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25)
촛불 하나만 덩그러니 켜져 있는 넓은 방 안.
방안에는 침상 하나가 있었고 그 주위로 대나무 발이 쳐져 있었다.
대나무 발에 비치는 침상에 걸터앉아 있는 그림자.
그림자는 약사발로 보이는 무언가를 들이키고는 침상 옆 탁자 위로 올려놓았다.
“쿨럭쿨럭!”
그림자가 기침을 했다.
이 모습을 다소 씁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백발에 수염 하나 없는 사십 대 초반의 사내였다.
뱀과 같은 눈을 가진 이 사내는 천지회의 이인자인 부회주 몽서천이었다.
“회주······ 회타명의를 부르는 게 어떻겠습니까?”
회타명의(懷他鳴醫).
오래전 행방이 묘연해진 해영약선(解營藥仙)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명의라 불리는 자다.
약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해영약선과 달리 외학과 내학을 두루 섭렵한 그는 젊은 시절에는 황궁 어의를 맡았을 만큼 그 의술이 뛰어났다.
“회타명의라면 회주의······.”
“아니. 괜찮다.”
대나무 발에서 들려오는 단호한 목소리.
이를 들은 몽서천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어찌 저리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심후한 내공 덕분에 버틸 수 있지만 체내의 기운을 내보내지 못하면 결국 환우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쿨럭쿨럭. 그보다 시혈곡 관문의 결과가 나왔다고?”
“······그렇습니다.”
“참관인은?”
“명도왕 손윤, 벽력권왕 원병학, 암종주, 초음곡주 항여량, 염마단의 대단주 보혁소, 적혈단의 대단주 대소만 이렇게 여섯입니다.”
“배치는?”
“염마단의 대단주 보혁소를 제외하고는 한 명씩 데려갔습니다.”
“그렇군. 특이사항은 있나?”
그 물음에 부회주 몽서천이 옅은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연목검장의 볼모 두 아이를 시혈곡에 보내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연목검장? 아아아. 그랬었지.”
이런 회주의 반응에 몽서천이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나 그 둘을 시혈곡에 보낸 것은 즉흥적인 여흥이었던 것 같다.
그가 겪어온 회주는 그런 사내였다.
하나 그 즉흥적인 여흥이 불러일으킨 역풍을 감당해야 할 순간이 온 듯했다.
“볼모로 온 두 아이···.”
“죽었나?”
“······아닙니다.”
“죽지 않았다고?”
“네.”
“생각보다 강단이 있는 녀석들이었나 보군. 쿨럭쿨럭. 하면 어디까지 통과한 거지?”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했습니다.”
‘!?’
그 대답에 일순간 대나무 발에 비친 그림자가 멈칫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라기라도 한 것일까?
이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볼모들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라······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군.”
“······.”
이걸 단순히 재미있는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다른 이들도 아니고 정파에서 볼모로 잡혀 온 이들이 시혈곡의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했다.
이것이 퍼져나간다면 내부적으로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천지회에 있어서 굴욕적인 결과와도 다름없었다.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본 회 산하 생도들도 아니고 붙잡혀 온 정파의 볼모들이 공동으로 수석을 차지했습니다.”
“수석?”
“네. 목가 형제 둘이 공동 수석입니다.”
이런 부회주의 말에 이윽고 대나무 발의 그림자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광소를 터뜨렸다.
“수석? 하하하하하핫. 수석이라고?”
결과를 듣고서 심각하게 여겼던 그와는 사뭇 달랐다.
마치 남 일인 것 마냥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내상이라도 도졌는지 기침을 마구 내뱉으며 호흡이 거칠어졌다.
“쿨럭쿨럭······ 하아··· 하아···.”
역시 내상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한데도 저리 고집이라니.
저 괴물 같은 작자가 죽는 것은 꿈에도 상상이 가지 않지만, 저러다 정말 급사라도 한다면 내부적으로 큰 균열이 일어날 것이다.
부회주가 속으로 혀를 차다 이내 말했다.
“회주 이건 자칫 회 내부적으로 사기가 떨어지고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월의 검식을 익혔다는 것을···.”
“아니.”
-촤르르르르!
순간 대나무발 전체가 흔들리며 그 사이로 날카로운 안광이 보였다.
“흡.”
그 안광과 마주친 부회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 만큼 회주의 기세가 방안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는데도 여전히 이 정도의 위압감을 발휘하다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아직 살아있어.’
괜히 무림의 정점인 육천(六天)의 일인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최고조의 상태가 아니더라도 성내에서 회주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을 듯했다.
그 자신조차도 말이다.
-꽉!
부회주 몽서천이 주먹을 쥐고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떨리는 손을 진정시켰다.
그러는데 이윽고 방 안을 가득 메우던 기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더니 이내 회주가 입을 열었다.
“아니지. 아니. 그걸로는 아직 멀었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부회주 몽서천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지금 회주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듣기 힘들었다.
무엇이 멀었다는 것일까?
“볼모들은 그냥 내버려둬라.”
“······.”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그들을 시혈곡으로 보낸 것부터 출신과 상관없이 참관인의 제자로 받게 내버려둔 것까지 알려지게 되면 이에 대해 의문을 품는 자들이 생길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하나 더 이상의 이견을 말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천지회에서 회주의 명은 절대적이었다.
“그보다 ‘그것’은 찾았나?”
회주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물음에 부회주 몽서천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직입니다. 하오나······.”
그리고 조용히 무언가를 말했다.
* * *
회주의 거처에서 나와 본관을 벗어나려고 하던 차였다.
누군가가 부회주 몽서천을 불렀다.
“부회주.”
이에 몽서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목소리만으로 그는 자신을 부른 자가 누군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가 자신을 부를 때까지도 전혀 그 위치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또 진보한 건가.’
며칠 전에 폐관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성과가 있었다고는 들었는데, 설마 자신조차 기척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진보하다니.
참으로 놀랍다.
“장 공자.”
고개를 돌리자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에 화사한 외모를 가진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이죽거리는 얼굴로 서있었다.
그는 회주의 둘째 제자인 장능악이었다.
회주의 세 제자들 중 무재가 떨어지는 축에 속한다는 그였지만, 그것은 그 세 명 안에서의 일이었지 동년배로 친다면 압도적인 재능을 자랑한다.
회주의 둘째 제자 장능악이 특유의 보조개가 섞인 이죽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회주께서는 여전히 ‘그것’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나요?”
이런 그의 물음에 부회주가 말없이 웃었다.
회주와의 대화는 누군가에게 알려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설령 제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둘째 제자 장능악이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회주께서는 왜 그런 종교적인 것에 집착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차라리 그 시간에 회타명의를 찾는 게 나을 듯한데 말이죠. 안 그런가요?”
몽서천은 내심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회주의 고집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뜻하신 바가 있으시겠지요.”
“아아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부회주 몽서천의 대답에 회주의 둘째 제자 장능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회주의 오른팔이고 회주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기에 어떻게든 회유하고 싶었지만, 유독 그러기가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다가가려 하면 곧바로 거리를 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 이것도 지금뿐이다.’
머지않아 자신과 함께하게 되리라.
장능악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제가 재미있는 정보를 하나 얻었는데 아실지 모르겠네요.”
“재미있는 정보요?”
“네. 듣자 하니 이번 시혈곡 관문을 수석으로 통과한 자가 명도왕께서 붙잡아온 연목검장의 볼모라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
그 물음에 부회주 몽서천이 말없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벌써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둘째 제자 장능악이야 산하에 거둬들인 지지 세력들이 상당할 터이니, 당연히 이 정보를 빠르게 입수했을 것이다.
이 정도까지 안다면 굳이 숨길 것도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킥.”
‘킥?’
갑자기 자신의 새끼손톱을 물어뜯으며 웃음을 참는 장능악.
그런 그의 모습에 몽서천의 눈에 우려가 피어났다.
회주의 제자들을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왔던 그였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거 안 좋은데.’
장능악이 무언가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 그 결과가 상당히 좋지 않다.
애초에 건드릴 수 없는 무언가면 상관없는데, 본인이 건드려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순간 악의가 가득해지는 그였다.
“공자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
“아아아. 부회주. 설마 제가 그들이 정파 출신이라고 해코지라도 할까봐 그러나요?”
“······그렇다기 보다는···.”
“저는 그저 정파에도 그 정도로 악다구니도 있고 무재를 갖춘 녀석들이 있다는 것에 흥미가 가서요.”
“······이제 정파가 아니라 본 회의 힘이 될 겁니다.”
“마침 잘됐네요. 그 힘이 제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거든요.”
이런 그의 말에 부회주는 심히 우려가 되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가지고 이루려 하는 자가 바로 장능악이었다.
* * *
천지회 내성의 남동쪽 외곽.
그곳에 암종(暗宗)의 본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암종으로 들어서자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쪽 건물 쪽에는 수십 마리의 매를 비롯해 비둘기들이 날아들고 있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깃발을 든 이들이 뛰어와 두루마리 같은 것을 넘기면, 그것을 다른 이들이 빠르게 보고서 불태우고 있었다.
-제대로 일하고 있구나.
청령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뭘 하고 있는 거죠?
-보는 그대로 전서구를 관리하고 암구로 온 전서들을 불태워서 기밀 유지를 하는 거겠지.
-오호.
과연 정보나 기밀을 다루는 조직다웠다.
그러고 있는데 암종주가 멈추지 않고서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전서구와 기밀 문서들이 오가는 곳이 아니라, 병장기들과 연무장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며 드러난 곳은 실내 연무장이었다.
벽을 두껍게 만든 것이 방음 처리가 꽤 잘될 것 같은 곳이었다.
암종주가 손짓을 하자 따라왔던 무사들이 고개를 숙이고서 인사를 한 후에 문을 닫고 나갔다.
그렇게 실내 연무장에 둘만 남게 되었다.
그가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데 암종주가 말했다.
“오호호. 여긴 제 개인 연공장이랍니다.”
창문 하나 없이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된 공간.
마치 누구도 방해할 수 없고 지켜볼 수 없게 제작된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암종주가 말했다.
“어때요? 제 독문무공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요?”
“······.”
그런 그의 말에 목경운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렇지 않아도 암종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 고민해보세요 라고 했던 암종주였다.
암종주의 독문무공.
당연히 그를 간부로 만들어준 무공답게 초상승의 무학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이를 익히려면 거세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깔깔깔깔. 이참에 시원하게 잘라보는 게 어떻겠느냐?
청령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막 웃어댔다.
거세라 하면 말 그대로 남자의 양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생식기 고환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딱히 성욕이나 후손을 번창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 목경운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세를 하고픈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목경운이 정중히 두 손을 모아 포권 지례를 하며 말했다.
“송구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힘들 것 같나요?”
“네.”
“하면 제 정식 제자가 아니라 산하의 수하로 들어오는 것이 될 텐데, 그 정도는 감안할 수 있겠지요?”
“정식 제자가 못 된다고요?”
“당연하지 않나요? 저희 문파의 무공을 익히지도 않고 어찌 제자라고 할 수 있나요?”
“······.”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했다.
그런데 암종주의 제자가 아닌 수하가 되는 것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권한 자체도 적어지고 그저 명만을 따르는 위치에 있게 된다.
이에 목경운이 말했다.
“거세를 꼭 해야만 독문무공을 익힐 수 있는 건가요?”
“네. 당연하죠. 귀음공(鬼陰功)을 익히지 않으면 비환귀도법(飛換鬼刀法)이나 귀영조법(鬼影爪法)을 운기할 수 없을 테고 그리 되면 초식을 펼칠 수도 없죠.”
암종주의 무공은 강한 음기를 바탕으로 한다.
귀음공의 운기법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초식의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그의 말에 목경운은 난처하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를 보며 암종주가 입을 가린 채 웃으며 말했다.
“오호호호. 저는 억지로 거세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답니다. 하나 제 정식제자가 되고 싶다면 거쳐야 할 과정이죠.”
“음기가 꼭 있어야만 무공을 익힐 수 있나요?”
“네. 만약 양기로도 발휘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면 저희 사문이 대대로 거세를 할 필요는 없었겠죠.”
암종주라고 원해서 거세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사문의 무공을 익히기 위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잃을 것이 많기에 그는 제자가 될 이로 하여금 누구에게나 선택권을 주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거세를 선뜻 하고자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목경운도 자발적으로 그리 하진 못할 거라 애초부터 생각하고 있던 암종주였다.
그때 목경운이 물었다.
“음기라 하면 양기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닌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태생적으로 남자는 강한 양기를 가지고 여자는 강한 음기를 지니게 되어 있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귀음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슥!
암종주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음습하면서 싸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솨아아아아!
그의 진기는 보통 무인들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귀음공을 통달하게 되면 상처부위가 차갑게 굳어져 상대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게 된다.
암종주가 귀음공의 음기를 선보이며 말했다.
“남자의 몸으로 음기를 통제하려면 안타깝지만 거세 외에는 방법이 없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체내에서 생겨나는 양기와 부딪쳐 주화입마를 입을 수도 있어요.”
“그렇군요.”
“강요하지 않으니 부담은 가지실 필요 없어요. 이런 음기를 가지기 위해서는 잃을 게 너무 많기에···.”
“좀 더 음한 것은 상관없나요?”
“더 음하다뇨? 그게 대체···.”
-고오오오오오오!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
암종주는 순간 전신에 닭살이 돋으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목경운에게서 갑자기 폭사되어 나오는 기운.
이것은 음하다는 것을 넘어서 마치 죽은 시체들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지독한 사기(死氣)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이것 참······놀라게 하는 재주가 남다르군요.”
끝
ⓒ 한중월야