 그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다.
한데 이 거리에서 단번에 자신을 찾아내다니.
‘역시 가져야겠어.’
도저히 양보할 그릇이 아니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